스님의하루

2023.9.19 해외순회강연(20)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남편과 남자친구 둘 다 사랑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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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순회강연 중 스무 번째 강연이 미국 중북부 지역 미네소타주 오대호 연안에 위치한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 뉴욕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은 새벽 4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해 이틀 동안 숙소, 식사, 운전을 맡아서 봉사를 해준 김명호, 유정희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업무를 보다가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아침 6시 10분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을 비행한 후 8시 10분에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뉴욕과 1시간 시차가 있어서 공항에 내리니 1시간이 앞당겨졌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김세희, 션 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Welcome to Minnesota.”
(미네소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김세희, 션 부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짐을 풀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새책 출간을 위한 원고 교정 요청이 있어서 원고를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교정을 하고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에는 벌써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곳곳에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이 들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원고 교정을 본 후 해가 저물 무렵 저녁 6시 30분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크리스털 커뮤니티 센터(Crystal Community Center)입니다.



현지 미국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곳에 포스터 홍보를 잘해서 그런지 많은 미국인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미국인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화엄사상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스님이셨는데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두 분은 합장을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영어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접수대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준비하는 봉사자들도 모두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화되기 이전에 미국인을 위해 열린 법회를 열었을 때 참석했던 미국인 두 명과 션의 친구가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 7시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연단을 향해 걸어 나가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한 후 얼마 전 부탄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붓다 담마는 개인이 행복해지는 수행의 길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부탄에 들렀습니다. 부탄은 인간이 잘 사는 기준을 물질적인 생산량으로만 측정한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반영한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제창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부탄 국왕을 만나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가난해서 생활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그런 지역을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부탄에서도 가장 개발이 덜 된 낙후한 지역을 선정해서 주거, 농업, 교육, 보건, 의료, 생활시설 등을 조금 더 개선하되 그 이상은 개발하지 않는 겁니다. 붓다 담마를 배워서 검소하게 살면서도 행복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새로운 모델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지금 부탄 정부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달을 살아보니까 생활은 좀 불편하지만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고 여유가 있어서 참 좋다.’

부탄에서 한 달을 살아보면 누구든 이렇게 느낄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너무 불편하면 행복도가 떨어집니다. 기본적인 생활은 지금보다 좀 더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발이 한번 시작되면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올라가기 때문에 어느 선에서 욕망을 적절하게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 주시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시면 적극 반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이렇게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인사를 갈음하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7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아주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한 명씩 질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즉문즉설을 할 때처럼 개인적인 고민과 구체적인 사연들을 드러내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과 남자친구 두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주 솔직한 질문에 스님도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남편과 남자친구 둘 다 사랑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I have distilled down my question into the fear of the unknown. To shorten my very long, complicated, sad, horrible story, my husband was a drug addict and I ended up having an affair. He went through treatment and he's better now. But I initiated a divorce. And now I'm with this guy. But I'm still in love with my husband. And I still love this dude, too. I don't expect you to know, tell me who I should be with. But as I distilled down my deciding, I'm sort of like, okay. This is my husband of 12 years. We've been together since we were essentially children. He's the father of my 3 children. I don't want to go back to that life. It could happen or it could be happy. Or if I continue my life without him, potentially with this other man, then, you know, am I giving something up that could be beautiful on either end? So it's like, I'm trying to decide what am I supposed to do with my life at this crossroad? And I wish one of these dudes would just dump me but they're not. First world problems. Hot girl problems? Is that conceited? I don't know.”
(저의 질문을 요약하자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길고 복잡하고 슬프고도 끔찍한 제 이야기를 짧게 말씀드리자면, 남편은 마약 중독자였고, 그 와중에 저는 바람을 피웠습니다. 남편은 중독 치료를 마쳐서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는데… 문제는 제가 남편도 남자친구도 둘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누구를 선택하라고 알려 주시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사람이고 결혼 12년 차입니다. 함께 낳고 기른 아이도 세 명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같이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불행해질 수도 있고 앞으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남편 없이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삶은 또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다른 삶을 포기하는 건 아닐까... 궁극적으로 갈림길에 서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냥 누구든 저에게 이별을 고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아무도 저에게 헤어지자고 하지 않네요. 풍족함에서 오는 아주 사소한 문제입니다. 제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그럴까요? 너무 자만하고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고민이군요. 저는 한 명도 없는데 질문자는 두 명이나 있잖아요? 전생에 무슨 복을 그렇게 많이 지어서 두 명이나 되는 남자와 사귀게 되었습니까? (모두 웃음)

그것은 너무 좋아서 생긴 괴로움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 지나면 한 명이 저절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중 한 명을 선택하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습니다. 물론 질문자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질문자가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선택이 어려우면 그냥 두세요. 그럼 얼마 안 가서 한 사람이 포기하게 될 거예요. 재수가 좋으면 한 명이 사고로 떠나게 될 수도 있고요.”

“Maybe that one will be me. Then everybody's problems will be solved. No heartbreak.”
(제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요. 그럼 모두의 문제가 해결되겠네요. 마음 아플 필요도 없고요.)

“그래도 문제없습니다. 죽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걱정할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Right now I feel like I'm just so scared to make the wrong choice. And this choice could determine the rest of my life along with the rest of my children's lives. And they are my deciding factor in everything I've done up until this point. I ended our marriage because my kids started to see that their dad was addicted to drugs. It needed to be done.”
(저는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할 까봐 겁이 납니다. 지금 하는 선택이 제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고, 제 아이들의 인생에도 평생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모든 선택의 결정 요인은 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혼을 결심한 것도 아빠가 마약에 중독된 것을 아이들이 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합니까? 아빠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나요?”

“They love him. They adore him.”
(아이들은 아빠를 너무 사랑합니다.)

“질문자가 아이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한다면 남편을 선택해야죠. 질문할 것도 없어요. 질문자가 아이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으니까요.”

“What if the model of relationship is not the type of relationship I would want my children to have? I would not want my sons to be that type of husband. I would not want my daughter to be in a relationship like that.”
(우리 부부의 관계가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니라면 어쩌죠? 제 아들이 미래에 그런 남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 딸이 나중에 이런 관계를 맺고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미 다 배웠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What if I could show them differently? Would it change?”
(제가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다면요? 그렇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세요. 아이들이 원한다면 괜찮습니다.”

“They don't want that.”
(아이들은 바라지 않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아이들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혼하고 남자친구를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그걸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Is that selfish?”
(이기적인 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Please expand.”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몇 살입니까?”

“8, oh, no. He just turned 9. 5, and 3.”
(8살, 아니, 막 9살 되었습니다. 9세, 5세, 3세입니다. )

“그러면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워야 합니다.”

“I love that. My ears are very hot.”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귀가 뜨거워졌네요.)

“만약 아이들이 열다섯 살이 넘었다고 한다면 아이들과 의논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의한다면 괜찮습니다. 결혼은 성인이 상호 약속해서 만난 것이기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낳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What if he starts treating me like crap again, though.”
(남편이 저를 다시 학대하면 어쩌죠?)

“학대하면 경찰에 신고해야죠. 왜냐하면 누구든지 학대하면 처벌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Right. And that's my fear of the unknown, is that if I put my children's needs first, reconcile with their father, my husband, 5 years from now we'll be in the same place again. And I'll be kicking myself because I was like 'I was almost out! I had an awesome dude!'”
(맞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을 우선시해서 아빠와 화해했다가 5년 후 다시 제자리에 오게 될 까봐 겁이 납니다. 그때 가서 '피할 수 있었는데, 멋진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 하고 후회할까 봐 걱정입니다.)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날씨가 덥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내가 입고 싶은 옷은 아주 두꺼운 옷입니다. 더위를 참고서라도 입고 싶은 외투를 입고 갈 것인지, 날씨가 더우니까 가볍게 입고 갈 것인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입니다. 날씨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옷처럼 내가 선택할 일이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버려야 합니다.”

“Cool. As my therapist says, put your paddle in the water. But I really like your first idea of just floating along. So I might just go with that.”
(네. 제 상담사도 '노를 물에 넣고 저어라' 하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 말씀하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해법이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조금 더 기다려 보시죠. 질문자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줄 남편이 압니까?”

“Yeah, he found out a little bit ago. It wasn't great.”
(네,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많이 상했어요.)

“그 사실에 실망해서 남편이 먼저 이혼하자고 하든지, 질문자가 이혼을 망설이는 것을 보고 남자친구가 먼저 떠나든지, 저절로 결정이 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결정하든지, 조금 더 기다리든지, 어느 쪽이든 괴로워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I like that. I'm just gonna put my feet up in my canoe, and enjoy the ride and the sunshine.”
(좋습니다. 제 인생이라는 카누를 타고 발 쭉 뻗고 햇살을 즐겨야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도 괜찮나요?
  • 과거에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요?
  • 자녀 걱정을 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스님은 정말 많은 장소를 다니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장소와 사람이 있나요?
  • 아이를 잃은 슬픔에 어떤 위로도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미국에 이민을 온 후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항상 한국 생각을 하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한 분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위에서 소개했던 질문자 분도 웃으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As a bigger picture, you know, you said like life is joy and suffering. You cannot separate the two. The more joy you have the more suffering you have. That's just how it is and that's so very apparent in this room. And so that I just have freedom in choosing, making a choice and not being afraid of the consequences because that's just the beauty of what life is.”
(인생을 큰 그림으로 본다면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즐거움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 둘을 따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기쁨이 있다면 더 많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오늘 이 시간에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폭행의 상처를 갖고 있는 분, 아이를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분 등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폭행의 고통을 안고 있는 분도 밝아진 얼굴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I realized today that rather than, I think I was obsessing over forgiveness and betrayal but I realize that I was actually self-victimizing myself to a certain degree. I called myself a survivor but I don’t think I lived up to that title. I feel very light right now. There are some regrets. The should’ve would’ve could’ve back then. But I think I’m going to focus my energy in advocating for other sexual victims and survivors and helping prevent these issues by sharing my story and sharing some of the insights I gained today. And I feel very free and I think I truly feel like I own my body and I’m a winner. So I really appreciate today’s opportunity. Thank you.”
(그동안 저는 용서와 배신에 집착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제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존자라고 스스로를 부르면서 막상 생존자답게 살아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 마음이 가볍습니다. 후회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때 이랬다면, 혹은 저랬다면. 하지만 이제는 제 경험과 오늘 얻은 깨달음으로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일을 예방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자유로워진 기분이고, 나를 다시 찾은 것 같고, 성공한 기분입니다. 오늘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질문자들의 소감을 듣고 나서 청중 모두가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등산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선 계곡을 타고 먼 길을 걸어야 합니다. 강을 건너고,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를 걷기도 하고,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야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등산하러 온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산에 같이 오르자고 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죠.

자,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들어섰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중요한 것은 정상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정상에 올랐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수록 등산을 다녀와서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집니다.

지금 살아있다면 모두 성공한 인생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은 삶의 정상에 서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과정을 겪었지만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중간에 탈락하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이곳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인생은 모두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 의미로 아침마다 눈을 뜰 때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외쳐보세요. 하루를 훨씬 가볍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기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여러분들의 삶을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 몇 분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웃으며 가볍게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I learned today that compassion isn’t always about being nice or consoling. Compassion is not just comforting others but telling them what they needed to hear in the way that they can understand. Although the dialogue was between the questioners and Sunim, some of my questions were answered through their conversation.”
(오늘 강연에서 자비심이란 꼭 남을 위로하거나 남에게 친절한 행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자비심은 남을 위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통해 저의 질문들까지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뜻깊었습니다.)

“It was interesting to hear how all these life events boiled down to the bigger scheme of life. There is life, there is death, there is joy, there is sorrow. There is grief, there is happiness. These all seem to be happenings that come with life. It was a thoughtful time to gain insight into this Buddhist perspective on life.”
(오늘 강연에서 들은 다양한 인간사가 인생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분이구나 알게 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행복 이 모든 것이 삶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배우고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스님의 법문이 큰 감동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중을 배웅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나와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김세희 님의 댁에 도착하니 시어머니가 와 계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정토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봉사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김세희 님이 스님의 법문을 영어로 번역하면 시어머니가 현지인의 정서에 맞게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는지 점검을 해주십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How are you doing? It's been 4 years.”
(잘 지내셨어요? 4년 만이네요.)

“저는 4년 동안 농사짓고 살았어요.”

“Wow, that's cool.”
(와, 멋지네요.)

대화를 나누고 잠시 휴식한 후 밤 12시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간에 맞춰 생방송을 해야 하다 보니 오늘도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치고 미니애폴리스를 출발하여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이동합니다. 콜럼버스에서도 미국인을 위해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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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지

감사합니다 스님
욕심내지 않고 발견한 길을 잘 걸어가겠습니다
더이상 헤매지않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만 바랍니다.

2023-10-01 08:15:14

김정현

스님 일정이 타이트하네요.
건강하시길 빕니다.

2023-09-29 04:55:35

세숫대야

솔직한 질문이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2023-09-27 1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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