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13 해외 순회강연(14) 산호세(San Jose)
“어떻게 하면 인생을 가볍게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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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열네 번째 강연이 미국 실리콘 밸리의 중심 도시인 산호세(San Jose)에서 열렸습니다.

어제 샌디에이고 강연을 마치고 오렌지카운티로 돌아온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잠을 자고 있어서 조용히 일어나 수행법회 생방송을 준비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 저녁 7시 30분, 미국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먼저 지난 일주일 동안 으뜸절에서 진행된 실천 활동 모습과 스님의 해외 강연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영상 잘 보셨죠? 이렇게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정토불교대학, 경전대학, 행복학교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스님은 맑은 정신으로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마음 나누기를 왜 하는지 그 원리가 궁금하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하면 어떤 점이 좋나요?

“마음 나누기를 하면 어떤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서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그 원리가 궁금합니다.”

“마음 나누기를 하는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한 학문과 지식을 공부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운전하는 방법을 배워서 편리하게 운전을 하면 됩니다. 자동차를 멈추려면 브레이크를 밟으면 되고, 앞으로 가려면 액셀을 밟으면 되고, 왼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돌리면 되고, 비상시에는 깜빡이를 켜면 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수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원리에 의해서 그런 작용이 이뤄지는지는 학문의 영역입니다. 왜 핸들을 돌리면 차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게 되는지, 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서는지, 왜 액셀을 밟으면 앞으로 가는지, 이런 내용들은 자동차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공부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런 내용을 공부하면 다 알 수가 있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그런 내용을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거죠.

가령 한 시간 동안 같이 일을 했다고 합시다. 일을 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기분이 나빴다가, 기분이 좋았다가, 일 하러 잘 왔다 싶었다가, 괜히 왔다 싶었다가, 이렇게 마음이란 늘 죽 끓듯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일이 끝난 뒤에 ‘일을 하고 난 지금의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런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하면 되는 겁니다.

아무 때나 불쑥 마음을 이야기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지금 마음이 어떻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받게 될 때 ‘저는 지금 섭섭합니다’ 또는 ‘저는 약간 긴장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를 해보라는 뜻입니다. 마음 나누기를 해보면 사람마다 일어나는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첫째, 지금 마음의 상태를 내가 알아차리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모르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통해서 내가 알아차림이 있는지 자기 점검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둘째, 마음 나누기를 하면 마음이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사실과 스스로의 마음도 시시때때로 다르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중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때 미운 마음이 일어났을 뿐이고, 그때 살짝 화가 났을 뿐이지, 사실은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미워할 일도 아니에요. 마음은 시시때때로 카르마에 따라서 일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는 ‘상대가 잘못했다’ 하고 생각하면 안 되고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인해 상대에게 화를 내려고 할 때, 상대가 나한테 ‘너 주려고 선물 가져왔다’ 하면서 아주 비싼 선물을 주면 화는 금방 가라앉아 버리게 됩니다. 마음이 이렇게 경계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을 자꾸 경험하게 되면 ‘마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이리저리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리저리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비가 오면 ‘오늘은 비가 오니까 안 가겠다’ 하거나, 해가 나면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못 가겠다’ 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하던 일을 그만두기가 쉽습니다. 가기로 했으면 그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는 거예요. 비가 오면 우산 쓰고 가면 되고, 해가 나면 양산 쓰고 가면 되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면 되고, 더우면 옷을 가볍게 입고 가면 됩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마음 나누기를 통해서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마음 나누기를 하면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그것이 마음속에 쌓일 겨를도 없이 덜어 내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약간 언짢은 일이 있었다면 ‘오늘 다른 할 일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약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감정이 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면에 쌓이면 다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비슷한 일이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면 확 싫은 마음이 일어나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락을 받자마자 약간 짜증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오면서 괜찮아졌습니다’ 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감정이 마음속에 쌓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 나누기가 중요한 겁니다.

수행을 해보면 스님의 법문보다도 도반과의 마음 나누기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스스로를 알아차리게 만듭니다. 스님의 법문은 오히려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래서 정토회의 꽃은 ‘마음 나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기분 좋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 좋음은 반드시 기분 나쁨을 동반합니다. 행복이란 기분이 좋고 나서 뒤이어 기분 나쁨이 따라왔을 때 ‘그렇지, 무언가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지’ 하고 받아들여서 괴로움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겼더라도 너무 들뜨지 않아야 나중에 기분 나쁨이 오더라도 마음이 처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고요한 마음 상태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잔물결이 이는 정도만 만들어 갈 수 있어도 우리는 비교적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을 길게 살든, 짧게 살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산속의 다람쥐도 하루하루 살만 하고. 벌레도 하루하루 살만 한데, 사람이 왜 하루하루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주어진 하루를 기꺼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의 근황을 전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이 방송이 끝나면 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강연을 하고, 텍사스주에 있는 댈러스로 가서 강연을 하고, 그리고 보스턴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를 지나 다시 미국 뉴욕으로 이동하며 계속 강연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여러분들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3박 4일간 오렌지카운티에서 숙소, 공양, 운전을 지원해 준 이승훈, 고본화, 이경택, 김명례, 이원심, 김혜숙 님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8시에 고본화 님 댁을 출발해 8시 40분에 오렌지카운티 존 웨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9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오렌지카운티를 떠났습니다.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아 11시 15분에 산호세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출구로 나오니 오늘 산호세 강연을 준비한 한상훈 님, 이예정 님, 김준자 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잘 지냈어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하고, 한상훈 님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벽에 생방송을 하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느라 많이 피곤했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는 출판사에서 스님을 찾아와서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스님의 법문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여러 번 제안을 해왔습니다. 마침 스님이 산호세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살고 있는 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출판사 대표님은 유튜브로 스님의 법문을 오랫동안 들어왔다며 궁금했던 점을 편안하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스케줄이 정말 어메이징 한 것 같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보통 저희가 출판을 하기 위해 유명인을 만나려고 하면 대부분 3일 전에 왔다가 3일 후에 가시곤 합니다.”

“저는 삶에 문제를 갖고 대화를 하니까 강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할 게 없습니다.”

"제 인생에서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의 책을 낸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스님의 책도 그럴 것 같습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출판한 책들에 대해 소개하면서 스님이 어떤 관점을 갖고 붓다 담마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대화의 끝 무렵에 스님은 미국인들을 위해 출판하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출간하고 싶은 책은 ‘인간 붓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그동안 붓다의 삶은 너무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다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붓다의 일생을 통해 그가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갔느냐를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불교의 사회 실천에 대해 이해하려면

붓다가 살던 당시에는 주민들의 90%가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늙고 병이 들면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버려졌습니다. 병이 들었는 데도 보호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죽으면 화장을 했는데 노예들은 화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시체는 마치 쓰레기처럼 숲에 버려졌습니다. 붓다는 그가 살던 왕궁 밖으로 나가 버려진 노인과 병자, 시신을 보고 처음으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런 내용을 기존 불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붓다가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를 사회 구조적으로 해석하면 붓다가 당시 사회에서 하층민이 겪었던 고통과 불평등을 경험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그런 현실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빠져듭니다.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승자의 삶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나설 것인가?’

붓다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아들의 고민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 지역을 붓다에게 맡겨 통치하게 했지만 붓다는 그곳의 노예를 모두 해방시키고 가축을 놓아줘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세상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붓다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가 없음을 알고, 결국 출가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붓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적인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붓다가 당시 사회에서 가장 큰 저항을 받았던 것은 계급 차별과 성 차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성은 독립된 한 사람이 아니라 남성으로 인해 존재감을 갖는 부속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에게는 반드시 주인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주인이었고,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었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에게 출가를 허용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성이 출가해서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누구의 부속품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이름을 갖게 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이전에 없었던 제도였기 때문에 붓다조차도 그것을 허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출가는 붓다가 성도(成道)하고 나서 20년이 지나서야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것마저도 붓다 입멸 후 500년 뒤에는 다시 없어져 버렸죠. 그래서 지금 테라밧다 불교에서는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 차별이 심했어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간 인간 붓다

노예들이 출가를 할 때도 저항이 많았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재산을 잃은 셈이니 다시 잡아가려고 했죠. 노예가 출가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박하는 주인을 벗어나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불교의 사상이나 교리에 포커스를 맞추면 철학적인 문제만 다루게 됩니다. 붓다의 일생을 공부해야 현실의 사회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구체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붓다의 일생을 미국인들에게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실무적인 논의는 이후에 차차 해나가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오후 5시에는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서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의 초기 이사를 지낸 고옥희 님과 박일환 님을 만났습니다. 애플 본사에 재직 중인 고옥희 님의 안내로 애플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1차 만일결사를 끝내고 해외에 온 김에 초기에 고생했던 분들에게 인사라도 드리려고 이렇게 시간을 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대화를 나누다가 6시 30분에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쿠퍼티노에 위치한 시민문화회관인 퀸란 커뮤니티 센터(Quinlan Community Center)입니다. 객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대홍수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리비아 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리비아에서 홍수로 댐이 터지고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후 위기가 폭염, 폭우, 산불 등을 점점 더 강하게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산다고 생각하고 편리를 추구해 온 것이 결과적으로 이런 환경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으로만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적절한 절제를 통해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지향해야 이런 위기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을 신청했지만 두 시간 동안 9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님의 빡빡한 스케줄을 언급하며 인생을 가볍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아주 쉬운 예를 들어주며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가볍게 살 수 있을까요?

“My question is about how to live life, ‘lightly’. Sunim advised people to live life ‘lightly’ like ‘grass in the field.’ But you seemed to live ‘heavier’ life than others. Is it just my misconception? I’d like you to clarify what ‘live lightly’ means.”
(삶을 가볍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제 질문입니다. 스님께서는 들판에 풀처럼 가볍게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스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겁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보는 것일까요? 가볍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30kg의 무게를 어린 소년이 든다면 무거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소년이 그 물건을 계속 지고 다닌다면 어쩌면 몸에 무리가 되어 과로로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른이 30kg의 물건을 지고 간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코끼리에게 30kg의 물건을 지운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무겁다는 것은 그의 능력과 체력에 맞추어서 ‘무겁다’, ‘가볍다’ 하고 정할 수 있습니다. 무게만을 갖고 무겁거나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붓다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 쟁반이 거울이라고 합시다. 이 거울 앞에 마이크가 나타나면 마이크가 비칩니다. 컵이 나타나면 컵이 비칩니다. 꽃이 나타나면 꽃이 비칩니다. 그렇다면 이 거울은 몇 개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무한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울은 또한 하나의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거울은 천 개 만 개의 그림을 비춘다고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거울 앞에 오면 다만 비출 뿐이고, 지나가면 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듯이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꼭 이루어야 한다고 욕심을 내거나, 자기 성질대로 하려고 하거나,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이럴 때 힘이 듭니다. 이런 것을 내려놓으면 힘들 일이 없습니다.

물론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육체적으로 과부하가 걸릴 때는 있습니다. 잠이 부족하면 자면 됩니다. 육체가 피곤하면 쉬면 됩니다. 병이 나면 약을 먹으면 됩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면 됩니다. 결국 죽게 된다면 죽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가볍게 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되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꼭 해야만 되는 일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또 하고 싶으면 해도 됩니다. 그러나 선택을 하면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그 책임을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삶의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 엄청 빠르게 진행되는 인생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들과 문제가 계속 생겨서 힘듭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 산호세로 이사를 온 이후 고립된 느낌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다시 신뢰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 회사에서 여성들을 위한 불임 치료에 대해 의료 혜택을 제공해 주는데 그 혜택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제가 싫어하는 형제가 부모님과 사이가 다시 좋아지는 것이 불편하고 화가 납니다. 어떡하죠?

  • 사회 부조리에서 오는 고통과 카르마에서 오는 고통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카르마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추가 질문을 이어서 했습니다.

불행한 조건에서 태어났다면 어떡하죠?

“Am I understanding that if I was born as a blind person for example, then am I supposed to accept the fact that I was born in an unfortunate circumstance and live the best I can? How would you advise that person?”
(만약 제가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다면, 불행한 조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까? 조언 부탁드립니다.)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이런 불편에 대해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는 아무런 불평등한 일이 아닙니다. 피부가 희게 태어나거나 검게 태어나는 것이 불평등한 것일까요?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이 불평등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든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팔자가 정말로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사주팔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걸까요?

“The last question is ‘do you believe in Sa Ju Pal Ja?’ Is it science? Science based?”
(스님께서는 사주팔자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까?)

“2600년 전 부처님 당시에는 인간의 불평등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카르마 때문에 불평등이 생긴다고 이해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태어날 때 생년월시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생긴다고 이해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것은 신의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즉, 사주팔자는 그 당시 조건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과학적인 방식이 가장 쉽습니다. 그러나 훗날 시대가 바뀐다면 과학적인 방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주팔자가 과학적인지 묻는 질문에는 과학적인 것은 무조건 진리이고,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단정적인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행복은 과학적으로 다 밝혀질 수 없습니다. 깨달음은 합리성마저도 초월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합리성이라는 것도 하나의 절대적인 관념입니다. 그것마저도 버려야 여러분들은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옛날에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10퍼센트를 이해하는 정도였다면, 오늘날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70퍼센트를 이해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중세 시대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는 말이 진리가 아니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는데, 과학으로 100퍼센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세상을 더 온전하게 이해하는 방식이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어리석었고 지금의 우리가 똑똑해졌다기보다는 그때와 지금은 사물을 보는 가치 기준이 달라졌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 바뀐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의 빠른 변화가 여러분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혼란스러워서가 아니라 지금껏 내가 가져온 인식의 틀로는 변화된 세상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분들이 가진 인식의 틀을 바꿔야지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그저 변해갈 뿐입니다. 가능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도록 여러분의 카르마를 조금 더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든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세상은 항상 좋다’ 하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마저도 괴로움 없이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꺼이 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스님은 출구 앞에 서서 참석한 모든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밤 9시 45분에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친 후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밤 11시 57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댈러스 공항을 경유하여 내일 아침 7시 20분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밤하늘 위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내일은 오스틴에 도착하여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Texas A&M 대학교로 이동하여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댈러스로 이동하여 해외순회강연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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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어떤 식으로든 정확히 정하고 가려는 업식이 있습니다. 흐르는대로 가만히 지켜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2023-09-26 09:08:24

문미경

스님의 하루를 봅니다. 함께 하는 지금 감사합니다.
강연하시고.. 원고 쓰시고 ..하시는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련거립니다.
스님 감사합니다ㆍ

2023-09-22 10:45:39

이정선

붓다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 앞에오면 다만 비출뿐이고
지나가면 사라집니다

2023-09-21 06: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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