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9 해외순회강연(9) 시애틀 CMM 영어 강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필요한데 왜 나를 내려놓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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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아홉 번째 강연이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성마르크 성공회 대성당(St. Mark's Episcopal Cathedral)에서 수행에 대한 즉문즉설을 영어 통역으로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시애틀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가 되자 니사보 스님(Ajahn Nisabho Bhikkhu)이 시애틀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니사보 스님은 시애틀에 CMM(Clear Mountain Monastery)이라는 불교 단체를 설립하여 미국인들에게 불교를 전하고 있는 분입니다. 부처님 당시 초기 제자들의 정신을 현대에 구현해 보고자 노력하며 시애틀 시내에서 몸소 탁발을 하고 있습니다. CMM 회원이자 영어 정토불교대학을 수료한 체튼 님이 법륜 스님의 시애틀 방문 소식을 니사보 스님에게 알렸습니다. 니사보 스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즉문즉설 강연을 요청하였고, 스님을 강연장으로 모시기 위해 직접 시애틀 수련원까지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이 찻잔에 직접 차를 따라 주었습니다. 니사보 스님은 미국인으로 태국에서 계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고승을 친견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차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무척 기뻐했습니다. 또 대승불교와 선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특히 한국의 선불교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선불교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하야나 불교(대승불교)가 중국에 들어와서 굉장히 발전했지만 주로 철학 쪽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괴로움은 사색과 사유를 통해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멈추는 쪽으로 나아가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불교가 제창이 된 겁니다. 역사적으로는 인도에서 달마 대사라는 고승이 중국으로 넘어와서 선불교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굉장히 단순하고 대중적이며 생활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종교화되고 철학화되면서 현재는 생명력을 많이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예식 위주의 형식주의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생활 속에서 자각하기보다는 사유적인 측면이 많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수의 전문가들이 하는 형태로 바뀌어버렸습니다.”

“What's the Korean word for mindfulness?”
(알아차림을 한국말로 무엇이라 하나요?)

“알아차림. Al-A-Cha-Rim.” (웃음)

“That's very long.”
(굉장히 긴 말이네요.)

“중국어로는 자각(自覺)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사띠’입니다.”

“We have an interesting opposite problem in the U.S. in that what came over has been very practical, and people love the teachings on meditation and that was what for the last 50 years has been the most prominent in the secular Buddhist groups. What people are really hungry for now is people talking about the transcendent awakening and to have some ceremony and faith, so it's been very interesting. The secular groups tend to get much older people, 50 years old and up, and you know, we came with the robes and the ceremony, and you'd think that the secular young people would be less interested in us, but actually, they are far more interested, so it seems that there is a deep hunger in the culture right now for something beyond the practical. It is still practical, but some measure of ritual and transcendence and monastics, so we're getting many young people.”
(우리는 매우 재미있는 대조적인 현상을 접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주 실용적이며, 명상에 대한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것이 지난 50년간 세속 불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정말 갈망하는 것은 의식, 믿음 등 어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여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들 세속 불자들 그룹은 50대 이상이고 나이가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예복을 입고 의식을 도입하였습니다. 세간의 젊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덜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요즘에는 문화에 대해 실용적인 면 이상의 무엇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실용적인 것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의식과 초월성 그리고 사원이 있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불교를 찾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면 깨달음의 요소가 형식화되고, 또 깨달음의 요소만 갖고 있으면 문화적인 믿음과 정서적인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보완이 되어야 해요. 우리가 이 차를 마실 때 중요한 것은 이 차입니다. 그러나 이 컵이 없으면 차를 마실 수가 없습니다. 컵과 차는 모두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Yes, that’s a really beautiful metaphor.”
(네, 정말 아름다운 비유이십니다.)

“그런데 찻잔만 너무 아름답게 만들고 정작 차가 신통치 않으면 형식주의가 되거나 문화에 너무 치우치게 됩니다. 반대로 차만 강조하고 찻잔을 너무 경솔하게 여겨도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실 수가 없어집니다.”

“We hope our cup is big enough for venerable sunim's tea, I think this will be the biggest gathering we will ever have.”
(우리의 잔이 스님의 차를 담을 수 있을 만큼 크길 희망합니다. 제 생각에 이번 강연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모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무 밑에서 전법을 하셨기 때문에 나무 밑보다는 성당이 훨씬 좋은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원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절이니 사원이니 하는 공간은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런 공간 마련을 먼저 목표로 두게 되면 기존의 종교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집니다. 물론 전법을 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니까 공간을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붓다는 평생 나무 밑에서 수행하고 대중들에게 법을 설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절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Focus on bringing the tea. I'll keep that in mind.”
(차를 나르는데 집중하라는 말씀이죠. 명심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차담이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성마르크 성공회 대성당(St. Mark's Episcopal Cathedral)입니다.

성당 입구에는 영어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미국인 학생들이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했습니다. 15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유튜브 생중계로 70여 명, 줌으로 20여 명이 접속하여 24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함께 명상을 한 후 나사보 스님이 법륜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정토회 국제지부장 김지현 님의 통역으로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인생에 대해서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남자, 여자, 한국사람, 미국사람, 기독교, 불교, 이런 차이를 넘어서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제한 없는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자신이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발생한다면 ‘왜 좋을 대로 살았는데 괴로움이 발생할까?’하는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많은 모순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주제로 대화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질문을 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연세가 많은 참전 용사인 분이었는데요. 어떻게 하면 나의 자유의지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필요한데 왜 나를 내려놓아야 하죠?

“I have a question about interior life. I'm kind of new to the Dharma. We talk about separating, about letting go of myself, recognizing that I'm one with everybody, even those that I may contend with. I have difficulty doing that. Recently, I heard mention of the idea that if I didn't recognize my own agency, my freewill, I might let go of myself more easily, and I don't find that's helping. I'm wondering what your experience is. How do you let go of yourself, how do you thoroughly recognize your unity with everyone? What is that like for you inside?”
(내면적인 삶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서는 초보자인데요. 불교에서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내가 모든 사람, 심지어 내가 다투는 사람들과도 하나라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나의 자유의지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더 쉽게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가르침도 들었습니다만,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스님의 경험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스님은 자신을 내려놓으며, 어떻게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됨을 철저하게 인식하시나요? 스님의 내면은 어떠한가요?)

“자유의지를 놓아버리는 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그것이 괴로움을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로움을 가져온다면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아니라면 놓아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유의지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면 놓아버리라는 겁니다. 자유의지가 괴로움의 원인이 아니라면 자유의지대로 행동해도 괜찮습니다. 더 추가적인 질문이 있습니까?”

“No, that points me in a good direction. Thank you.”
(아뇨, 저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자리에 돌아가 앉았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를 위해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청년일 때 경찰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내가 잘못한 것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구타를 하다가 나중에는 물고문이라고 해서 숨을 못 쉬게 했습니다. 고문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견디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숨을 못 쉬어서 거의 의식을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하얀 화면이 나타났습니다. 그 화면에 개구리가 한 마리가 매를 맞고 쭉 뻗어서 죽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제 현재의 처지와 똑같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개구리를 많이 잡았습니다. 작은 막대기로 개구리 등을 때려서 죽인 다음 닭의 먹이로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불교를 만나서 살생하지 말라고 아무리 배워도 개구리를 잡은 것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구리처럼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개구리가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자책하는 마음이 들면서 ‘너 같은 놈은 죽어야 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문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조금 지나서 고문도 멈췄습니다. 저항을 멈추자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도 매우 힘들지만, 고문을 하는 사람도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고문을 하는 사람들도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휴식 시간에 그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 딸이 대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지방 대학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경비가 많이 들 것 같아서 걱정이야.’

그들은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고문하는 악마가 아니고, 내 주위에 있는 평범한 시민이구나. 그들도 집에 가면 사랑하는 한 여인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한 노인의 아들이고, 직장에 가면 평범한 직원일 뿐이구나.’

그 순간 제 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들에 대한 증오심과 미움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해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고문을 받으면서, 그리고 고문하는 자들의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들으면서, 저는 그제야 그 성경 구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경험을 통해 의문을 해소할 수가 있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실제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해’, ‘무언가를 더 버려야 해’ 이렇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생각으로만 움켜잡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실제로 행동할 때 여러분들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허상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막힘없이 답변을 해나갔습니다. 질문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 혹은 경전의 말씀 중에서 스님에게 가장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관계가 나빠져서 전쟁에 이르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합니까?
  •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 출가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면 집착에서 오는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될까요?
  • 금전적으로 자유로워진 지금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명상을 하면 극복을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강연을 주관한 니사보 스님이 스님에게 닫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What's one piece of advice and teaching you would leave us with as a new community of practitioners and all of our practice.”
(새롭게 시작하는 저희 수행공동체와 저희들의 수행에 대해 스님의 한마디 조언 그리고 가르침은 무엇인지요?)

“욕심을 너무 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다고 하면서 여기에 또 욕심을 내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물론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욕심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해 내가 괴롭다면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일도 괴로워하면서 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괴로워하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당신은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어떤 일을 꼭 해야 한다면 그냥 그 일을 하면 되지 왜 괴로워합니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그 괴로움부터 벗어나게 도와주고 싶어 일을 하면서 그 일로 인해 본인이 괴로워하면 모순이잖아요? 남을 돕는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남을 즐겁게 한다면서 정작 자신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남을 위한다는 생각도 사실은 착각입니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오히려 본인에게 더 큰 자기만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는 관점이 분명히 서야 상대방에게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한다’ 이런 마음으로 임하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런 할 일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관점을 갖고 일을 하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괴로움이 없습니다.

종교이든 수행이든 그 어떤 방식을 우리가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괴로움이 없는 곳으로 인도한다면 어떤 선택도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남을 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는 적게 소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입니다. 많이 소비하기 위해 지나치게 경쟁하고 자신을 스트레스에 노출시키면, 결국 자신도 해치고 기후 위기도 초래하게 됩니다. 소비 중독은 마약 중독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소비 중독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니사보 스님은 강의를 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연꽃 모양 공예품, 붓펜, 법화경이 새겨진 차를 선물했습니다. 강연 준비와 봉사를 해준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에게는 불상을 선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니사보 스님은 외국인 청중들에게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하고 스님에게 인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청중들은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청중에게 합장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질문을 했던 분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분노의 감정으로 휩싸였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며 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고 나서도 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제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전쟁에 나갔을 때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제 동료도 많이 죽었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으면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참회가 되었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잘못했다는 그 자각마저도 놓아버리셔야 합니다. 더 이상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질문한 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토해냈습니다. 스님은 질문한 분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청중 몇 분도 스님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충분히 나눈 후 강연 준비를 위해 자원봉사를 해 준 시애틀 지역 정토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성당을 나왔습니다.

성당 앞 주차장에서 영어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도 이야기했습니다.

“몇 년 동안 스님을 영상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직접 뵈니까 너무 좋습니다.”

“저는 영어 정토불교대학 첫 번째 과정을 수료했고, 일요명상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 영어 정토불교대학 두 번째 과정도 곧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스님의 법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스님이 뭐라고 말씀하실지 거의 예측이 됩니다.” (웃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한 분은 전쟁 위기에 대해 질문을 한 분이었는데요. 스님의 답변을 듣고 전쟁 반대를 위해 용기를 내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님도 이에 대해 다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저도 워싱턴 DC에 일주일 머물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점점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반도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또 거기서 다시 출발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든 늘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영어 정토불교대학 두 번째 과정에서 계속 공부를 함께 해나가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다시 시애틀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주관한 니사보 스님과도 작별 인사를 하고 오렌지카운티로 떠나기 위해 시애틀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1박 2일 동안 시애틀에서 밴쿠버까지 먼 거리를 운전해 준 김학로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50분에 출발 예정이었지만, 비행기에 결함이 발견되어 수리하느라 출발이 계속 늦어졌습니다. 스님은 탑승구 앞에서 단잠을 자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수리를 거듭했지만 결국 3시 50분 비행기는 뜨지 못했습니다. 급히 비행기를 바꿔 5시 5분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시애틀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50분을 비행하여 저녁 7시 50분에 오렌지 카운티 존 웨인 공항(SNA)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공항에는 이경택, 이승훈 거사님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곧바로 오렌지 카운티에 살고 있는 고본화 님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8시 40분에 고본화 님의 댁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11시가 넘어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LA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코로나 이후 어떻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오후에는 오렌지카운티로 돌아와서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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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눈물이 납니다. 스님.ㅠㅠ
그런 깨달음의 경험이 있으셨기에 삶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으셨군요

2024-03-27 18:16:17

강은정

남을 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길이라는 말씀 고이 간직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차립니다. 살아있는 기념으로 그냥 합니다. 스님 어리석은 제게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9-20 09:16:35

정은미

스님 감사합니다 잘쓰이는하루 되겠습니다

2023-09-20 07: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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