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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이제 북미 지역에서 강연이 시작됩니다.
어제 런던에서 유럽 마지막 강연을 마친 스님은 정토회 회원인 김누리 님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원고 교정을 보고 한국과 소통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4시 30분에 호박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런던에 있는 동안 숙소, 식사, 운전을 도맡아서 봉사해 준 런던 지역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숙소를 나왔습니다.
아직 캄캄한 새벽 5시 30분, 짐을 챙겨 히드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비행기는 9시 50분에 출발하지만 미국 입국 수속도 밟아야 하고, 항공사에서만 체크인이 된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6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런던 강연을 총괄한 전현미 님과 이혜숙 님, 운전 봉사를 해준 그레이스 김 님이 스님 일행을 배웅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런던을 끝으로 이제 유럽 강연이 끝났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한 개 도시를 이동하며 유럽 순회강연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코로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변화된 모습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웅을 나온 런던 강연 담당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스님은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힘차게 이륙한 비행기는 런던을 떠나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스님은 업무를 보다가 곧 잠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안이 너무 추워서 담요로 온몸을 감쌌습니다.
오전 9시 50분에 영국 런던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을 비행하여 미국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창밖으로 그린란드의 상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니 런던 시간으로 저녁 7시 8분, 미국 시간으로는 오전 11시 8분이었습니다. 떠나온 곳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도착한 곳을 기준으로 하니 다시 낮이 되었습니다.
“하루를 벌었네요.” (웃음)
비행기에서 내려 미국 입국 수속을 밟는 데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항을 나오니 묘명 법사님과 시애틀 정토회원 박근애 님, 김학로 님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시애틀 수련원에 도착해 스님은 곧바로 법당을 참배했습니다. 곧 시애틀 수련원 곳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던 회원들이 찾아와 삼배를 했습니다.
“4년 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네. 스님, 피곤하시죠?”
“조금 피곤하네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시애틀 수련원에서 상주하고 있는 묘명 법사님과 수련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보고 저희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깔끔하게 잘했네요. 블랙베리는 예초기로 좀 베야겠어요.”
시애틀 정토수련원은 미국 북서부 지역 회원들의 실천 장소로써 많은 분들이 정성을 기울여 도량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화단에 꽃도 피어 있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나서 2년이 지났네요. 모든 법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데 굳이 건물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어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임대해서 장소를 사용하는 걸로 정하고 대부분의 법당을 철거했습니다. 그러나 시애틀 수련원은 그대로 유지했는데, 다행히 회원들의 실천 장소로써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관리하기가 조금 어렵더라도 밴쿠버, 시애틀, 포틀랜드에 사는 회원들이 수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이 잘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이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을 해 온 분도 있었고, 이번 강연을 계기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 분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유럽 강연을 시작하고 해외를 다니며 느낀 소회를 나눈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개인 수행에 대한 질문이든, 정토회 활동에 대한 질문이든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세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회원들은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이나 제안을 했습니다. 한 분은 오랫동안 궁금했던 점이 있다며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10년 넘게 스님을 뵈었지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정토회, 평화재단, 각계 종교 지도자들도 만나시는 등 스님의 스케줄을 보면 너무 빡빡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활동하시면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지요?"
“몸에 무리가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무리를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수행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렇게 하시는 건가요?"
“수행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부러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것은 아니에요. 일정이 그렇게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일정을 처음 잡을 때는 시간을 계산해서 잡지만 중간에 비상 상황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약간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말처럼 원래 일정 자체가 너무 빡빡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질문자와 저는 빡빡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겁니다. 제 기준에서는 평생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게 일상이에요. 같이 한번 따라다녀 볼래요?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웃음)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내가 정토회 활동을 하는데 옆에서 볼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요. 업무 효율을 좀 높이면 좋겠어요.
시애틀에 있는 다른 절과 협력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부탄에 가서 젊은 여성들을 돕고 싶어요.
정토회는 남자가 소수인데 왜 그럴까요?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진솔한 나누기에 잔잔한 웃음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맨날 온라인으로만 뵙다가 직접 뵈니까 너무 감사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나서 수련원이 꼭 필요한가 싶었는데, 수련원이 있어서 오늘처럼 모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수련원을 정말 잘 가꾸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제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너무 행복해졌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어떻게든 스님을 직접 만나 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스님이 직접 찾아와 주시니 너무나 영광이었습니다.”
스님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당신을 만나러 제가 왔어요.” (웃음)
각자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행복해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오후 4시에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이 한국을 출발한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개인 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빨래도 하고, 머리도 깎고, 짐 정리도 해서 다시 미국 일정을 시작할 수 있게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5시에는 시애틀에서 초창기에 정토회를 시작한 활동가들을 초대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6시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렌튼에 위치한 카르코 극장(Carco Theatre)입니다. 스님은 일찍 도착하여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연장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21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저녁 7시 정각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총 아홉 명이 입구에서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명은 온라인 데이팅앱으로 여러 사람과 가볍게 데이트를 하니까 한 명과 진지하게 만나는 게 어렵다며 연애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주 가볍고 재미있게 대화가 펼쳐졌습니다.
“제가 올해 나이가 불혹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싱글입니다. 그래서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요즘은 온라인 데이팅앱으로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이 굉장히 쉽습니다. 저도 데이팅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데이트를 많이 합니다. 제가 원하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만나서 좀 무겁게 데이트를 해야 되는데, 데이팅앱으로는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생기다 보니까 사람을 가볍게 만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 사람도 만나봐야 되고, 저 사람도 만나봐야 되니, 진지하게 만나는 걸 꺼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을 골라서 진지하게 사귀는 게 좀 어렵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듯이 진짜 어디 한 군데에 정착하지 못하고 데이트만 하다가 흐지부지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을 제 짝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에요?”
“성격이 잘 맞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격만 맞으면 나이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 많아도 돼요?”
“저는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에 나이는 저보다 어렸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보다 나이만 어리면, 흑인이든, 얼굴에 흉터가 있든, 눈이 안 보이든, 외모는 전혀 상관없어요?”
“인종은 상관없는데 그래도 외모는...”
“키가 130cm 정도 되는 사람도 괜찮아요?”
“그것도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욕심도 없고 그냥 사람만 괜찮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원하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컴퓨터에 넣어서 따져보면 40억 여성 인구 중에 질문자가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저는 그냥 중간 정도만 돼도 괜찮습니다.”
“중간이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니까요. 방금 나이가 스무 살 많으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예시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그럼 질문자보다 스무 살이 적은 여자는 괜찮나요? 그건 괜찮다고 말할 것 아니에요?”
“그것도 약간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한데 스무 살 많은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아요.”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 많은 여성과 결혼했어요. 학교 다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의 엄마가 좋아 보여서 이혼을 시키고 결혼을 한 겁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부인이 영부인의 활동을 다 하고 있습니다. 스물다섯 살 차이가 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스무 살 차이가 문제가 돼요?”
“연하는 괜찮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진지한 만남이 안 되는 거예요. 본인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조건만 따지면 결론이 나기 어려워요. 첫째, 질문자가 말한 대로 연애는 가능해도 결혼은 어림도 없습니다. 둘째, 결혼을 한다면 제일 성질 더럽고 이상한 여자를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질문자가 상대를 고르고 고를수록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왜 그렇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낚시를 할 때 돔을 낚고 싶다면 돔이 좋아하는 미끼를 걸어요? 돔이 싫어하는 미끼를 걸어요?”
“돔이 좋아하는 미끼를 겁니다.”
“쥐약을 놓을 때도 쥐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에 쥐약을 넣어요? 쥐가 싫어하는 물건에 쥐약을 넣어요?”
“쥐가 좋아하는 물건에 넣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데' 하면서 사람을 고르다가 '이거다!' 하면서 딱 손에 잡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곧 쥐약이에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많이 고르면 거의 90퍼센트가 쥐약입니다. ‘그냥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사귀어도 괜찮다’, ‘나이가 아래위로 스무 살 차이가 나도 여자면 됐다’ 이런 입장을 가져야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가 있어요. 많이 고르면 고를수록 쥐약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예 못 고르거나, 고르더라도 쥐약을 고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제가 지금 만나는 친구들이 세 명 있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만나는 건 아닙니다. 서로 각자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고 싶으면 그것도 가능하다는 합의 하에 서로 알아가는 중인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누구를 고르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혼자서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을 고를까, 저 사람을 고를까?’ 이러고 있지만 상대편은 질문자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한 번 실험해 보세요. 지금 만나고 있는 세 명 중에 한 명을 딱 선택해서 오늘 당장 결혼 신청을 해봐요. 곧바로 거절을 당할 겁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본인 혼자서 허황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을 사귈 때 연애를 목적으로 접근하면 상대가 부담스럽습니다. 왜 사람을 자기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서 접근을 합니까? 그냥 친구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교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잖아요. 나도 상대를 좋아하고,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양쪽이 모두 좋아해야 연애가 가능합니다. 나는 상대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를 안 좋아하면 성추행이 돼요.
옛날에는 내가 좋아하는데도 상대가 안 좋아하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하는 생각을 갖고 막 쫓아다니면 연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꽃을 들고 집 앞에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면 가끔 성공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하면 비난을 받게 되고, 심하면 스토킹 죄로 경찰에 잡힙니다.
사람을 만나다가 나도 좋은 감정이 생기고 상대도 좋은 감정이 생기는 경우는 확률이 25%밖에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지만 상대는 싫어하거나 내가 싫어하는데 상대는 좋아할 확률이 50%입니다. 나도 싫어하고 상대도 싫어할 확률은 25%입니다. 만약 네 명을 만난다면 연애에 성공할 확률은 한 명입니다.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연애는 상대의 나이가 스무 살이 많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인종이 달라도 상관없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결혼은 가족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내 부모님도 요구가 있고, 상대의 부모님도 요구가 있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도 주위에서 말이 많고, 인종이 달라도 주위에서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좋은 감정만 갖고 되는 게 아니고 가족 관계를 새로 맺고 생활을 같이 하기 위해 상호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결혼까지 가게 될 확률이 확 줄어들게 되죠.
처음부터 ‘너와 결혼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접근하면 상대는 내 욕구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 누가 무조건 결혼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의 요구에 응하고 따르겠어요? 두려워하거나 웃기는 소리를 한다고 하면서 도망을 가버리겠죠. 그래서 연애를 하려고도 하지 말고, 결혼을 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질문자의 나이가 마흔이 된 건 본인의 사정입니다. ‘저분은 나이가 마흔이니까 내가 빨리 결혼을 해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여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웃음)
그러니 나이는 따지지 말고 상대의 나이가 오십이든 육십이든 따지지 말고 먼저 사람을 만나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둘 다 감정 교감이 되면 그때 연애를 해 보는 거예요. 감정 교감이 되는 사람 중에 상호 결혼까지 합의가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요즘은 당사자들만 서로 합의되면 절반은 결혼이 성사됩니다. 물론 가족 관계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결혼까지 가려면 좀 더 과정이 필요하긴 해요. 그러나 지금 당장 너무 목적 의식을 갖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목적 의식을 갖고 접근하는 것을 모두 안 좋아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진행되도록 하면 될까요?”
“연애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여러 사람을 알아가고 사귀면 됩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나이를 따질 필요가 없잖아요. 친구로 지내다가 사람이 괜찮아 보이면 나이가 스무 살이 많아도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가 둘 있어도 사람만 괜찮으면 결혼도 가능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미리 조건을 정해 놓으면 괜찮은 사람들이 전부 제외되어 버려요. 그래서 나이 든 뭐든 조건을 따지지 말고 친구로 지내다가 감정 교감이 되는 사람하고 연애를 하고, 그런 다음에 생활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때 결혼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그냥 눈 딱 감고 아무하고나 연애를 해버리는 거예요. 얼굴도 보지 말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람과 그냥 만나는 겁니다. 서로 사진도 주고받지 말고요. 조선 시대에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냥 양가 부모님들의 의견만 일치하면 결혼을 해야 했죠. 그때는 결혼이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나 불확실했고, 한 번 혼인하면 헤어지지도 못하고 평생 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궁합입니다. 궁합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궁합이 좋다고 나오면 일단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궁합을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미리 얼굴도 보지, 같이 생활도 해보지, 잠을 같이 자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면 몇 년 만에 이혼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반면에 옛날에는 얼굴도 안 보고 나이도 안 보고 이름도 안 보고 누군지도 모르고 결혼을 했지만 죽을 때까지 같이 살 확률이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상대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살다 보면 그 기대에 어긋날 확률이 높고 그래서 헤어지게 되는 겁니다. 인기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 연애해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결혼을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원리입니다.”
“제가 만나는 친구들도 저에게 호감이 있으니까 저를 만나는 것일 텐데요.”
“그 친구들이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니 쥐약을 먹게 되는 겁니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접근하는지, 잠시 놀아 보려고 접근하는지, 돈이나 빼먹으려고 접근하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에요.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잖아요. 상대를 너무 의심해도 안 되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꽃뱀에게 물릴 확률이 높아요.
만약 30대 젊은 여성이 스님이 좋다고 접근해서 자기랑 결혼하면 자동차도 사주고 집도 장만해 주겠다고 하면 꽃뱀이거나 정신 이상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정신이라면 어떻게 스님을 좋아한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누가 ‘스님, 좋아해요’ 하고 말하면 정신과에 가서 진단부터 받아보라고 합니다. (웃음)
그것처럼 질문자가 여태 혼자 살아오다 결혼을 서두르게 되면 낚싯 밥을 물기 쉽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옛날 같으면 급할 수가 있지만 요즘은 나이 마흔이라고 하면 나이가 많다는 축에도 안 들어갑니다. 한국도 점점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잊어버리고 조금 느긋하게 생각해야 서로 맞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를 만나서 이익을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장애가 있거나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여러 가지로 생활이 어려운 여성이 있다면 내가 잘 보살피겠다. 혼자 사느니 그런 여성에게 도움을 주겠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내면 하늘이 선물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질문자처럼 인물이 어떤지, 뭐가 괜찮은지, 이런 식으로 고르고 고르면 쥐약을 먹기가 쉽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여기 결혼한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볼까요? 쥐약 먹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쥐약 먹고 헤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쥐약 먹고 끙끙대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요. 내가 쥐약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번 손들어 보세요.” (웃음)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질문자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이어서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좋은 자극이 되지만 덜 행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괴로움이 없어집니까?
59세의 의사입니다. 명상도 하고 싶고, 아내와도 시간을 갖고 싶고, 개인적 욕망으로 퇴직을 생각 중입니다. 제 판단이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싱글 맘입니다. 아빠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가 커가면서 아빠에 대해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애를 할 때 머릿속으로는 양보, 이해, 배려를 생각하지만 다툼이 생기면 이해받고 싶고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쉽게 받아서 벽을 치고 따집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줄어듭니다. 어떡하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을 너무 고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산에 다람쥐 한 마리가 태어났다 죽는 것만큼, 길가에 풀 한 포기가 났다가 시드는 것만큼, 인생은 별 게 아니에요. 저의 명심문은 '지금 출발합니다'입니다. 이 말은 어제까지는 연습이고 오늘 하루가 실전이란 뜻입니다. 원래 연습을 할 때는 이런저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지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집착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웃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얼굴이 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없어야 얼굴이 저절로 펴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도 살았네' 하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쁜 여자와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실제로 만나보면 골치 아파요. 왜냐하면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 주위에는 다른 여자와 남자가 서성거릴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안 쳐다보는 남자 또는 여자와 사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해요. 그 사람은 나만 쳐다봅니다. 본인이 다른 사람을 쳐다봐야 누구도 응대를 안 해주기 때문이에요. 상대를 독점하고 싶다면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쁜 여자나 멋진 남자를 구했으면 남들에게 배우자를 좀 개방해야 됩니다. 다른 남자나 여자가 배우자를 쳐다보는 것에 대해 너무 시비하면 안 돼요. '나도 좋아하는 우리 남편을 어느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 이런 마음을 가질 정도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예쁜 여자와 돈 많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 한편으론 상대를 독점하고 싶어 해요. 그것은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본인이 엄청난 사람인 줄 착각하고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겁니다. 상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건 쥐가 쥐약을 먹은 것과 같고,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린 것과 같아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내가 원하는 모습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와 결혼해서 같이 살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상대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본인은 배우자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얘기하지만 이 자리에 배우자를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도 자기 나름대로 불만을 얘기할 겁니다. 남편이 화를 벌컥 냈다면 화를 내는 성질이 그에게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아내가 잔소리를 하든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자기는 완벽하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상대에게 맞추기 싫다면 혼자 살면 됩니다. 같이 살겠다면 상대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같이 살기로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내 선택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를 좀 했지만 누군가가 나 대신 책임을 져주지 않을까?' 이런 허황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런 요행을 바라면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예전에 비해 젊은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고, 여성보다 남성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강연을 마치고 나서 스님도 웃으며 한 마디를 했습니다.
“요즘 남자들이 많이 괴롭습니까?”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을 초과하였지만 청중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가 잘 이뤄져서 복잡하지 않고 순조롭게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은 후 스님은 숙소로 이동하고, 봉사자들은 뒷정리를 했습니다.
어제 강연을 했던 런던과 시차가 9시간이나 생기다 보니 하루가 9시간 더 길어졌습니다.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곧바로 시애틀을 출발하여 캐나다 국경을 지나 밴쿠버로 이동합니다. 오후에는 밴쿠버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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