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5.28 공동체 법사단 수련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주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마치고 새벽 1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두북 수련원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마치고 나서 정토회 운영과 관련하여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공동체 법사단과 의논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올해는 스님의 해외 방문 일정으로 인해 이틀만 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에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한 이후 정비해 나가야 할 여러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대전을 어떻게 편찬할 것인가, 비대면 온라인 수련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코로나 이후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등 오프라인 수련은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용성조사님의 유훈실현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가 등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토론하고 점검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금요 즉문즉설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주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결혼 16년 차 주부입니다. 저는 남편의 하소연을 매일 들어주고 있는데요. 이제 저도 갱년기이고 아이들도 사춘기라서 남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몸에서 자꾸 신호를 보냅니다. 제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요?”

“하소연을 들어줘 보기도 하고, 하소연을 안 들어줘 보기도 해 봐야 어느 쪽이 질문자에게 유리한지 알겠죠?”

“하소연을 안 들어주면 남편이 화를 냅니다. 16년 동안 매일 하소연을 들어주니 제가 힘들어요. 아이들도 사춘기라서 엄마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게 필요한데 제 몸이 하나이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머리에서도 쥐가 나는 것 같습니다.”

“하소연을 들어주기 싫은데 들어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 한번 계산을 해보세요. 하소연을 안 들어줬을 때 갈등이 생기는 부작용, 하소연을 들어줬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부작용, 양쪽을 계산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부작용보다 갈등이 생기는 부작용이 더 크니까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요?

질문자가 헌신적인 사람이라서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잔머리를 굴려보니까 이것도 물론 손해이지만 다른 것보다 손해가 덜 나니까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거예요. 희생하는 것처럼 얘기하지 마세요.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힘들고, 아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힘들면, 내일이라도 집을 나오면 됩니다. 집을 나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누가 손목을 밧줄로 묶어 놓은 것도 아니고 발목에 족쇄를 채워놓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힘들긴 하지만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사명이 있어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이 선택이 낫기 때문에 이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하소연을 안 들어주니까 남편이 화를 내고, 그로 인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더 받으니까 하소연을 들어주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겁니다. 힘든 건 맞지만 힘들다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힘이 더 드는 일이 생긴단 말이죠.

‘이만하기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됩니다. 어차피 질문자는 지금 하소연을 들어주는 쪽으로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하소연을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마음을 내보세요. 왜냐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합시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게 밥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 밥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매일 밥만 먹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겁니다. 스트레스를 받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든, 어차피 먹을 수 있는 건 밥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밥만 먹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밥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밥이라도 먹으니 감사하다’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 없이 밥을 먹을 수가 있는 겁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밥이라도 먹으니 감사하다’ 하고 먹을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 쪽을 선택하겠죠.

물론 ‘왜 나는 다른 것을 먹으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것을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을 먹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나는 다른 것을 먹으면 안 되나?’ 하는 말은 하나 마나인 얘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가 없으니까요.

‘나는 왜 결혼해서 집에서 주부로만 살아야 하나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누가 살라고 했어요? 집을 나가면 됩니다. ‘왜 나는 남편의 스트레스를 다 받아줘야 하나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안 받아줘도 됩니다. 남편의 스트레스를 안 받아 줄 때 더 시끄러우니까 질문자가 받아주는 겁니다. 아이들의 하소연 들어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혹시 아이들이 나중에 잘못될까 봐 겁이 나서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겁니다. 현실에서는 질문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제일 좋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야죠.

지금 조건에서는 이 방법이 제일 낫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길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것보다는 사춘기라고 칭얼대는 아이라도 있는 것이 낫고,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스트레스 주고 칭얼대는 남편이 있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 나오잖아요?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집을 나오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집을 나가고 싶은데요.”

“그럼 오늘 당장 나가 버리세요.”

“아이들이 아직 학생이라서요. 가족 모두에게 아이들이 졸업하면 저는 산속에 들어가 살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지금 못 나가면 영원히 못 나가는 거예요. 지금은 애들이 어려서 못 나간다고 하지만, 또 조금 있으면 애들이 대학 시험을 치기 때문에 못 나간다고 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애들이 아직 취직을 못해서 못 나간다고 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애들이 아직 결혼을 못해서 못 나간다고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남편도 늙어서 별로 장애가 안 됩니다. ‘나이 60이 되어서 지금 나가면 뭐 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겁니다. 질문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스트레스 받으면서 다른 선택이 있을 것처럼 사는 것이 낫겠어요? 처음부터 감사하고 사는 것이 낫겠어요? 어차피 질문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거예요. 아이들이 갓난아기도 아니기 때문에 집을 나가고 싶으면 지금 탁 나와도 됩니다.

‘이제 사춘기가 될 정도로 많이 컸으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엄마는 자유인이 되겠다.’

이렇게 말하고 집을 나오면 됩니다. 그런데 집을 나와서 살아보면 며칠 있다가 다시 들어가게 돼요. 왜냐하면 그래도 집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어요. 물론 다른 선택도 있지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스님처럼 선택을 못 해요. 그러니 질문자의 선택을 존중하세요. 한마디로 자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남편 힘드니까 나한테라도 하소연을 해서 풀어라’ 이러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아이들한테도 ‘너희들이 지금 사춘기인데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구나’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엎드려 절을 하면서 풀고 살면 돼요. 사람 사는 것이 별것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상황이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처럼 물이 없어서 2km를 걸어가야 하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양식이 없어서 굶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이 없어서 비를 맞으면서 텐트에서 자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지금 사는 것이 힘들다면 스님을 따라서 그런 곳에 한 번 다녀오면 돼요. 그런 곳에 가서 며칠 살다 오면 ‘한국에서 내가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잘 들어주겠습니다. 아이들이 졸업하면 그다음에 독립을 하겠습니다.”

“지금 못 나오면 앞으로도 못 나온다니까요. 그냥 계속 같이 산다고 생각하세요. ‘지금부터 2년 동안만 참고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2년을 괴롭게 살아야 합니다. ‘기꺼이 하소연을 들어주겠다. 독립을 할 수는 있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인생이 더 낫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니까요. 같이 사는 게 힘들어서 독립하는 것은 도망을 가는 것밖에 안 됩니다. 도망을 가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독립할 수 있지만 안 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후회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왕위를 버렸기 때문에 출가를 한 뒤에도 세속에 대한 욕망이 없었던 겁니다. 요즘처럼 연애에 실패하거나 고시 시험에 떨어져서 출가하면,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거나 더 큰 돈을 보면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집에서 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선택하겠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미련이 남지 않습니다. 억지로 2년을 참고 나서 ‘나는 자유인이다’ 하면서 어느 날 집을 뛰쳐나가는 것은 가출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회를 하고 죄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만약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든가 남편이 죽는다든가 하면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후회하게 됩니다.

이미 집을 나왔다면 남편이나 아이들이 죽었다고 해도 ‘그래, 죽기 전에 일찍 잘 나왔지’ 하고 말할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집을 나오는 겁니다. 그래야 2년을 억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2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지금 이대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고, 집을 나와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이러면 좋고, 저러면 나쁜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윤회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단과 함께 비닐하우스에 심어 놓은 감자를 수확한 후 오전에는 해외 답사 보고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0/200

드림하이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이러면 좋고, 저러면 나쁜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윤회하는 길입니다.”

2023-08-17 22:43:58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6-08 11:22:51

윤정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2023-06-02 15:23:4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