왐롱에는 밤새 굉장한 폭우가 내렸습니다. 스님은 7시에 아침공양을 하고 마을을 둘러보려 했는데 새벽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자, 오전에는 삼텐 촐링 절에 있는 넌(nun, 여성출가자)들과 함께 대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법당에 약 40여명의 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에 인사를 하고 넌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때 스승님을 만나서 출가를 했습니다. 53년이 지났습니다. 나이는 70이고요.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승려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만나서 이 세상 어떤 공부보다도 이 법을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학교 공부를 그만두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이 좋아서 어릴 때 이렇게 스님이 되었어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공부하면서 궁금한 내용들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여러분들보다 나이도 많아서 무엇이든지 말해줄 수 있어요. 스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물어보세요.” (웃음)
약간 긴장되어 있던 작은 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시니어 넌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까 스님께서 뭐가 좋아서 넌이 되었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초등학교까지 공부를 하고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오직 붓다 담마만 얻으면 나라도 편안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어려서 하고 싶은 것, 경제적인 것 생각도 하지 않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옛날에 경제적으로 힘들고 밥 먹는 것도 어려워서 풀뿌리 캐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50년부터 53년까지 한국전쟁으로 부모 잃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밥 먹기 위해서 절에 들어와 스님이 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들어올 때는 그렇게 들어와도 나중에는 훌륭한 스님이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할 수 없이 스님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들어오기 전의 삶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온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해서 마음에 걱정이 없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어린 넌들은 아직 어리니까 뭘 잘 모르고 행동하더라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시니어들이 잘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제일 어려운 것, 필요한 게 뭐예요?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해 봐요. (웃음) 저 높은 스님들 눈치 보지 말고 이야기해 봐요. 이야기하면 제가 여기 딱 적어두고 해결해 볼게요. 개인이 먹고 싶은 것도 이야기해도 돼요, 살고 있는 시설이 불편한데 이렇게 개선하면 좋겠다 이야기해도 돼요.”
“원래 숙소 문제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숙소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라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숙소를 한번 둘러보고 정말 숙소가 부족하다면 해결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한 방에 여러 명이 살고 있어요. 수행자가 계속 좋게 살려고 하면 안 돼요. (웃음) 뭐든지 이야기해 보세요. 이불이 부족하다 옷이 필요하다 이야기해 보세요.”
“(웃음) 제가 가까이 갈께요.”
작은 넌들이 계속 이야기를 못하고 있자 스님은 자리를 옮겨 넌들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자, 너는 뭐가 필요하니?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해 보세요.”
스님은 작은 넌부터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작은 넌들이 주저주저 하더니 한 명씩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 옷을 넣어서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상자가 필요해요.”
“ 추워서 따뜻한 옷이 필요해요.”
“ 히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쓰레기통이 부족해요.”
“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운동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요.”
“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없어요.”
“ 교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따뜻한 양말이 있으면 좋겠어요.”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시니어 그룹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붓다파크에 방문객이 많은데 특히 노인들의 쉴 공간이 부족해요.”
“장례식이나 정기 기도가 있는 날에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공간이 부족해서 확장되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습한 편이에요. 그래서 옷이 다 마르기도 전에 곰팡이가 펴요. 건조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
“네. 그것은 조금 살펴야 해요. 전기로 여러분들 옷을 다 말리려면 전기가 너무 많이 들어요. 자연광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좋아요.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건조장을 만들어도 돼요. 곰팡이가 피는 것은 방지해야 해요. 그런데 모든 것을 현대적인 기계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우리가 조금 생각해봐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 수행자들의 생활이 마을사람들 중에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좋으면 안 돼요. 부처님은 원래 왕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밑에서 자고 버려진 옷을 주워 입고 사셨습니다. 우리들의 스승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정신을 잊으면 안 됩니다. 부탄의 왕이 물질지수로 인간이 잘 살고 못 살고를 결정하지 않고 행복지수로 잘 살고 못 살고를 결정하겠다고 공표하고, 부탄은 욕망을 부추기는 개발 중심으로 나가지 않겠다 하셔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아보고,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같이 연구를 해 봅시다."
스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 나오는 펌프가 너무 멀리 있어서, 물이 단수 돼서 살피러 가야 할 때 너무 멀어요.”
“잠자는 공간이랑 공부하는 공간이 같아서 불편해요. 공간이 분리되면 좋겠어요.”
“손님 생활시설이 너무 부족해서 모실 때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웃음), 그런 사람들은 호텔로 가면 돼요. 여기는 수행 처소이지 호텔이 아니에요. 아무리 높은 손님이 오더라도 여기를 너무 좋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리고 그들이 오해를 해요. 우리가 다 손님방처럼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오해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여기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살면, 사람들이 보시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게스트룸은 지금 사는 것보다 조금만 더 잘 만들면 돼요. (웃음) 또 다음사람 이야기해 보세요.”
“나이가 많은 노스님들은 공간이 분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같은 생활공간에 있으니 어른들이 이것도 저것도 간섭하시는 게 불편할 때도 있고, 노스님들은 조금 편안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의 생활을 비교해 보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법당도 없고 물도 없었습니다. 물도 길어와서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정비하면서 살다가 큰 스님 돌아가시고 지금 스님이 오면서 우리들도 자라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장하면서, 외부에 나가서 기도를 하고 모금한 보시금을 개인이 사용하지 않고 전부 모아서 시설 개선에 사용해왔습니다.”
“여러분들 이야기 들으니 저희랑 비슷하네요. 저희도 천막 쳐놓고 한방에 여러 명이 살고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그렇게 같이 살았던 사람들은 불만이 없어요. 그런데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은 방을 따로 달라는 등 이런저런 요청이 많아요. (웃음) 그래서 개선은 해야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다 해결할 수는 없어요. 수행자는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해요.”
스님은 각자에게 차례로 질문하면서, 넌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들을 들었습니다. 작은 넌의 이야기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잘 듣기만 했는데 시니어 넌의 이야기는 대화를 해나가면서 들었습니다.
“지금 이 어린 넌들의 요구를 다 해결해도 10년 뒤에는 또 새로운 문제들이 나와요. (웃음) 일단,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제가 마을도 둘러보고 여러분들 사는 곳도 한번 보고 다 같이 한 번 더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요. (웃음)”
넌들과 대화를 마치자 날이 개고 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타시, 일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들 숙소를 먼저 둘러볼까요? 마을 방문을 먼저 할까요?”
“마을 방문을 먼저 하는 게 좋겠습니다.”
스님은 차를 타고 타시강구에 있는 ’찻치’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깊은 숲속을 통과하는 흙길이 있는 동네였습니다. 가는 길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고 있는 물탱크 트럭도 보였습니다.
도착하니 오후 12시쯤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사탕수수를 크게 재배해서 설탕을 만들고 있는 농장이었습니다. 이곳은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수확한 후, 불을 사용해 엑기스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가열해 설탕 덩어리로 만드는 전체 과정을 수행하는 농장이었습니다.
스님은 주방부터 사탕수수를 설탕 덩어리로 만드는 가공 시설에 이르기까지 농장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부탄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작은 규모로 합니다, 부탄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설탕 정제 시설입니다.”
“그러면 부탄은 설탕을 모두 인도에서 수입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탄에 설탕 공장을 하나 만들면 좋겠습니다. 동부는 땅이 좁지만 남부는 땅이 넓어서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탄에서 설탕 공장을 만들면 인도산 설탕 가격과 얼마나 차이가 날 것 같아요?”
“부탄 설탕은 킬로당 250루피 정도 하는데, 인도산은 40-45루피정도 합니다.”
“차이가 많이 나네요. 자립도 좋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 경제성이 있을까요? 공장을 가동하려면, 이 규모의 수천 배의 사탕수수가 공급되어야 공장을 가동해서 수익이 날 거예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스님이 마을 주민에게 물었습니다.
“부탄 설탕은 유통을 하기가 어려워서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산이 워낙 싸다 보니 공장을 하나 만든다고 해서 크게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네. 경제적이 이윤만 따지면 그렇지만, 생활에 가장 큰 것이 설탕과 소금인데, 설탕이라도 부탄이 자립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타시)
“인도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부탄에서 생산하는 게 값이 더 싼 품종은 없어요?”
“네 모든 것이 인도가 더 쌉니다. 부탄에서도 생산은 하지만 유통이 어려워 가격이 매우 비싸지기 때문에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농사를 짓지는 않습니다. 품질은 인도산보다 훨씬 좋지만 그 시즌에 부탄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한국도 그래요. 한국에서 소비되는 대부분 농산물이 중국에서 오고 있어요. 부탄이 인도 이야기를 안 들을 수 없겠네요. (웃음)”
스님은 마을 생활에 대해 주민에게 물었습니다.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생활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땅에 경사가 있어서 기계를 쓰기가 어려워 수작업으로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오렌지 농사를 지었는데 갑자기 병충해가 와서 전부 망하고 사탕수수로 바꿨습니다. 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생강, 일라이치(마살라의 종류)를 하는데 이 정도가 돈을 벌 수 있는 품종입니다.”
“물이나 전기 문제는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병원 문제는 없습니까?”
“네, 마을에 작은 보건소가 있습니다. 크게 좋진 않지만 일상적인 치료는 가능합니다. 큰 병은 몽갈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교육은 다 시키고 있습니까?”
“네, 인근에 학교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3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걸어 다니고, 중고등학교는 차로 45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데, 전부 기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기숙은 무료로 이루어집니까, 돈을 내야 합니까?”
“1년에 500-800루피 정도 내면 기숙과 교육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거의 무료나 다름이 없네요. 그러면 이 비용도 못 내서 아이들이 교육을 못 받는 가정도 있습니까?”
“네 조금은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을 못 받는 사람들은 몇 퍼센트 정도 됩니까?”
“초등 교육까지는 대부분 받고, 기숙이 이루어지는 8학년 정도부터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 50퍼센트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러면 수익이 될 만한 품목으로 농사 지을만한 게 없다는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네요.”
“네 맞습니다.”
"이렇게 수익이 안 나는데도 계속 농사를 지을 건가요? 다른 일을 할 계획은 없나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다른 기술이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사는 것이 어려운 곳에 가면 전기, 물, 약, 학교, 식량 이 다섯 가지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본 부탄은 어렵게 사는 가운데에도 이 다섯 가지는 어려움이 없어요. 이 다섯 가지가 해결된 나라라면 부탄은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인도도 도시에는 잘 사는 사람이 많지만 시골에 가면 못 사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네. 아주 좋은 시설들은 아니지만 물도 나오고, 포장된 도로는 아니지만 도로도 있고, 학교도 있고, 식량도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네. 그렇네요. 앞으로 더 잘살아진다고 해도 인간의 불만은 있겠지만 끝이 없어요.”
“네. 제가 생각하기에도 우리는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는 문화가 있고, 평화롭습니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장시간 시간 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차와 비스킷 대접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멀리에서 왔는데 여기 시골까지 와주셔서 더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물어보고, 대화하고, 의논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대화하는 속에서 제가 느꼈던 것은 무엇이 어려운가에 대한 궁금증,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나중에라도 마을에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 함께 온 비구니 스님에게 알려주시면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스님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약 2시간 가량 대화를 했습니다. 스님이 타시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생활이 어려운 집이 아니었어요. 일반 서민 수준의 집이나 아주 어려운 집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돌아가는 길에 허름한 집이 보이자 그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낯선 사람이라고 경계하지 않고, 한국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겨주었습니다. 스님은 허름한 집 한 곳에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습니다. 집주인이 웃으며 수락하고 본인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집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대나무로 집을 엮어서 지붕과 벽에 틈이 있었고, 대나무도 바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어제처럼 비가 오면 물이 새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웃음)”
“왜 흙을 안 발랐어요?”
“할 줄을 몰라서요. (웃음)”
두 부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흙이라도 발라야지, 이렇게 놔두면 나무가 곧 삭겠어요. 그래도 바위 위에 집을 지었는데, 안정적이게 참 잘 지었네요. (웃음)”
스님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함께 일정을 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저 집을 지원하면 비구니 스님이 책임지고 공사를 해볼 수 있겠습니까?”
“네, 제가 책임지고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차를 타고 인근의 마을집으로 이동해서 불교 신자 집에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다시 삼텐촐링절에 돌아올 때, 어린 넌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까 5살짜리 어린 넌 한 명이 스님과의 시간에 라면이 먹고 싶은데 까먹고 말을 못 했다고 이야기했어요. 여기 라면이 있는지 물어서 사가지고 갑시다.”
스님은 라면을 한 박스 사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삼텐촐링에 돌아오니 오후 6시가량 되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잠깐 정비를 하고 오후 7시부터 시니어 넌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수행과 마음의 평안, 붓다담마에 관한 것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여성 넌으로서의 역할과 그 역할을 삶에서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봅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괴롭거나, 이런 부정적인 마음이 없는 상태를 니르바나라고 하고, 그런 니르바나를 점점 증득해나가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모두 괴로움 없이 살고 싶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즐겁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세상사람들은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즐겁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롭고, 이렇기 때문에 괴로움과 즐거움이 늘 반복됩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입니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사상은 사람이 죽었다가 태어났다가 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고 한국 불교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의 가르침은 사람이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할 수밖에 없는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니르바나에 이른다’ 하는 말을 윤회에서 벗어난다, 다시는 안 태어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괴롭고 즐겁고 하는 것이 윤회이고, 니르바나에 이른다 하는 말은 괴롭고 즐겁고 하는 이것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즐겁고 괴롭고 한 것을 벗어나려면 즐겁고 괴롭고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즉 니르바나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배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성제’입니다. 그것은 괴롭고 즐겁고의 괴로움이 아니고 괴롭고 즐겁고가 윤회하는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가 괴롭다 하는 것만 괴로움이 아니라 우리가 즐겁다 하는 것도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뿌리가 다 ‘욕망’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괴로움과 즐거움이 정 반대 같지만 그 뿌리로 가면 ‘욕망’이라는 하나입니다.
‘두카’, ‘이것이 괴로움이다’ 할 때는 우리가 ‘괴롭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즐겁다' 하는 것에 집착하면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듯이 즐거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을 집착이라고 해서 집이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내 마음대로 되게 하는 것이 집착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두 번째 진리입니다. 붓다파크에 가면 여러 가지 조각이 있지요? 부처님이 고행을 할 때 마왕의 딸들이 와서 유혹을 하는 조각도 있잖아요. 그때 부처님이 그 아름다운 여인을 손가락으로 딱 가리키니까 노파로 변하는 조각도 있잖아요.
그때 아름다운 여인이 즐거움을 상징하고 노파가 괴로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젊은 여성이 부처님을 유혹을 했을 때 젊은 여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노파로 변했다는 것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그 본질이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즐거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린 상태로,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세 번째입니다. 다시 말하면 괴로울 일이 없다는 겁니다. 이 본질을 꿰뚫어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자꾸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8가지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8가지 바른 길을 항상 알아차리고 있으면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8가지 바른 길 팔정도를 알고 있습니까?
첫 번째로 일체는 괴로움이다.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욕망과 집착이다. 이 집착을 놓아버리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자꾸 집착을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8가지를 늘 바르게 수행을 해야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는다. 붓다파크에 가보면 부처님의 다섯 제자가 부처님 첫 번째 설법을 듣고 다섯 명의 제자가 깨달았다는 조각이 있죠. 사르나트에서 하신 첫 번째 설법입니다.
바로 그 첫 번째 설법한 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사성제입니다. 지금 세계불교는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테라밧다, 마하야나, 바즈라야나, 젠부디즘이 있습니다.
옷의 모양도 다르고, 읽는 경전도 다르고, 불교문화도 달라서, 전혀 다른 종교처럼 네 종류의 불교가 서로 달리 보입니다. 다 이렇게 다른데 무엇으로 불교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질 것인가?
첫째가 수행의 목표가 니르바나,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니르바나를 증득할 것인가? 그것은 사성제, 네 가지를 알아야 니르바나를 증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만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괴로움이 적어진다. 지위가 높아지면, 유명해지면 명예를 얻으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건강하고 오래 살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결혼 잘하고 자식이 공부 잘하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괴로움이 없어지느냐? 제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때가 63년 전인 1960년입니다. 그때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였는데, 지금은 3만 5천 달러입니다.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좋아졌느냐? 350배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350배 행복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3배는 좋아졌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습니다. 20, 30, 40대까지는 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세계에서 출생률이 제일 낮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점점 줄어듭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와 비교하면 학생수가 1/3이 안됩니다. 70퍼센트가 줄었습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젊은이들이 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애를 안 낳는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돈이 부족하다며, 경제경제경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3만 5천 불에서 35만 불이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왜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못 벗어나느냐 하면, 자기가 원하는 욕망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보면서 느끼잖아요. 나이 든 비구니 스님이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살 집이라도 있었으면 물이라도 있었으면 이것만 있으면 해결이 될 거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도 지어지고 물도 잘 나오고, 예전과 비교하면 삶이 좋아져서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이게 부족하다 저게 부족하다 하잖아요.
만약에 지금 여러분들이 오늘 원하던 게 이뤄지고, 앞으로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고 한다면 원하는 걸 다 해줄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게 이뤄지고 나면, 또 뭐가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다음는 스마트폰도 있어야 한다, 자동차도 있어야 한다, 또 그다음에는 한국에도 가고 싶다, 미국에도 가고 싶다, 이렇게 됩니다. (웃음)
그래서 지금 이대로 편안해야 합니다.
물론 물도 필요하면 끌고 오고 전기도 필요하면 가져오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해서 괴로워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지나면, 제가 보기엔 이 절도 계속 건물을 지어서 커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골치가 아플 겁니다. 그래서 '아, 그때가 좋았다, 옛날이 그립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다, 아껴먹고, 공동으로 하지만, 부유해지면, 다 따로따로 생활하고 개인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발전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중에 발전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도 행복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과정도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이 집을 지어놓은 뒤에 여기에 앉아있는 것만 행복한 것이 아니고 이 집을 지을 때도 행복해야 합니다. 밥을 짓든, 건물을 짓든, 밭을 매든, 무엇을 하든 그 순간순간 괴로움이 없고 편안해야 붓다 담마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사를 입고 머리를 깎았다고 수행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그것이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오늘 저녁에 시니어만 다섯 명만 오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 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법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이 부처님 법이 나를 니르바나에 이르게 하는 법이다. 이 믿음이 있어야 어떤 일을 해도 괴롭지 않고 평생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아니고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가 없다.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를 만나도 부럽지 않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도 부럽지 않고, 결혼을 한 사람을 만나도 부럽지 않고,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을 만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삶의 중심을 딱 잡아야 그런 것을 보고서도 부러움이 없어지고 껄떡거리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부처님은 부자도 버리고 왕위도 버렸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은 왕 앞에서도 항상 당당했잖습니까? 그래야 푸자 해주러 갈 때도 (밖에서 초청으로 기도해 주러 갈 때) 십 루피 주는 가난한 사람이나 만 루피 주는 부자 사람이나 똑같이 해 줄 수가 있다는 거예요.
또 여기 많은 사람들이 올 때도, 지위가 높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늙은 사람이거나 애들이거나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야지, 돈 많은 사람에겐 잘해주고 도네이션 안 하는 사람은 외면하고 하면 안 됩니다. 수행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출가자로서 당당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잘났다’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되 마음이 당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수행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질문이 있으면 하세요.”
“스님께서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갈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해가 잘 안됩니다.”
“과거에 가난했을 때는, 시간이 지나 경제가 발전하면 어린 시절보다 나이가 들면서 더 잘 살게 되었고,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더 잘살았습니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사는 넓은 집에 아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님의 넓은 집에 자기 방도 있고,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용돈도 받으며 생활을 하다가, 이제 직장을 가거나 결혼을 해서 독립된 생활을 하면 부모님 집보다 더 작은 집을 구해야 하고, 밥도 자기가 해야 하고, 일이 많아지잖아요. 독립을 하면 모든 생활이 현재보다 다 안 좋아지니까 부모집에 그냥 사는 것이죠.
남녀를 막론하고, 부모가 모든 것을 해 주는 환경에서 자라니, 이들은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계속 공부만 하라고 해서 많은 이들이 30살까지 공부에만 몰두했고, 그 결과 이들은 생활력이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대학을 졸업한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직장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공장에서 일하기를 꺼려함에 따라, 그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일자리가 없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혼자 마음대로 자란 탓에, 회사에서 누군가의 지시와 지적을 받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회사 다니다가 1년 만에 그만둡니다. 또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거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영화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푸자와 같은 방식은 이제 젊은이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뭐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지 묻고, 그들과 대화를 하며 부처님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고, 아까 얘기한 사성제 네 가지 원리로 깨우쳐줘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두 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탄이 인류가 가고 있는 길을 가지 않도록 할 것인가? 만약 그런 길을 가게 되면 수행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부탄은 물질 중심의 자본주의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20년 후에는 한국과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승려들이 뿌자와 같은 종교 활동만으로는 종교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부탄의 전 왕이 '우리 부탄은 그런 방식으로 안 가겠다. 전통과 환경을 보존하며, 자본주의가 아닌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방침에 따라 이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먼 곳까지 왔어요. 한국식도, 미국식도 아닌, 부탄만의 고유한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팀푸에 가보면 이미 서구화와 물질주의가 진행 중이고,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보며 외국을 동경하며 해외로 나가고자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세계적인 자본주의 추세를 따라갈 위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집을 지으려 하고, 새로운 자동차를 구매하려 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첫째, 내가 니르반야를 증득하는 것, 즉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과 앞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비구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될 것이냐 이런 문제는 이제 새로운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부탄이 부탄의 가치를 지키면서 개발을 하고, 우리 비구니들도 불교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생활의 편의를 높이는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입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우리는 정말 어떤 식으로 살아야 지속 가능할 것이냐?’ 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퀸마더가 재단을 설립하고, 해외에서 공부한 닥터타시가 대학 교수가 될 수 있는 데도 이 일에 헌신하는 이유는, 여성 넌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단의 교육을 통해 여성 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였습니다. 너무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서 현실감이 없죠? (웃음) 여러분들이 20년 후에 이 장면을 다시 되돌아보면, ‘아, 스님이 그때 오늘을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하셨구나.’ 하고 알 거예요. 20년 뒤에는 제 말을 제대로 이해를 할 거예요. 오늘은 제가 서너 사람이라도 알아들으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웃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스님은 시니어 넌들에게 법문을 2시간 가량 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넌들이 생활하는 숙소를 둘러보고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고, 팀푸로 다시 돌아갈 예정입니다. 팀푸로 가기 위해 3일 동안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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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들어오기 전의 삶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들어온 이상은 부처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 마음이 아무런 걱정이 없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