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15 영어 즉문즉설, 인도 성지순례 입재식
"1250명이 인도에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

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정토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6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종교와 철학이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공부하는 곳이 정토불교대학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불교 공부를 하는 목적이라고 강조한 후 외국인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통역은 늘 봉사를 해주는 제이슨(Jason) 님이 해주었습니다. 질문자 중 한 명은 LA에 사는 외국인 분이었는데요. 상대방에게 사과를 해도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사과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어떡하죠?

“Because of our Karma and the practice of repentance, often requiring further practice and repeated effort until new habits are gained can you please speak to the harm that comes to others as we are gaining the new habits and insight? What do you recommend when someone tells us that they don't want to hear any more apologies? Or similarly, for us, what do you recommend, when we don't want to hear any more apologies after being hurt repeatedly especially when it is like family members that it's hard to get distance from?”

(우리는 업식을 갖고 있고, 습관을 고치는 데는 반복적인 노력이 들고, 끊임없는 참회 정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습관과 통찰력을 얻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사과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슷하게 저도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았고, 더 이상 사과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특히 그 사람이 가족이어서 거리를 두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가 사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참회란 상대에게 사과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잘못 행동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참회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행동, 이런 생각, 이런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잘못이 반복된다면 또다시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것이 이미 습관화되어 있어서 때론 알더라도 개선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내가 사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사과를 해야 하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과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행위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면서 말로만 사과하는 걸 상대가 바라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사과의 말을 한 번 했더니 상대가 더 이상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행위를 개선해 주는 게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사과 한 마디로 없애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라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20번을 사과했는데도 상대가 부족하다고 하면 더 사과를 해야 되고요. 반대로 사과를 두 번 하는 것도 싫어한다면 사과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양식이 다릅니다. 까르마란 사람마다 가진 특성을 말합니다. ‘까르마는 왜 사람마다 다를까’ 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같은 집안에서 같은 부모를 두고 태어난 자식들도 서로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런 서로 다른 특성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태어나는 생년월일시, 즉 몇 년도 몇 월 며칠 몇 시에 태어났느냐 하는 네 가지 조건에 의해서 인간의 까르마가 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전생에 지은 행위에 의해서 까르마가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까르마는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운명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까르마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까르마는 형성된 것이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까르마는 소멸될 수 있다.’

물론 까르마는 오랫동안의 습관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까르마는 본래 타고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운명론을 부정하셨습니다. 까르마는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화시키기가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다릅니다.

주로 3살 이전에 형성된 자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변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나’라고 인지되는 자의식은 3살 이전에 주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다음으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 까르마는 두 번째로 변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과 본래부터 그렇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첫째, 그냥 습관을 인정하고 거기에 따르는 어떤 비난, 손실, 과보도 모두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비난과 손실이 너무 크면 조금 힘들더라도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 일부 변화를 시켜야 합니다. 거기에는 그만큼 저항이 따릅니다. 그 저항을 이겨내야 합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잡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미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되어 있을 때는 머리로 잘못된 것을 알고 있어도 찰나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버리기 때문에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작용하고 반응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개선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바꾸려고 하는데 바꿔지지 않으면 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현실적으로 과보를 받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변화하고자 하는 목표 의식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즉문즉설을 할 때 여러분이 어느 정도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각오가 있느냐를 먼저 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하고 말할 때도 있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하고 말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바꾸는 것도 욕심을 내서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면 바꿔지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 실망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한 것이 더욱더 괴로움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돼요. 그 괴로움은 내가 바뀌지 않는 데서 오는 게 아니고, 바꾸려고 하는 노력은 적게 하면서 변화는 많이 일어나길 바라는 욕심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답을 다 하고 나서 다음 이 시간을 기약하며 9시 30분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 인도로 갑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대중과 함께 순례를 하고 돌아와서 여러분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곧이어 10시부터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여러 번의 토론을 거쳐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씩 합의점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정토회의 각 지부, 지회, 모둠 구성을 어떻게 할지 점검한 후, 특히 국제특별지부의 조직개편 방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제32차 인도 성지순례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1250명의 순례자들이 총 32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성지순례를 하게 되는데요. 차량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여 입재식에 함께 했습니다.

성지순례 참가자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를 하는 목적과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성지순례를 갈 마음의 준비는 다 되셨나요? 예년 같으면 몇 가지 주의사항만 안내받고 가면 됐습니다. 이번에는 성지순례를 따라가는 게 아니고 내가 성지순례를 만들어간다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1250명이 인도 성지순례를 가는 것은 정토회 역사에서 처음 하는 일이고, 한국 불교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다시 진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세계불교사에서는 어떨까요? 흔히 있는 일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만 명이 성지에 모이기도 하고, 동남아 불교권에서도 수천 명이 성지를 순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8대 성지를 한 번에 순례하는 경우는 아마 세계불교사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곳에 몇 만 명이 모여 행사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한꺼번에 8대 성지를 모두 순례하는 경우는 어쩌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함께 잘 준비해야 하는 큰일입니다.

1250명이 인도에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

왜 1250명이 성지순례를 갈까요? 첫째, 정토회의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면서, 지난 30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에 대해 부처님과 불법에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행 끝에 죽을 뻔하셨던 부처님을 살려준 수자타의 후예들에게 공양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만인 공양을 기획했습니다.

둘째, 만일결사를 하신 분 중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이 이번에는 마지막 힘을 내어 참가하시지만, 다음에 또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만일을 회향하는 시점에 모두 같이 가자는 취지가 있습니다.

셋째, 2차 만일결사를 출발하면서 세계 전법을 발원하기 위해서입니다. 2차 만일의 목표인 세계전법은 ‘한국으로부터 세계로’라기보다 ‘부처님의 땅으로부터 세계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도를 이루신 곳, 최초로 설법하신 곳, 열반하신 곳에서 세계로 나아가자는 발원을 하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땅으로부터 세계로

1차 만일결사 회향에 대해 감사드리고, 2차 만일결사를 발원하기 위해 인도 성지순례를 선택한 것입니다. 성지 곳곳에서 발원을 하지만 마지막 성지에서는 세계전법을 발원하려고 합니다.

정토행자는 어떤 허황한 믿음도 없이, 잡다한 사상도 추구하지 않고, 세속적 이익을 위한 욕구도 없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깊은 믿음과 바른 견해를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수행적 관점이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입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새로운 불교 운동, 즉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불법을 전해준 선지식들은 인도에서 출발해 뱃길로 가야에 오거나,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로 왔습니다. 인도로 성지순례를 가기 전에 그분들이 이 좋은 법을 전하러 올 때의 그 역경을 생각해 봅니다. 1500년, 1300년 전 백제의 겸익, 신라의 혜초는 이 땅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때로는 동남아와 서역을 거쳐 인도로 갔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인도 전역을 순례하고 다시 돌아와 기행문을 쓰고, 가져온 경전을 번역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인도로 들어가는 길은 서울에서 뉴델리로 가는 직항을 타고 가든, 다른 지역을 경유해서 가든, 그게 무슨 큰 대수겠어요? 그러니 비행시간이 좀 길거나 짧은 상황을 두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분별은 다 내 마음이 짓습니다

우리가 가는 성지는 다 오지에 속합니다. 대도시가 없어요. 그래서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없습니다. 우리는 순례자 숙소에서도 자고, 처마 밑에서도 자고, 학교에서도 자야 합니다. 원래는 천막을 치고 자려고 했어요. 그래도 천막보다는 지역 학교를 빌려서 교실에서 자는 게 낫겠다고 해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니 잠자리가 불편하다든가, 먹는 것이 불편하다든가, 씻는 것이 불편하다든가 하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내가 지금까지 살던 집과 비교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만약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의 학생이나 주민을 태워서 이렇게 순례를 다닌다면 그들은 불편하다고 느낄까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타고 다니는 차도, 모두 자신들의 집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거예요. 어디를 가더라도 내 습관을 고집하면 불편합니다. 습관을 고집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요.

‘이렇게 먹는 것이 못 먹는 것보다는 낫다’
‘남 보는 앞에서 용변을 보더라도 참는 것보다는 낫다’
‘차에서 자더라도 못 자는 것보다는 낫다’
‘샤워는 못 하더라도 세수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길이 막히면 차에서 자면 되고, 배가 고프면 가지고 있는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국경을 넘는 데 10시간이 걸린다면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공부를 하면 돼요.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면 그 시간에 염불을 하면 됩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빨리 가서 놀고 있으나, 길이 막혀서 늦게 도착하나, 성지에 다 같이 모여서 순례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출발하는 날과 돌아오는 날은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순례 중에 길이 막혔다고 집에 늦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순례를 빨리 마쳤다고 해서 집에 빨리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정해진 날에 출발하고, 정해진 날에 돌아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는 계획보다 일정이 빨라질 수도 있고, 계획보다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잘 마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하루 두 끼는 먹겠지만 꼭두새벽에 첫 끼를 먹고 저녁이 되어서야 두 번째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하루 두 끼니를 점심과 저녁으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두 끼를 먹지만 딱 정해진 시간에 먹을 수는 없습니다. 빨리 먹을 수도 있고 늦게 먹을 수도 있고, 간격이 벌어지는 날도 있고 간격이 좁은 날도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마음을 탁 놓아야 합니다. 자연으로 한번 돌아가 봅니다. 산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먹을 게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습니다. 순례를 하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대충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고정적일 수는 없어요. 어쨌든 먹기는 하지만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일정이 계획했던 대로 될 때도 있고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안 된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는 날과 돌아오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빼면 모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행사가 계획된 대로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획했던 곳을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봤자 오십보백보예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진정한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연 따라 나투라’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순례를 하는 보름 동안 이런 인연이 되면 이렇게 하고, 저런 인연이 되면 저렇게 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인도 성지순례를 가는 목적

여행이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가는 목적은 1차 만일결사 회향에 대한 감사 기도를 하고, 수자타의 후예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다음 2차 만일결사를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성지순례를 해나가듯이 여러 난관 속에서도 걸림 없는 자세로 다음 30년을 해나가겠다는 발원을 하기 위해서 성지순례를 가는 거예요.

인도에 도착하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냐 싶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은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면 대부분 아는 것을 봅니다. 언어만 다를 뿐이지 대부분 한국에 있는 모습이에요. 차도 비슷하고, 길도 비슷하고, 건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인도는 한국과 비슷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입는 옷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집과 도로도 다릅니다. 그래서 좀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부정적으로 보면 복잡하다, 더럽다, 질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순례를 하는 동안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기도 할 거예요. 손이 시꺼먼 아이가 와서 내 손을 잡기도 합니다. 맡겨 놓은 것도 아닌데 돈을 달라고 악을 쓰는 사람도 있고, 흉측한 모습으로 ‘박시시’를 외치며 구걸하는 문둥병 환자도 있어요. 태워주겠다, 안마해 주겠다며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럴 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불쌍하다고 했다가 더럽다고 느끼기도 하고, 인도 정부를 욕하기도 합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기도 하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왜 왔을까 후회를 했다가 잘 왔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바깥의 볼거리보다도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이 더욱 다양합니다.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러니 구경거리가 두 개입니다. 하나는 바깥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할 거예요. 감동했다가 후회했다가 극과 극을 치닫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 모든 것이 다 마음이 짓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곳을 보고, 똑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지만, 좋아서 감격하는 사람, 불평불만 하는 사람 등 온갖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도 온갖 종류의 반응을 할 거예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법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고 이해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이 보름 동안 안팎으로 잘 살피면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고집하고 밖만 보고 불평한다면 다녀와서 후회하고 병이 나고 돈이 아깝고 마음의 상처가 남습니다. 스님도 미워하고 도반도 미워하는 과보가 따를 거예요.

여러분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성지순례를 처음 가는 사람과 해외여행마저 처음 가는 사람입니다. 해외여행을 처음 간다고 엄청나게 들떠서 가면 반드시 후회를 합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귀한 시간을 내서 왔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우리는 여행이 아니라 순례를 가는 것입니다. 순례자는 적어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수행을 하기가 어려운데, 인도에 가면 저절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개인 차원에서는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경전에 나오는 천이백 제대 아라한을 인도 현지에서 실현해 봄으로써 수행자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행자로서 기꺼이 순례에 동참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다니고, 차 안에서 먹고, 때로는 차 안에서 자야 하는 상황을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면 수행하는 마음으로 다니자는 순례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행사의 서비스가 부족한 것처럼 항의하거나 불평하면 함께 순례를 하기 어려워요.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고 배낭여행을 가듯이 자기 계획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겠다는 분은 지금이라도 빨리 취소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인도 현지에서 뵙겠습니다.”

이어서 인도의 지도를 화면에 보여주며 인도의 지형, 강, 기후, 인종, 언어, 종교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10대 성지를 어떤 루트를 따라가게 되는지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전체 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지순례 참가자들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참가자들은 차량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오후 4시에 성지순례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후 4시 30분부터는 다음 천일을 준비하기 위한 결사행자회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초안을 내면 결사행자회의에서 재검토가 이뤄지는 일이 연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2차 만일결사부터 정토회의 조직 개편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습니다.

지금까지는 정토회가 전법활동가 양성에 집중을 해왔다면, 다음 천일부터는 일반회원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토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완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 일환으로 모둠 통합 세부 방안, 책임봉사자와 자율봉사자의 역할 등 많은 제도들이 검토되고 찬반 토론을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이 되어 결사행자회의를 마쳤습니다.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45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질문이 없어서 스님이 곧바로 명상을 안내했습니다.

마음이 요술사가 되어 온갖 것을 만든다

“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 마치 마술사가 요술로 온갖 것을 만들 듯이 마음이 요술사가 되어 온갖 것을 만든다.’

그래서 마음이 쉬어버리면 모든 환상이 사라져 버립니다. 명상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심이 아니라 마음이 쉬는 것이 중심입니다. 마음이 쉬려면 그전에 생각이 쉬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거나, 의도를 갖거나 하는 애씀을 모두 멈춰야 합니다. 생각 이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생각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처럼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생각이 아예 일어나지 않거나,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먼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앉습니다. 긴장하거나 애쓰지 않습니다. 모든 동작과 관심을 멈춥니다. 그럴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올 때 들어오는 줄 알고, 숨이 나갈 때 나가는 줄 알 뿐입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마쳤습니다.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들을 스님이 직접 읽어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팀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0

0/200

수미향

이 세상의 모든것은 마음이 짓는다.
생각 이전에 집중하는 것..
삶이 명상..
방콕입니다.
명상하듯 인도성지순례를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23-01-27 21:47:15

김희복

스님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2023-01-24 19:19:56

불린이

‘이렇게 먹는 것이 못 먹는 것보다는 낫다’
‘남 보는 앞에서 용변을 보더라도 참는 것보다는 낫다’
‘차에서 자더라도 못 자는 것보다는 낫다’
‘샤워는 못 하더라도 세수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관점을 잡아 주시는 스님을 통해 수행자의 자세를 익힙니다. 감사합니다 🙏

2023-01-24 10:02:29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