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아침 일찍 행자들과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휴가에서 일찍 복귀한 행자도 더해서 인원이 늘었습니다. 산책할 때 쓸 지팡이를 찾다가 보니 벌레 먹어 나무 껍질이 다 일어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스님이 지팡이 껍질을 다 벗기고 보니 벌레가 먹은 나무 자리가 움푹 파여서 자연스럽게 무늬가 생겼습니다.
“이것 보세요, 꼭 지팡이에 무늬를 새겨 둔 것 같아요”
“스님이 새기신 거 아녜요? (웃음)”
“벌레가 이렇게 새겨 줬어요. (웃음)”
행자들도 신기해서 지팡이를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스님의 나무 지팡이 중에 가장 멋있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행자들과 채비를 마치고 8시부터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엊그제만큼 산길은 아니에요. 능선 따라 이동할 거라 더 수월할 거예요”
스님은 산책길을 걸으면서 행자들에게 산에 흐르는 물길도 알려주고, 동네 이름에 관해 설명도 하고, 양손에 지팡이를 쥐고 걷다가 어릴 때 썰매 탔던 방법도 이야기하고, 올해 농사가 어땠는지, 또 내년 농사는 어떻게 할지도 이야기했습니다.
한창을 이야기하다가 어떨 땐 말 없이 걷기만 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스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니 함께하는 행자들도 스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시작했습니다.
산책길이 지나자 어느덧 강길이 나왔습니다. 물은 얼어있고, 길에는 낙엽이 많이 쌓여서 길이 가늠이 안 되고 물이 얼어있어 조심해야 했습니다.
“조심히 오세요”
스님은 제일 먼저 앞장서서 걸었습니다. 낙엽이 너무 쌓여서 한 발 앞이 안 보이는 길을 스님은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스님처럼 성큼성큼 걷다가 한 행자는 낙엽 속에 발이 쏙 빠져 몸의 절반이 파묻히기도 했습니다.
산책 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되고 있을 때, 길의 분기점에서 스님은 행자들과 코스를 상의했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이 도로를 따라 쭉 걸어서 복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길로 쭈욱 둘러서 복귀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앞서 설명한 방법보다 한 시간이 더 걸려요. 더 걸을 수 있겠어요?”
한 행자가 강력하게 한 시간 빠른 길을 선택했고, 다른 행자들은 더 둘러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다 같이 이 길을 갑시다. (웃음)”
스님은 다 같이 첫 번째 길을 가는 방법을 선택하고 다른 행자들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다른 행자들도 흔쾌히 동의하고, 복귀가 시작되었습니다. 복귀하는 길에 아직 감이 남아있는 감나무를 발견해서 감도 따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돌아오다 보니 이번에도 산책 시간이 4시간을 훌쩍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조금 풀린 상태이긴 했지만 산책한 행자들과 스님 모두 빨갛고 얼얼한 얼굴이 되어 긴 산책시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행자들과 떡국을 점심으로 먹고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담장 정리를 했습니다. 능소화가 흙 담장과 지붕에 뿌리를 내려서 흙 담장이 무너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뿌리가 제법 굵어 보이는 가지들을 제거하려니, 지붕이 무너지고 흙 담장이 부서져서 스님은 굵은 가지들이 힘을 잃게 중간중간 끊어주었습니다.
한참 운력을 하니 지붕 위와 담장이 깨끗해졌습니다. 어느덧 회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몇 개의 회의를 마치고 저녁에는 경주 불교 학생회 동문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서 지난 8월 20일 천일결사기도 법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어제는 33도까지 올라가는 햇살이 강한 폭염이 있었지만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찬물을 뒤집어쓰기에는 약간 으슥한 가을의 기온이 다가오고 있네요. 아마 일주일만 더 지나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완연히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들판에는 벼가 다 피어올랐고 감도 붉은빛이 생기기 시작하고 밤송이도 굵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무덥지만, 하지를 지나서 태양이 짧아지니까 가을은 필연적으로 오고 있고, 춥지만 동지를 지나서 해가 길어지니 봄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은 수행 정진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진을 꾸준히 해서 시간이 지나면 정진의 공덕이 나타나고, 함부로 살다가 시간이 흐르면 괴로움이 뒤따라오게 됩니다. 사람이 있으면 그 그림자가 있듯이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수행자라면 부처님의 제자라면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은 연기법이고, 연기법에 따른 인연 과가 분명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좋은 인연을 지어서 좋은 과보가 일어날 확률을 높이고, 나쁜 인연은 자제해서 나쁜 과보가 일어날 확률을 줄이면 삶이 점점 밝아지고 맑아지고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에게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경전에서는 수행자들의 두 가지 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수행자라면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은 수행자라면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간의 수호자이신 붓다가
세상에 머무르고 있던 당시는
모든 수행자들이 몸가짐이 지금과는 달랐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필수품과 의약,
그 밖의 물건에 대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숲속 나무 밑, 동굴이나 바위틈 속 등
외진 곳을 찾아다니며
오직 자신들이 번뇌에서 벗어나기만을
늘 염두에 두고 수행하였다.
"그러니까 수행의 목표가 해탈과 열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최소한의 먹거리, 입는 것, 잠시 누울 곳, 그 외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즉 검소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죠.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 합니다. 출가 수행자는 저렇게 산다는 걸 기준 삼아야 하겠죠. 그러나 재가 수행자는 저렇게까지 살지는 않더라도 내가 입고, 먹고, 자는 것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맛에 집착해서 먹는 것 때문에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옷에 집착해서 입는 것으로 껄떡거려서는 안 된다. 집에 집착해서 큰 집 작은 집 따지고 껄떡거려서는 안 된다. 의식주를 간소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형편이 안 돼서 간소하게 살면 정말 기쁜 일입니다. 위축될 일이 아니라 당당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고 형편이 되는 사람은 오히려 줄여야 합니다.
남편은 수행자가 아니라서 큰 집을 샀다가 하면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집안을 조금 간소하게 꾸려야 한합니다. 남편이 집안 꾸리는 것도 한다면 내 방이라도 간소하게 꾸려야 합니다. 방도 같이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내 먹는 거라도 간소하게 꾸려야 합니다. 먹는 것도 같이 먹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면 내 먹을 때만이라도 간소하게 먹어야 합니다. 남편 친구들하고 만나서 어쩔 수 없이 보조를 맞춰야 한다면 평소에 검소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외출할 때도 화려한 장식으로 경쟁하지 말고 소박한 옷차림으로, ‘저 사람은 참 부자인데 소박하게 살구나’ 가 느껴져야 합니다. 내가 형편이 안 돼서 검소하게 사는데 남의 큰 집을 보고 좋은 옷을 보고 위축된다면 수행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지저분하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옷을 기워서 입어도 깔끔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검소하게 살라’하는 이야기이죠.
남편이 좋은 옷을 해줘도 사양하고 자기가 돈이 있어도 값비싼 패물은 사양하고 차도 적당히 해야지 꼭 좋은 차 비싼 차를 사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좋은 차를 타야 한다고 하더라도 수행자는 그런 것으로 으스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소박한 삶,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간의 수호자이신 붓다가
세상에 머무르고 있던 당시는
모든 수행자들이 몸가짐이 지금과는 달랐다.
마음은 겸손하고 소박하고 온화했으며
완고하거나 물들지도 않았으며,
경거망동하지 않고
오직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걸음걸이와 식사와 관습은
밝고 청정하기만 하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기름 흐르듯 막힘이 없었다.
"여기에서 ‘목적’은 바로 해탈과 열반,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오로지 해탈과 열반에만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지위가 높아도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겸손한 자세, 교만하거나 뻣뻣하지 않고 마음이 온화한 상태, 고집을 부리면서 완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상태, 주위에 영향을 받아서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것보다는 경계에 좀 덜 끌려다니는 상태, 이것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타인을 좀 포용하는 이런 자세가 겸손한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아마 부처님 당시에는 다수가 이렇게 검소하게 살고 겸손하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은 그런 수행자들을 위해 기꺼이 보시했고, 보시를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흘러가면서 수행자가 존경받는 겉모습만 보고 출발한 이들이 공양받는데 집착하고 잠자리 편안하게 꾸미는 데 신경쓰고 좋은 옷 입는 데 신경을 쓰고 대중이 존경하니까 자기가 잘난 척하고 거들먹거리고, 이렇게 되면서 점점 수행자에서 제사장으로 전락해갑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됐죠. 그런데 오늘에는 그 정도가 아니고 세속과 경쟁을 해서 왕궁에 버금가는 집을 짓고 왕에 부응하는 옷을 화려하게 입고 권위를 세우고 부자와 버금가는 그런 음식을 먹고 차를 타고 이것이 마치 훌륭한 종교 지도자인 것처럼 합니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존경을 잃어갑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양과 형식을 가지고 붓다의 제자다. 수행자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탓하지 말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세상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여러분들은 세속에 사니까 해도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법을 만나서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면 그런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내가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더라도 자랑삼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 여건이 어떻든, 신체에 장애가 있든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 피부가 어떻든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각자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당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나와 평등하게 본다면 평등하게 보는 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겸손함입니다.
당당함이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하셨습니다.
지금 현상을 보고 옛 수준을 그리워하면서 ‘그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변했구나’ 하고 한탄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옛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변하더라도 그 기준을 놓치지 않아야 큰 변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을 당장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더 검박하게 줄이지는 못할망정 불평불만은 하지 말라 이보다 더 안 된다고 껄떡거리지는 말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새삼스럽게 더 겸손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남 앞에서 거들먹거리지는 마라. 적어도 비굴하지는 마라.
내 인생의 주인보다 더 당당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되 타인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늘 알던 이야기지만 수행자가 이렇게 자기 고백을 한 것을 보면서 우리도 다시 한번 새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