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10 천일결사 기도, 행복학교 특강, 텃밭 배추 김장
“충동적으로 과소비하는 버릇을 멈출 수가 없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제10차 천일결사를 회향한 다음 첫 번째로 맞이하는 토요일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종성, 예불,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천일결사 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이렇게 매일 꾸준히 정진하고 계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일을 할 때는 시작도 있고, 끝맺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살이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매일매일이 같은 날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느 하루를 정해서 그날이 1년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또 어느 하루를 정해서 그날이 1년의 끝이라고 말을 할 뿐입니다. 1년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365일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한 해의 끝에서 이듬해의 시작은 같은 날 바로 연결됩니다.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구 위에서 앞으로 걸어가서 지구의 끝에 도달하면 그것이 바로 지구의 출발점이 됩니다.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는 수행자

깨달음을 얻고 보면 세상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얼핏 시작과 끝이 있어 보이는 것도, 자세히 보면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으로만 생각하면,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고,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는 걸 깨닫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건 마치 밖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보는 사람에게 실제로는 해가 뜨는 바도 없고 해가 지는 바도 없으며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해가 뜨고 지는 걸 직접 보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죠.

부처님께서 6년 동안 탐구하여 깨달음을 얻고 보니,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하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즉, 모두 생각이 짓는 바였다는 걸 알고 나니 이 세상에 아무런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담배 피우는 것에 중독된 사람이 갑자기 담배를 안 피우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죠. 또,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쉽지만,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그걸 멈추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수행 정진을 하는 사람은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말고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천일결사를 시작하든, 천일결사를 회향하든, 만일결사를 시작하든, 만일결사를 회향하든, 오늘이 가든, 내일이 오든, 그런 것은 그냥 하나의 흐름에 불과합니다. 시작이니 끝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생각이 지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걸 알아버리면 여여해집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갈 바도 없고, 올 바도 없고, 할 바도 없고, 안 할 바도 없는, 그런 여여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요적정(寂靜)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사는 현실의 분상에서 보면, 어떤 일을 할 때는 준비를 해서 시작을 하고, 또 어떤 일을 마칠 때는 준비를 해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 기간이 있고, 시작을 하고 진행을 한 다음 끝맺음을 하고, 뒷정리와 마무리를 합니다. 준비를 하고, 시작을 하고, 진행을 하고, 끝맺음과 마무리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상사입니다. 수행의 분상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일의 분상에서는 시작을 하고 끝맺음도 합니다.

‘이 땅을 정토세상으로 만들자’ 하는 원(願)을 세운 다음, 일의 분상에서는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만일결사를 마무리하고, 또 그 사이사이 준비 기간과 마무리 기간도 둡니다. 그러나 개인 수행의 분상에서는 그것이 시작 기간이든, 마무리 기간이든, 새해든, 연말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하루일 뿐입니다. 해가 뜨는 시간이나 해가 지는 시간이나, 좋은 일이 일어날 때나 나쁜 일이 일어날 때나, 밥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그냥 똑같은 하루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수행은 여일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은 잘 준비하고, 잘 시작하고, 잘 진행하고,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마무리와 동시에 새로운 준비를 하는 시간

지금은 우리가 진행해 온 일을 잘 마무리하면서, 다음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기간 동안 과로를 했다면 약간의 휴식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회향을 했지만 지난 천일 동안, 그리고 지난 만일 동안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보완할 점들이 있는지 살펴서, 그걸 바탕으로 한 계단을 쌓고 다음 계단을 쌓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회향 기간은 일을 마무리하는 기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인 수행 정리도 하고, 자기가 했던 일들도 잘 마무리하고, 또 다음을 위해서 준비해나가는 시간으로 회향 기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회향 기간에는 인도성지순례 등 다른 일정들도 있기 때문에 토요일마다 진행해 온 천일결사 법문 방송은 잠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내년 3월 19일까지는 생방송을 통해 정진을 하지는 않지만 각자 스스로 지금까지 매일 해온 것처럼 매일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은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한 후 6시 40분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스님도 발우공양을 함께 한 후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수고한 대중들을 격려하면서 특히 농사와 재활용 유통 사업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만일결사를 회향했으니까 개인마다 진로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텐데, 다음 주에 공동체 수련을 하면서 미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방향을 잡으시면 좋겠어요.

농사와 재활용 사업의 미래 비전

농업과 재활용 유통은 지금으로서는 정토회 안에서 별로 비중이 없는 상황이지만, 기후 위기와 미래를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중요한 사업입니다. 그리고 동남아 불교 국가들에게 바로 전수를 해줄 수 있는 사업입니다. 공동체가 자급자족하자는 취지도 있지만, 유기농에 대한 노하우를 앞으로 동남아 국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두북 수련원이 그 본부가 되어서 견학도 오고, 직접 가서 농업 기술 지도를 해주는 역할이 필요해요. 재활용 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기농의 경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수입 농산품을 동남아 국가에서 생산해서 수입해 오는 문제와도 연결되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남아 도는 재활용 물품들을 동남아 국가로 재송출하는 방안도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식 개발을 하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나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원봉사 제도를 활용하는 방법, 유기농을 하는 방법, 빈 땅을 활용하는 방법, 폐자재를 활용하는 방법 등 많은 실험이 필요해요. 농사짓는 데에만 너무 급급하지 말고 인간의 삶에 필요한 생필품을 어떻게 마련해나가는 것이 문명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INEB를 개최했을 때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농사와 재활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모방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권 투쟁 같은 것은 본인들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구체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빈곤퇴치, 농업 개선, 재활용 유통입니다. 이런 미래 비전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발우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오전 8시부터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팀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10대 성지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세부 계획안을 함께 점검하고 검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행복학교 특강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 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게 안내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29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충동적으로 과소비하는 습관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충동적으로 과소비하는 버릇을 멈출 수가 없어요

“저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적금도 하고, 검소하게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요즘 들어서 봇물 터지듯이 돈을 막 쓰고 다니고 있습니다. 돈을 쓸 때는 그 순간의 즐거움이 있지만 그 순간일 뿐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서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잔고가 점점 바닥나는 걸 보고 있으면 불안이 밀려오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만 하다가 그치고, 나중이 되면 또 주체 못하고 돈을 쓰고 있습니다.

이때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쳐 지나갑니다. 첫째는 직장생활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나의 좋은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여기서 즐길 수 있을 때 그냥 즐기자’ 하면서 심플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과 둘째는 ‘이러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잔고에 바닥이 보이면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과소비를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돈을 쓰지 않고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돈을 많이 안 쓰고도 즐겁고 행복하게 삽니다. 저도 돈을 쓰긴 하지만 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남을 돕는 일에 쓰지 개인적으로는 돈을 쓸 일이 별로 없어요.

요즘은 여러분들이 보시하고 후원하는 돈을 갖고 세상에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필요한 돈을 대부분 제가 다 벌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 이후에는 학원 선생님도 하고, 대부분 제가 돈을 벌어서 썼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로 일하는 재미로 돈을 벌었지 음식은 오백 원, 천 원짜리만 주로 사 먹었어요. 그래서 주위로부터 그 돈을 다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돈을 안 쓰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삽니다. 그래서 제가 젊을 때 친구는 늘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연애도 하고,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화투도 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재미를 위해서인데, 너는 돈을 많이 버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걸 일절 안 하니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

그런 재미가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 생각을 하니까 제가 자기 몰래 다른 사람과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까지 했어요. (웃음)

그런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안 피우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담배를 안 피우고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면 스트레스가 어떻게 풀리느냐고 하지만 담배를 안 피우고도 스트레스를 풀 수가 있어요. 술을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술을 안 마시고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고 하지만 술을 안 마시고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커피 마시는 사람은 커피 안 마시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고, 차 마시는 사람은 고급 차 마시는 재미로 사는데 그런 재미없이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커피 안 마시고도 재밌게 살 수가 있고, 차를 안 마시고도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가 있습니다. 스님들한테 차를 마시는 문화가 많은데, 저는 다기 같은 것도 없고 차를 마시는 일상도 없어요. 커피도 거의 안 먹는데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사람들은 결혼하는 재미, 아이 키우는 재미를 말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일흔인데도 질문자보다 더 웃으면서 살잖아요. 제 생각에는 나이가 30대이면 젊은 것만 해도 엄청난 재산이에요. 질문자는 조금 알려진 70대의 법륜스님이랑 30대인 질문자랑 바꾸자고 하면 바꿀 거예요?”

“아니요.”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30대인 질문자가 바꾸자고 하면 얼마든지 바꿔줄게요. 아직 나이가 젊은 것만 해도 가진 게 많은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가 찾는 재미는 혀끝에 스치는 재미, 손끝에 스치는 재미입니다. 그런 재미를 ‘쾌락’이라고 하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을 좇고 있는 거예요.

제가 시골에 내려와서 지내니까 가끔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보는데, 15년 전만 해도 다들 만나면 술 먹고 노래방 가고 담배 피우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70대가 되니까 만나도 술을 조금만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도 한두 명 밖에 없어요. 왜 그렇게 바뀌었냐고 물어보니까 이제는 체력이 안 돼서 그렇게는 못 논대요. 다들 건강을 챙기는 거죠. 그러면 인생에 재미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 없이도 얼마든지 삶을 재미있게 살 수가 있어요. 이건 제가 체험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통장에 잔고가 없이 사는 것이 좋은가?’

‘차곡차곡 저축해서 사는 게 좋은가’

둘 중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어느 게 더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차곡차곡 저축해서 살라고 할 것입니다. 윤리적으로는 그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선택에 있어서 ‘네 좋을 대로 살아라’ 하는 입장이에요.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라틴계 사람들이에요. 라틴 아메리카에는 재산이나 집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반면 영국이나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계 사람들을 보면 근면하고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어느 게 꼭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질문자가 볼 때 좋은 걸 선택해서 살면 돼요.”

“제가 소비 습관이 지나쳐서 적절하게 조절하고 싶은데, 조절하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소비가 지나치다 싶으면 안 쓰면 되잖아요. 만약 소주를 한 병 먹는 사람이라면 반 병으로 줄이면 되고, 두 병 먹는 사람이라면 한 병으로 줄이면 되죠. 스스로 많이 먹는 줄 모르거나, 알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고치기가 어렵지만, 스스로 많이 먹는 걸 알면 양을 줄이면 되죠. 만약 알면서도 안 된다면 그건 병이에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아는 데도 못 멈추는 건 방법이 없어요.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스님이 길을 알려줄 수 있는데, 아는데 못하는 건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이 ‘알면서도 못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자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젊을 때 놀아야지 늙으면 못 놀지 않느냐’ 이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생각은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마음에서는 ‘이것도 한 때인데 젊을 때 못 놀면 나중에 후회한다’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잔고가 바닥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도 되어보고, 신용불량자가 될 때까지 한번 놀아보세요. 그것도 한 방법이에요. 신용불량자가 된 다음 서울역 앞에 앉아서 박스 하나 놔두고 앉아서 계속 술 마시면서 사는 것도 한 방법이죠.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이렇게 살다 죽으나 저렇게 살다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직성이 풀릴 때까지 즐겨봐요.” (웃음)

“아, 네.”

“이제 즐겨보기로 결심했어요?”

“아니요, 스님 말씀 들으니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안 하겠다고 하지만 계속하게 되는 건, 담배를 끊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피우는 것과 같은 거예요. 알면서도 안 끊어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 세계에서는 그 순간 ‘담배 안 피우고 오래 살면 뭐하나, 한 대 피우고 일찍 죽는 게 낫지’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담배 피우는 그 순간에는 이런 무의식이 탁 작용하기 때문에 그 순간 절제가 안 됩니다. 지나 놓고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데’, ‘건강에 나쁜데’ 이러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은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고 ‘죽어도 좋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이걸 사로잡힘이라고 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렇게 사로잡히는 순간이 허다합니다. 평소에는 누가 칼을 가져와서 죽인다고 하면 ‘아이고, 살려주세요’ 하는데, 화가 난 순간에는 누가 죽이겠다고 하면 오히려 옷을 벗으면서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옵니다. 사로잡히는 순간에는 미쳐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죠. 그것처럼 무언가 먹고 싶거나, 성추행 하고 싶거나, 욕망에 확 사로잡히면, 그 순간에는 감옥에 가게 된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거예요. 머릿속에서 필름이 끊어지는 거죠.

짐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끼가 겨울에 배가 고프면 덫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도 그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먹이한테 달려듭니다. 낚싯밥을 들이대면 물고기가 팍 무는 것과 같습니다. 그걸 먹으면 죽는데도 그 순간은 다른 아무런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부부지간에도 화가 나면 그 순간 자기 자식을 죽이거나, 자기 남편을 죽이거나, 자기 아내를 칼로 찌르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 순간에는 필름이 끊어지고 오직 거기에만 집중이 되는 거예요. 그게 미친 증상입니다. 지나 놓고 보면 자기가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니까 후회를 하는데, 그 순간에는 절제가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소비에 탁 사로잡히면 통장 잔고고 미래고 아무것도 없어지고 거기에만 탁 사로잡히는 거예요. 그걸 한두 번 경험하고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면 그걸 합리화하면 안 됩니다. 그냥 딱 끊어야 합니다. 저도 젊을 때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사고 살아본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살아봤는데, 실제로 가능해요. 질문자도 그렇게 한번 살아봐요.

‘있는 것만 먹고, 얻어먹고, 어떠한 것도 돈을 주고는 안 산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살아봐요.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됩니다. 밥은 무조건 있는 것만 먹고, 4km 정도의 거리는 차를 타지 말고 무조건 걸어 다니는 거예요. 만약 거리가 멀다면 딱 한 달짜리 교통카드 하나만 쓰고 더 이상은 안 쓰고 사는 거예요. 자동차가 있다고 해도 한 달 동안 놔두고 지내고, 현금은 일절 안 쓰고, 카드도 안 쓰는 겁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생활하고, 없으면 굶는 거예요. 딱 이렇게 원칙을 세워놓고 한 달이나 두 달을 살아보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지금 정토회에서도 이렇게 ‘한 달 동안 소비 안 하기’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해보면 하루 만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이틀 만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한 달을 버티는 사람도 있어요. 스님은 밥을 일절 안 먹고 70일까지도 단식을 해봤어요. 그런데 음식 안 먹기에 비하면 돈 안 쓰기는 쉽잖아요. 자동차 안 타기, 카드 안 쓰기, 이런 게 밥 안 먹는 것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요. 질문자가 만약 소비를 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딱 도전을 해서 자기를 소비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해요.

그리고 심리적으로 자기를 분석해보면 욕구불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세요. 어릴 때 욕구불만이 강하게 있으면 성장해서 소비 통제가 잘 안 되곤 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정신질환입니다. 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그러니 질문자 스스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치료를 해야 해요. 수행은 자가 치료입니다. 자가 치료를 하려면 과소비를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비 자체를 한 달 동안 완전히 멈춰버려야 합니다. 회사를 안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병부터 먼저 고친다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70일 동안 단식도 하는데, 이런 걸 고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굳이 인생을 어렵게 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놀면서 살자’ 이렇게 해도 돼요. 그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하는 것은 병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한 달간 소비를 안 하고 살아본 다음 그 속에서 즐거운 것들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거리가 어떻게 돼요?”

“차로 한 시간입니다.”

“차로 한 시간이면 교통비를 안 쓰고는 살기 어려운데, 직장도 한 달 안 다니고 살아볼 거예요?”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바로 실천하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면 어떡해요. 지금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죠. 질문자는 소비하지 않고 한 달을 살아보겠다고 계획을 세워보세요. 직장 다니는데 교통비는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 보고, 교통카드를 한 달 치만 딱 끊고, 나머지는 걸어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택시도 일절 안 타고 살아보는 겁니다. ‘만약 돈이 떨어지면 직장을 안 나가든지, 걸어가든지, 둘 중 하나다!’ 이렇게 입장을 가져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도저히 지키지 못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위기를 넘겨야 극복이 되지, 그때 이기지 못하고 이유를 대고 각오를 버리면 괜히 고생만 하지 업장소멸은 되지 않아요.

이 병을 고치려면 직장을 한 달 동안 휴가를 내버리면 돼요. 그리고 일절 소비를 안 하는 거예요. 만약 이것도 안 되면, 직장 가까이에 사는 친구 집에 머무르면서 한 달 동안 걸어 다니든지, 안 그러면 지금부터 회사에 다니는 건 교통카드를 사서 딱 그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일절 안 쓰는 거예요. 물도 안 사 마시고 수돗물만 마시고, 커피도 안 사 먹고, 딱 이렇게 원칙을 세우고 한번 살아봐야 해요.

스님도 밖에서 활동하다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3개월 동안 부목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머슴살이를 하면서 일절 아무것도 안 썼는데, 실제로 가능했습니다. 질문자도 딱 목표를 정했으면 에누리 없이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도중에 ‘이건 도저히 안 됩니다’ 이러면 안 돼요. 차비가 없으면 그날 회사를 안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안 쓴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고, 월급이 줄어들고 회사에서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다 감수해야 위기를 넘길 수 있어요. 단식을 하다 보면 막 죽을 것 같아요. 그때 ‘죽어도 좋다’ 이런 마음을 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흐지부지하면 나중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도전하는 것마다 안 돼서 자학 증상이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자학 증상이 생기면 자꾸 ‘나는 문제야’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질문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스스로를 문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마이너스 통장이 나오도록 써버린 다음에 정신을 차리든지 안 그러면 지금 여기서 멈추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지 질문자한테 문제는 없어요. 대신 도전을 할 거면 원칙을 딱 세워서 제대로 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도전을 하면 자꾸 실패하니까 자학 증세가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긴 그대로 완전해요.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자꾸 욕심을 내서 무언가 하려고 하다가 그게 잘 안 되니까 자꾸 자기가 부족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겁니다.

‘지금 이대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결혼 12년 차인 지금 부모, 부부, 자식관의 관계가 너무 힘듭니다. 남편은 대화가 안 되어 집을 나갔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 이혼한 지 2년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면접할 수 있는 교섭권을 받았지만, 아내가 면접 교섭을 이행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기다리는 게 아이를 위해 최선일까요?
  • 다혈질 남편이 화가 나면 언어폭력과 폭행을 합니다. 아들은 채팅을 통하여 여자들을 만나면서 항상 돈을 뜯깁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스님은 곧바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텃밭에 남겨 두었던 배추를 뽑아 절였습니다. 얼마 전 공동체 행자들과 함께 담근 김치가 너무 매워서 스님은 덜 매운 고춧가루로 김치를 다시 담기로 했습니다. 먼저 배추를 수확했습니다.


작은 텃밭 두 곳에서 배추가 46포기나 나왔습니다. 알이 덜 찬 배추는 겨우 내내 반찬으로 먹기 위해 몇 포기 남겨두었습니다.


배추를 다 뽑고 손질을 시작했습니다. 행자님이 배추 겉잎을 다듬어 주면 스님이 배추를 반으로 가르고 꼭지 부분에 칼집을 내주었습니다. 반을 갈라보니 배추 속이 꽉 차 있었습니다.




손질한 배추는 곧바로 소금물에 담근 후 소금을 뿌려 큰 통에 차곡차곡 절였습니다.


멀쩡한 겉잎은 김치를 덮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골라 모아두었습니다.


배추 손질한 자리를 모두 정리하고 다시 텃밭으로 갔습니다. 텅 빈 밭에 거름과 유박, 재를 골고루 뿌리고 뒤엎어주었습니다.




오줌으로 만든 액비도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발효가 잘 되었는지 냄새가 하나도 안 나네요!”

뒤쪽 텃밭도 거름을 주고 땅을 뒤엎으려는데 고수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고수를 수확했습니다. 다 수확하고 나니 고수가 한 대야 가득했습니다. 고수를 다 뽑고 땅을 뒤엎고 고르게 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고수를 다듬었습니다.



고수를 다 다듬고 앉은자리에서 김치 양념에 들어갈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더 할까요?”

“이제 배추가 절여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밭에는 할 일 없어요?”

“밑밭에 알타리무를 수확해야 합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다 뽑아야겠네요. 밭으로 갑시다.”

바로 밑밭으로 가서 알타리무부터 수확을 했습니다.


“아이고, 알타리무가 손가락 만하네요.”(웃음)

밭 뒤로 갈수록 점점 큰 무가 나왔습니다.

남은 무도 다 뽑았습니다.




무를 다 뽑고 나니 날이 어둑해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배추를 수확하고 도문 큰스님이 계신 중생사에 배추를 전달한 후 오후에는 김장을 이어서 하고, 주말 명상수련 회향식 생방송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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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2-12-23 13:56:26

보각

고맙습니다 스님 지금 이대로 괜찮다. 라는 관점을 가져보고 해볼거는 확실히 해보고, 내려놓을건 내려놓고 해봐야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2-20 09:55:48

서건성

사람은 그자체가 완전하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2022-12-16 07: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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