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0.8 천일결사 기도, 경전대학 즉문즉설, 행복학교 특강
"조현병을 갖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게 너무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종송 소리가 울려 퍼진 후 예불,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하고,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오전 8시부터는 결사행자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온라인불사위원회 사업 계획 및 전법 플랫폼 개발 계획, 2차 만일결사 사업방향에 대한 전수 의견수렴 결과, 아래로부터의 홍보 목표 설정 방식 조정안, 2차 만일결사 국제지부 조직개편 방안, 정토행자 대상의 종류와 추천 절차, 2-1차 천일결사 운영 방안 등 여러 가지 안건들을 점검하고 검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경전대학 즉문즉설

9시 58분에 결사행자 회의가 끝나자마자 10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가을에 입학한 경전대학 학생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그동안 배운 내용을 점검해 보는 즉문즉설을 갖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대승불교의 흥기와 금강경 4강까지 수업을 마친 상황입니다.

학생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과 유튜브에 접속하자 몇몇 학생들의 반별 활동 참여 소감을 들어본 후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 시간이 왜 필요한지 강조했습니다.

“강의만 듣는 것보다는 강의를 듣고 직접 실천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은 실천을 해보고 나서도 아직 의문이 드는 내용이 있거나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자기화하는 데는 이렇게 직접 실천한 다음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고 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만큼 오늘 즉문즉설 시간을 경전대학 강의와 동떨어진 부분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직접 경험을 해본 다음에 설명을 들으면 더 깊어지는 맛이 있고, 여러분의 질문을 소재로 법문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기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어서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얻은 깨달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는 방식이 어떠한지 질문했습니다.

깨달음이란 한순간에 얻는 것인가요, 하나씩 끊임없이 얻는 것인가요?

“법문 중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무엇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부처님도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고, 많은 부처님의 제자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출가의 길을 걸었다고 나오는데,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순간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씩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인가요?”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입니다. 작은 이치를 알았을 때도 ‘깨달았다’고 표현하고, 존재의 본질을 확연히 꿰뚫었을 때도 ‘깨달았다’고 표현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뜻합니다. 즉, 연기법에 대한 확연한 이해를 말해요.

우리에게는 존재가 개별적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만물은 개별적인 존재가 모여 있는 집합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를 구분하는 거예요. 만물의 실제 모습은 다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좁은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손가락을 개별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하나만 볼 게 아니라 손바닥 전체를 보게 되면, 얼핏 다섯 개의 개별적인 존재처럼 보였던 손가락들이 결국 한 손에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때 존재의 본질은 주먹처럼 된 하나의 존재도 아니고, 손가락처럼 별개의 다섯 개도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나뭇잎을 관찰하면 나뭇잎 하나하나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처럼 보입니다. 떨어질 때도 개별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나뭇잎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존재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가지를 꺾어보면 그 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은 한꺼번에 죽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손에 손가락이 있듯이, 나뭇잎들도 가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떨어질 때는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는 나뭇잎들이 사실은 가지나 줄기를 통해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이것이 실제 모습입니다.

연기법은 존재가 하나의 덩어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걸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적으로 있습니다. 연관되어 있는 본질을 공(空)이라 하고, 개별적으로 드러난 건 색(色)이라 하여,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표현하죠.

이러한 이치를 확연히 알게 되면 나와 너, 나와 세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한 덩어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별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연결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불교대학 수업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우선 물질적인 단계에서 고체와 액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체와 액체 단계에서의 연관성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기체 단계가 되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망각하기 쉬운데, 공기를 없애버리면 생명체들은 죽게 됩니다. 나무도 뿌리와 줄기를 그대로 둬도 공기가 없으면 전부 죽게 됩니다. 이건 기체의 연결선을 끊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체의 연결선도 결국은 물질적 단계의 연결입니다.

물질 다음은 파동입니다. 파동에도 장파, 단파, 초단파 등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파동은 햇빛입니다. 햇빛이 없으면 나무가 죽게 되죠. 나무와 태양은 햇빛이라는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체, 액체, 기체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도, 그 연결 고리를 끊으면 생명이 죽게 됩니다. 무선 전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결해주는 파동을 끊으면 무선 전화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연결되었다고 하면 주로 눈에 보이는 고체로 연결된 것으로 이해하는데 깊이 들여다보면 다양한 연결 매체가 있고, 천하 만물은 다양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합니다.

작은 미물도 얼핏 보기에는 내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건 나무에 큰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면 나무에 영향을 주듯이, 작은 미물 하나가 죽는 것이 당장 나에게 큰 영향이 없더라도 그 수가 많아지면 내 삶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발가락 하나 다친다고 내가 당장 죽는 건 아니지만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나타나는 기후위기입니다. 우리가 파괴한 환경이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그런 기후위기로 인해 전염병이 확산되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등의 생태계 변화가 생겨납니다. 이런 생태계 변화는 결국 인간 생존에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길게 바라보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결국 내 발가락을 내 손으로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연기법을 깨우치게 되면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이익을 보려는 행위가 결국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나 남을 괴롭히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게 됩니다. 즉, 존재의 이치를 깨달으면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가치관이 자연스레 따라 나오게 됩니다. 반면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 해야지’ 하고 그저 사명으로 임하게 되면 실제로는 잘 안 됩니다.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걸 한다고 무슨 변화가 생길까’ 하는 회의감이 들거나, ‘작은 미물 하나 죽인다고 무슨 큰 피해가 있겠어’ 이런 생각이 무의식 중에 생깁니다. 이런 생각은 확연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들입니다.

비록 확연히 깨닫지 못했더라도 성인의 지혜를 빌려서 적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 계율입니다. 나아가 인식의 오류를 깨우쳐서 사물을 바르게 바라보면 계율을 지킬 것도 없어집니다. 저절로 계율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에 독이 든 줄 모르는 상태에서는 먹지 말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먹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음식 안에 독이 든 줄 알면, 먹고 싶은 욕망이 딱 멈춰집니다. 그런 것처럼 실재를 알게 되면 욕구나 고뇌가 사라집니다. 실재를 꿰뚫어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쥐가 고구마를 보고 먹을 생각만 하지 그 안에 쥐약이 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물고기가 낚싯밥을 보고 먹을 생각만 하지 그 안에 낚싯바늘이 든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그때 ‘저거 쥐약이네’, ‘저거 낚싯바늘이네’ 이렇게 알아버리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질문자가 인물도 좋고, 키도 크고, 돈도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사실 쥐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쥐약이든 낚싯밥이든 겉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겉모습부터 별로면 쥐약이 되지 않아요.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그 순간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잘난 사람이 나만 바라보고 살겠어요? 또, 그런 사람은 결혼했다고 해도 다른 여자가 쳐다봅니다. 그래서 좋은 인물, 커다란 키, 돈 많은 것에는 반드시 그만한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괴로움이 따를 때 그걸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내 욕망에 눈이 어두워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해서 생긴 괴로움입니다.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사실은 앞으로 그런 일이 펼쳐질 게 이미 다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순간 목에 가시가 걸릴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그로 인한 과보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부처님께서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면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앞으로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빚어질 지도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현재를 통해 과거를 아는 것을 숙명통(宿命通)이라고 하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아는 것을 천안통(天眼通)이라고 합니다. 연기법으로 생각하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어른이 볼 때는 ‘곧 불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알지만 막상 불장난을 하는 아이들은 그걸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깨달음에는 작은 하나의 이치를 깨닫는 것도 있고, 존재의 본질을 크게 깨닫는 것도 있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작은 깨달음으로 다듬어 가는 경우도 있고, 작은 깨달음을 쌓아서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을 직접 질문하고 스님께 답변을 들으니 보다 명확하게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모두 대답을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다음 한 달 동안에도 수업을 잘 들은 후 다시 즉문즉설 시간을 갖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시간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1박 2일 동안 스님과 함께 농사 체험도 하고,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대화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팽나무 아래에서 스님은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을 맞이했습니다.

“원래 여러분과 함께 농사일을 하려고 오후 내내 시간을 비워 두었는데 자꾸 일정들이 비집고 들어와요. ‘농사가 중요하냐, 수련이 중요하냐?’ 하고 요청하니까 주말에는 수련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두 시간 동안 온라인 법회를 하고 나서 4시부터 농사일에 결합할게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먼저 농사일을 하고 있겠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 방송실로 향하고,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은 농사일을 하러 계곡에 있는 밭으로 향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

오후 2시부터는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2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명의 질문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그중 한 명은 조현병 어머니를 돌보자니 힘이 들고, 강제로 입원시키자니 죄책감이 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조현병을 갖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게 너무 힘듭니다

“조현병을 갖고 있는 어머니를 계속 돌보기에는 힘이 들고, 강제로 입원시키기에는 죄책감이 듭니다. 약을 잘 드실 때는 어머니의 상태가 좋은데, 약을 안 드실 때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전화하시고 집착, 잔소리, 피해망상의 말들을 많이 하십니다. 한 번은 동네 사람을 때려서 경찰이 온 적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는데, 행복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조현병이 심해지면 다시 원망하게 되고, 상태가 좋아지면 어머니의 질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던 제 자신을 질책하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까지 입원하면 이제 세상에 저 혼자 남겨진다는 생각에 외로운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질문자는 지금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 살이에요.”

“서른 살이면 이미 어른인데, 서른 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고아라고 할까요, 고아라는 말을 안 붙일까요?”

“고아라고 안 합니다.”

“이미 어른이 된 다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건 고아가 아니에요. 그런데 왜 외로워요? 정 외로우면 결혼을 하면 됩니다. 지금 외롭다고 말하는 건 결국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그건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고아라고 하지만, 성년이 된 다음에는 고아라는 말을 안 씁니다. 성년이 됐다는 건 이제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비 새끼를 한번 보세요. 어릴 때는 어미가 먹이를 먹여주지만 날개에 힘이 생기고 난 다음에는 독립을 하지, 그 후에 부모가 새끼를 따라다니거나 새끼가 부모를 따라다니는 경우는 없습니다. 미물인 제비나 참새도 독립해서 살아가는데, 그보다 훨씬 고등하다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서 살지 못하면 어떡해요? 이건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어머니도 질문자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지만, 돌볼 형편이 안 되면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맞습니다. 그걸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니까 힘에 부치고, 힘에 부치니까 원망했다가 자책했다가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조현병 발작을 하면 바로 입원을 시키고, 상태가 괜찮으면 퇴원해서 같이 살고 그러면 돼요. 아예 요양원에 계속 모셔도 괜찮아요. 환자를 보살피는 것이 질문자의 책임은 아니에요.

옛날에는 집안에 아들이 몇 명씩 되고, 사회보장제도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 모시는 걸 자식의 책임으로 생각했지만, 앞으로는 자식이 부모를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 가정에 아이 한 명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결혼해서 부모를 책임진다면 결국 한 부부가 양쪽 부모 네 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사회보장제도로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자녀가 부모를 책임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예전에 말하던 효(孝) 사상은 사회보장제도가 없던 시대의 윤리이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시대에 그걸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거나 죄의식을 갖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질문자가 능히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면 모르지만, 지금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현병이 있는 어머니를 모신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면 결혼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남자가 질문자랑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결국 결혼도 못하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감당을 못하고 돼요.

그러니 아예 요양원에 모시든지, 아니면 증상이 나타날 때 바로 입원시키는 게 좋습니다. 몇 번 겪어보면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일 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알잖아요? 증상을 보일 때 바로 입원을 시키고, 진정된 다음 집에 모셔오고, 우선은 이렇게 해보세요. 그러다가 그게 너무 잦아져서 모시기가 힘들어지면 병원에 장기간 모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게 자꾸 죄의식이 들고 힘들어서 비록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어머니를 직접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를 모시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어머니를 모시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위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 내가 고아가 되고 외로운데 그것보다는 어머니를 모시는 게 낫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모시는 게 아니라 내가 외로워서 모신다’

이렇게 관점을 잡아야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병원에 모실 때도 내가 모셔야 되는데 병원에 모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성인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효(孝)를 하겠다는 건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형편이 될 때 돕는 건 좋지만 무리하는 건 좋은 게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부모는 다 그래요. 그리고 힘들게 키운 것도 맞아요. 그런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보상심리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꾸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참다가 ‘누가 낳으라고 했나?’ 하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결국 부모가 자식한테 자꾸 보상심리의 말을 하면 결국 자식한테 ‘자기가 좋아서 낳아 놓고 왜 나한테 원망이야’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질문자는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어머니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하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런 후 ‘그래도 제가 지금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못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가볍게 넘어가는 게 좋아요.”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조현병 어머니를 모시는 것 때문에 힘들다는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께서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제가 다 하려고 해서 힘이 드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한편으로는 모든 걸 다 책임지려고 하면서도 또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가 관점을 바르게 가질 수 있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모순된 마음을 안고 있어요.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어하면서, 또 ‘어머니가 안 계시면 나는 어떻게 하지’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요. 어머니가 안 계셔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어른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머니께도 ‘제가 돌봐드리면 좋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내 역량을 알고 내 역량에 맞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옛말도 있잖아요.

제 나이가 일흔인데, 텔레비전에서 누가 100미터를 10초 만에 달리는 걸 봤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욕심입니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것처럼 조현병이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건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현병은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걸 막기 위해서는 격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발병을 하면 바로 격리시켜야 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이니까 견딘다고 하지만, 길 가다가 갑자기 때린다거나 몽둥이를 휘두를 때 피해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무섭겠어요.

요즘 사회적으로 무차별 폭행이나 무차별 살인이 많은데, 그중 조현병 환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발병할 때는 세상을 위해서 재빨리 격리시켜줘야 합니다. 그때는 ‘어머니인데 어떻게 강제로 입원을 시키나’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선 질문자는 어른이 되어야 해요. 부모님이 없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어른입니다. 그리고 자기 역량에서 할 수 없는 걸 책임지려는 걸 멈추어야 합니다. 그건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고, 결국 자기 인생을 망치는 길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정된 시간은 4시까지였지만, 3시가 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방송실을 나와 작업복을 갈아입고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는 가메달 밭으로 향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님!”

“울력을 같이 하려고 강의를 일찍 끝내고 왔어요.”(웃음)

통일의병들은 땅콩을 수확하고 난 밭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함께 잡초 매트를 걷었습니다. 다음 농사에 쓸 수 있게 차곡차곡 개어놓았습니다.



밭에 땅이 거의 다 드러날 무렵, 참가 의병의 절반은 비료 포대를 가져와 밭 전체에 뿌려주었습니다.


스님과 몇몇 의병은 밭 끝 쪽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정리했습니다.



“아이쿠!”

얼마나 뿌리가 깊고 억센지 뿌리를 캐다 그만 호미가 부러져버렸습니다. 스님은 긴 괭이를 가져와 계속 풀을 뽑았습니다.



밭 전체에 비료를 고루고루 뿌려주고 나서 한쪽 끝에서부터 관리기로 넓은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기계가 두둑을 만들고 지나가면 여러 명이 레기로 두둑을 조금 더 넓혔습니다.


스님은 관리기가 오기 전에 고랑 사이에 뿌리내린 풀들을 긁어냈습니다.

3분의 1 정도 두둑을 만들었을 무렵 관리기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두둑은 내일 기름을 가져와 만들기로 하고 이미 만든 두둑에 비닐을 씌워주었습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JTS에서 논의할 사항이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5시 30분이 되어 스님은 먼저 두북 수련원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 연락이 와서 먼저 내려가 볼게요.”

JTS에서는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활동가를 파견했습니다. 스님은 현장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고 어떻게 지원을 하면 좋을지 논의했습니다.

의병들은 더 일을 한 후 뒷정리를 하고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곧이어 저녁 7시부터는 통일의병들과 간담회 및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 간담회

통일의병들은 그동안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솔직한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스님에게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질문도 했습니다. 스님은 의병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강조하며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통일의병 활동을 하면서 평화와 통일이 나의 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원을 세울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원을 세울 수 있을까요?

“엊그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어쩌면 스님의 원이지, 제 자신의 원(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좋아서 통일의병 활동을 계속해왔고, 책임감 때문에 자리를 계속 지키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고, 활동하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원(願)을 세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의병이란 예부터 농사꾼들이 모여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잖아요. 의병들을 모집해서 다양한 교육을 시키고 하지만 막상 의병활동이 잘 안 이뤄집니다. 의병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실제 외세의 침입이 일어나야 해요. (모두 웃음)

외세가 침입하면 교육도 필요 없어요. 상황이 벌어지면 의병들은 손에 잡히는 죽창을 들고 싸우기 시작합니다. 지금 통일의병 활동이 다소 침체가 된 것은 아직 긴급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 데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의병활동이 잘 안 되더라도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의병활동이 잘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의병의 생명은 결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빛을 보게 됩니다. 원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의병은 딱히 빛을 볼 일이 없어요. 만약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거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지금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도 다 평화를 위해 나서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시민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이런 긴장감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무엇을 해도 긴박함을 조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통일의병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비상소집을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통일의병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뭘 해도 해보는 연습을 계속해야 돼요. 같이 모여서 쓰레기를 줍더라도 소집 시간에는 다 같이 모여야 합니다.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의병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은 평화문제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도 상당히 큰 위기입니다. 통일의병의 활동에 기후위기까지 포함하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올해 연말이 넘어가면 의병 활동의 필요성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상치 않아요. 현재 상태에서 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우인데, 만약 러시아가 불리해지면 상황은 더 위험해집니다. 러시아가 불리해지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것에 의한 긴장감도 더 고조될 거예요.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북한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긴장이 고조되면 러시아와 중국이 확실하게 북한 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 체제가 유지될 때는 러시아와 중국이 각자 노선을 가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립되는데, 지금과 같이 긴장이 고조되면 북한에서는 자기편이 생기기 때문에 러시아를 돕고 다른 지원을 받는 궁리도 하게 될 거예요. 가령 군대를 파견하는 대신 핵잠수함 기술을 얻는다든지 할 겁니다.

포용과 타협의 차이

내년이 되면 의병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으니 그동안 회원들을 잘 챙겨주시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잘 추슬러서 내부 화합을 잘 유지하면 좋겠어요. 북한도 포용해서 평화를 이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통일의병인데, 내부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건 모순이겠죠. 물론 살다 보면 아내나 남편도 포용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긴 해요. (웃음)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나쁘게 바라볼 게 아니라 그들도 포용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단, 포용과 타협은 다릅니다. 타협은 원칙을 버리고 적당하게 무마하는 것이고, 포용은 원칙을 지키되 과감하게 껴안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잘 유지해서 활동을 이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은 스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다짐을 하였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농사일을 도우러 오기로 하고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통일의병들은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갔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한 후 통일특별위원회 의병대회를 하고, 오후에는 전국 법사 수련에 법문을 하고,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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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는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그런거구나.. 가야할 길을 계속해서 모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0-25 16:50:02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10-22 08:18:13

김경

스님의 법문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해법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대한 여러 방법 과 자식 된
도리와 의무 에 있어서도 죄의식없이 모실수 있음을 깨우처 주셔서 감사합니다ㆍ
또한 스님의 해박한 지식을 보고 읽을수 있음에
감사드림니다 ㆍ
무엇보다 스님의 밝은 용안과 활짝웃는 모습을
뵈면 절로 미소 짖게되고 행복해짐니다ㆍ
감사합니다ㆍ

2022-10-18 20: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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