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7 공동체 하안거 회향식, 일요명상
“미래 30년, 공동체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10일 동안의 공동체 하안거 수련을 회향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선유동 정토연수원에서 공동체 대중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공동체 대중은 문경 수련원에서 6박 7일 동안 여름 명상 수련을 한 후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이동하여 3박 4일 동안 정일사 수련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정진을 하며 느꼈던 자신의 수행 과제, 정토회의 사업 방향, 사회 문제 등에 대해 하루 종일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유동 정토연수원 대강당에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곧바로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정일사 수련은 함께 업무와 생활을 하고 있는 도반들과의 갈등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도반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해명을 듣기도 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청정과 화합을 이뤄나가는 것이 정일사 수련입니다.

스님은 정일사 수련을 마친 대중들에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대중들 사이에 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어떤 관점을 갖고 갈등을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을 제외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생활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하고, 원도 같이 세우고 살아가기란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은 생활을 같이하지만 일을 같이 하지는 않고, 원을 같이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직장 동료는 일을 같이 하지만 생활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원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에요. 정토행자들은 원을 같이 하지만 생활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일을 같이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특정한 한 부분에서만 어떤 공통점을 갖고 인간관계를 맺어 나갑니다. 아주 세속적으로 절친한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친구와의 관계는 생활을 같이하는 것도 아니고, 원을 같이 세우는 것도 아니고,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정을 같이 합니다. 어릴 때의 좋은 관계를 기반으로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부지간이나 애인 간에 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정과 정서를 같이 나누는 것이지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원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계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같이 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같이 하는 게 많으니까 사실은 돈독하고 굉장히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같이 하는 게 많을수록 항상 전제가 되는 부분 역시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가장 소중하지만, 항상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을 때는 공기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처럼 공동체 대중 여러분들도 같이 공유하는 게 많다 보니까 상대의 좋은 점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상대의 장점을 당연하게 여기고 항상 자기에게 안 맞거나 거슬리거나 부족한 것만 자꾸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수행을 하기 위해 공동체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가족보다 부딪치는 게 더 많을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공유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조직이 조화를 이뤄나가는 방법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여러분 개개인들이 시비 분별을 넘어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직은 여러분 개개인들이 가진 요구와 특성을 최대한 수용해 내는 게 필요해요. 여러분 개개인은 더욱 정진해서 시비 분별을 극복해 가는 쪽으로 가야 하고, 조직은 여러분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종적으로는 과거로부터 유지되어온 원칙을 계승하되 횡적으로 널리 확산이 되려면 포용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붓다가 말한 ‘중도’입니다. 중도는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어떤 결정을 한다고 명쾌한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마다 유연하게 운영을 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큰 방향은 조직의 경우 개인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야 하고, 개인은 개인의 요구를 극복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개인은 자기가 필요한 걸 하기 위해 고집하고, 조직은 전체를 위해서 개인의 요구를 무시하는 쪽으로 가면, 계속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여러분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세상 자체가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누구든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손을 든 순서대로 한 명씩 질문하고, 스님은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개인의 수행 문제, 인도JTS 사업방향, 유통 사업의 전망, 공동체의 비전, 인도성지순례 준비, 외국인 전법, 2차 만일결사 방향, 현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정치 갈등, 제2공동체의 전망, 새로운 홍보 방법 등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오전 7시에 시작한 대화는 중간에 휴식 시간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래 30년에 해당하는 2차 만일결사를 내다볼 때 공동체의 비전과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에 공동체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일까요?”

“공동체에서 산다면 사회적인 긴급 사안이 없으면 농사짓고 살고, 긴급한 일이 생기면 일상을 다 버리고 긴급사안에 대처해야 하겠죠. 예를 들어 북한 난민이 생기면 각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람만 빼고 다 난민을 도우러 갈 겁니다. 그런데 어떤 조건을 내걸고 공동체에 살겠다는 관점이라면 굳이 출가해서 살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에서 살면 되죠. 출가란 모든 욕망을 다 버린 길이기 때문에 인생에 엄청난 가변성을 둘 수 있는 거예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일이 필요하다면 여기로 가고, 저 일이 필요하다면 저기로 가고, 할 일이 없다면 노는 거예요. 이렇게 가변성이 있어야 활동 역량이 높아지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위상과 역할은 큰 틀에서만 잡을 수 있습니다. 첫째, 수련 진행입니다. 앞으로 깨달음의장, 나눔의장과 같은 수련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커질 겁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겠죠. 대중부에서 젊은 법사들을 진행자로 훈련시킨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진행자를 배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5일을 꼬박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처음 가르치는 사람의 원칙이 분명해야 하니까요. 그래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근본을 딱 안내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장 덕분에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왔는데 알고 보니 진행자가 나보다 더 호의호식하고 산다면 신뢰가 가겠어요? 스승이라고 존경했던 사람이 사찰에 돈을 빼돌리고 결혼해서 부유하게 살림을 살면 제자라는 사람의 심리가 어떻겠어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겁니다. 회원이 100만 명이 되면 깨달음의장 수요가 얼마나 많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이 다 깨달음의장 진행자가 돼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공동체 성원 중에 건강만 괜찮다면 진행자로 훈련을 시키자는 의견도 있는데 얼마 있다가 나가버릴 사람을 진행자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수련을 진행할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수행을 지도하는 사람이 삶의 태도가 분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죠. 그걸 왜 이해 못 하겠어요. 그러나 머리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이 고깃집에서 막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 질 하잖아요. 보통 사람에게는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되지만, 스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러니 그 이름에 걸맞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둘째, 미래 사회에는 맑은 공기, 물, 먹거리와 같은 안전한 환경과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겁니다.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부에 따라 의식주의 편차가 컸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다 보편화가 되고 있습니다. 명품이냐 아니냐 따지는 사람은 있지만 누구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철갑상어 알이니 제비집 먹겠다는 사람 빼고는 먹는 음식도 다 보편화가 됐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난방이 되고, 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게 평수가 크냐는 차이는 있지만 집도 다 보편화가 됐습니다.

임대주택도 곧 보통 수준의 아파트가 될 거예요. 지금 임대주택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죠. 앞으로는 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기보다 수입의 일부를 지불하면 공공주택을 분양받는 제도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년이 되면 양로원에서 살고요. 최상위 부자나 권력가나 유명한 연예인이 되려는 게 아니라면, 삶의 차이라는 게 갈수록 없어질 겁니다. 그런데 뭐 때문에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살겠어요?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때 사장도 하고 잘 나가다가 부도나고 망해보니 산속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는 거예요. 그분들이 기인이 아니에요. 옛날로 치면 그게 일종의 출가예요. 어쩌면 여러분보다 그 사람들이 욕심이 훨씬 적을지도 모릅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욕심을 놓아버리고 산에 가서 살게 되었으니까요. 요즘 50,60대 남자들의 꿈이 자연인이 되는 거라고 합니다. 이게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예요. 이런 현실에 대해 정신적인 가르침을 줘야 하기도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한 개인이 자연인이 되려면 엄청난 결단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반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다가 노후에는 절에 들어와서 농사나 짓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 수 있는 거죠. 공동체에 젊은 사람이 들어오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 거예요. 인구도 줄고, 젊을수록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강도도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갈수록 수요가 늘어날 거예요. 자연인 수준으로 살겠다는 사람이면 정토회에 사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그런데 아직은 모두 자연인과 같은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조금은 덜 불편하게 개선해줘야 하겠죠. 으뜸절에서는 완전히 출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주말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미래에 새롭게 개척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지금 뭐 내일이라도 전쟁이 난다면 농사고 뭐고 다 놓고 가야 합니다. 큰 방향은 잡혔지만 시시각각 해야 할 일까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운 계획만큼 딱딱되는 건 아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행복학교에 온 힘을 다해도 겨우 만 명을 모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자가 자동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자동으로 확대되려면 첫째, 행복학교의 인지도가 높아야 하고, 둘째, 신뢰를 얻어야 하고 셋째, 신뢰할 만한 진행자를 확보해야 하고 넷째, 학생들이 행복학교를 졸업하고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역마다 행복시민모임이 있어야 합니다. 시민모임에서는 가볍게 봉사하되 사회에 대해서 약간의 비판의식이 있어야 해요.

어떤 시대든 사회에 대안이 없을 때는 항상 신흥종교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세속적 이익을 버렸다는 거예요. 기성 종교에 있는 사람은 세속적 이익을 쥐고 있습니다. 공이니 뭐니 이론만 앞서지 실제로는 이익을 탁 못 놓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흥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약간 종말론적이거나 추종적인 단점이 있지만 세속적 욕망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도덕적이에요. 다만 그 교주가 도덕적이지 않아서 문제죠. 대부분 굉장히 헌신적인 사람들이에요.

세속적 욕망이 있으면 세상의 비난을 못 견딥니다. 만약 어떤 종교를 믿으면 회사에서도 잘리고 정치적 입지도 못해진다면 그 종교를 믿겠어요? 지금 사회는 마치 부처님 당시에 브라만의 권위가 떨어지고 반대로 극단적 고행을 하는 사문들이 세상의 지지를 받았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한쪽은 종교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세속화, 다른 한쪽은 탈세속화의 흐름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변화가 늘 일어나기 때문에 공동체는 큰 방향을 보고 나아가되 시절 인연을 따라서 활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중요한 사회 문제가 생기면 그 일을 해결하는 일을 하다가, 다시 사회가 평온해지면 농사를 짓다가, 사람들의 심리가 불안해지는 쪽으로 가면 개인의 수행 정진을 지도하는 일에 집중을 했다가, 이렇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기 전에 내 취향을 고려하여 거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정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출가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정토회가 이런 조건을 갖추어주면 활동을 하고, 안 그러면 활동을 안 하겠다’ 이렇게 인생을 조건부로 사는 것은 출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물론 조직 차원에서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게 제2공동체입니다. 제2공동체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갖고 많은 토론을 앞으로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나 공동체는 이 안에서 지도 인력이 계속 나와야 하는 과제가 있다 보니까 공동체 생활은 수행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향해

수행 원칙이 지켜지는 바탕 위에 예외가 인정되는 정도는 건강한 인력 양성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데, 수행 원칙조차 허물어져 버리게 되면 확산은 쉬울지 몰라도 다음 세대에 가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공동체는 지도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연구를 지금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를 설립하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고, 아예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를 통해 인력이 양성되도록 하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간 아기들을 수행 공동체가 책임지고 키우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어요. 아예 3살 이전에 자아형성 때부터 인력을 양성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을 책임져야 해요. 가령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간 아기들을 매년 25명씩 받는다면, 20년이 경과했을 때 500명 정도를 보살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의 발전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정토회에도 도움이 되고, 미래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을 우리가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처럼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이런 아이디어들을 계속 우리가 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한 후 더 이상 질문이 없자 오후 4시에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중은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수행, 공동체, 사회문제에 대한 의문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곧바로 일요명상 생방송을 하기 위해 선유동 정토연수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하안거 수련을 마치며 다 같이 큰 원으로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만일결사를 처음 시작하고 30년이 지났는데, 30년 전이 바로 어제 같아요. 서로의 부족한 점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고, 앞으로도 그 힘으로 함께 가겠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잔잔하게 조금씩 변화해가면서 점점 편안해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항상 큰 방향을 잡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함께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방향을 놓치지 말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마음은 닫혀 있는 것 같지만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일사를 통해 도반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크게 생겨서 기뻤어요.”

“2차 만일결사에도 계속 함께 할 것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매겨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모호했던 부분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 명 한 명의 소감 한 마디에 50여 명의 대중이 울고 웃으며 감동의 여운을 이어갔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2022년 하안거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서울공동체, 문경공동체, 두북공동체, 그리고 화상으로 연결하여 참여한 인도공동체와 필리핀공동체, 모두가 다음 안거를 기약하며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이 회향식을 하는 동안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저녁 8시부터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22번째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시간입니다.

스님은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 위기, 미중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언급하며 명상이란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비판도 폭넓게 수용이 되는데, 마음이 흥분되거나 긴장이 될 때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해서 갈등을 유발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셨습니다. 명상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긴장되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편안함, 집중, 그리고 깨어있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어지면 약간 졸리거나 멍청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편안한 가운데 한곳에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선정을 닦으려면 편안한 상태에서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편안해도 정신이 혼미하거나 멍청한 상태는 명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편안한 상태, 집중된 상태, 깨어있는 상태, 이 세 가지를 유지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 콧구멍 끝에 딱 관심을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끝냈습니다. 스님은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하나씩 읽어준 후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농사일을 한 후 오전에는 주간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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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숫대야

함께 공유하는게 많으니 갈등이 많을 수 박에 없고 수련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거 같습니다()()()

2022-08-14 04:51:36

보리수

정토회의 발전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정토회에도 도움이 되고, 미래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을 개발해 나가는 것! 고맙습니다

2022-08-13 16:51:07

신수진

감사합니다

2022-08-11 14: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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