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11. 8일 출가열반 정진 2일째, 금요 즉문즉설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곳곳에서 봄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용맹정진 2일째 날입니다. 오전 10시에 2일째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이 정진을 하는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수행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작용에는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면 사로잡히는 현상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하거나,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못 피우게 하거나, 성적 충동이 일어날 때 해소하지 못하거나, 이처럼 욕망이 해결이 안 되면 욕망에 탁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또 108배든 300배든 500배든 1000배든 절을 하다가 몸이 힘들면 딱 하기 싫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번뇌가 일어나게 됩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버리라고 했는데 이건 고행이지 않나?’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전부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행위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부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거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일어나는 정신 현상

유부남을 좋아하는 어떤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럴 때도 그 여자는 자기가 유부남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합리화를 합니다. ‘아!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행동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나를 좋아하면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사랑하겠느냐’ 이렇게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버립니다.

이렇게 인간은 어떤 일에 사로잡히면 자기가 하는 행위를 전부 합리화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줄인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로남불이라고 아무리 비난을 해도 정작 비난받는 당사자들은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이 나빠서라기보다 우리의 정신작용이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자기 성질대로 하고 싶거나,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할 때는 그 일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정신작용이 확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하기 위해 앉아있어도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관심이 음식으로 가서 호흡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호흡으로 잠깐 돌아왔다가도 금방 관심이 다른 음식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음식 생각에 사로잡히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음식을 적게 먹고 수행한다고 해서 깨달아지나!’ 하면서 자기가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을 정당화시키는 생각이 계속 일어납니다. 마치 한 생각에 골똘히 빠지면 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아요. 어떤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명상을 하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사로잡힌 생각만 골똘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호흡 알아차림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절을 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그만두고 싶은 명분이 계속 머릿속에서 일어납니다. ‘요새 몸 상태가 안 좋았다’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 시간에 불교대학 홍보를 한 명이라도 더 해야지’ 등 온갖 생각이 자꾸 일어납니다. 그래서 108배를 하다가 그만두고 불교대학 홍보를 하기 위해 문자를 보내고 나면 ‘절하는 것은 낭비이고 홍보가 더 중요하다’ 하고 절하기 싫은 마음이 합리화가 됩니다. 절하다가 그만두고 홍보할 때, 정말 홍보가 중요해서 그랬는지, 절하는 게 힘들어서 그랬는지, 명확하게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자기 합리화가 일어나면 합리화를 했는지 안 했는지 분간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 이외에는 모두 번뇌라고 규정합니다. 부처님 생각이 나도 마장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힘들면 자꾸 생각이 그만두는 쪽으로 사로잡히기 때문에 명상을 통해 사로잡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계속해야 해요. 욕망이 일어나면 거기에 사로잡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사로잡히는 데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연습

어제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찍은 사람이 당선한 사람은 ‘대한민국은 잘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본인이 찍은 사람이 낙선한 사람은 ‘대한민국은 이제 큰일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이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없고, ‘안 될 거다’라고 생각한다고 안 된다는 보장이 없어요. 본인 생각에는 이 사람이 더 낫겠다 싶어서 찍었지만,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찍을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필요하면 다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겼다고 너무 우쭐되면 곧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졌다고 절망하면 그 또한 나락으로 떨어져요. 진 사람은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이긴 사람은 절반이 반대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신의 정책이나 공약이 옳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다른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반대한 나머지 절반을 아우를 줄 알아야 성공하는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1년 후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항상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면 다음 선거에서 결과는 금방 뒤집어집니다. 이번에 당선인과 낙선인의 표 차이가 24만 표였어요. 국민 전체 인구에서 24만 표는 적은 숫자입니다. 5천만 국민 중에 일부의 생각만 바뀌면 금방 레임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민심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해요. 절반의 지지를 받고 당선됐지만, 이후에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편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국정을 이끈다면 실패하는 정부가 될 거예요.

지난 1987년 직선제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이 된 분들 모두가 불행한 결말에 이르게 된 이유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승자독식 제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선이 된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출발할 때 ‘나는 잘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제도 개선은 뒷전이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과거를 돌아보면서 ‘승자독식 제도에 문제가 있구나!’ 이렇게 알아야 하는데 항상 그게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 지켜봐야 합니다.

지나간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 있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선된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올바른 길로 간다면 내가 반대했더라도 지지를 해야 합니다. 그 길이 아니다 싶으면 내가 지지했더라도 반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잘못되고 있다면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내려놓은 연습을 지금부터 절을 하면서 해봅니다. 앞으로 8일 동안 꾸준히 정진을 하고 나면 ‘내 방이 법당이다’ 하는 인식이 저절로 생깁니다. 내내 앉아서 회의만 하다 보니까 내 방이 사무실인 줄 알았는데, 내 방이 법당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방송실에 방석을 펴고 대중과 함께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한 배 한 배 고개를 숙이며 내 삶을 돌아보고 혹시 사로잡힌 것이 없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300배를 마치고 나서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한 후 8일 출가열반 용맹정진 2일째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는 3월 말에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 실무준비팀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강의 준비를 위한 업무 갈래를 잡고, 입학식과 1강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에는 오랜만에 작업복을 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지난겨울에 상추 씨앗을 뿌려놓고 비닐을 덮어 놓았는데, 상추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이 비닐을 걷어내자 푸릇푸릇한 상추들이 기지개를 펴듯 싱싱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상추가 자란 것 좀 보세요. 겨울을 이겨내고 참 잘 자랐죠?”

상추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일부를 다른 공간으로 옮겨심기로 했습니다.

먼저 옮겨 심을 밭에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스님이 상추를 뿌리 채 캐서 날라주면 행자님들이 텃밭에 이식을 했습니다.




“구멍이 몇 개 남아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제가 상추를 더 캐서 줄게요.”

스님은 계속 상추를 삽으로 떠서 날랐습니다.

“봄에는 원래 나뭇가지를 꺾어서 꽂아 두기만 해도 다 뿌리를 내고 살아요.”

상추를 하나씩 정성을 기울여 심다 보니 빈 구멍 없이 상추를 다 옮겨 심을 수 있었습니다.


상추의 뿌리도 튼실하게 잘 뻗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뿌리가 약해 보이는 것만 골라서 물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저녁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철심을 박아서 기둥을 세우고 비닐을 다시 덮어 주었습니다.

“3월 말까지는 추위가 또 찾아올 수 있으니까 비닐을 덮어 줍시다.”


상추 밭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얼마 후면 싱싱한 상추가 또 무성하게 자라겠죠. 이 정도 양이면 두북 공동체 성원들 모두가 봄에는 상추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 운동장에서 일하고 있는 정석진 거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거사님은 요즘 매일 같이 수련원에 와서 큰 공사를 도맡아 주고 있습니다. 포클레인 운전도 해주시고, 고장 난 농기계도 고쳐 주십니다.

“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거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 한 후 다시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5천 여 명이 동시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난 3주는 치열한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죠? 이제 다 끝나고 당락이 결정됐으니 새로운 지도자가 미래에 어떤 정치를 펼쳐 나갈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남북 관계와 미중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에게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나라를 안전하게 잘 관리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역시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여서 그런지, 게다가 선거 결과가 초박빙이었기 때문에 선거 이후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분은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손절해도 될까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매우 많아지면서 점점 인간관계를 손절하게 됩니다. 선거와 관련해서 자신의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이들에게 마음의 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의 정신건강을 위해 이들과의 관계를 손절해야 맞는다고 판단되어 손절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가 아니어도 나이 들면서 점점 인간관계가 한정적이 될 텐데 이렇게 마음 편한 대로 손절을 이어가도 될까요? 정치 성향 때문에 사람을 정리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네, 외롭게 살려면 인간관계를 손절해도 됩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정답이 없습니다. 혼자 살아도 좋으니 내 기질에 맞는 사람하고 살겠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에요. 인간관계의 폭이 점점 좁아져서 혼자가 되어도 좋다고 받아들인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좀 더 폭넓게 가지겠다고 한다면 종교가 다른 사람도 만나야 돼요. 나와 종교가 다른 상대가 자꾸 하느님 얘기한다고 기분 나빠서 안 만난다면 기독교인 하고는 손절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대통령 선거 결과에서 보셨듯이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가 각각 절반입니다. 상대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안 만난다면, 지인 두 명 중에 한 명은 관계를 포기해야 되는 거예요. 그만큼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집니다. 경상도 사람이라고 빼버리고, 기독교인이라고 빼버리고, 보수라고 빼버리면, 인간관계가 몇 명 안 남죠.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폭을 조금 넓히고 싶다면, 믿음이나 정치 성향은 각자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그냥 만나야 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살든, 무슨 종교를 믿든, 누구를 지지하든,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되 회사 일도 같이 하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등산도 같이 가는 거예요.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듣기 싫은 얘기를 해서 마음이 불편하면, 굳이 상대에게 말하지 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거나 ‘바빠서 먼저 가야 되겠어’ 하고 대화를 피하면 돼요. 아니면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지?' 하면서 얘기를 좀 들어줘도 되고요.

이번 선거 결과를 한번 보세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이 당 지지자이고, 나머지 절반이 저 당 지지자예요. 5천만 국민 중에 24만 표 차이밖에 안 났다는 건 차이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나와 생각이 다른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다 나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잘났다는 주장밖에 안 돼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웃음)

나하고 생각이 다른 국민의 절반을 미워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북한하고 통일을 하겠어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틈바구니에서 남한과 북한이 협력하고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도 위기를 극복할까 말까 하는데, 남한 안에 절반을 미워하면서 어떻게 북한, 일본과 협력이 가능합니까? 과거를 논하기에 앞서 미래에 협력하는 게 더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미래에 협력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관점이 먼저 잡혀야 그다음에 어떻게 과거 문제를 풀 것인지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상호 경쟁하는 정당 사이에서 서로 용납을 못하겠다고 하면, 질문자는 혼자 사는 수밖에 없죠. 그런 마음으로 결혼해서 남편과 어떻게 같이 살아요?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도 있고, 믿음, 가치관, 행동양식도 서로 다를 수 있어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인간관계를 넓혀 나갈 수 있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제가 요즘 정치에 팍 꽂혔어요. 꽂힌 강도가 너무 세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생각에 팍 꽂힌 질문자가 고집이 센 거예요, 상대가 고집이 센 거예요?”

“저도 고집이 만만치 않습니다.” (웃음)

“질문자는 상대가 고집이 세다고 말하지만, 상대는 질문자에게 '저 사람은 완전히 정치에 꽂혔다' 이렇게 평가합니다. 내가 상대를 보고 '저런 인간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상대도 역시 나를 보고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정에 금이 가고, 직장 생활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꽂히는 건 좋은 게 아닙니다. 내가 어떤 후보를 열심히 지지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건 옳지 않아요.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호 경쟁이에요. 경쟁에서는 누군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요. 질문자는 축구 경기할 때 훌리건 같아요. 훌리건은 축구에 필이 꽂혀서 자기편이 졌다고 다 때려 부수고 난리 치잖아요. 질문자도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한 생각에 꽂혀 있으면 정치에서도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면 암살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물론 요즘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해지긴 했어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외국처럼 상대를 암살하진 않잖아요. 둔기로 때렸다느니 가끔 이런 일이 있긴 있지만, 아직 폭력 사태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총으로 쏘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치솟는 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가 있기 전에 종교 시민사회 원로들이 모여서 대선 후보들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었습니다.

‘누가 당선이 되든 일단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절반의 지지를 받고 이긴 것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를 위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머지 절반의 뜻을 받아서 내각을 구성할 때 상대편에게 절반의 자리를 줘라. 그래서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를 구성해라.’

그랬더니 원로들의 의도를 왜곡해서 ‘정권 교체를 해야 하는데 저들을 봐주라는 얘기냐?’, ‘누군가를 지지하려는 술책이냐?’ 하고 그 취지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러나 이 길이 바른 길이면 우리는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미워하기까지는 하지 마세요. 그러면 정신 건강을 해치게 되고, 가족 간에 친구 간에 분란이 일어나고, 우리 사회에 분열을 조장하게 됩니다.”

질문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우는 것을 보니까 질문자가 지지했던 사람이 떨어졌나 봐요. 그래서 속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웃음)

선거도 일종의 게임입니다. 서로 경쟁할 때는 목청껏 응원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끝이에요. 3개월 후에 지방자치선거도 있고, 2년 후에 총선이 있고, 계속 기회가 있잖아요. 그때 또 열심히 활동하면 되죠.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졌을 때 더 억울할까요? 뺏긴 권력을 되찾으려고 덤빈 사람이 졌을 때 더 억울할까요? 권력을 뺏기고 분해 있던 사람이 다시 권력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기쁨도 있어야 세상이 살 맛 날 거 아닙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한 번 져봐야 정신을 차릴 것 아니에요? (웃음)

투표는 국민의 뜻입니다. 사주팔자로 결정된다면 사주팔자를 보면 되지 뭐 하러 투표를 하겠어요? 선거 결과는 국민의 뜻이 내린 결과입니다. 여당한테는 ‘정신 좀 차려라. 너무 내로남불을 일삼고, 기고만장하니까 꼴 보기 싫다’ 하고 국민이 경고를 준 것이고, 야당한테는 ‘그렇다고 너희도 잘난 게 아니다’ 이렇게 경고를 준 거예요. 국민들이 양쪽에 비슷비슷하게 표를 줘서 이긴 사람도 교만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잘된 결과라고 봐요.

진 게 억울하면 다음에 이길 수 있게 노력을 하면 됩니다. 이겼다고 교만하면 국민이 금방 회초리를 들 겁니다. 민심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해요. 그러니 너무 실망할 것 없습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질문자도 다음을 위해서 응원할 준비를 하세요. 진 후보도 본인은 괜찮다는데 응원자가 왜 그렇게 난리를 피우나요? (웃음)

속상한 건 이해하지만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선거 결과에 의해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갑자기 경제가 좋아지겠어요? 대한민국은 국민이 지키는 겁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망하지 않아요. 조금 더 낫고 조금 더 못한 것을 선택할 뿐이지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닙니다.

좌절에 빠진 질문자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지만 게임이 끝나면 패자는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해주어야 해요.

지금 국민의 절반이 선거 결과에 실망을 해서 가슴이 아픈가 봐요. 또 국민의 절반은 흥이 나 있겠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말라.’

얼마나 정확한 말씀입니까. 이긴 사람들은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해서 표정관리를 좀 해야 해요. 진 사람들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상대를 축하해 주고, 다음을 기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실은 진보 쪽 정당 소속 두 명의 표를 합하면 보수보다 더 많잖아요. 그러니 당선인은 소수의 표로 대통령이 된 겁니다. 그런데도 모든 권력을 혼자서 독점하겠다고 하면 그 권력이 얼마나 갈까요? 일 년도 못 갈 거예요.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다수이기 때문에 그 뜻을 수용해주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너무 아전인수 격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대한민국에는 기독교인도 있고, 불교인도 있고, 전라도인도 있고, 경상도인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북한에 적대적인 사람도 있고, 우호적인 사람도 있고, 일본에 적대적인 사람도 있고, 우호적인 사람도 있고, 친일 후손도 있고, 독립운동가 후손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가 후손만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친일 후손도 살고 있고, 그들도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합니다.

모든 국민의 다양한 뜻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헌법 정신에 의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한테 유리한 것만 붙들고 계속 주장을 한다면 반발이 생겨요. 종교적으로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도 반발이 생기고, 지역적으로 치우쳐도 반발이 생기고, 세대적으로 치우쳐도 반발이 생깁니다. 다양한 국민들의 뜻을 모두 수용하려면 두 개의 정당이 독점하는 구조는 맞지 않습니다. 다당제가 되어서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안정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국민이 대통령을 탄핵한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가능하면 탄핵을 안 하고 해결했으면 대한민국에게 더 좋아요.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감옥 가는 건 불행입니다. 그런 불행이 안 생기도록 사전에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선거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그때 다시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면 됩니다. 현재 규칙이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이 되도록 되어있으니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룰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선거법을 바꿔서 결선투표를 하든지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해요.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복잡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서 아주 지혜롭게 대응해야 해요. 감정을 먼저 내세우면 국론 분열이 일어나고, 국론 분열이 일어나면 나라가 더 어려워집니다. 선거의 승패에 너무 좌우되지 말고, 이제는 당선인을 우리나라의 지도자로 수용하고 더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스님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약손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던 질문자의 얼굴이 한층 차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질문자도 선거 결과에 대해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어떡하죠?

“제가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 너무 속상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십 년 전 같은 경험을 했을 때보다 더 속상합니다. 제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패했다면 상대에게 ‘축하합니다’ 하고 딱 물러나 줘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을 준비해야죠. 다음에 더 잘하려면 당장 오늘부터 준비를 해야지 앉아서 운다고 해결이 됩니까?

본인이 낙선한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신경을 써요? (웃음) 그런 걸 감정이입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지지하면 심리적으로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하는 게 바로 감정이입이에요.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이 돼요. 나는 나의 주체를 딱 챙겨야 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사형제 중 장남인 남편과 재혼을 했습니다. 그동안 둘째 동서가 15년 동안 시댁의 제사를 지내왔지만, 저희가 결혼과 동시에 제사를 모시게 되면서 동서와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어떻게 갈등을 풀어야 할까요?
  • 직장에서 발표를 할 때면 말수가 없고 볼이 빨개집니다. 어떻게 하면 내성적인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 중에서도 선거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도 선거 결과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아이고, 선거 후유증이 후보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 지지자들한테도 이렇게 크네요. 운동경기를 보고 응원했다고 생각하세요. 게임은 이미 끝났고, 필요하다면 다음을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술을 먹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속상해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깨끗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시 일어서서 한발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한 후 오전에는 2차 만일결사준비위원회와 화상회의와 행복학교 특강을 하고, 오후에는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들과 수련을 하고 결사행자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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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자유

편안한 내면의 상태는 심리적인 천국
불편한 내면의 상태는 심리적인 지옥

그의 마음이 벌써 지옥이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은 행복하고 기쁜데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잘못된 행위를 한 자신이 벌써 지옥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지옥을 밖으로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는 처벌을 받기에 앞서 벌써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감사합니다♡

2022-04-13 17:15:57

내면의 면역력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며 감당할 수 있는 근기...꽂히는 말들을 소화 시킬 수 있는 마음의 힘...기운 에너지가 자기 생각으로 사로잡혀 뭉쳐 있으면 갑갑하고 답답해진다...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뭉친 마음들을 풀어주면 다시 편안해진다.

2022-03-24 10:46:34

웃음얼굴하늘

법륜스님 말씀이 참 지혜롭다는 걸 다시 만번 느낍니다.
지나온 날들에서..늘 민초들이 나라(환한나라.한국) 지켜왔습니다
우두머리가 누가 되었든...대한민국은 민초들이 지키는 나라 맞습니다
법륜스님 말씀대로 승자독식구조 정치시스템을 개선해나면 대한민국정치가 발전 할것 같습니다
법륜스님..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ㅎㅎㅎ.(저는 60대 중반 꼰대 한국사람 입니다

2022-03-22 10: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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