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1 금요 즉문즉설
“믿었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 어김없이 교문 너머에서 아침 해가 힘차게 떠올랐습니다.

스님은 오전 7시 30분에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중 제1차 천일결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이하 천준위)와 간담회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천준위에서는 2차 만일결사 출범 절차, 세계 전법을 위한 국제정토회 운영 방안, 전법활동가 확대에 따른 국내 모둠과 지회 개편 방향, 통일특별위원회 운영 방향, 봉사 마일리지 제도 시범 운영 방안, 전법활동가들이 초안을 상정하는 절차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해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고, 스님은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논의를 하면 좋은데, 지금 곧바로 법회를 시작해야 해요. 다음에 또 회의를 합시다.”

시간이 부족해서 논의를 다 끝내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곧바로 오전 10시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오전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유튜브 공개 방송 형식으로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저녁 시간에 열리는 생방송은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시청하기가 어렵다는 요청이 많아서 오전 생방송이 한 달에 한 번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31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어제가 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이었습니다. 스님은 날씨와 마음공부 이야기를 하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옛말에 ‘소한과 대한을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은 앞으로도 추위는 계속 있겠지만 가장 큰 추위인 대한(大寒)이 지나갔기 때문에 더 큰 추위는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상기후로 인해 설날이 지나고 나서도 연중 가장 추운 날이 가끔 생기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강추위가 어느 정도 지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땅 밑에서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입춘을 기준으로 해서 음력 초하루를 설날로 잡고 있는데요. 이제 설날도 다가오고 있으니 곧 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땅이 꽁꽁 언 겨울이긴 하지만 땅 밑에서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어요.

그것처럼 여러분도 오늘부터 마음을 내어 마음공부를 시작한다고 해도 금방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땅 밑에서는 봄이 시작되었듯이, 마음을 낸 바로 오늘부터 마음 밑에서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가 바깥으로까지 드러나려면 100일은 지나야 해요. 처음에는 마음 한 번 내기가 어렵지만, 마음을 낸 이후에는 지속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최소한 100일은 정진을 해야 자신이 누군지, 얼마나 고집이 센지, 욕심이 많은지 알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최소한 1,000일은 정진을 해야 화를 좀 덜 낸다든지, 괴로움이 적다든지, 이런 자기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나아가 10,000일은 정진을 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정토회는 30년 전에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상도 좀 더 아름답게 바꾸자는 마음으로 만일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9,700일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300일만 지나면 만일이 다가오게 되는데요. 이렇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면 꾸준히 해야 됩니다. 작심삼일로는 마음의 안정과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심이 많고 성질이 급해서 뭐든지 금방 해치우려고 해요. 변화를 위해서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꾸준히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호응도 잘하며 지내는데 시간이 지속될수록 관계가 오래가질 못합니다. 관계를 오래가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현재는 경계성 성격장애로 진단받고 상담 중이며, 알바도 한번 하지 않고 집에 있습니다. 어떡하죠?
  •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여 학과에서 평판이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 제 처지는 여자 친구도 없고 학생회장과 같은 어떤 타이틀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해졌어요. 어떡하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대학생활이 무기력해졌다는 세 번째 질문자에게 어떤 마음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좋을지 이야기해주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걱정할 것은 없어요. 젊은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도전해 보고, 뜻대로 안 되면 한 단계 밑에서 다시 도전해 보면 돼요.

젊은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가장 좋은 직업은 이런 직업입니다. 첫째, 일은 제일 힘들게 많이 해야 하고, 둘째, 월급은 제일 적은 직업이에요. 이런 직업을 처음 가지면 평생 동안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직장은 아무도 안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당장 구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직장은 내가 사장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사장이 내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비록 노동자이지만 큰소리치면서 살 수 있어요. 그리고 가장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저는 노동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농사일과 허드렛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제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땅을 딛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슨 일이 생겨도 내 밥은 내가 해결해서 먹을 수 있는 바탕을 갖고 살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되어야 인기가 떨어지든, 몸을 다치든, 갑자기 병이 나든,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이 살 수 있습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내가 가는 이 길에 흔들림은 없어야 해요.

공중에 붕 떠서 살면 인생이 불안해집니다. 토끼나 다람쥐도 불안하게 살지 않는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젊은이가 벌써 불안해하면서 삽니까. 인생을 좀 편안하게 가볍게 살면 좋겠어요.”

12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에 오래된 지인이 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5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저녁 생방송에도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와 대화를 마친 후 오늘도 초대 손님을 한 분 모셨습니다. 연기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박진희 님입니다. 시청자들 모두가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몇 년 전 인도성지순례를 함께 갔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그때 인도 다녀와서 결혼을 하셨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박진희 씨는 옛날부터 환경 실천도 많이 하고, 환경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는데, 기후위기의 시대라는 요즘에는 어떤 환경 실천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어요. 저는 본업이 배우이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연기 활동을 해왔는데, 요즘은 환경이 계속 나빠지면서 제가 강연을 하는 자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배우인 저를 환경운동가라고 소개해 주시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진짜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신데, 그에 비해 저는 하는 일이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캐’라고 해서 자기의 원래 캐릭터 말고 또 다른 캐릭터를 하나 더 갖는 게 유행이에요. 그래서 저도 환경운동가라는 부캐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요즘에는 그 정체성을 아예 인정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 잘하셨어요.” (웃음)

박진희 님은 초대손님이었지만 오히려 스님에게 평소 궁금한 점이 있었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요즘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를 겪으면서 사람과 자연이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의 욕심은 멈출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그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종종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때를 지나야 할까요?”

답변을 하고 나니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나갔습니다. 스님이 농담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초대 손님인데 오늘 아예 특별 질문자로 선정이 되신 것 같아요. (웃음) 앞으로도 환경 홍보대사 역할을 잘해 주시고, 또 좋은 연기를 하셔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즉문즉설을 이어갔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믿었던 남편이 상간녀와 다른 살림을 차렸다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했습니다.

믿었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어요

“저와 남편은 결혼 22년 차 맞벌이 부부입니다. 저는 54세, 남편은 5살 연하이고 21세 된 딸이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적인 사람이었고 늘 저에게 맞춰주어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이 여러 사업을 실패하기도 했지만 제가 열심히 내조하여 지금은 금전적으로 안정됐습니다. 과거의 남편은 늘 자격지심이 많았고 제가 딸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하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년 전부터 남편이 회사의 또래 여직원과 새벽까지, 어떤 때는 밤새도록 같이 일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습니다. 저에게 부쩍 소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던 작년 4월 그 여직원의 질투 섞인 카톡을 보고 남편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살 정도 어린 거래처 이혼녀였습니다. 신랑을 다그치니, 1년 정도 되었고 이혼할 생각이 없으며 정리하겠다고 해서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너무 믿었던 남편이었기에 살이 5킬로나 빠지며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처음 3~4개월 동안은 신랑과 냉랭했으나 이후 정리했다 하여 사이가 조금은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 눈을 속여 가며 다시 만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남편이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2~3시간만 자고 나가길래 열심히 일하는 건 줄 알았는데, 회사 근처에 상간녀의 집을 두고 계속 드나들었던 것이었습니다,

회사와 집이 멀다는 핑계로 집에 소홀하길래, 다음 달에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또 자기를 다그친다고 하면서 자신은 늘 가족을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열심히 일하는데 몰라준다고 화만 냅니다. 제가 어찌하면 예전처럼 다시 되돌아갈 수가 있을까요?”

“왜 옛날처럼 돌아가야 해요?”

“옛날이 좋았어요.”

“‘옛날처럼 돌아가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래요?”

“내가 어린 시절이 좋았다고 해서 어릴 때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내가 젊을 때 돈 좀 버는 사장이었는데 부도가 나서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늘 ‘옛날이 좋았다. 사장이었던 시절로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려워요. 내가 어릴 때 좋았던 건 어릴 때 일이고, 중고등학교 때 좋았던 건 중고등학교 일이고, 대학 때 좋았던 건 대학 때 일이에요. 옛날에 연인하고 좋았다면 그것도 한때 일이고, 결혼해서 초기에 좋았다면 그것도 한때의 일입니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러한 관점에 서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옛날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돌아갈 수가 없어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고, 늙어가는 얼굴을 자꾸 성형해 봐도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잠시 눈속임은 될지 몰라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사는 게 힘들 수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도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가 중요합니다. ‘옛날에 어땠다’ 이런 얘기는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자연도 변하고, 사회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해요. 남편은 과거에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에요. 너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할 당시에는 정말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마음이 또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을 따지지 말고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를 생각하세요.

‘남편은 당연히 내 사람이다’라고 바라보면 남편과 싸움밖에 안 일어나요. 달라진 조건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 좋겠느냐가 관건이에요. ‘바람을 피우긴 하지만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겠느냐? 바람피우는 건 싫으니까 헤어지자고 하는 게 낫겠느냐?’ 이렇게 질문자가 자기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혼이 별로 큰일은 아니에요. 내가 직업이 있고, 바람피우는 남자와 살기 싫으면 이혼 사유가 되니까 이혼을 하면 됩니다. 아이도 스물한 살이면 성인이 되었으니까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이만한 남자를 어디 가서 구하겠느냐’ 이런 생각도 한 번 해보세요. 이 질문에 대해 질문자가 ‘이제 남자는 필요 없다’라는 입장이라면 이혼을 해도 괜찮아요. ‘남자가 필요하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또 새로운 남자를 구해야 하잖아요. 어차피 새로운 남자를 구한다 해도 그 남자 역시 어떤 여자와 살았던 남자거나 지금도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남자일 확률이 높단 말이에요. 그러면 딴 여성하고 오래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는 남자를 내가 잠시 만나는 게 좋은지, 나하고 오래 살았는데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이 남자를 내가 어느 정도 정비해서 계속 같이 사는 게 좋은지, 이걸 결정해야죠. 이렇게 지금 본인 인생을 정리하는 거예요. 이걸 두고 다른 사람을 욕할 필요는 없어요.

옛날에는 가정 보호라는 명목으로 불륜을 간통죄로 형사 처벌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부터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해서 간통죄가 폐지되었어요. 만약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면 혼인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민사소송의 대상은 되지만, 형사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부부가 합의를 하면 돼요. ‘네가 딴 여자가 좋다니 우리 헤어지자’ 이렇게 둘이 합의해서 이혼을 하면 됩니다.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거냐를 두고 합의가 안 되면 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찾으면 됩니다. 상대가 이혼을 안 하겠다고 할 때는 불륜이 법적으로 이혼 사유가 됩니다. 상대가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질문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질문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사유가 있는 거예요.

또 남편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고려해 봐야 해요. 남편 입장에서는 질문자가 남편보다 애한테만 관심을 갖는다고 불평했다고 질문자가 본인 입으로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남편은 자기한테 더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다른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 질문자가 지금이라도 이 남자가 원하는 관심을 줄 수 있는지, 또 지금 주겠다고 해도 이미 늦었는지를 냉정하게 살펴야 합니다.

정리하면 첫째,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는 게 좋겠는지 본인이 원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남편하고 합의를 봐야 해요. 같이 살기로 했다면 어느 선까지 합의할 수 있을지, 헤어진다면 어떤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조율해야죠. 이렇게 결정을 해나가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별로 큰일이 아니에요. 헤어져봤자 본전이에요. 원래 혼자였으니까요. 그러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본전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아놓고, 그 본전에서 얼마나 더 이익을 추구할 거냐를 가지고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세요. ‘용서해 준다’ 이런 말을 하면 해결이 안 됩니다.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자가 먼저 자기 입장을 딱 정리한 상태여야 합니다. ‘나는 양다리 걸치는 건 죽어도 안 된다. 그러면 이혼이다’ 이런 입장인지, ‘기본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을 지키면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라는 입장인지를 살펴보세요. 본인이 마음속에 삶의 원칙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선순위에 따라 1, 2, 3으로 번호를 매겨놓고 순번대로 타협을 해보세요. 나한테 가장 유리한 걸 먼저 제기해보고, 안 되면 두 번째, 안 되면 세 번째, 이렇게 해서 합의를 해나가는 거예요.

합의한 내용이 다 지켜질 것이라고 믿으면 나중에 또 화날 일이 생깁니다. 합의를 할 때 합의서에 서로 사인해서 약속을 하되, 그다음에 ‘합의가 안 지켜질 때도 어느 선까지는 내가 양보를 하겠다’ 이렇게 자기 삶의 가치를 정해놓고 살아야 해요. 존엄한 존재인 내가 굳이 한 남자의 행동에 목을 매고 아우성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 남자도 자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욕심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요. 결혼할 때도 서로 합의했듯이, 이혼을 할 때도 둘이서 합의를 해야 돼요. 가서 여자 머리채를 휘어잡고 남자를 쥐어박는다고 해결이 안 돼요.

그리고 어쩌면 질문자가 이혼 카드를 내보이는 게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어요. 남편은 자기 입으로는 말 안 하지만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면 속으로는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러니 이혼 카드를 먼저 꺼내면 안 돼요.(웃음) 이혼은 최후에 꺼내야 할 카드지, 괜히 감정을 앞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하고 20년 살았고 자식도 같이 키운 사람인데 복수심이나 분노로 대응하기보다 다시 한번 차분하게 접근해 보세요. ‘내 남편이었다!’ 이런 전제로 접근하지 말고, 처음 만나는 남자라는 관점을 가지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모색해 보세요.”

“사실은 더 이상 그 여자를 만나지 않기로 합의하고 녹음까지 다 했거든요. 저도 굉장히 노력했고, 서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정말 끝났냐고 물어볼 때는 끝났다고 대답하면서 뒤에서 계속 만났던 거예요. 그래도 저는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어디까지 남편을 참아주고 기다려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냥 남편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알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또 강하게 얘기를 한 번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얘기하는 것을 엄청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해요. 그래서 제가 얘기 좀 하자고 할 때마다 거부 반응이 굉장하거든요. 그냥 알아서 하도록 자기를 내버려 뒀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이렇게 기다려주면 남편이 돌아올까요?”

“질문자는 몇 세기 여성이에요?”

“네?”

“몇 세기 여성이냐고요. 19세기 여성이에요? (웃음) 남편이 돌아오기는 뭘 돌아와요? 19세기 여성이나 그런 얘기를 하지, 21세기 여성이 무슨 소리예요?”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웃음)

“남편에게 목을 매고 살고 있네요. 질문자는 자기 인생의 중심이 전혀 잡혀있지 않습니다. 과거와 달라진 지금의 조건을 인정하고 이 조건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할 건지를 정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내가 남편을 용서해 주거나 봐주는 게 아니에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인물이 괜찮든 돈이 많든 성격이 좋든 뭔가 좋은 점이 있으니까 질문자가 남편을 못 놓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지혜롭게 대응해야 해요.

‘아무리 돈이 많고 인물이 잘나도 나를 두고 양다리 걸치는 남자와는 못 살겠다’라고 생각하면 이혼을 하는 게 낫습니다. ‘바람피운 건 싫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이만한 남자 찾기도 쉽지가 않다’라고 생각하면 이혼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어요. 요즘은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도 많은데 지금 이 사람은 내가 잘 아는 남자잖아요. 흠결이 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남자니까 이 정도 흠결은 감안하는 거예요. 같이 살겠다고 결정했으면 겉으로 남편에게 말은 딱딱 잘라서 하고 감시도 하고 주의도 주지만 속으로는 그 정도는 봐주는 입장을 취하는 거예요. 애들한테 담배를 완전히 못 피우게 하면 숨어서 피우잖아요. 그러다가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려서 불낼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감시를 하되 한두 대 몰래 피우는 정도는 봐주는 것과 같아요. 봐준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엄격하게 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어느 정도 수용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어느 쪽을 택할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합니다. 무슨 신파극을 찍는 것도 아니고, 질문자 본인이 주인인데 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요? 돌아오기는 뭘 돌아와요?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살 거냐’ 예요. ‘내가 참고 살면 돌아오겠지’ 이건 진짜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제 중심을 잡겠습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게 별 게 아니에요. 남편에게 약속을 계속 받아두는 겁니다. 약속도 하고, 녹음도 하고, 서약서도 만들어 놓으세요. 다시 약속을 하게 될 때도 똑같이 하고요. 이렇게 해 두면 나중에 마지막 카드로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질문자가 유리해집니다. 또 딸과의 관계에도 유리해져요. 가령 딸한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가정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도 너의 아빠가 이랬기 때문에 이제는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구나.’

이렇게 해둬야 하는 이유는 남편이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중을 생각해서 차곡차곡 나한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거예요. 이렇게 해둔 후 남편과 계속 살 경우에는 찢어버리면 되고, 나중에 도저히 안 돼서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을 경우에는 증거로 쓰면 돼요. 그러나 ‘약속을 했기 때문에 상대가 지킬 것이다’ 이렇게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아예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도 안 돼요. 약속이라도 해놓아야 상대가 약속을 안 지킬 때 내가 협박이라도 할 수 있는 유리함이 생겨요. 또한 약속이라도 해 놓아야 아무래도 상대가 조금 더 조심을 하게 됩니다.

남한 정부가 북한 정부와 협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을 하면 북한이 100퍼센트 지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안 지킬 약속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습니다. 일단 약속을 해놓고, 그 카드를 갖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서 압박하는 게 그나마 상황을 덜 악화시켜요. 그런데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 100퍼센트 지켜야 한다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지키면 좋지만, 안 지킬 경우에도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아예 지금의 관계를 깨는 게 낫겠는가? 그래도 약속을 해놓고 압박 카드로 쓰는 게 유리하겠는가?’

그래야 내가 내 중심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제가 약속을 하고 자꾸 압박하면 오히려 더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모르는 체하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맞아요. 질문자의 걱정대로 될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남편을 잘 살펴가면서 대응을 해야죠.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이미 남편한테 ‘을’이 되어 있습니다. 바람은 남자가 피웠는데 정작 질문자가 거기에 전전긍긍하고 있거든요. 남편이 인물이 잘났든 돈이 많든 해서 질문자가 그걸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을’은 ‘을’로서 만족해야 해요. ‘을’이 ‘갑’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을’이 됐기 때문에 일단 불리해요. 그래서 ‘을’로서 본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관점을 취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현재는 ‘갑’이 될 수가 없어요. 질문자는 이미 남편에게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갑’이 되고 싶으면 좀 포기를 해야 돼요. 재산을 포기하든 뭘 포기하든 딱 포기를 해야 합니다. 기분이 나빠서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포기를 하는 게 필요해요.

질문자에게 남자가 꼭 필요하다면, 이혼을 하게 되었을 때 어차피 또 다른 남자를 찾아서 사귀는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지금 내 남자를 조금 관리하며 사는 것과 남자를 찾아 새로 같이 사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혼자 살든, 같이 살든, 이런 것을 따져서 본인이 인생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얘기까지 스님이 해줘야 해요? (웃음)

질문자가 좀 영리하게 굴면 좋겠어요. 자기 이익을 챙길 줄 알아야 해요. 남의 이익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권리를 내가 챙길 줄 아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나쁜 거죠.”

“제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요.”

“기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관점을 잘 잡는 게 중요해요. 질문자는 ‘우리 남편이 그 여자를 빨리 버리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려고요?”

“그런 기도는 아니고, 다 제가 지은 과보라고 받아들이는 기도를...”

“질문자가 뭘 잘못했는데 과보를 받아요? 남편이 한눈을 판 것인데 질문자가 뭘 잘못했다고 과보를 받는다고 말하는 거예요? 굳이 질문자의 과보라고 한다면 자기보다 조금 더 조건이 좋은 남자를 욕심내서 잡은 게 과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을’이 된 것이 과보라고 하면 과보입니다. 그런 ‘을’의 입장을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그게 곧 과보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두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온 한부모 가정의 가장입니다. 아이들도 다 직장 찾아 독립시켰는데 몸이 아픈데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을 조금만 줄여도 왠지 불안해요. 어찌해야 쉴 수 있을까요?
  • 제가 하는 창작 활동이 결국 자기만족의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소비적인 창작활동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스님은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바람피운 남편에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한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제가 바보 같았음을 알겠습니다. ‘을’로서 최대한의 권리를 갖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라고 하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초대 손님은 박진희 님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많은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떨렸는데, 막상 참여해서 스님 말씀을 함께 듣고 공감하면서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특히 기후 위기에 대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되, 그 마지막에서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그런 사실조차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주신 말씀이 가슴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조건에 처했든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조건에 처했든 그것은 주어진 조건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아이가 아프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회사가 부도난 것은 내 삶의 조건이에요.

‘그렇다면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하겠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나의 문제이지,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이런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혼한 여성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혼한 남성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혼자 사는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노인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몸을 다친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삶의 주인입니다. 주인의 자리를 쉽사리 남에게 내주지 말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 경전대학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하고, 오후에 행복학교 특강과 정토불교대학 교과개편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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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

스님 감사합니다
불교대학ㆍ경전반 졸업하고 스님 말씀 듣고 산지
올해가 9년째 됩니다
아직도 한없이 어리석게 살고 있습니다
소가 풀을 뜯 듯ㆍ낙숫물이 바위를 뚫 듯ㆍ
그래도 스님 옷자락 붙잡고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2022-02-07 11:27:09

정토

저희 중생들의 사사로운 사연까지 귀기울여 주시고 세심히 상담해주시면서 알아듣게 설명해주시니 그 은혜가 정말 깊습니다. 산속에서 수행만 하고 계셨으면 제가 어찌 불법을 알았을까요.. 정말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스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마셔요.

2022-02-06 13:58:22

이동렬

법륜스님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2-03 10: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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