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20 정토대전 회의, 수행법회
“아이가 밤에 일찍 잠들지 않을 때 짜증 나고 화납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발우공양을 마치고 오늘은 산 아랫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에 가기 전에 물을 풀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액비를 퍼야 하니까 막대가 긴 바가지를 하나 만듭시다.”


스님은 나무 막대기 하나를 낫으로 자른 후 금방 막대기에 바가지를 달았습니다. 산 아랫밭에 도착하자 곧이어 농사팀 행자님들도 비료를 트럭에 싣고 왔습니다.

그저께 고구마를 수확한 자리에 겨울 채소를 심기로 했는데, 그전에 오늘은 밭에다가 유기농 천연비료인 액비를 뿌리기로 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유기농을 하기 위해 밭에 고무통을 가져다 놓고 그 속에 다양한 유기 자원을 미생물에 의해 발효시켜 물에 적정농도로 희석했습니다. 뚜껑을 열자 액비에서 악취가 진동을 했습니다.

“아이고, 냄새야.”

혹시 물이 튀어서 옷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비옷을 하나씩 덧입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만든 긴 막대기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액비를 퍼서 물뿌리개에 담았습니다.

“이게 옛날에는 똥 푸는 똥바가지였어요.”

스님은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바가지로 액비를 펐습니다. 스님이 액비를 퍼서 물뿌리개에 담는 동안 행자님들은 먼저 유기농 비료 다섯 포대를 밭에 뿌렸습니다.

한쪽 구석에 모아둔 잡초 매트는 반듯하게 펼쳐서 햇볕에 마를 수 있게 했습니다.

스님은 계속 바가지로 액비를 퍼주고, 행자님들은 액비가 가득 담긴 물뿌리개를 양손에 들고 차례대로 밭에 골고루 뿌렸습니다. 액비의 양이 많아서 한참 동안 밭을 오가며 계속 뿌렸습니다.




드디어 고무통에 바닥이 보이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사용한 물뿌리개와 대야를 물로 깨끗이 씻읍시다.”

곳곳에 널브러진 호스와 작업도구들을 정리 정돈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문경에서 새벽에 도착한 법사님들도 울력을 마치고 정토대전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교사상팀에서 ‘팔정도’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법사님들은 각자 사전적 해석, 경전 인용구, 철학적 의미, 스님의 하루에서 발췌한 법문을 준비해와서 발표하고 이에 대해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사회사상팀에서 화합과 정의에 대해 부처님이 말씀한 내용과 스님이 법문 한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맛지마니까야에 나온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

아니룻다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냅니다.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여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 단지나 배설물 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우면, 손짓으로 두 번 불러 손을 맞잡고 치웁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우며 법담을 나눕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 맛지마니까야 ‘오염에 대한 경(M128)’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자유롭게 질문했습니다. 법사님은 역할분담을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는 부처님 당시의 문화가 인상 깊었다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경전을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낸다’는 대목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자들의 문화가 먼저 온 사람이 준비를 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뒷정리를 하는 방식으로 서로 눈빛만으로 통했다는 내용인데요. 우리는 요즘 역할 분담을 해서 딱딱 소임을 하니까 자기가 맡은 일은 차질 없이 하지만, 먼저 왔다고 먼저 준비하지는 않거든요.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나’ 하고 그냥 두는 게 지금 우리들의 문화인 것 같아요.”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 수행자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야기하며 오늘날 우리가 배웠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원래 공동체 생활을 하면 역할 분담을 딱 하기보다 경전에 적힌 내용대로 지내는 게 맞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한다는 건 이런 뜻이에요. 예를 들어 수행자라면 어디 도착했을 때 먼저 온 사람이 청소를 해놓거나 방석을 깔아놓는다든지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대신에 늦게 온 사람은 끝나고 뒷정리를 해야 하는 거죠. 수행자들의 모임에서는 누군가가 말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물 흐르듯이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먼저 온 사람이 앞 준비를 하고, 늦게 온 사람이 뒷정리를 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공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오는 사람이 준비도 해야 하고 뒷정리도 해야 하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어떨까요? 뒤에 온 사람들이 행사 끝나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히 모든 사람이 늦게 오게 됩니다. 그러면 준비가 안 되니까 역할분담을 미리 정해서 ‘너는 준비해라’, ‘너는 뒷정리해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경전에서 언급한 모습은 따로 역할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온 사람은 준비를 하고, 늦게 온 사람은 뒷정리를 하는 것이 눈빛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준비를 해줬으니까 뒷정리하는 건 자기가 맡아서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굳이 서로 이래라저래라 말을 하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신발 벗는 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 들어가는 사람은 신발을 앞에서부터 딱 붙여서 벗어놓고, 들어가서도 앞자리부터 앉아야 해요. 나올 때는 뒷자리부터 나오면서 신발을 찾아 신을 수 있도록 하고요. 신발 배치도 이렇게 해야 신발이 겹치거나 신발 주인을 찾기 어려워지는 일이 없어요. 사찰에서는 굳이 ‘앞자리로 당겨서 앉으세요’ 이런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 먼저 온 사람이 늘 입구에 턱 앉아 있어요. 자기 나갈 때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하니까 늘 마이크 잡고 ‘앞으로 당겨서 앉아주세요’ 하고 안내를 해야 합니다. 또 뒷자리에 있는 문 쪽은 항상 자리를 비워놓아야 혹시 늦게 오는 사람이 있더라도 조용히 앉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지켜지죠. 다 자기 생각만 하니까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것이 ‘수행 문화’입니다.”

“수행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스님께서 늘 얘기하셨는데, 경전의 이 대목을 보면서 ‘아, 이런 게 바로 수행 문화구나’ 싶었어요.”

“백일출가를 하거나 공동체에 입재를 하면, 제일 먼저 이런 수행 문화를 먼저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내내 다른 걸 공부시키니까 이런 문화가 정착이 안 되는 거예요. 첫째, 백일출가를 하거나 공동체에 입재한 사람에게는 이런 자세가 딱 몸에 배도록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 먼저 입재해서 살고 있는 선배들이 그렇게 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몸에 뱁니다. 초심자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도 선배들이 그런 모습을 안 보인다면 그냥 배움에 그칠 뿐 몸에 배지는 않아요.”

“경전을 보니까 이어지는 이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한다’ 이런 구절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식을 말하는 겁니다. 음식을 버리더라도 다른 나무나 풀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퇴비장에 갖다 버려서 퇴비를 하든지, 안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데에 버려야 합니다. 풀 위에 갖다 버리면 풀이 썩어서 죽게 되잖아요. 댓돌 위에 헌식기를 붓는 것은 새가 먹기 좋게 준다는 취지입니다. 풀숲에 가려지면 밥풀이 어디 있는지 새가 알기 어렵잖아요. 물을 버리는 것도 정해진 방식이 있어요. 뜨거운 물이면 작은 생명체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까, 물을 버릴 때는 자갈을 깐 위에 버려야 합니다. 모래나 자갈에는 먹을 게 없어서 벌레가 살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뜨거운 물은 반드시 자갈 위에 붓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법사님들의 질문과 스님의 대답이 오고 가는 사이 한 법사님은 옛날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난존자의 얘기가 나온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해당되는 최고의 장로들이 제일 앞에 오고 제일 뒤에 오는 역할을 주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승단이 이동을 하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장로들이 늘 앞과 뒤를 지켰다는 거죠. 늑대들이 이동할 때 앞에도 리더가 있고, 맨 뒤에도 리더가 있어서 무리를 지키는 것과 똑같아요. 가장 힘센 늑대가 전체를 위해서 항상 살피듯이, 승가도 제일 오래된 장로들이 항상 모범이 되었다는 겁니다. 청소를 해도 장로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 청소를 했고, 또한 자신이 청소를 했다는 티도 내지 않았다고 해요. 뒷정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고 하고요. 그런 것이 대중들 사이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니까 저절로 수행 문화가 잡히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공동체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알게 되어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과 질의응답을 계속하다가 오후 3시가 되어 정토대전 회의를 마쳤습니다. 법사님들은 긴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해 준 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이어 오후 4시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했습니다. 법회 운영 방안, 10차 천일결사 목표 수정, 법사 교육 수련 프로그램, 문경 수련원 cctv 설치 건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구하고, 의결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저녁반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 보시, 봉사, 이 세 가지를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늘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수행’,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약간이라도 나눠줘서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는 ‘보시’, 내가 가진 재능을 필요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는 ‘봉사’, 이 세 가지를 주요한 실천 덕목으로 하는 실천 활동가들을 ‘수행자’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들을 ‘보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정토회 회원

한편으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삽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상구보리(上求菩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수행을 통해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합니다. 하화중생을 하기 위해서 보시하고 봉사하는 거예요. 정토회는 이런 모토를 갖고 모임을 운영해나가고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이 된 여러분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정토회도 문화적으로는 불교라는 종교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또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불교 교리를 배운다는 것은 철학적인 요소를 배운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러나 정토회 회원이 된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내가 체험하고 경험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입니다. 초조, 불안, 근심, 걱정, 두려움, 슬픔, 괴로움, 화, 짜증, 미움, 원망 등 부정적 심리는 적어지고 긍정적 심리가 많아져서 삶이 가벼워지고, 어떤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임이 정토회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수행법회 시간인 지금,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를 말할 때는 앞에 ‘수행공동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습니다. ‘수행공동체 정토회’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정토회 회원이라면 마땅히 수행을 해야 하고, 보시를 해야 하고,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주말에 각 으뜸절과 실천 장소마다 봉사를 하러 와 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의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본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이가 잠자기 전에 양치를 하지 않았거나 잠을 늦게 자면 화내고 짜증을 내게 된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일찍 잠들지 않으면 짜증을 내게 됩니다

“저는 밤에 잠을 잘 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잠이 들려고 하는데 11살 아이가 양치를 하고 있지 않으면, 양치를 빨리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재촉하게 되고, 아이가 양치를 하고 눕기까지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요. 처음에는 ‘짜증이 올라오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지만 나중에는 놓치고 화를 낼 때도 많습니다. 그래 놓고 또 아침이 되면 미안해지고요. 제가 잠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아이와 같은 방에서 자요, 다른 방에서 자요?”

“현재 저희 집 형편상 방이 하나여서 한 방에서 같이 자요. 내년에는 어떻게든 아이의 방을 분리하든지, 아이가 자든 말든 제가 잠이 오면 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질문자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네,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이하고 대화를 같이 좀 해보면 어떨까요? 10시면 10시, 11시면 11시, 이렇게 자야 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아이와 의논을 해 보세요.

‘엄마는 아침에 직장을 나가야 하니까 이 시각에는 자야 해. 그 이후에는 네가 이렇게 움직이면 엄마가 잠을 잘 못 자서 직장 생활이 어려워진단다. 우리는 한 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니까,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도록 이렇게 서로 협력해보자.’

이렇게 자꾸 의논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렇게 하지 마!’ 하고 윽박지르지 말고, ‘엄마가 너무 힘드니까 엄마를 위해서 네가 조금 양보해줄 수 있겠니?’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로 접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 고쳐지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래도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면 안 돼요. 아직 11살이면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되는 나이여서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어요. 곧 사춘기가 될 텐데, 이런 식으로 지내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엄마 말을 더 안 듣고 반항하고, 나중에는 더욱더 골치 아파집니다.

그러니 엄마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쪽으로 대화를 해보세요. 엄마의 어려움을 자꾸 알려주는 겁니다. 엄마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아이는 알 수가 없잖아요. 엄마가 야단만 치고 짜증만 내지, 정작 엄마가 왜 저러는지는 얘기하지 않으니까 사정을 잘 모르는 아이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마가 미워지기도 할 겁니다.

아이에게 내 사정을 얘기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도와주지 않아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아이가 말로는 그러겠다고 해놓고 금방 안 해버릴 수도 있어요. 아이는 잘 모르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약속해놓고 왜 안 하느냐’ 이렇게 다그치지 말고, 열 번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상 아이는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해요.

‘나빠서 저러는 게 아니라 몰라서 저러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열 번이라도 가르쳐주고, 열 번째 안 하면 열한 번째 가르쳐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도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 말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표현을 해보세요.

‘네 사정은 엄마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엄마가 지금 너무 피곤해. 우리가 형편이 어려워서 아직은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니. 엄마는 내일 일찍 출근해서 직장에서 일해야 하니까 지금 잠을 자야 해. 사정이 이러니 네가 엄마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꾸 요청하는 쪽으로 한번 접근해보세요. 화내고 짜증내면 나중에 아이가 상처를 입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아이가 하는 대로 마냥 내버려 두면 버릇이 나빠지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야단을 치면 상처를 입어요. 그래서 개선은 하되 개선하는 방법을 지혜롭게 하는 게 좋아요.

아이에게 어떻게 대할지 잘 선택해야 합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부인들 이야기를 보면 아이가 잘못했을 때 매를 때리기도 했지만, 아이를 때리지 않고 다른 방법을 쓰기도 했어요. 아무리 얘기해도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아이한테 매를 꺾어오라 한 뒤 엄마가 종아리를 걷고 아이에게 엄마를 때리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잘못 키운 엄마가 맞아야 한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엄마 매를 때리면서 울고, 울다 보면 아이가 개선됩니다. 이런 방법도 있어요. 질문자가 아이에게 매를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질문자처럼 어떤 것을 강제해서 변화시키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만 있다는 뜻이에요. 아이가 어떤 자각을 하거나 감동을 해야 변화가 옵니다. 그러니 지금 저한테 호소하듯이, 엄마의 그런 어려움을 아이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해 보세요. ‘엄마가 이렇게 잠을 못 자면 내일 이러저러하게 힘들어지니까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이렇게 한번 얘기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스님께서 저를 잘 타이르듯이 말씀해주셔서, 제가 아이한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방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듯이 아이에게도 제 어려움을 얘기하고 지혜롭게 잘 지내보겠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10월 12일 자 신문에 북한의 김정은이 북한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남북 관계의 전망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240만 원 때문에 2년을 고민하고 질문을 드립니다. 산재사고 노무사를 선임하였는데, 제가 판단하기에 지나치게 높은 수임료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찾아온 손님들과 만나 낙동강 상류 지역 협곡 사이에 난 길을 산책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0/200

ㅎㅎ

수행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2021-11-02 20:13:42

김은주

화내고 짜증내지 말고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두지 않고 꾸준히 이야기하는 자세.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11-02 10:09:24

김민주

저도 같은 고민이 있었는데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10-27 05: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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