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7.19 제10-6차 영어 입재식, 전법활동가 법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작업복을 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여름 안거를 시작하기 전 해둬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갑니다. 그중 하나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풀을 베는 일입니다.

어제 거사님들이 오셔서 비닐하우스 주변을 예초했는데 비닐 가까이는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풀을 베지 못했습니다. 낫으로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 난 풀을 뽑다가 아직 예초기를 돌리지 않은 곳이 있어서 예초기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논 사이 둑에 난 풀을 벴습니다. 면적이 넓어서 먼저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 난 풀을 베며 비닐하우스 끝까지 갔습니다.


비닐하우스 뒤에도 풀이 무성했습니다.


비닐하우스 뒤에 난 풀을 베고 둑 바깥쪽에 난 풀을 베며 다시 비닐하우스 앞까지 나왔습니다.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할 때 넣은 새 부탄가스가 떨어졌습니다.

다시 새 것으로 교체하고 계속 예초기를 돌렸습니다. 이번에는 둑 가운데 파놓은 물길에 난 풀을 베며 비닐하우스 뒤까지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오며 꼼꼼히 마무리를 했습니다.

“스님, 7시 20분이 지났습니다.”

“마침 줄도 떨어졌네요.”

오늘도 작업복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7시 30분부터는 영어권 수행자들을 위한 10-6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한국에서 8천여 명이 백일기도에 입재했다면, 오늘은 전 세계에서 20명의 영어권 수행자들이 입재했습니다. 벌써 세 번째 진행되는 영어 입재식입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법문을 하고, 전 세계에 거주하는 입재자들은 각자 자신의 방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영국, 아일랜드, 인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의 입재자들은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다 함께 삼귀의를 읽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영어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I take refuge in the Buddha. I pay homage and reverence to the Buddha.

I am delighted to learn the Dharma.I vow to practice diligently with the knowledge that everything is the result of my own deeds.

I am proud to be a disciple of the Buddha. I vow to become a bodhisattva, liberating all sentient beings from suffering.”

이어서 수행문을 함께 읽고 지난 백일 동안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라파엘 님과 케빈 님이 지난 100일 동안의 수행담을 발표했습니다.

도반들의 수행담을 듣고 나니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다음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지구촌 곳곳에서 입장한 영어권 수행자들에게 변화하는 길과 적응하는 길 사이에 중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함께 모였습니다. 한국은 지금 오전 8시인데, 어떤 분들은 한밤중인 분들도 계시네요. (웃음)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으면 시간도 공간도 다 사라져 버립니다. 온라인 기술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치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의 한계는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시간의 한계 역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간이 늦은 밤이거나 새벽 일찍인 분들은 아마 졸음이 올 겁니다. 왜 졸음이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습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할 때에는 생각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습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미국에 강연을 하러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과 주야가 바뀝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있는 습관 때문에 낮임에도 불구하고 졸리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이 습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낮에 졸리더라도 견뎌버리면 미국 시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있을 때 급한 일이 있으면 밤에 자지 않고 일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 미국은 낮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을 합니다. (웃음)

이처럼 그 위기만 넘기면 적응을 금방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시차 때문이라든지, 잠을 못 잤기 때문이라든지, 이렇게 자꾸 습관을 합리화 하기 때문에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습관을 인도말로는 ‘카르마’라고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카르마를 전생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태어난 연 월 일 시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고 ‘사주팔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천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

그러나 붓다는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탐구해나갔습니다. 그래서 카르마는 본래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카르마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는 ‘형성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변화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던 카르마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시차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마침내 극복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에게 형성된 카르마 중에 고통이나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수행을 통해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전생에서 비롯되었다거나 하나님이 벌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변화시켜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괴로움이나 불이익을 가져오는 습관은 변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손실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습관은 정말 변화시키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 드는 에너지가 그 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보다 크다면 오히려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손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비록 손실은 생긴다고 해도 괴롭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손실을 감수하지도 않는 것은 욕심입니다. 이런 욕심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굳이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손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도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시키는 것 vs 적응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깥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바깥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자세를 가지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적응이 필요합니다.

변화시키는 것과 적응하는 것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자신의 카르마에 대해서도 변화시키는 것과 손실을 감수하는 것 사이에 중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중도를 유지하면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중도를 조금씩 더 발견해나가는 겁니다. 때로는 도전하여 변화시켜보거나, 때로는 적응도 해보는 것,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시도할 때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카르마는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그냥 간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핑계를 댑니다. ‘이것은 전생에서 가져온 거야’, ‘이것은 태어날 때 받는 거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회피합니다.

그런데 또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자신의 뜻대로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괴로워합니다. 다른 사람의 힘이나 신의 힘을 빌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려 하고 세상은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요. 반대로 수행을 잘못 배우게 되면 다른 한쪽으로 또 치우칩니다. 자신은 변화시키려고 하면서 바깥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삽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변해야 한다’ 하고 말하는 것이고, 바깥세상은 변화시키려고만 하니까 ‘적응해야 한다’ 하고 말하는 겁니다. 이 말을 잘못 듣고 자신은 무조건 변화시켜야 하고, 바깥세상에는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고 받아들인다면 이것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겁니다.

평생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에만 집중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바깥세상에 적응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사회 정의 실현을 등한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차별성을 극복하고 평등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올바른 수행은 변화와 적응 사이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괴로움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는 방향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불법을 널리 전하고

그러나 백일기도에 입재한 여러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알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백일을 도전한 후에 천일을 도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변화를 체험함으로써 ‘불법이 정말 좋구나’ 하고 먼저 느껴야 해요. 법륜 스님이 불법이 좋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고 ‘이 길은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 하고 느낄 때 자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불법을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법을 사회화 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정토회를 위해서도 아니고, 불교를 위해서도 아니고, 이 땅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45년 동안 대중을 위하여 불법을 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런 길을 가는 출발점에 선 겁니다. 우선 마음을 냈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내일부터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이렇게 마음을 낸 것만으로도 참 소중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입재식에 참여하여 마음을 냈다는 것은 씨앗을 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앗만 심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잘 가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3일만 해보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열흘, 한 달을 하다가도 중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어도 백일은 포기하지 않고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설령 중간에 포기했다고 해도 다음 백일이 시작되는 입재식에는 참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천일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천일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오늘부터 백일만이라도 먼저 시작해봅시다.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스님의 환영에 영어권 수행자들 모두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사홍서원을 다 함께 영어로 읽은 후 입재식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I vow to build Jungto, a land where no sentient beings suffer.
I vow to end all suffering and emotional afflictions through practice.
I vow to learn all of the Buddha’s teachings.
I vow to attain Buddhahood together with all sentient beings.”

잠시 휴식을 했다가 곧바로 10시부터 전법 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휴식 시간에 스님의 책상 위에 놓인 꽃병이 바뀌었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 설치된 모니터 10대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가득 찼습니다.

먼저 김은숙 정토회 대표님이 지난주 전국사업 의결회의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의결회의 보고 사항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온라인 정토회 임시 운영 기간에 대해 간략히 평가하면서 전법활동가들에게도 이번 전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첫째,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약간의 어려움과 아쉬움이 있지만 잘한 결정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둘째, ‘법당을 유지하고 코로나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법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거의 없네요. 그럼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는 거네요.

앞으로 온라인 정토회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극복해나가려면 온라인 정토회와 이전 정토회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문을 온라인으로 한다고 해서 온라인 정토회가 아닙니다. 그냥 정토회를 두고 법문만 온라인으로 하면 되는데 왜 우리가 정토회 앞에 온라인을 붙였을까요? 오프라인 정토회는 법당이 전법의 중심이었습니다. 법당에는 일정한 경력과 인격을 갖춘 총무가 온종일 상주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에서는 누가 가장 핵심일까요? 바로 온라인으로 법을 전하는 전법활동가입니다. 전법활동가는 개인 법당의 총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온라인으로 법을 전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는 핵심 활동가입니다.

전법활동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 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좋은 법을 전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발심을 해야 합니다. 둘째,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은 교육을 받아서 키우면 됩니다. 발심을 했더라도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전법활동가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 온라인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불교대학 진행을 하면 미리 교육을 받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전에 연습하고 진행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월요일에는 전법활동가로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최소 두 시간씩 3일은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못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학생과 으뜸절에서 봉사를 하거나 지역실천활동을 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반별 모임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일하고 회사에서 일하느라 힘들다거나 정토회에서 일하고 가정에서 일하려니 힘들다고 불평한다면 전법활동가가 될 수 없습니다. 회사일과 전법활동가를 병행해야 한다면 회사에서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야근을 하지 않는다든지 승진을 미루고 시간을 내서 전법활동가를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정토회 일로 마찰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평소에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한 달에 하루는 실천활동을 하겠다는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토회 때문에 가정불화가 일어난다거나 회사에 피해를 준다면 이것은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먼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전법활동가들은 불교대학이나 경전대학 학생에게 아침마다 기도하라고 안내하려면 본인부터 정진을 해야 합니다. 조울증이나 우울증이 있거나 심리가 지나치게 불안하다면 진행에 차질이 생겨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진행자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질문을 하거나 딴지를 건다고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진행자로서 곤란하다고 하겠습니다. 전법활동가가 되려면 다른 사람이 볼 때 고상한 인격은 아니더라도 보통의 인격은 되어서 정토회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는 않아야 합니다. 또한 다단계 판매를 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자가 되려고 한다면 정토회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원이 있고 불교대학을 진행할 능력이 있고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온라인 진행 기술은 배우면 됩니다. 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조건을 갖추었다면 전법활동가 신청을 해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요청하면 해준다거나 싹싹 빌면 해주겠다고 하지 마시고요. 저도 여러분이 싹싹 빌어야 법문을 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가능하면 신청을 해주세요. 그런데 형편이 안 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거나 원이 없거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하고 싶더라도 사양을 해야 합니다. 일반회원으로서 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회계를 맡는다거나 실천장소에 가서 일을 책임 맡을 수 있습니다. 전법활동가의 정의는 온라인으로 불교대학, 경전대학, 행복학교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을 뜻합니다. 오프라인에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의 역할은 앞으로 차차 자리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 만나 인생살이가 얼마나 많이 좋아졌습니까? 내가 좋아진 만큼 세상에도 이익이 되도록 내 재능이 쓰였으면 합니다. 온라인 진행자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재활용 유통사업도 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으뜸절 관리도 해야 합니다. 지역에서는 환경실천과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을 개발해야 합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첫발을 내딛는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온라인 전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법활동가부터 확보를 해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차후에 일반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정리를 해나가려고 합니다. 저도 하반기에는 전법활동가를 훈련하는 일보다는 으뜸절이나 지역실천 활동에 참여를 하려고 합니다. 이 일은 전부 일반회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해야 할 일들입니다. 법사라는 역할이 있듯이 전법활동가는 온라인 전법을 하는 법사라고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온라인 정토회로 나가봅시다.”

스님은 아직 온라인정토회 임시 운영 기간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전법활동가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오늘 법회에 참석한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전법활동가 신청을 해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전국 지부장 간담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지부장들은 그동안 온라인 정토회를 임시 운영하면서 의결회의를 진행할 때 헷갈리는 부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스님에게 의결회의 진행 방식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의문점을 해소했습니다.

해질 무렵에는 두북 수련원에 손님이 찾아와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평화재단 활동가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온라인으로 한 후 백일법문 콘텐츠팀과 정토대전 편찬위원회와 합동으로 화상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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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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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행

변화와 적응 사이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괴로움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는 방향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2021-07-31 07:27:59

실상

불교에서는 차별성을 극복하고 평등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불교의 위대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단단하게 여문 단호박처럼 정토회의 속을 꽉 채울 정토회원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2021-07-30 14:26:24

실비아

변화시키는 것과 적응하는 것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_()_

2021-07-30 13: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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