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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하루 종일 다섯 번의 온라인 방송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초심자들을 격려하고 오늘 두북 수련원의 일정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땀이 나는 계절이 왔습니다. 그러나 절을 하는 것은 어떤 운동보다도 전신 운동이 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아요. 어떤 일을 하든 시작하고 나서 3분의 2 지점을 넘어가기가 어렵습니다. 100일 기도가 끝나려면 아직 3주 정도가 남았는데, 끝까지 정진을 잘 이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두북 수련원에서는 탑곡에 있는 감자를 캐기로 했습니다. 저도 대중과 함께 감자를 캐야 하는데 하루 종일 강의가 있어서 같이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잠시 얼굴만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오늘 독송한 경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법문을 마쳤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오늘은 울력 대신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아직 네 번의 강의와 회의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에는 행복시민들을 위한 랜선 역사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시민 모임에서는 다양한 지역사회 실천 활동을 펼쳐왔지만, 역사 기행은 그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진행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랜선으로 백두산을 향해 역사 기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사회자의 안내로 온라인 공간 속에서 백두산 천지를 향해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올라갔습니다.
“지금 저희를 태운 차는 백두산 천지를 향해 구불구불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 내리셨지요? 여기서부터 위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천지가 나옵니다. 천지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법륜 스님이요.”
“네, 바로 법륜스님입니다.”
“바로 여기가 백두산 천지네요. 정말 웅장합니다. 백두산 천지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 남겨야겠죠? 법륜스님과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 포즈를 취해주세요.”
하나 둘 셋 찰칵!
“네, 아주 잘 찍혔네요. 즐겁고 행복한 역사기행 되시길 바랍니다. 법륜스님 마이크 받아주세요.”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서는 스님이 직접 안내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백두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웃음)
실제로 백두산에 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스님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백두산은 동북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가장 높다고 해서 머리 두(頭) 자를 쓰고, 산 위쪽에 항상 눈이 덮여있는 모습이 흰머리 같다고 해서 백두(白頭)라 불립니다. 또 가장 으뜸 된다는 의미로 장백산(長白山)이라고도 불립니다. 중국에서는 그냥 백산(白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백두산이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입니다. 화산 폭발 이후 화구에 물이 고여서 호수를 이루면 ‘화구 원호’라고 부릅니다. 한라산의 백록담이 이에 해당됩니다. 반면 화구가 함몰된 다음 재폭발이 일어나면 화구가 점점 넓어집니다. 이렇게 넓어진 곳에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면 ‘칼데라호’라고 부릅니다. 백두산 천지(天池)는 칼데라호입니다.”
스님은 백두산의 크기와 구조, 특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천지, 비룡폭포,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 압록강변을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의 설명과 함께 화면에는 지난 동북아 역사기행에서 촬영한 각 장소의 모습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압록강변에서는 스님이 북한 난민을 만나고 북한 주민을 돕게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온라인으로 떠난 역사기행이었지만, 눈앞에서 흐르는 압록강을 보듯 생생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스님은 백두산과 압록강변으로 역사기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이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젖줄입니다. 그곳에서 펼쳐진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천 년 전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웅장한 민족사입니다. 그러한 역사의 흔적이 이곳에 남아있기 때문에 백두산으로 역사기행을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고구려의 성벽, 무덤, 벽화와 발해의 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 수도를 둘러보고 또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은 우리 선조들이 국경을 넘어 옛 고구려와 발해 터인 백두산에 기반을 잡고 일본에 항쟁을 하며 수없이 죽어간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살 수 있게 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시기에 공익과 정의를 위해 투쟁한 분들의 노력과 공덕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분들에게 은혜를 받기만 할 게 아니라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선조들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듯이 우리도 작은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지식만 배우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역사기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인생의 고민이 먹고, 입고, 자는 것뿐이었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미래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폭넓은 삶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조심히 잘 돌아가셔서 한국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의 역사기행 안내가 끝나고 10분 동안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온라인 기행을 다녀온 여독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온라인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해서 스님과 ‘역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우리나라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는 세 번째 질문자에게는 여러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 후 긍정적 인식 위에 보완해나갈 점을 찾아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옛날보다는 나아졌습니다. 경제도 나아졌고, 정치도 나아졌어요. 우선 과거와 비교해서 발전한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기반 위에 아직 부족한 점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해요.
과거에 우리나라처럼 못 살던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가장 큰 발전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북한과 경쟁하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북한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습니다. 아직 일본을 경제 규모에서는 앞서지 못했지만, 소비 수준은 일본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가를 감안하면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쓰고 있어요.
경제는 많이 발전했지만 빈부격차는 굉장히 심해졌습니다. 이런 불평등을 조정하고 사회안전망을 더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주택의 가장 큰 목적은 주거인데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택시장에 투기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주택은 지나친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주거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제도도 잘 되어있지만 사교육 격차가 심합니다. 공교육을 보다 활성화시키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정부에서 사교육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공교육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정치면에서도 선거제도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이 권력을 독재적으로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선거제도에만 머물게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조금 더 뿌리 깊게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보완해야 할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잘 발전해왔다고 긍정하는 바탕 위에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찾아나가야 합니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고 생각하면 결국 남아있는 선택지는 이민 가는 방법밖에 없어요.
우리는 지금 국민의 행복도가 낮으니 그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잖아요? 이처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운동도 해야 하고, 지구환경을 위한 운동도 해야 합니다. 욕할 시간에 이런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운동도 해야 하고, 우리 역사도 재조명해야 합니다. 그동안 약소민족이라는 등 너무 자기 긍정이 없는 역사교육을 많이 받아왔는데, 자기 긍정이 생기는 역사교육을 새로 해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살펴보면 많이 발전해 온 가운데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우리 행복시민들이 보완해나가자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들과 대화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역사도 사회운동도 지혜롭게 해 나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지 않아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도둑놈이 집에 들어오면 나를 제일 먼저 보호해줄 사람은 남편입니다. 그처럼 북한이 지금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골치 아픈 과제를 주고 있지만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미래 통일의 희망을 함께 만들어갈 상대 역시 북한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골치 아프고 문제가 많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잘 풀어서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협력을 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외교를 해나가야 합니다. 중국이 기분 나쁘다고 우리가 발로 차면 거기에 원한이 맺힙니다. 원한이 맺히지 않도록 손해는 조금 감수하면서 미래로 도약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에 깡패가 있는데 평소에는 아주 나쁜 놈이에요. 그래도 일본이 쳐들어와서 의병을 모으면 평소 착하던 선비보다는 못된 깡패가 더 잘 싸웁니다. 그러니 지금 나쁘다고 해도 나중에 유용하게 쓸 때가 있기 때문에 당장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너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 쓸모가 없을 뿐이지 이럴 때 조금 봐주고 놔두면 언젠가 잘 쓰일 때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지혜라고 합니다. 항상 천하 만물을 살펴서 나에게 유리하도록 탐구해야지,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선하고 악하고를 너무 따지거나 호불호로 나누어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지금 필요 없다고 해도 한 발 떨어져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밭에 돌이 필요 없지만 나중에 둑을 쌓을 때는 또 돌을 주우러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필요 없다고 버리려고 하지 말고, 조금 옆에 치워놓되 둑을 쌓을 때는 필요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역사공부도 하고 사회활동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12시 20분에 행복시민을 위한 랜선 역사 특강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특강을 마치자마자 탑곡에 있는 밭으로 갔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부산울산지회 정토행자들이 감자를 캐고 있었습니다. 밭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은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위로차, 격려차 왔습니다. 제가 같이 해야 하는데 오늘 강의가 다섯 번 연속으로 있어요. 미안해요.”
스님의 깜짝 방문에 모두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스님은 계곡을 둘러보았습니다. 내일 행자들과 함께 울력을 하고 계곡 나들이를 하기로 했는데 어느 장소가 적당한지 둘러보았습니다.
계곡을 둘러보고 밭으로 가보니 감자밭 두 곳 중에 한 곳에 감자를 다 캐두었습니다. 농사팀 행자는 봉사자들이 밥을 먹는 동안 관리기로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감자는 어때요?”
“다른 밭에 비해 알이 잘고 양이 좀 적습니다.”
“그렇네요. 수고 많았어요.”
“스님, 감자 맛 좀 보셔요.”
마침 오전에 불에 올려둔 감자가 다 익었습니다. 오늘은 강의가 식사 시간과 상관없이 잡혀있어서 식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포슬포슬하게 잘 익은 감자 한 알로 허기를 달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오후 2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청춘 톡톡’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200여 명의 청년들이 화상회의 방에 방청객으로 참여하고 2천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의 원리와 취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간관계, 사회문제, 마음공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남자 친구가 아이 지우기를 원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남자 친구와 교제 중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를 원했지만 남자 친구는 아이를 지우는 걸 원했습니다. 지금은 그 남자 친구에게 아이를 지웠다고 거짓말하고 헤어진 상태입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눈물을 계속 흘렸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데 왜 눈물이 나요?”
“잘 모르겠어요.”
“어제 즉문즉설에서는 미국에 계신 45세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구입해서 아기를 낳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어요. 나이가 45세인 데다 이번이 첫 출산이면 20대나 30대에 비해 산모의 위험이 높잖아요? 아기 건강 상태도 나빠질 확률이 높죠. 또 45세에 임신을 해서 46세에 아기를 낳으면, 아이가 성년이 될 때 산모의 나이는 66세가 됩니다. 거의 은퇴할 나이가 되니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비교적 많은 사람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정자를 받아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아기를 낳고 싶어 했습니다. 그 사람과 질문자를 비교해보면 질문자는 그 사람보다 조건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우선 나이가 25세이니까 젊다는 측면에서 유리한 조건에 있어요. 산모가 건강하니까 아기도 건강할 확률이 높아요. 정자를 구하는데 돈이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인공수정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어요, 필요 없었어요?”
“돈이 필요 없었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정자를 받아서 아기를 낳는 게 좋아요? 지금은 헤어졌더라도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아기를 낳는 게 좋아요?”
“제가 좋아했던 사람의 아기를 낳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왜 울어요?”
“울 필요가 없네요.” (웃음)
“물론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또 따져봐야겠지만, 우선 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현재 아무런 나쁜 조건이 아니에요. 그런데 뭐가 그리 슬퍼서 울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우선 왜 우는지 물어본 거예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울 일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니고, 궁합이 안 맞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벌을 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선택했고 그 결과가 나온 거예요. 이제는 다음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만 남아 있어요.
길을 가다가 옥상에 있던 간판이 떨어져서 다쳤다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간판을 맞았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돼요? 병원에 가서 얼른 치료를 받아야 해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래요. 우선 치료를 받고 나서 그 간판이 또 떨어지지 않도록 주변 점검을 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피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지금 질문자가 임신을 한 건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지금 남은 건 ‘이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아기를 낳아서 혼자 키운다고 하더라도 정자은행을 통해 아기를 가지려는 사람에 비하면 지금 질문자의 조건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겠죠?”
“네.”
“지금 임신 14주가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그렇다면 한국의 법률로는 임신 14주까지는 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윤리나 도덕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건 차치하고라도, 만약 혼자서 키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이 되면 중절 수술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임신 중절 수술을 선택해도 현재는 사회 통념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특정 종교를 갖고 있어서 중절 수술을 하기 어렵다면, 그 역시도 개인의 신념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신앙적 가치를 선택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워도 좋고, 불교 신자라면 불살생 계율에 따른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지금은 어떠한 선택을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각각의 선택에는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이 부여될 뿐입니다. 한 예로 조선조 말엽에 천주교인들은 ‘나는 내가 섬기는 하느님 외에는 절을 하지 않겠다’ 하는 믿음으로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거부했고, 그 대가로 목숨까지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는 길을 선택한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자기 신념이든 믿음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일단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결심한다 하더라도 그건 죽는 일까지는 아니잖아요?”
“네.”
“죽음을 앞에 두고 자기 신념이나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죽는 것에 비하면 쉬워요, 안 쉬워요?”
“쉬워요.”
“그런데 어려울 게 뭐가 있어요? 아이를 낳고 혼자서 키우기로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아이를 키우다가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했을 때 중절 수술을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에요.
요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가능해요, 안 가능해요?”
“가능해요.”
“그래요. 그러니 그 길도 열려있어요. 이런 선택지를 두고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만 남아있어요. 질문자가 선택한 길에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마땅히 받아들여야겠죠.
아이를 낳아 혼자서 키운다면 우선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할 거예요. 대신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아빠를 미워한다면 그건 질문자가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라는 반증이에요. 만약 질문자가 정자은행에서 받은 정자로 인공 수정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정자의 주인을 미워할까요, 안 할까요?”
“미워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것보다 조건이 좋은데 왜 그 남자 친구를 욕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여기서 딱 선택을 해야 돼요. 선택을 하고 나면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남자 친구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따지거나 후회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아이를 낳기로 했다면 아이를 혼자 키울 때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해야지, 나중에 ‘낙태할 걸 그랬다’ 이렇게 후회하면 안 됩니다.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낙태의 길이 열려 있으니 그걸 선택하면 됩니다.
지금 질문자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둘째, 낙태를 하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셋째, 아이를 키우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넷째, 아이를 낳아서 바로 입양시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게 되면 나의 종교적 신념도 지킬 수 있고, 나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죠. 이 세상에는 아이를 원하지만 낳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국에는 아이 한 명을 입양하려면 적어도 몇 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에게 무료로 입양을 보내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낳아서 버리는 건 안 됩니다. 아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내는 선택을 하는 거예요. 이때 아이를 키우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건 좋지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면 아이에게 미련이 남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이를 혼자서 키운다고 해도 당당해야 합니다. 미혼모나 이혼녀가 과거에는 편견을 가진 말들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나쁜 말이 아닙니다. 모든 동물들은 다 암컷이 새끼를 혼자 키웁니다. 그런데 왜 토끼나 강아지한테는 미혼모라고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건 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시대에 만들어진 편견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요. 아직도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려고 하거나, 뭔가 잘 안 되면 남자를 욕하거나 비난하며 살아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여성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자에게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네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일이에요? 지금처럼 울어야 될 일이에요?”
“선택할 일이에요.”
“또 남자 친구를 만나서 임신을 했다는 건 내 몸이 불임이라는 거예요, 건강하다는 거예요?”
“건강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내 몸이 건강하다는 테스트도 한 번 해봤잖아요.”
“네.” (웃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임신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도 확인하게 된 거예요. 남자 친구를 만날 때 어리석음에 빠져서 지금의 어려움에 처했듯이 이번에 선택을 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어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딱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걸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선택한 것에 대해 나중에 가서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거나 후회하지 말고요.
아이를 키우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아이 아빠를 찾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세요. 그런 남자는 나중에 다시 찾아와도 쫓아버려야 해요. 아이를 보고 싶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당신 아이 아니야! 당신 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아이야.’
이렇게 말하고 쫓아버리세요. 이런 정도로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가 커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아빠는 어디에 있냐고 물어도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엄마가 아빠 역할까지 다 하는데 아빠가 왜 필요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아이에게는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어버이’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그렇게 자기 자신한테도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세요. 미혼모가 아니라 아버지 겸 어머니라는 뜻을 담아서 ‘어버이’라고 아이가 부르게 하면 됩니다.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도 당당하게 크지, 엄마가 눈물이나 흘리고 있으면 아이는 마음속에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됐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데는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요.
저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라거나 아이를 낳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선택 중 어떤 걸 선택하든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책임질 일은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 당당한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 일은 슬퍼할 일이에요, 슬퍼할 일이 아니에요?”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괴로워할 일이에요, 괴로워할 일이 아니에요?”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불안해할 일이에요, 불안해할 일이 아니에요?”
“불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일이에요, 두려워할 일이 아니에요?”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게 우리 대화의 핵심이에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질문자가 할 일이지 이 대화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가 어떤 결정을 하든, 거기에는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불안함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야 해요. 부모님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해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제가 스무 살도 넘었고, 제가 선택했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딸을 믿으세요.’
이렇게 당당하게 나가야 해요.”
“감사합니다.”
눈물을 쏟아내던 질문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관점을 바꾸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도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현장 질문을 두 명 더 받은 후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막막한 마음을 이야기한 질문자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마음을 다잡고,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힘내서 아이와 함께 잘 살겠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를 격려하며 마지막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즉문즉설이란 고뇌하는 인간이 어떻게 그 고뇌로부터 벗어나는지가 핵심이지, 그 고뇌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제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꿈을 깨는 게 중요합니다. 꿈을 깨면 꿈의 종류와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니까 더 이상 울고불고하면서 끈적끈적하게 살지 말고 바삭바삭하게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아직 창창한 나이잖아요.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결혼도 안 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것에 대해 꼭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저출산으로 난리인데 아이를 갖는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또한 산모를 위해 낙태도 가능할 수 있는 쪽으로 사회 제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역시 선택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아이가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입양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또 아이를 키우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요즘에는 한 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남편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모습도 다들 보기 좋아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걸로 욕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일입니다. 수행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이어 오후 5시부터는 2차 만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만일준비위원회는 온라인 정토회 임시 운영 기간을 끝마치고 정식 출범을 하게 되는 9월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시 운영 기간에 대해 평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쟁점들이 도출되었습니다. 만준위 위원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스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온라인 방송이 다섯 개나 있어요. 지금이 네 개째인데 좀 지치네요. 쟁점 사항이 더 있어요?”
“네, 아직 의논드리고 싶은 쟁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단 질문만이라도 다 해보세요.”
명쾌하게 결론 내리지 못한 내용은 다음 회의 때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온라인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관계편과 심화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게 안내하는 자리입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즉석에서 현장 질문도 받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행복학교 다니면서 마음이 많이 행복해지셨습니까?”
“네.”
“마음편 졸업하신 분들은 관계편을 다시 신청하시고, 관계편을 졸업하신 분들은 심화과정을 다시 신청하시고, 심화과정을 졸업하신 분들은 행복시민 모임에 참석하셔서 나도 행복해지고 사회도 행복해지는 활동을 함께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학교는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입니다. 내 행복은 내가 만들고, 더불어 내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해 환경 실천도 하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화 운동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이런 활동을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곳이 행복시민 모임입니다. 그런 행복시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행복학교를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정토회에서 정한 가정의 날입니다. 대중과 관계된 어떤 공식적인 행사도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두북 공동체 성원들과 함께 산윗밭 채소를 수확한 자리에 들깨 모종을 심을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관리를 위한 공동체 지부 공청회가 있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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