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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화엄반 회향수련을 마치는 회향식이 있는 날입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스님은 온라인으로 행복학교 특강과 청춘톡톡 강연을 하고 농사일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국 천일결사자들의 노트북과 핸드폰 속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법문을 하고 6시 10분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발우공양을 한 후 8시 30분부터는 화엄반 회향수련을 끝마치는 회향식을 했습니다. 4박 5일 동안의 수련을 마무리하며 화엄반 행자님들은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법사 수계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법사 수계를 겁도 없이 받는 것 같은데, 막상 받아놓고 보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어려움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과 마주할 거예요. (웃음)
첫 번째 어려움은 가족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이제 내가 뭘 조금만 잘못해도 ‘법사가 돼서 저것도 안 된다’ 이런 소리를 합니다. 가족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지내기 때문에 꼭 내가 약점 잡힌 것처럼 살게 돼요. 뭘 조금만 잘못해도 ‘법사가 저래도 되나’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에요. (웃음)
여러분이 법사 수계를 받고 나면 이 부분을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남편한테 화를 버럭 낸 사람도 앞으로는 조심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상대방이 ‘왜 화를 내냐?’ 하고 따지면 ‘나만 화 내나? 당신은 안 내나?’ 이렇게 싸우기도 했을 거예요. 그러나 법사 수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화를 낼 수가 없어집니다. 좋게 말하면 수행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웃음)
과거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들도 법사가 되고 나면 가족들이 문제를 삼기 쉽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교화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특히 여러분은 가족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교화하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남편이 ‘내 아내이지만 일반인과는 다르구나’ 이렇게 느낄 때만 법사로 인정을 해주지 오늘 법사 수계를 받았다고 해서 당장 법사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인정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비판할 수 있는 핑계가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 더 어려움을 겪기가 쉽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정토회 동료들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으며 활동하고 지냈는데 오늘 법사 수계를 받았다고 다가가면 겉으로는 ‘법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속으로는 하루아침에 수용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사라고 폼까지 잡으면 과거에는 장점으로 비쳤던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겸손해야 하고, 비판에 대해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비판에 대해 당당해야 한다는 건 위축되지 말고 ‘제가 부족하지만 법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서 담당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당당함을 의미합니다.
지부장이나 총무를 맡았을 때는 일의 효율을 중요시하며 활동을 했다면, 법사가 되고 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과거에는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그가 마음을 다쳤는지 안 다쳤는지’, ‘화합이 되는지 안 되는지’ 이것을 기준으로 사물을 보고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일을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서 자꾸 간섭을 하게 된다면 차라리 법사 수계를 반납하고 행정직을 다시 맡는 게 낫습니다. (웃음)
일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조언을 구할 때는 이야기를 해주지만, 상대방이 아무리 일을 못한다고 해도 절대로 먼저 나서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너무 나서면 법사라는 이름과 모양에 맞지 않고, 주어진 직분에도 맞지 않습니다. 법사가 되면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법사 수계를 받을 때는 첫째, 가족에게 감사와 참회 기도를 해야 하고, 둘째, 도반들한테도 감사와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전에 법사가 아닐 때는 뭣도 모르고 그냥 활동을 했는데 이제 마음가짐을 다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법사가 될 줄 알았으면 그때부터 잘할 걸 그랬죠? 그랬으면 지금 마음이 덜 불편할 거예요. 그래서 가족과 도반들에게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어리석어서 당신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참회 기도와 감사 기도를 하면서 정을 끊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지 않으면 오히려 법사가 된 것 때문에 인생이 다시 괴롭기 시작합니다. 더 행복하려고 법사가 된 거잖아요. 이것은 마치 젊을 때 서로 좋아서 결혼을 해놓고는 결혼 때문에 한 평생을 괴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겨우 법을 만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법사가 되었는데 이제는 법사가 된 것 때문에 시달리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이걸 넘어서야 대중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습니다. 참회할 건 참회하고,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면 당당함을 가지고 법사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탁 놓지 않으면 당당함도 생기지 않고, 비굴함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늘 이중적인 마음의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앙굴리말라와 같은 살인자가 어떻게 출가를 하나’ 하고 도저히 이해를 못했지만 부처님은 그가 마음을 탁 놓아버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출가자로 받아들인 겁니다.
법사는 검소함과 겸손함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오계는 폭력을 행하지 말라,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말라, 욕망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 험담하거나 욕설하지 말라 등 타인을 해치지 말라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팔계는 여기에 세 가지 계율이 추가됩니다.
첫째, 검소하게 생활하라.
둘째, 겸손하게 살라.
셋째, 들뜨는 즐거움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 세 가지는 자기 자신을 향한 계율입니다. 팔계는 남방불교에서 재가수행자가 갖춰야 하는 최고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가야 해요. 잘못한 일은 참회를 분명히 해서 털고 나가는 방식으로 수행을 해나가야 합니다.
법사 수계 때문에 새로운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또한 법사 수계 때문에 그동안 욕망이나 성질내는 것 등 극복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사가 되면 이걸 극복하지 않고는 버티질 못하기 때문이에요. 요행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부담만 커집니다.
예전에는 윗사람한테만 잘 보이면 되었다면 이제는 법사가 되었기 때문에 가족과 도반 등 아랫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게 새로운 도전 과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정진해 온 결과로 법사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사가 되는 건 새로운 수행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스님들이 출가를 하고 나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출가를 하기 전과 후는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법사가 되면 평가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꾸 ‘어제까지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왜 오늘부터 문제가 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의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하는 일입니다.
법사가 되면 내 수행을 점검하는 눈들이 곳곳에 있게 됩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면 여전히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그래도 출가의 끈을 놓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어느 정도 수행이 됩니다. 남의 눈이 무서워서 거기에 맞추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정도 수행이 되는 거예요. (웃음)
보는 눈이 많다 보면 매사에 조심하고 유의하게 되잖아요. ‘법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이 행동하게 됩니다. 꿀벌에게 로열제리를 먹이면 여왕벌이 되듯이 자리와 이름을 주면 사람도 그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정도의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법사가 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기본 관점을 잘 잡고 당당함을 갖되 문제점도 파악해서 겁내지 말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자세로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화엄반 회향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오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스님을 꼭 뵙고 싶다며 두북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할머니는 화광 법사님을 통해 보시금을 스님께 드리고 싶다며 여러 차례 요청을 했지만, 매번 스님이 보시금을 받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급기야 어제 화광법사님이 스님에게 삼배를 하며 할머니의 바람을 꼭 들어달라고 간청을 해서 오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스님께 인사를 한 후 봉투를 꺼내 스님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해마다 노인잔치도 열어주시고, 법문도 해주시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스님 법문 듣고 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몰라요. 농사지어서 모은 돈인데 스님께 꼭 보시를 하고 싶어서 들고 왔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모은 돈이라고요?”
“네.”
“아이고, 농사지은 돈이면 1억 보시한 것보다 더 큰돈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구경도 못 시켜드리고 죄송해요.”
“아닙니다. 스님 법문 덕분에 자식들도 잘 되고 너무 기쁩니다.”
스님도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보시금을 감사히 받고 할머니를 운동장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쉴 틈도 없이 곧이어 오전 10시부터 방송실에서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행복학교 마음편과 관계편 참가자 3천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행복학교 진행자를 하고 있는 분의 수행담과 소감을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행복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와 만난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4년 전 그때 저는 죽고 싶은 마음이 가끔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살아보려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행복학교를 왔어요.
저에게는 모든 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울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학교에 가서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속 이야기를 주절주절 말하고 나니 마음까지 너무 홀가분했어요. 행복학교를 다녀오면 4일 동안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어서 꾸준히 갔어요. 화를 안 내는 제가 좋더라고요.
작년부터는 행복학교 진행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어요.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면서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누굴 만나도, 어떤 상황이 와도, 그냥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가 아이들이 바라는 좋은 엄마는 아니더라고요. 그냥 마음 편안하고 행복한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상처도 있지만 그래도 예쁘더라고요. 괜찮은 구석도 많고요. 제가 예쁘게 보이니, 제 아이들도, 남편도, 이 세상도 예뻐 보여요.
‘원래 마음은 촉새물레방구 뒷궁디 흔들 듯 그런 거야’
하고 마음을 쉽게 놓아줄 수 있는 제가 참으로 고마운 요즘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 스님 고맙습니다.”
발표하시는 분이 마지막에 눈물을 글썽이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소감을 듣고 나서 스님도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소감문을 발표하시는 분이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 텐데 울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네요. 눈물은 나도 마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에 오셔서 행복을 맛보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웃음)
우리가 사는 인생은 지구의 역사나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할 만큼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짧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분자, 원자, 소립자 세계의 주기에 비하면 무한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입니다. 어디에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한없이 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게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생이 긴지 짧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죽을 걱정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며 살아가면 내일 죽거나 모레 죽거나 하는 것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굉장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겁니다. 죽고 나서도 영원히 천국이나 극락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인생에 대한 의미부여를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인생을 너무 무겁게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이 짧든 길든 중요하지 않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가든 말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고, 내일 죽는지 모레 죽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보람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지도 말고,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지도 말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도 말고,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이 바로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어서 행복학교 과정에서 궁금한 점을 해소하기 위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질문자 5명, 현장에서 즉석 질문자 3명 등 8명이 2시간 동안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모든 참가자들인 관계편과 심화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마음편 공부를 마치신 분들은 마음편에 만족하지 말고 관계편으로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관계편 공부를 마치신 분들도 관계편에 만족하지 말고 심화과정으로 가셔서 공부를 더 하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다음 공부 단계에서 다른 궁금증이 또 생겨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12시에 온라인 특강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에는 법사 수계자에 대한 이의 신청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청춘톡톡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한 달에 한번 특별히 마련된 시간입니다. 4천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즉문즉설의 취지와 질문하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안내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참가자 중에 8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직장생활에서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많이 힘들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타인에게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늘 상대에게 순응하고 맞추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의견이 없었고 제 감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어서 외향적으로 바꿔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특히 직장생활에서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많이 힘듭니다. 지금 이 성격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데 어떻게 당당하게 살 수 있어요? 남의 눈치를 보면 그냥 주눅 들어서 살아야죠. 질문자가 말해놓고도 우습지 않아요?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데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져요? 남의 눈치를 보면 움츠러 들어서 살 수밖에 없죠.” (웃음)
“머릿속으로는 ‘눈치 보지 말아야지’ 하지만 워낙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온 습관이 있어서인지 제가 못났다는 생각에 갇히면 옴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그건 자기가 실제로 못나서 그런 걸까요, 잘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잘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나고 싶은 만큼 못난 것 같아요.” (웃음)
“못났으면 그냥 못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지, 못났으면서 잘났다는 소리를 듣고자 하면 그 바람이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그래서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잘난 사람인지 스스로 살펴보세요. 살펴보니까 잘난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남한테 잘났다는 소리를 못 듣죠. 잘난 사람이 아닌데 잘났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건 모순이잖아요. 잘나도 남이 잘 안 봐주는데, 못난 수준이면서 무슨 남한테 잘 봐달라고 그래요? 그러니 ‘나를 잘 봐주세요’ 하는 생각을 탁 버려야 해요. 또 그 인간들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해요?
‘내가 저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뭐해?’
이렇게 관점을 딱 갖고 오히려 내가 저 사람들을 잘 봐주려고 해 보세요. 잘 보이려고 하면 내가 그 사람들의 노예가 되잖아요. 그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서 살게 됩니다. 내가 잘 봐주면 되지 왜 내가 잘 보이려고 해요?
내가 잘 봐주고 안 봐주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면 내가 그들의 시선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노예가 되는 겁니다. 남이 잘 봐줬으면 하는 것은 노예근성이에요. 잘 보이고 싶은 건 노예근성이고, 잘 봐주는 건 주인 근성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인 근성을 가지면 됩니다.”
“예전에는 제 성격이 내향적인 것이 문제인 줄 알고 수행을 통해 외향적으로 변화시키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이 문제는 질문자가 갖고 있는 과대망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잘났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저는 수행할 때 ‘저는 이대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는 기도문으로 하거든요.”
“수행이라는 말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냥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서 볼 때 질문자는 만에 한 명, 천에 한 명 나올 정도로 잘난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닌 줄 알면 다 해결되잖아요. 이제부터는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거잖아요. ‘남이 나를 잘 봐줬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내가 잘나야 그 사람들이 나를 잘 봐주지, 내가 잘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들이 왜 나를 잘 봐주겠어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질문자가 ‘나를 잘 봐주세요’ 하는데 아무도 잘 봐주지 않으니까 괴롭죠. 여기서 내가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면 남이 나를 잘 봐줄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를 잘 봐주든 안 봐주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그렇게 되면 저절로 당당해집니다.”
“지금 들을 때는 알겠는데 막상 생활로 돌아가면 잘 안 될 것 같아요.”
“아직도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남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남한테 착하다는 소리 들어서 뭐해요?”
“남한테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아요.”
“노예로 살면 비난받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아무런 감정 표현 안 하고 뭐든지 ‘예’, ‘좋아요’, ‘잘 봐주세요’ 하면 다 칭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애완견을 좋아하는 거예요. 사람은 자꾸 저항을 하고, 뭐라고 하기에는 또 귀찮잖아요. 그런데 강아지는 밥만 주면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니 잘 보이고 싶다는 건 상대방의 애완견이 되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저는 길거리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질문자는 안 그래요?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한번 보세요. 짖는다고 성대 절단도 하고, 꼬리도 자르고, 생식기도 자르고, 그런 다음에 털 깎아주고 옷 입히고 비싼 사료를 주잖아요. 그런 강아지가 좋아요? 비록 길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좋아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질문자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어요?”
“...”
“질문자는 애완견을 선택할 것 같아요. 저는 야생 속에 사는 개를 선택합니다.”
“그렇게 사니까 저도 답답함을 느끼거든요.”
“그게 답답하면 거기서 빠져나와야죠. 대신 길거리에서 음식을 찾아먹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는데, 탁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직장생활에서 단번에 눈치를 안 보고 살 수 있을까요?”
“눈치를 보는 것도 모두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눈치를 보는 거예요. ‘잘 봐주세요’ 하는 것도 이익을 보기 위함이잖아요.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이 없는데 눈치를 볼 이유가 뭐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개밥을 얻어먹으려고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과 같아요.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거나 먹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죠. 어떻게 생각해요?”
“일대일 관계보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의 시선이 느껴질 때 위축돼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습관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습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잘 보이고 싶어 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런 마음이 곧 애완용 동물이 되는 길입니다. 자기를 애완용 동물처럼 만들어서 자립도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버릴까 봐 덜덜 떨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제가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 애완용 동물처럼 살고 있으면서 ‘제가 어떻게 하면 야생 동물처럼 살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을 하는 것인데, 그건 실제로 밖에 나가보면 알게 됩니다. 밖에 나가면 처음에는 힘들어요. 그렇지만 며칠 살다 보면 또 살만해져요. 그러니 방법은 간단합니다. 눈치를 안 보고 살아보는 거예요. 우선 연습을 해보세요. 회사에서 성질이 나면 성질도 내보고, 고함을 지르고 싶으면 고함도 질러 보세요.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살아보세요. 옆 사람이 성질 더럽다고 하면 ‘네, 성질 더럽습니다’ 하고 인정하고, ‘요즘 왜 변했냐?’라고 하면 ‘네, 변했습니다’ 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누가 못됐다고 하면 ‘네, 제가 못됐습니다’ 하고 인정하면 돼요. 그렇게 해야 야생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아직 잘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거기에 얽매여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 남을 해치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남을 때리라는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치라는 것도 아니고, 성추행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치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당당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상사가 커피 한 잔 끓여달라고 할 때 안 끓여다 주면 나중에 승진하는데 영향이 있을까 겁나니까 속으로는 기분 나쁘면서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하게 끓여다 주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커피 끓여달라고 하면 ‘네’ 하고 갖다 주든지, 그러기 싫으면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제가 커피 끓이러 회사에 왔어요? 요즘 시대에 그런 요구는 안 맞습니다. 자기 커피는 자기가 타서 드세요’
그래도 끓여달라고 하면 ‘네’라고 대답한 다음 커피를 끓여서 가다가 넘어지면서 옷에 부어버리세요. 그러면 ‘저 인간한테 부탁하면 사고 친다’ 하면서 다시는 커피 끓여 달라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렇게 자기 위치를 정하면 돼요. (웃음)
지금 질문자는 집에서 애완견처럼 길들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처음에는 많이 두렵습니다. 집에 있는 건 편안하지만 답답하고, 나가려니까 자유로울 것 같긴 한데 어떻게 살지 두려운 상태예요. 질문자는 지금 그런 상태이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다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성질을 더 내면 안 돼요. 질문자는 지금 많이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로 자유롭게 사는 걸 원한다면 지금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탁 내려놓아야 해결이 됩니다. 조금 답답하지만 귀여움 받으면서 살겠다면 애완용 동물의 길을 확실하게 선택하면 됩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나쁜 선택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애완용 동물로 살면서 자꾸 야생을 그리워하는 게 문제예요.”
“네, 밖으로 나가보겠습니다.”
“아직 수준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웃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면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탁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이 나를 잘 봐주는 것보다는 내가 남을 잘 봐주겠다는 마음을 내야 해요. 자꾸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내가 잘 봐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힘들다는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 문제로 항상 번뇌가 많았는데 스님께서 애완견에 비유해 주셔서 시원해졌습니다. 남이 ‘너 변했네’ 하면 ‘네 변했어요’ 하고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그럼 질문자는 야생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애완용 동물로 계속 살기로 했어요?”
“야생으로 나가서 겪어보겠습니다.”
“야생으로 나가서 너무 힘들면 다시 애완용 동물로 돌아와서 만족하고 살면 돼요. 야생을 너무 그리워하지 말고요. 알았죠?”
“일단 한번 나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생방송을 마칠 시간이 되어 스님이 서두르며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지금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예초기 들고 논둑에 풀 베러 나가야 해요. 다른 질문 없으면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스님은 자리에 일어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논둑으로 향했습니다. 나가는 길에 재활용 창고에서 울력을 하고 있는 청년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재활용 담당자가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멀리 서울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합니다.
“스님, 자원봉사하러 서울에서 왔어요.”
“감사합니다.”
스님은 느티나무 아래 논으로 갔습니다. 논둑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행자들이 먼저 도착해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논 안으로 풀 조각이 마구 튀고 있었습니다.
“아직 모가 어리기 때문에 풀이 튀면 모가 다쳐요. 최대한 풀 조각이 논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방향을 반대로 바꿔서 예초기를 돌려보세요.”
안내를 하고 스님도 곧바로 예초기를 둘러매고 경사진 쪽으로 가서 풀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사면은 서 있는 것도 불편한데 팔을 들었다 올렸다 해서 평지보다 더욱 풀을 베기 어려웠습니다.
사방의 논둑을 깔끔하게 정비한 후 비닐하우스 위에 있는 논으로 갔습니다.
비닐하우스 위에는 윗논, 아랫논이라고 부르는 논 두 개가 있습니다. 윗논에 두 명, 아랫논에 두 명으로 나누어 풀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행자들은 평평한 논둑으로 보내고 이번에도 스님은 경사진 면으로 가서 풀을 벴습니다.
연료가 떨어지거나, 줄이 다 닳으면 잠시 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논 두 곳의 풀을 다 베고 논으로 오르는 길도 풀을 벴습니다. 경사진 곳에는 칡덩굴이 많아 중간중간 예초기를 멈추고 계속 덩굴을 제거하며 풀을 베야 했습니다.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휴식다운 휴식 없이 꼬박 두 시간 동안 예초기를 돌렸더니 귀가 먹먹하고 팔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말끔해진 논둑을 보니 마음은 개운했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저녁예불 시간에 딱 맞춰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예불을 드리고 씻은 후 8시 30분에 문경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문경 수련원에서 화엄반 3기 제6차 정토회 법사 수계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남편과 아이, 직장동료, 친구와의 대화…
답답할 때 있으시죠?
1주일에 한 번 ,
소통하고 나누며 함께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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