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5.6 농사일, 수행법회
“도벽이 있고 거짓말하는 직원을 어떡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록의 계절인 5월에 접어들어 첫 번째 진행되는 수행법회 날입니다. 하얀 딸기꽃이 진 자리에 열린 딸기가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새로 일구고 있는 산밑밭에 가서 두둑에 비닐을 씌워주었습니다. 원래 비닐을 씌워두었는데 어제 비가 내려서 비닐을 열어두었습니다. 땅 속에 빗물이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다시 해가 나서 비닐을 덮어주었습니다.


비닐을 다 덮어주고 행자들은 산아랫밭으로 가고, 스님은 수돗가에 개수대를 설치하기 위해 밭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도 마을 길가에 자란 잡풀을 뽑았습니다.

“어디다 설치해야 좋을까?”

이 곳 저곳 고민을 하다가 개수대가 필요한 행자님의 의견을 물어 야외 수돗가 자리에 설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개수대 수평을 맞추고 수도관을 연결하고 물을 틀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잘 나오지 않는 데다 물 색깔이 누랬습니다. 수도꼭지를 분해해 보니 촘촘한 구멍마다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법당에서 1년 이상 사용하지 않던 걸 가져오니 이렇게 녹이 슬었네요.”

수세미와 솔로 수도꼭지를 닦고 바늘로 구멍을 하나하나 뚫어주었습니다.


수도꼭지를 깨끗이 청소하고 다시 물을 틀어보았습니다. 물이 잘 나왔습니다.

“호스가 얇아서 수압이 좀 약하긴 한데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네요.”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널려있던 호스를 깔끔하게 묶어 주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나니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과 재활용 창고, 농장을 함께 둘러보며 안내를 해준 후 오후에는 손님과 함께 경주 남산을 산책하였습니다.

해가 지고 두북 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수련원 사무실에서 농사팀 담당자와 재활용 유통팀 담당자를 잠깐 마주쳤습니다. 두 행자님이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스님에게 들려왔나 봅니다. 스님이 웃으며 한 마디 했습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면서요? 수행자는 그렇게 관점을 가지면 안 돼요. 농사 담당자는 땅이 많아지는 것을 기뻐해야 돼요. 재활용 담당자는 재활용품이 많아지는 것을 기뻐해야 돼요.

일손이 부족해서 도저히 일을 진행할 수 없으면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도저히 안 되면 땅을 묵히면 되거든요. 스님이 목석이 아니잖아요. 도저히 안 되면 기계를 마련하든지, 인력을 더 붙이든지 방법을 마련할 사람이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웃음)

“네, 잘 알겠습니다.”

“제 말을 듣고 탁 깨달았으면 ‘아이고, 스님, 그렇네요’ 하면서 엎드려 절을 해야죠.”

두 행자님은 곧바로 엎드려 절을 하면서 밝게 웃었습니다.

“이제 힘들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해 보겠습니다.”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예요. 깨우치면 바로 마음이 밝아지는데...” (웃음)

두 행자님을 격려한 후 스님은 방송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를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1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하고, 200여 명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곳곳에 연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있는데요. 스님은 나뭇잎을 보면서 든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라고 하죠. 시골에서 살아보니까 자연의 변화를 많이 느낍니다. 4월 중순까지는 온갖 꽃들이 피었는데, 4월 말부터 5월 초인 요즘은 기존의 꽃이 대부분 지고, 아직 새로운 꽃들이 나오진 않는 상황이에요. 좀 더 지나면 장미꽃이 피어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나뭇잎을 보면서 든 생각

대신에 요즘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뭇잎입니다. 연녹색의 나뭇잎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 나뭇잎 중에 제일 산뜻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잎이 있어요. 바로 대나무 잎과 소나무 잎입니다. 사시장철 푸르러서 좋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새잎이 싹을 틔울 때는 가장 누르스름하고 시커멓게 보여서 볼품없는 것이 소나무 잎과 대나무 잎입니다. 특히 대나무는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서 냉해를 입은 탓에 대부분의 잎이 낙엽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늘 푸른 것도 좋지만, 질 때 지고 필 때 피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마음이 한결같은 것이 수행의 목표죠. 그런데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노는 것도 괜찮습니다. 대신 이 경우에는 뒤끝이 없어야 해요.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뒤끝이 없다면 속내를 좀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같이 살아보면 이런 경우가 있어요. 두 부부가 서로 예의 바르게 언성 높이는 일도 거의 없이 살지만 좀 냉랭한 경우가 있고, 가끔 큰소리도 치고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할 말 다 하면서 굉장히 친근하게 지내는 사이도 있죠. 살아보면 어떤 게 좋을까요? 옆에서 보기에는 잉꼬부부처럼 잔잔한 쪽이 더 좋아 보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감정 표현을 하고 사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나뭇잎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도벽이 있고 거짓말하는 직원의 습관을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도벽이 있고 거짓말하는 직원을 어떡해야 할까요?

“도벽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직원의 습관을 바꿔줄 수 있을까요? 제 돈에 손을 대고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아 그 직원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한 번 신뢰가 무너지니까 모든 행동을 믿을 수 없고, 뭐든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직원은 처음보다 거짓말하는 습관을 많이 고치긴 했지만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완전히 고칠 수는 없다 해도 조금씩이라도 바뀌게 하려면 제가 어떡해야 할까요?”

“질문자는 불교대학을 나왔습니까?”

“네.”

“정토회 회원이 맞아요?”

“네.”

“부처님의 법은 나를 바꾸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상대를 바꾸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나를 바꾸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어떻게 하면 상대를 바꿀 수 있느냐고 저한테 묻고 있네요. 저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법문 중에 수도 없이 얘기하잖아요. 남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저한테 있다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나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의 스가 총리를 바꾸든지 하지, 왜 질문자의 직원을 바꾸는 데 제 에너지를 쓰겠어요? 질문 내용만 들어봐도 질문자는 수행자의 관점이 안 잡혔어요.

‘직원이 그렇더라도 그런 직원을 둔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편안해질 거냐?’

이 관점을 갖는 게 해탈과 열반의 길이에요. 그런데 왜 제가 직원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어요? 직원의 문제점을 고쳐줄 능력이 있으면 제가 왜 여기 앉아 있겠어요?

부처님의 말씀은 아들이 죽어서 여인이 슬퍼할 때 아들을 살려주는 게 아니에요.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우쳐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제가 ‘수행자를 지향하는 게 맞느냐’, ‘부처님 법에 대한 관점이 잡혀 있느냐’ 이렇게 점검을 하는 거예요. 즉문즉설을 들으러 오는 일반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제가 이 점을 다시 환기시켜 드리지만, 적어도 불교대학을 다닌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수행자의 관점을 놓친 거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이 어떻든 내가 어떻게 편안해질 것인가’ 이걸 지향한다고 늘 얘기했는데, 지금 질문자의 질문은 ‘직원을 어떻게 좀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거잖아요.

‘그런 직원을 둔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걸 본인이 결정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 직원을 내보내든지, 그런 직원의 상태를 알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그 정도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해서 두든지,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좀 하고 물건을 좀 훔쳐가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한테 이익이라면 그냥 두는 거예요. 그걸 고치려고 하지 말고요. 물론 조금씩 노력해서 고쳐지면 좋지만, 고쳐지지 않는 것에 대해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아무리 나한테 이익이 되더라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 싫다’이런 입장이라면 미련을 갖지 말고 기꺼이 내보내야죠. 그건 본인의 결정이에요. 직원이 습관을 고치면 놔두고. 안 고치면 내보낸다고 조건을 달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술을 먹어서 골치라고 합시다. 그런 남편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면 ‘그래, 술 먹어라’ 이러고 사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남편과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면 기꺼이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수행이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하면 나도 이렇게 하고, 그 사람이 저렇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산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매여서 을(乙)이 되어 살게 되는 겁니다.”

“그 직원이 처음에는 거짓말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제가 좀 가르치니까 약간 바뀌었어요.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환경을 없애주면 거짓말을 안 할 것 같아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타일렀더니 처음보다 80% 이상 좋아졌어요. 그래도 급하면 어릴 때 자란 환경 때문에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모든 행동이 자꾸 부정적으로 보여요. 그렇게 하는 직원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말귀를 좀 못 알아듣고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관찰해 봤더니 몇 번 얘기하니까 조금 개선되더라고 했잖아요. 그 부분은 계속 얘기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겠죠. 그러나 핵심은 그게 아니에요. 현재의 상태에서 개선이 안 되더라도 계속 직원으로 둘 거냐 말 거냐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만약 계속 직원으로 두겠다는 입장이라면, 개선이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에요. 개선하기 위해 노력은 하되, 직원을 그대로 두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하거나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개선이 안 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하는 입장을 가져야 해요.

그 직원이 일을 못 하거나 큰 문제를 갖고 있다면, 애초에 저한테 질문도 안 하고 회사에서 내보냈을 거예요. 고민을 한다는 건 그런 단점 대신에 다른 좋은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격이 싹싹하든지, 일을 잘하든지, 뭔가 다른 이익이 있으니까 지금 고민이 되는 것이겠죠.

‘고쳐서 쓰면 나한테 이익이겠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고치지?’

질문자는 지금 이렇게 머리를 쓰고 있어요. 말을 안 해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즉문즉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술을 먹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지만, 저한테까지 와서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남편이 돈을 잘 벌든지 뭔가 쓸 만한 면이 있다는 뜻이에요. 이런 쓸모가 없으면 저한테 묻겠어요? 본인이 알아서 이혼을 했겠죠. 어떡해야 좋으냐고 저한테 묻는 이유는 제 앞에서는 불평을 하지만 다른 좋은 점도 있다는 뜻입니다. 버리기는 아까운데 그렇다고 쥐고 있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그 직원이 도벽이 있고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직원에게 다른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는 뜻이에요. 인건비가 싸든 지, 기술이 있든지, 성격이 싹싹하든지, 뭔가 장점이 있으니까 미련이 남는 거죠. 아무런 장점이 없다면 도벽이 있고 거짓말하는 직원을 왜 잡고 있겠어요? 벌써 내보내버리죠. 그러니 질문자가 관점을 분명히 잡고 결정을 하세요.

‘지금 상태에서 개선이 안 된다고 해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고 나한테 이익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직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을 해버리세요. 그러면 내보낼지 놓아둘지를 두고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잖아요. 유지하면서 조금씩 교화를 통해 나아진다면 그만큼 나에게 더 이익이 생기는 것이고, 안 나아져도 내 입장에서는 아예 내보내는 것보다는 이 직원이 있는 게 낫겠다고 보는 겁니다. 교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노력을 하더라도 안 되어도 고민은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 ‘고쳐지면 계속 쓰고, 안 고쳐지면 내보내겠다’ 하는 입장을 정하게 되면, 직원의 행동에 따라 하루는 내보내야겠다고 했다가, 하루는 또 계속 쓰겠다고 했다가 하면서 계속 을(乙)이 되어 끄달려 살게 됩니다.

만약 ‘나한테 이익이 되고 안 되고에 관계없이 나는 이런 직원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 이런 입장이라면, 손실을 보더라도 미련을 갖지 말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나한테 이익이 된다’ 이런 입장이라면 그 직원의 도벽이나 거짓말을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야 해요. 도벽이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계산해 보니 이 직원이 나한테 가져오는 이익이 더 크다면 유지하겠다고 결정을 딱 해버리는 겁니다. 그 직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개선이 되면 나한테 더 이익이니까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해서 개선되면 다행이지만, 개선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결정하면 아무런 번뇌가 없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번뇌가 없어지는 방법을 말하는 거예요. 핵심은 ‘이런 직원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판단을 해보세요.”

“직원을 내보내겠다는 결정은 아직 하지 않았어요. 본인이 그만두기 전까지는 자르지 않는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그 직원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고민이 된 거예요. 어쨌든 제가 그 직원을 데리고 있으려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직원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은 자기를 속이는 말이에요. ‘그 직원을 데리고 있는 게 나한테 이익이다’ 이렇게 관점을 잡아야 번뇌가 안 생깁니다. ‘그 직원을 위해서 내가 데리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배은망덕한 놈, 너를 위해서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하는 번뇌가 더 많이 일어납니다. 나한테 이익이기 때문에 데리고 있는 거예요.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그 직원이 어떤 행동을 하든 나에게 번뇌가 안 생깁니다.

자꾸 남을 위한다고 말하는데 본인이 무슨 양심가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 위선 떨지 마세요. 딱 직시해야 번뇌가 사라집니다. 마치 본인이 좋은 마음을 내는 양 위선을 떨면 안 돼요. ‘이 직원을 두는 게 나한테 정말 이익인가?’ 관점을 이렇게 잡아야 이 직원이 어떻게 되든 나에게 번뇌가 안 생깁니다. 이익이라고 한다면 그 직원이 어떤 행동을 하든 내가 더 이상 그걸 갖고 번뇌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요. 다만 직원의 행동이 조금 바뀐다면 나한테 더 이익이기 때문에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 직원을 내보내고 안 내보내고는 이미 결정해서 안 내보기로 한 것이고, 거기에서 조금 더 이익을 보기 위해 그 직원을 바꾸려는 노력을 조금 더 하는 겁니다. 내버려 둬도 되지만 조금 더 노력하는 거죠. 그런 노력도 모두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제 1과제입니다. 질문자가 ‘이 직원을 위해서 내가 좋은 길을 열어준다’ 이렇게 전도몽상을 하게 되면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너는 내 심정을 몰라주고 아직도 거짓말을 하느냐!’ 이런 마음이 자꾸 들게 되기 때문에 화가 더 많이 나게 됩니다. 본인은 선한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속이는 행위이고, 영원히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하는 행위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수행자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낸다’, ‘착하다’ 이런 얘기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정치인이 착하다고 정치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의사가 착하다고 의사 노릇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착한 것도 필요하지만,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의 병을 잘 치료해야 합니다. 물론 치료는 잘하는데 나쁜 사람이라면 그걸 이용해서 나쁜 짓을 하겠죠. 그러나 의사라면 병을 잘 치료하는 게 첫째이고, 거기에 더해서 착함이 있어야 해요. 착함을 자꾸 내세우면 안 됩니다.

그런 것처럼 수행자는 지혜로워야 해요. 문제의 본질을 탁 꿰뚫어야 합니다. 본인을 자꾸 위선적으로 만들어서 착한 사람처럼 포장하면 인생을 계속 괴롭게 살아야 해요. 착한 사람이 더 괴로움이 큽니다. 왜냐하면 착한 사람은 ‘내가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하는데 세상이 왜 이러냐’ 이렇게 한탄하고 가족을 미워하고 남을 탓하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좀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남을 생각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영악해지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그런 관점을 가져야 문제의 본질을 딱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남을 생각하는 수준이 된다는 건 과대망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늘 남을 원망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렇게 관점을 잡고 수행을 해야 이 혼란한 세상에서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 깨우치고 보면 혼란할 것도 없어요. 세상이라는 건 원래 이래요. 그런 속에서 사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잠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플 때가 있고, 무호흡증 증세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제 생각에 명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치가 맞을까요?
  • 상대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것과 거절해야 할 것은 거절해야 하는 분기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 교사인데, 반에 다루기 힘든 학생이 있어 병가를 낸 상태입니다. 학생은 감정 조절이 어려워 공격적 언행과 수업 방해 행동이 심합니다. 곧 복직을 해야 하는데 제가 이 학생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고 두렵습니다.
  • 위암 수술 후 항암치료 세 번을 마쳤습니다. 같이 사는 80세 시어머니가 점점 수척해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공감도 가지만, 나도 환자인데 하는 분별심도 납니다. 어떡하죠?
  • 저는 결혼하는 날부터 시어머님이 같이 산다고 해서 30년 넘게 같이 살았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따로 살지만 시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위장 장애가 일어나고 가슴이 조여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문즉설을 마치고 질문한 분들에게 스님이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직원 때문에 고민하던 질문자도 씩씩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네, 직원이 조금씩 바뀌기에 ‘더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욕심을 내었던 것 같아요. 스님 말씀처럼 수행적 관점을 분명하게 갖겠습니다.”

“이제 말귀를 좀 알아들은 것 같네요.” (웃음)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을 위해 사상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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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복

스님의 말씀 듣고 내 자신을 먼저 알아차림 연습을 하려하는데 그게 잘 안될때가 넘 많아요
저또한 수행 적 관점 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2021-05-18 13:46:41

필주

스님 알아차리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5-14 08:35:50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내 선택이구나 싶습니다. 팀원과 함께하는 입장에서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입장이 중요하구나 생각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5-11 18: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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