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17 천일결사 기도, 통일특위 의병대회, 정토불교대학 즉문즉설
“불교에서는 왜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온라인 생방송을 하면서 오후에는 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두북 수련원에 마련된 방송실에서 제10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 중 104일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스님은 종송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다가 새벽 예불을 한 후 5시 정각에 시청자를 향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4차 백일기도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마지막 정진 잘하시고, 내일은 5차 백일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서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을 차례대로 한 후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이름과 형태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또는 무엇인가 없다고 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그는 참으로 늙지 않는다.
‘이것이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남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
그는 내 것이라는 관념이 없으므로,
내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에는 소유욕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내 것이다’, ‘저것은 네 것이다’ 하는 분별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천하 만물은 사실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존재할 뿐이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사용할 뿐입니다. 천하 만물은 필요한 사람에 의해 쓰여져야 합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 일어나는 이유

그런데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라면서 울타리를 치기 때문에 천하 만물이 풍요로운 데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작 필요한 데도 사용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풍족하지만 일부 계층에서는 그 물건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더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건 내가 만들었다’

‘내가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누구로부터 얻었다’

‘내가 주웠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소유욕을 합리화하고 그것이 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실제로 강도가 있는 줄 착각하고 두려워하며 도망 다니는 것처럼 잘못 알고 헤매는 겁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면, 두려워할 일도 없고, 도망갈 일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꿈속을 헤매면서 그게 꿈인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마치 강도가 있는 줄 알고 도와 달라 요청하고, 또 누가 도와주면 고맙다고 합니다.

우리가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내가 너를 도와줬다’, ‘너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거나, 은혜를 모른다고 욕을 하거나, 은혜를 갚지 못했다고 죄스러워하거나, 이렇게 사는 건 마치 꿈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깨서 본래 내 것이라고 할 게 없는 줄 알면 사실은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필요에 의해서 사용될 뿐입니다. 이 공기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더 좋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기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그걸 가지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얻지 못했다고 괴로워하고, 가진 것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잃거나 빼앗겼다고 괴로워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서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난 것처럼 ‘사람 살려!’ 하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잠꼬대를 할 뿐인데, 본인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습니다.

꿈에서 깨면 괴로워할 일이 없는 것처럼, 무지를 깨닫게 되면 괴로워할 일이 없습니다. 괴로워할 일을 소멸시켜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본래 괴로워할 일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꿈속에서 강도를 피하거나, 꿈속에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지 더 좋은 꿈을 꾸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하고, 더 많은 부를 향유하려고 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꿈에서 깨지 않은 채 좋은 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범부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목표이고, 지혜로운 수행자는 꿈에서 깨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기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일 있을 5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의병대회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부터는 10차 천일결사에 들어와 두 번째 통일특별위원회 의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450여 명의 통일특별위원회 멤버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낭독한 후 정토회 대표님의 인사 말씀, 평화재단 기획위원장의 격려말씀, 운영위원 소개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통일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받은 양윤덕 님이 변화된 조직구조와 새로 임명된 지회장과 모둠장을 발표했습니다.

새로 임명된 지회장과 모둠장 모두에게 조금 더 수고해달라는 뜻에서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 후 스님에게 기조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통일특별위원회가 어떤 목표를 갖고 만들어진 모임인지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멤버인 여러분들은 정토회 회원이면서 전법활동가이며, 전법활동가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전법활동가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자기 수행과 전법 활동, 두 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자기 수행만 하면 되었는데, 이번에 온라인정토회로 전환하면서 자기 수행과 전법 활동까지 정토행자의 의무가 되었습니다.

수행, 전법, 그리고 사회 실천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더 추가됩니다. 바로 사회 실천입니다. 원래 취지대로 하면 자기 수행, 전법 활동, 그리고 사회 실천까지 모두가 정토행자의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모든 정토회 회원들에게 사회 실천까지 의무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정토회 회원 중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까지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의 모임이 ‘통일특별위원회’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다면 바로 구호활동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 정부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독재를 하는 것과 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슬림이 불상을 파괴한 것과 그들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이처럼 통일특위는 인도주의에 대한 원칙이 확실해야 합니다. 환경 실천을 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전쟁을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반대해야 합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전쟁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반대해야 합니다.

현재 미얀마에서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지만 만약 무장 투쟁을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화를 지지하되 그 일을 평화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군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또한 시위대가 무장으로 대응하는 일에 군사적 무기를 지원하는 일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력으로 이기고 지는 싸움에 힘을 보태주려고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즉석에서 생방송으로 현장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행복학교를 진행할 때 마주하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할지부터 시작해서 미국 바이든 정부 이후 남북 관계의 전망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특위 의병의 역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다시 새기자는 의미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행복학교 로고를 물고 날아가는 사진을 각자 핸드폰에 띄웠습니다.

“자, 얼굴 옆에 비둘기를 들어주세요.”

비둘기로 화면을 꽉 채운 후 하나, 둘, 셋, 구호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이 참가자들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저는 고추 모종을 심으려고 해요. 일손 좀 보태줄 사람은 두북 수련원으로 빨리 오세요.” (웃음)

점심 식사를 한 후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해 비닐하우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져 미루었던 고추 모종을 옮겨 심는 날입니다.

비닐하우스 두 동, 열 두둑에 고추 1400여 포기를 심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6명입니다.

다행히 오전에 봉사자들이 와서 고추 지지대를 박아주고 구멍을 뚫어주어서 심기만 하면 됐습니다.

“일 나누기를 어떻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을까요? 파종기를 줘 보세요.”

2인 1조로 할지 3인 1조로 할지 연구를 하다 스님은 감자 파종기로 모종을 심어보기로 했습니다. 농사담당자는 직접 키운 모종이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모종을 파종기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다행히 모종이 사뿐히 두둑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스님이 파종기로 땅을 찍으면 행자가 모종을 넣어주고 다시 파종기를 싹 들어 올렸습니다.

“이렇게 심으면 되겠네요. 다른 사람은 흙을 북돋워주세요.”


스님과 행자는 호흡을 맞춰 빠르게 모종을 심었습니다. 마술처럼 모종이 쏙 들어가서 땅 위에 우뚝 섰습니다. 너무 빨리 심어서 나머지 네 명이 흙을 북돋워도 심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웠습니다. 모종을 넣어주던 행자도 흙 북돋우기로 일을 바꾸었습니다.

“스님, 모종이 말라서 저도 흙을 북돋우겠습니다.”

“그래요.”

스님은 혼자서 모종을 심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끈으로 허리에 모종판을 차고 혼자서 파종기로 모종을 심어보았습니다.



한 시간 만에 비닐하우스 한 동에 모종을 다 심었습니다. 어느 정도 흙을 북돋우고 스님과 행자는 다음 비닐하우스로 가서 계속 모종을 심었습니다.


다음 동에도 금세 모종을 다 심었습니다. 파종기에 묻은 흙을 짚으로 깨끗이 닦아놓고 스님도 함께 흙 북돋우기를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이 조금 지나 고추 모종 1400여 포기를 다 심었습니다.

“내일까지 고추 모종을 심을 줄 알고 회의도 안 잡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심었네요. 수고했어요.”


고추 모종을 다 심고 스님은 농사담당자에게 텃밭에 심을 채소 모종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텃밭에 심을 게 뭐 있을까요?”

“깻잎 모종이 있습니다.”

농사담당자는 겨울을 지나면서 저절로 자라난 깻잎 모종을 보여주었습니다.


“키운 게 아니라 알아서 자란 모종이네요. 꼭 야생 깻잎 같아요.”

스님은 깻잎 모종을 한 바구니 파서 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물을 줘서 땅을 촉촉이 적시고 깻잎 모종을 옮겨 심고 다시 물을 주었습니다.




울력을 마치자 곧 해가 졌습니다. 푸른빛 하늘 위로 초승달이 떴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스님은 다시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벌써 '실천적 불교사상' 교과를 모두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을 스님에게 마음껏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화상회의 방에 320여 명이 입장하고, 유튜브로 13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입학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공부 잘하고 계십니까?”

“네.”

“저는 오늘 고추 모종을 내느라 비닐하우스에 1,400포기를 심었습니다. 조금 전에 마치고 여러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주말 저녁인데 잘 보내고 있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매번 공부할 때마다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못해서 한 달에 한 번씩만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죠.”

7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른 후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즐거움이 왜 괴로움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왜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고 하나요?

“실천적 불교사상을 강의하실 때 락(樂)이 곧 고(苦)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저는 콘서트에 가서 들뜨는 즐거움을 얻지만 그것이 괴로움이 되지는 않거든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콘서트에 가서도 음악이 내 마음에 들어야 기분이 좋을 거잖아요. 만약 그 음악이 소음처럼 들리거나 ‘저런 음악을 하는데도 돈을 받고 콘서트를 하나?’라고 할 정도의 콘서트여도 무조건 콘서트에만 가면 즐겁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콘서트에서 보여주는 음악이 그만큼 내 마음에 드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겁니다. 그 말은 반대로 콘서트에서 보여주는 음악이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만큼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즐거움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른다고 말하는 겁니다.

술을 마실 때 기분이 좋다면, 술을 못 마시면 답답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게 됩니다. 아들을 낳아서 기분이 좋다면, 그 아들이 죽거나 잘못 됐을 때 아주 큰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돈을 벌 때 기분이 아주 좋다면, 돈을 잃을 때의 고통은 그만큼 커집니다.

길을 가다가 돌멩이를 봤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기분 좋음을 못 느꼈으면, 다음에 그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돌멩이를 치웠다고 해도 아무런 기분 나쁨이 안 일어납니다. 어느 꽃나무를 보고 아주 기분이 좋았다면, 누군가 그 나무를 베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길거리에 있는 잡목을 볼 때 아무런 기분 좋음이나 기분 나쁨이 없었으면, 누가 그 잡목을 베는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가 않습니다.

즐거움은 내가 바라는 것이 충족될 때 일어납니다. 바라는 게 없는데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바라는데 바라는 대로 되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라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고(苦)와 락(樂)은 둘 다 그 뿌리가 욕구에 있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기분이 좋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거예요. 욕구를 그대로 둔 채 욕구가 이루어질 때의 기분 좋음만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면 이 세상에는 즐거움 밖에 없겠죠.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욕구를 그대로 두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분리해서 즐거움만 취하겠다는 것의 모순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즐거움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세계관에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습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는 곳인데 그 바뀜이 자유자재한 곳입니다. 그래서 타화자재천이라고 불립니다. 그곳의 우두머리를 마왕(魔王)이라고 부릅니다. 최고로 좋은 천상이 타화자재천이고, 그곳의 우두머리가 마왕입니다. 즉 욕망 세계의 지배자라고 볼 수 있겠죠. 부처님은 그런 욕망의 세계를 버리려고 했기 때문에 경전에는 마왕의 궁전이 흔들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윤회합니다. 즉문즉설을 할 때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대화를 한 번 살펴보세요. 사회에 나가서 취직하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죠.”

“그런데 사람들이 질문하는 걸 보면 직장을 다녀서 괴롭다고들 하잖아요. 가게 문을 열었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곧 장사가 안 된다며 괴로워합니다. 결혼했다고 좋아한 사람이 곧 결혼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결혼할 때 축하해 달라고 하거나, 주례를 서달라고 하거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저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부탁을 안 들어줍니다. 그 이유는 그게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조금 있으면 괴롭다고 찾아와서 난리를 피울 텐데 어떻게 함부로 축하를 하겠어요? 아이를 낳았다고 좋아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 때문에 괴롭다고 저를 찾아와서 질문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모든 일에는 다 양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서 그저 아이 하나만 믿고 ‘아이가 내 삶의 희망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라는 핵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그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되거나 병들거나 죽거나 하면 그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욕구에 의해 일어나는 즐거움, 즉 고와 락의 윤회 속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은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대신 즐거울 일도 같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경지를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涅槃)’의 뜻을 번역하면 ‘괴로움 없음’입니다. 욕구가 없어짐으로 인해 도달한 열반은 지속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괴로움이라는 불행이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윤회입니다. 인도식 표현을 빌리자면 천상에 갔다가 지옥에 갔다가를 반복합니다. 애인을 만나서 좋다면 곧 그 애인 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어떤 일 때문에 즐겁다고 할 때는 거기에는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오늘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못 만나게 되면 속상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만나자고 전화를 하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그 사람이 안 나온 겁니다. 그러면 바로 기분이 나빠집니다. 방금 기분이 좋았던 만큼 다시 기분이 나빠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락(樂)이 곧 고(苦)’라는 말의 뜻입니다.

이 원리를 알고 나면 우선 괴로움이 느껴질 때 특별히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내가 즐거웠기 때문에 괴로움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더 크게 괴로워하지 않는 관점을 갖게 되는 거예요. 누군가와 헤어지게 되어도 ‘그래도 너를 만나서 행복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고,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일찍 죽어도 ‘그래도 너랑 잘 살았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과보를 기꺼이 받는 자세를 가지면 욕망을 갖고 살아도 괴롭지 않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합니다. 두 가지만 행하면 됩니다. 첫째, 이미 행한 일에 대한 과보는 기꺼이 받는 겁니다. 둘째, 과보를 받기 싫으면 앞으로 그런 과보를 가져오는 인연을 안 짓는 겁니다. 신(神)이나 누구한테 빌 일이 없어요.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선택한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내가 수용하면 돼요.

그런데 여러분은 선택만 하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하잖아요. 돈을 빌려놓고 갚기는 싫어하는 겁니다. 법의 이치는 ‘돈을 빌렸으면 갚아라. 갚는 걸 힘들어하지 마라’ 이겁니다. 돈을 갚으면서 ‘덕분에 어려움을 잘 극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갚는 겁니다. 만약 갚는 게 힘들면 다음부터는 조금 어렵더라도 빌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질문을 들어보면 모두 상대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선택해 놓고는 그 과보를 안 받으려고 하는 데서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돈을 빌려서 쓸 때만 생각하고 갚을 때를 미리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나 어떤 선택이든 과보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힘든 거예요.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 지속 가능한 행복을 얻으려면 욕망에 의한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욕망에 의한 즐거움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즐거움을 누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원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만약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기 때문이니까 그걸 기꺼이 수용하든지, 그게 싫다면 원인을 제거하라는 얘기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계율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제가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 복싱입니다. 복싱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 기도하는 행위는 실질적으론 도움이 전혀 되지 않으니 무의미한 행위일까요? 코로나 종식을 바란다면 기도를 하기보다는 캠페인을 벌여야 할까요?
  •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의 폭력에 항거하고 있습니다. 로힝야족들의 고통에는 조용히 있던 미얀마 국민들이 지금은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알아차림에 대해 궁금합니다. '화가 났구나' 알아차린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요즘 유럽인들의 동양인들에 대한 폭력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인종 간 차별과 갈등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질문한 사람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즐거움이 왜 괴로움이 되는지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욕망을 충족시켜서 얻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가장 가슴에 남습니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스님이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욕망을 충족시켜서 얻는 즐거움을 추구해도 됩니다. 대신에 과보를 받을 각오를 하면 돼요. 나중에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하고 후회를 하게 될 것 같으면 욕망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웃음)

방송을 마칠 시간, 스님은 정토불교대학의 3대 핵심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여러분의 의문이 다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몇 가지 사례들을 갖고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를 배우는 겁니다. 관점을 바르게 갖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 자리는 인생 상담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는 법문을 하는 것이지 인생 상담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도 주인공이 아니고, 하느님도 주인공이 아니고, 법륜 스님도 주인공이 아니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법륜 스님이 뭘 많이 안다고 해도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법문을 듣고 나서 스님이 말한 관점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님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뿐이에요.

법문 듣기, 체험 하기, 마음나누기

법문을 듣는 시간은 안내를 받는 시간이고, 실제로는 내가 직접 해봐야 합니다. 수행은 체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게 다 듣는 대로 되면 왜 굳이 연습을 하겠어요?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됩니다. 안 된다고 포기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안 된다는 걸 확인하는 것도 체험입니다. ‘이거 쉽지 않네’ 하고 알아가는 것도 체험의 일부예요.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면 ‘꾸준히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 자신의 경험담을 사람들과 나누면, 나는 잘 안 된다고 좌절을 했는데 잘 되는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얻게 되고, 나는 한 번 만에 된다고 교만했는데 안 되는 사람을 보면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되고 좌절해서도 안 되겠구나.’
‘처음에는 안 되더니 나중에는 되는구나.’
‘나는 안 되는데 저 사람은 되는구나.’
‘저 사람은 안 되는데 나는 되는구나.’

이것이 바로 ‘마음 나누기’입니다. 서로 격려하면서 한 발씩 나아가기 위해 마음 나누기를 하는 거예요. 정토불교대학의 3대 요소는 법문 듣기, 체험 하기, 마음 나누기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꼭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을 하고 스님이 손을 흔들자 정토불교대학 학생들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내일은 제10차 천일결사 중 제5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오전에 입재식 법문을 한 후 오후에는 재활용 창고를 정리하는 울력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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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전쟁과 평화는 같은 것이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전쟁 때도 평화롭다.

2021-05-01 21:40:24

김경분

생각을 좀달리하믄 내안의것들이 편해질수있군요
좋은말씀 잘받아드리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2021-05-01 07:54:21

실상

통일특위는 수행 전법을 넘어 사회저정의 실현에 앞장서야한다는 정체성 괸련 말씀을 듣고 각성합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나누며 살겠습니다.

2021-04-29 06: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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