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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법사단과 하루 종일 정토대전 경전모음집 편찬에 대해 회의한 후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희양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문경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오전 8시 30분에 정토대전 경전팀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 있는 법사님들은 스님과 함께 참석하고, 묘덕 법사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보수 법사님은 구미 아도모례원에서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회의에 이어서 법사님들은 경전 속 부처님의 교화 사례를 다양하게 발췌해 왔습니다. 오늘은 옥야경과 육방예경, 수닷타 장자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하고, 스님으로부터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사님들이 발췌해 온 경전을 읽고 나서 스님이 말했습니다.
“경전의 내용 중에는 후대에 자꾸 덧붙인 게 많습니다. 특히 나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식의 표현은 교훈을 주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럼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나쁜 일을 한 사람인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어요. 좋은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왕으로 태어난다는 식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럼 왕으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좋은 일을 한 사람인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어요.
이런 표현은 당시의 봉건 시스템을 합리화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역으로 해석하면 ‘당신은 전생에 나쁜 일을 해서 장애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데, 이런 인과응보적인 표현은 장애인의 차별을 합리화 하는 것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맞지가 않아요.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남에 의해서 좋고 나쁨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원문과 주석서가 구분되어 있었어요. 주석서는 원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쓴 글이니까요. 그런데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와서 번역이 될 때는 주석서의 내용을 원문 속에 넣어서 스토리를 덧붙이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 경전 속에 당시의 시대상을 조금씩 반영한 거죠. 그래서 후대에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그 내용이 원문인지 주석서인지 구분을 못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의 사회사상을 편집할 때도 너무 현시대에 맞게끔 편집하면 똑같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어요. 나중에 시대가 바뀐 뒤에 돌아보면, 지금의 사회운동적 관점도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평가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이 내용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당시의 봉건적인 사회상을 반영해서 교훈이 되도록 편집한 것인데, 지금 우리가 읽어보면 불법에 어긋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정토대전을 만들 때는 항상 ‘태생에 의해서 차별될 수 없다’ 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연기, 무아, 무상을 늘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아침에 시작한 회의는 오후 4시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은 굉장히 높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비는 저녁까지 계속 내렸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며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금요 정기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1000여 명의 저녁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하고, 200여 명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스님은 봄비가 내리는 문경의 날씨 소식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어요? 지금 밖에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촉촉이 내리는 봄비는 산불이 날 수 있는 위험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농부들이 파종을 하는데 긴요합니다. 나무에 움이 트고 새싹이 자라는 데도 봄비가 큰 역할을 합니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서 대다수 나뭇가지가 앙상하지만, 3월 하순으로 넘어가면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은 곳곳에서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봄은 이미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 임시 전국대의원회의 결과 및 4월 10일 새로운 선거 이후 수행법회 운영에 대해 안내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화상회의 방에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부부관계를 거부해서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남편이 부부관계를 거부해요. 남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부인과 관계를 멀리할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남편이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편안하게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이때 너무 조급하게 부부관계 문제로만 접근하면 남편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남편의 건강을 중심에 놓고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부인이 성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너무 강해서 남편이 심리적으로 부인에게 주눅이 들어있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부인이 남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첫째, 남편에게 이렇게 마음을 내어 보세요.
‘내가 이분을 위해서 도움을 드려야겠다. 육체적인 요인이 원인인지,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인지, 또는 회사에서 과도한 업무로 인한 것인지, 이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충분한 대화를 해봐야겠다.’
그런데 질문자가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 잘 안 될 수 있죠. 설령 질문자가 이런 마음을 내더라도 남편이 질문자에게 솔직하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클리닉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상담을 권하면 상담을 하러 안 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먼저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남편도 함께 상담을 받아서 의논해 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해요. 나는 남편에게 마음이 떠나지 않았는데 남편의 매정한 태도 때문에 나도 마음이 떠나려고 한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봐야 나중에 미련이 남지 않아요.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헤어지게 되면 자녀나 내 주위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후회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결혼을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후회를 합니다. 또 반대로 도저히 그 사람과는 못 살 것 같아 이혼을 하지만, 이혼을 하고 나면 또 후회를 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방법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마음일 때 후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될 때는 지금과 같이 살아가는 겁니다.
둘째, ‘나는 수행자다. 남편은 한집에 사는 동거인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비록 한집에 살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재미있게 살면 됩니다.
셋째, 남편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실패하고, 혼자 살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남편과 대화를 해서 헤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36계 중에서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먼저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있는 법은 가능하면 폐기하지 말고, 없는 법은 가능하면 만들지 마라.’
그렇다고 항상 이대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있는 법을 폐기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지지가 있어야 하고, 없는 법을 만들려고 할 때도 3분의 2 이상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항상 현실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질문자도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도저히 안 되면 공동생활은 유지하되 부부관계는 포기하면 됩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헤어져서 각자 자기 생활을 해나가면 됩니다. 앞의 두 가지 방법부터 먼저 시도해보고, 도저히 안 될 때 세 번째 방법으로 가야 해요. 질문자는 앞의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습니까?”
“동거인의 생활을 13년 정도 해오고 있습니다. 부부관계에 대한 바람은 이미 13년 전에 접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헤어지지는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아이가 성인이 되는 내년에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그럴 때 남편과 헤어지는 선택을 할 때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만약 남편과 계속 같이 산다면, 남편을 바라보는 제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남편과 먼저 대화를 해보세요. 남편이 다른 여성한테는 매력을 느끼는데, 질문자에게는 그렇지 않고 위축되어서 부부관계가 안 된다고 한다면, 남편과 질문자가 1년 정도의 시간을 정해서 함께 노력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노력을 했는데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면, 그것은 헤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년 동안 부부관계를 안 한 것은 법적으로도 이혼이 성립하는 조건이에요.
그런데 질문자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고 19년간 같이 산 남편이기도 한 상대편의 상태가 어떤지 먼저 걱정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먼저 체크해 봐야 해요.
남편의 건강이 안 좋기 때문이고, 그런 상황에 대해 질문자가 이해를 한다면, 즉 ‘사람은 좋은데,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을 갖고 헤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라면, 헤어지지 말고 동거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질문자가 그동안 참고 있었고, ‘나는 50대밖에 안 되었는데,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합의 이혼을 하면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선 서로 치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완전히 남남으로 살기보다는 일 년에 몇 번이라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정을 표현하면서 생활하는 방식으로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그게 싫으면 헤어지는 선택을 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윤리와 도덕에 얽매여서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며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자가 먼저 노력을 한 후에 결론을 내려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가 없어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섣불리 선택하면 나중에 ‘그때 조금 더 노력할 걸’ 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후회가 없는 상태가 되려면 우선 최선을 다 해봐야 해요. 최선을 다해봐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자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라면 부모가 더 이상 자녀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으니까 질문자의 인생길은 스스로 정하면 됩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내용을 감안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남편과 남처럼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왜 남처럼 살아왔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비록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다 해도 남이 아닌 부부잖아요. 성적 관계가 없이도 친밀감을 유지해나가는 형제자매나 공동체 생활처럼 룸메이트가 되어서 웃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겉으로는 그렇게 지낼 수 있는데요. 남편과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날카로워집니다. 제가 그런 상태가 되는 게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질문자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은 남편과 부부관계를 갖기를 바라는 미련이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부부관계를 하지 못하는 문제를 솔직하게 내어놓고 상담을 받는 게 좋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요. 그런 미련이 완전히 없다면 날카롭게 남편을 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마치 한집에서 오누이가 함께 살 듯이 갈등 없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도 있거든요.
질문자의 내면에 부부관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고 날카로운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마음을 숨기지 말고 진솔하게 꺼내놓고 상담을 받으면서 남편과 함께 치료를 받아보라는 겁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요.”
“네. 잘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부부관계에 대해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를 위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성적인 문제를 대부분 숨기고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윤리나 도덕에 얽매이거나 남의 눈치를 보면서 욕구를 너무 억압하고 살면 병이 됩니다. 물론 수행자가 되어서 욕구에 끄달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제하며 생활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게 아니라 남의 눈치를 보며 억제하고 사는 것은 나중에 결국 병이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덮어놓으려고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살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헤어지는 것 또한 일종의 외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재의 상태를 충분히 검토해보고 ‘우리는 같이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게 좋겠다’ 하는 판단이 들면 서로 합의해서 헤어지는 선택을 하면 됩니다.
나를 고집하게 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수행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회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약간 회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보기만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거예요. 부부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공동생활의 이점을 누릴 수 있잖아요? 그러니 우선 차근차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시도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두에 임시 전국 대의원 회의 결과에 대해 법문을 하다 보니 끝나는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방청객들이 소감을 말하는 시간은 생략하고 법회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 대전 불교사상 편찬팀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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