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24 초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2일째
“바른 가르침인지 구분하는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초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2일째 날입니다. 스님과 6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가운데 새벽 4시 20분에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주시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놓치면 다시 알아차립니다. 긴장하거나 애쓰지 말고,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갑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40분간의 명상을 마치고 이어서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6시 20분부터 다시 30분 간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한 후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참가자들은 자신의 상태 보고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졸리고 피곤하여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졸음이 쏟아져서 제대로 명상을 못 했습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명상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졸음에 빠지는 중에 꿈처럼 나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다리가 아파서 풀고 싶은데, 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긴장을 하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미래의 생각들까지 떠오릅니다. 호흡에 집중이 안 됩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의 상태 보고를 꼼꼼하게 읽어본 후 오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30분 간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한 후 오후 2시에 낮 법문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심자들은 하루 종일 명상만 하게 되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낮에도 스님이 법문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상태 보고에는 힘들다는 아우성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오늘이 명상 2일째인데 여러분들 힘드시죠? 오늘과 내일이 제일 힘들 때입니다. 등산에 비유하면 이제 3부 능선으로 접어든 거예요. 계곡을 타고 쭉 올라가다가 이제 계곡을 떠나 산등성으로 올라가기 위해 비탈진 오르막 길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느껴지는 겁니다. 정상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절대 포기만 하지 마세요

명상을 할 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졸음, 다리 통증, 망상, 이 세 가지입니다. 호흡을 놓쳐도 괜찮고, 계속 졸아도 괜찮아요. 다 필요한 과정입니다. 포기만 안 하면 돼요. ‘아이고, 힘들어서 못하겠다’ 이러면서 명상 자체를 포기한다든지, 앉기는 앉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한다든지, ‘힘드니까 그냥 망상이나 피우자’ 한다든지, ‘다리가 너무 아프니까 다리를 뻗고 앉아있자’ 한다든지, 이렇게 포기만 안 하면 됩니다.

졸면서라도 어쨌든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계속 시도해봐야 합니다. 통증이 일어나더라도 억지로 참으면서라도 해봐야 합니다. 망상이 일어나서 끌려갔더라도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되고 안 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곧바로 운전을 하겠어요. 안 되는 것이 정상이죠. 그러나 포기해버리면 못하게 되는 거예요. 잘 안 되더라도 어쨌든 계속 시도하면 결국은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어서 스님은 왜 수행이 사회운동이 되어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

수행이 사회운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

“미래사회는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온갖 기술 발전이 이뤄지는 신사회가 될지 몰라도,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인간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는 더 커질 겁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밖에서 한국을 보면 천국처럼 느낍니다. 한류가 생길 만큼 영화나 문화산업이 발전했고, 교통이나 음식, 배달 문화 등이 발달해서 생활도 아주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공항에 와 봐도 시설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고, 월급 수준도 높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 보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난리인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여러분들이 자기 치유를 안 하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수행을 통한 자기 치유를 안 하면 미래에 인류는 공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계속 마약을 찾듯이 각 부분에서 그런 중독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취미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독에 가깝습니다. 마약만 중독이 아니라 차(茶) 동호회에서 1억 원 하는 고급차를 찾는다든지, 몇 만 불 하는 와인을 찾는다든지, 이런 것도 중독입니다. 신체적으로만 중독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중독된 것입니다. 커피, 명품, 골동품 이런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삶의 문제가 어떻게 끝이 나겠어요. 좋아하는 것에 집착이 되어서 편집증을 보이는 거예요. 밖에 사람이 볼 때는 ‘이거면 어떻고 저거면 어떻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거기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집착하고 편집되어 있는 상태로는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고통은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습니다. 차를 마셔도 되고, 커피나 와인을 마셔도 됩니다. 그걸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편집된 상태, 사로잡힌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로워진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만 바꾸면 다 해결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키는 등 사회적인 개선이 필요해요. 그러나 제도를 아무리 개선해도 수행을 통한 의식의 혁명적 변화 없이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의식의 변화 없이 계속 중독된 상태로 가면 결국은 공멸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150여 년 전에 청나라가 아편에 중독되어서 아편전쟁으로 망했듯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되든지 우리는 이 수행을 통해서 내 개인이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건전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주체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편협되어 있거나 상처를 받아서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게 되면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수행은 단순히 개인의 심성을 개발하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 환경을 보전하는 환경운동, 인류의 절대빈곤을 퇴치하는 구호활동, 계급, 민족, 성, 인종으로 인한 갖가지 차별을 해소하는 인권운동, 갈등을 해소하는 평화운동 등 이런 운동들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격으로 개인의 영성을 개발해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수행 역시 커다란 사회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을 불교라는 종교 안에만 가둬놓을 것이 아니라, 종교나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이 가르침을 통해서 삶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을 얘기할 때 종교적인 용어를 가능한한 쓰지 않고 생활 용어를 쓰고 있고, ‘행복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약은 스님이나 불교인들만 낫게 하는 약이 아니라, 누구나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명상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

아무리 좋은 약도 여러분이 직접 먹어봐야 병이 낫듯이, 수행도 여러분이 직접 해봐야 ‘수행이 내 삶에 좋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직접 안 해보고 그냥 머릿속으로만 ‘좋구나’ 하고 있으면, 조금만 힘들어져도 포기해 버립니다.

같은 공간에 모여서 명상을 한다면 제가 억지로라도 밀고 가겠는데,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고, 여러분 대부분이 초심자이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말로라도 간곡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오늘과 내일이 가장 큰 고비이기 때문에 힘들어지면 그냥 벌렁 누워서 명상을 안 해버리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SNS를 들여다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왕 참여했으니까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욕망을 제어해야 됩니다.”

1시간 동안 법문을 통해 힘을 북돋워 준 후 오후 공양 시간을 갖고 5시부터 다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30분 간 네 번의 명상을 했습니다.

그 사이 해가 지고 산 너머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자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명상수련의 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

첫째,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욕구를 따라가면 만족감을 느끼게 되니까 지금은 기분이 좋은데 나중에 큰 손실이나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욕구는 무조건 멈춰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 큰 손실로 예견될 때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명상을 자꾸 기술적으로 접근합니다. 욕망대로 실컷 먹고 실컷 자면서 앉아서 명상할 때 손을 어떻게 하고 호흡을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정신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일시적 놀이에 불과합니다. 이런 명상은 나를 해탈과 열반으로 이끌어주거나 내 삶을 변화시켜주지 못해요. 잠시 술 한 잔 먹고 기분 좋은 것에 불과합니다.

명상 시간이 끝나면 다리 아프다고 벌렁 누워서 ‘아이고 다리야’ 하고 누워 있고, 배가 고프니까 때가 아닌 데도 음식을 막 찾아서 먹고, 종소리가 나면 그제야 ‘가서 명상해야지’ 하고 앉아 있고, 이런 식으로 명상수련에 참여하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명상의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참여하는 건 시간 낭비예요.

바른 가르침인지 구분하는 방법

그런데 요즘 명상이 유행하면서 이렇게 명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술 먹고 노래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듯이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을 하거나 춤 명상을 한다고 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전생 체험을 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것도 다 즐거움을 찾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지금 행해지는 대부분의 명상 프로그램이 상업화되어 있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걸 겁니다. 즐거워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또 신청을 하니까요. 힘들면 누가 돈을 내고 또 하겠어요. 그래서 정법(正法)이 아닌 삿된 가르침에는 계율이 없습니다. 사법(邪法)은 계율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욕망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하는데, 이게 없으면 벌써 그것은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아셔야 돼요.

계율을 지킨 다음 해야 할 일

그렇다고 계율만 지킨다고 해탈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굳이 명상을 할 필요가 없죠. 계율을 지키는 것을 바탕으로 깔고 그걸 울타리로 한 다음, 둘째, 선정(禪定)을 닦아야 합니다.

선정을 닦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위빠사나 명상입니다. 한문으로 번역된 표현으로는 ‘관법(觀法)’ 수행입니다. ‘관(觀)’은 있는 그대로 비추듯이 보는 것을 뜻합니다. 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조견(照見)’이 비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관(觀)’이에요. 어두운 밤에 서치라이트로 비춰보듯이 법을 확 비춰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을 뜻하는 관법 수행입니다. 빨리어로는 ‘위빠사나(Vipassanā)’라고 불러요.

위빠사나 수행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이 수행법을 처음 발견했고, 이 방법이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가장 바르고 쉬운 길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몸(신, 身), 느낌(수, 受), 마음(심, 心), 진리(법, 法), 이렇게 4가지를 관합니다. 그래서 사념처관(四念處觀)이라고도 합니다. 그중 가장 기초이면서 기본인 것이 호흡 알아차림과 동작 알아차림입니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면 우리 몸에 있는 미세한 감각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미세한 감각이 알아차려지게 되면 느낌도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각각에 대해 더 터득해야 되지만, 호흡 알아차림에만 집중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터득해 나갈 수 있습니다.

셋째,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이어서 지금 하고 있는 명상법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지 경전 속 내용을 읽어 주었습니다. 초심자들이다 보니 왜 이런 방법으로 명상을 하는지 의문이 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꾸루 지방에 있는 깜마사 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라고 하는 사념처이다...” (이하 생략)

스님이 읽어준 경전은 대념처경입니다. 사념처관을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일 저녁 법문 때 설명할 내용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명상을 하는 데는 이 정도만 알면 됩니다. 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자꾸 마음속에서 ‘이래서 뭐가 되나’, ‘호흡 알아차리면 뭐해 다리만 아프지’ 이런 의심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기 싫기 때문에 이런 의심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왜 이런 연습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필요성을 반복해서 설명해주는 겁니다.

오늘은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고, 내일은 어떤 원리에 의해서 우리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거기에 선정을 닦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수련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명상을 하는 목표와 자세, 방법에 대해 아주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침 안내 방송이 나가고 참가자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책상 앞에 앉아 긴급히 화상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내년도 중요한 사업에 대해 의논할 게 있어서 각 담당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밤 11시에 화상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초심자 온라인 명상 3일째 일정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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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성

수행을 통한 자기 치유를 하지않으면 인류가 공멸의 길로 ㄹ 수 있으므로 수행은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운동이 되어야한다는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내가 중독되어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2-29 06:31:24

실상

명상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이고,
그 방법이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한다는 말씀 잘 새깁니다.

2020-12-28 08:32:28

굴뚝연기

[이 약은 스님이나 불교인들만 낫게 하는 약이 아니라, 누구나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구는 무조건 멈춰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 큰 손실로 예견될 때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길입니다.]네 스님~이 생에 스님가르침 배울수 있다는게, 크나큰 행운이고 가피입니다^^*

2020-12-28 00: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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