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30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1일째
“불쾌한 기분이 들 때 그 원인을 분석하면 도움이 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5일 동안 스님은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온라인 명상수련을 시작합니다.

명상수련을 시작하기 전 스님은 문경 수련원 백화암 뒷산에 올라가서 밤을 한가득 주웠습니다. 문경 공동체 식구들이 먹을 수 있게 나눠준 후 온라인 명상수련 입재 법문을 하기 위해 명상원으로 향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고향 방문과 여행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도 이에 동참하기 위해 독신자들을 위한 온라인 명상수련을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스님은 명상수련을 시작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입재 법문을 한 후 온라인 속 대중과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하루는 매일 계속되지만, 온라인 명상수련이 진행되는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는 스님의 하루 제작팀도 명상과 묵언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스님의 하루 소식 대신 즉문즉설 법문을 매일 한 편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온라인 명상수련이 끝나고 10월 6일에 다시 생생한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9월 23일 수행법회 때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불쾌한 기분이 들 때 그 원인을 분석하면 도움이 될까요?

“요즘 저의 주 관심사는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다 보니 쾌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 때 ‘이건 뭐지?’ 하고 분석하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특히 불쾌한 기분이 들 때 더 그렇습니다. 원인 분석을 해야 불쾌한 기분이 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요령을 스님께 듣고 싶습니다.”

“알아차림의 대상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몸(身)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명상을 할 때는 호흡 알아차림, 움직일 때는 동작 알아차림, 또 몸의 구성이나 몸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알아차림 등이 있습니다. 특히 명상을 할 때는 가장 대표적으로 몸의 작용 중에 호흡 알아차림을 주로 하게 됩니다.

둘째, 느낌(受)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외부 자극이 우리 몸과 부딪치게 되면 가장 먼저 느낌이 일어납니다.

셋째, 마음(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느낌에 기초해서 감정이 일어나는데, 이 감정을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고 하죠. 즉 ‘좋다’, ‘싫다’ 하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넷째, 이치(法)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성제, 수행의 다섯 가지 장애 요인, 팔정도 등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의 이치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느낌은 다만 알아차릴 뿐

이 네 가지 알아차림의 대상 중에 질문자가 물은 쾌, 불쾌는 느낌입니다. 느낌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쾌, 불쾌를 느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느낌은 외부의 자극이 나의 업식과 부딪쳐서 일어나는 반응일 뿐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식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어떤 느낌이든 많은 경험을 하는데, 이 경험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속에 모두 누적이 됩니다. 이것을 ‘업식’이라고 합니다. 인도말로는 ‘까르마 (Karma)’라고 하죠. 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코로 냄새 맡든, 혀로 맛을 보든, 몸의 부딪힘으로 감촉이 일어나든, 머리로 생각을 하든, 외부에서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이 우리의 업식을 통과합니다. 이 업식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리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된장찌개 냄새를 맡아도 자기 업식에 따라서 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장구 소리를 들어도 쾌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팝송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노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음악을 들으면 불쾌합니다. 그래서 ‘시끄럽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반면에 젊은이들은 장구 소리를 들으면 즐겁지가 않습니다. 왜 똑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느낌이 서로 다를까요? 그 이유는 각각 자신이 가진 업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아가는 방법

이 업식에 따라서 쾌, 불쾌는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불쾌를 알아차렸다면 ‘왜 불쾌할까?’ 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불쾌하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칭찬을 들으면 쾌하구나’

‘약간이라도 내 의견에 반대하면 불쾌하게 느끼는구나’

‘나는 이런 냄새를 맡을 때 불쾌하게 느끼는구나’

‘나는 이런 모양을 볼 때 불쾌하게 느끼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한 여성의 얼굴을 보고 아주 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화장한 얼굴을 보면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는 이런 것을 쾌하게 느끼는구나’, ‘나는 이런 것을 불쾌하게 느끼는구나’ 이렇게 잘 알아차리면, 쾌, 불쾌가 일어나는 내 업식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업식에 자극이 와서 일어나는 많은 반응을 보면 ‘아, 나는 이런 업식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이것이 자기가 자기를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나를 안다’ 이 말은 내 업식을 안다는 뜻입니다. 외부의 자극이 내 업식에 부딪히면 쾌, 불쾌가 먼저 일어나고, 쾌, 불쾌에 따라 ‘좋다’, ‘싫다’ 하는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좋다 싫다 하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좋다 싫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좋은 것은 잡으려 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 하는 ‘갈애(渴愛)’가 일어납니다. 거기에 따라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최종적인 행위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는 ‘행(行)’이라고 표현합니다. 행(行)을 하게 되면 새로운 업(業)을 짓게 됩니다. 이 업(業)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에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느낌 알아차리기를 놓쳤을 때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외부의 자극을 받았을 때 가장 첫 번째로 일어나는 것이 쾌, 불쾌라고 하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은 순간순간 일어나기 때문에 찰나에 일어나고 찰나에 사라집니다. 만약 불쾌한 감정이 계속된다면, 불쾌가 느낌을 넘어서서 싫은 감정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흔히 ‘불쾌한 감정’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느낌을 넘어서서 기분 나쁜 감정으로 확대된 것을 말해요.

그러나 쾌, 불쾌가 일어난 것을 재빠르게 알아차리면 감정으로 옮겨 붙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쾌, 불쾌가 일어난 것을 늦게 알아차리면 감정으로 옮겨 붙어서 점점 커집니다. 그때는 아무리 알아차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쾌, 불쾌를 늦게 알아차린 것은 사실 쾌, 불쾌를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감정을 알아차린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느낌과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질문을 한 것 같아요. 질문자가 알고 있는 것은 쾌, 불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느낌이 이미 좋다, 싫다 하는 감정으로까지 전이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느낌을 놓치고 감정을 알아차리면 감정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정이 올라가는 속도가 줄어들어 조금 있으면 꺾이기 시작합니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꺾이게 돼요. 못 알아차리면 계속 급속도로 올라가게 되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느낌 알아차리기입니다. 느낌을 놓쳤으면 감정이라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감정도 놓쳤으면 행위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때라도 잘못한 줄 알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즉, 이미 화를 내버렸을 때는 화를 낸 걸 뒤늦게라도 알아차리고 참회를 해야 해요. 순서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느낌에 대해서는 원인 분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그런 느낌이 일어난 원인을 알고 싶다면, 그 원인은 바로 질문자의 업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느낌을 자꾸 알아차리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돼요.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업으로 인해 외부 자극이 오면 이렇게 반응하도록 내 업식이 형성됐구나’

이렇게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쾌, 불쾌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쾌, 불쾌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말이 내 업식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현상이 쾌, 불쾌입니다. 그 사람이 한 말과 행동은 그냥 단지 소리이고 모습일 뿐이에요.”

“네, 스님 말씀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불쾌한 기분이 드는 현상은 같은 패턴을 갖고 무한 반복을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게 바로 업식입니다. 업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계속 똑같은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갈수록 더 강화됩니다. 같은 반응이 자꾸 반복된다는 것은 그 업식이 점점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이 제 업식이고 제 문제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자꾸 ‘왜 내가 이런 머리 아픈 공부를 시작해서 계속 개선이 안 되는 업식을 계속 반복해야 되나’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참 지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말씀을 스님께 드리면 좀 꾸중을 들을 것 같은데…”

마음을 알아차리는 공부가 힘이 드는 이유

“꾸중을 들을 일은 아니에요. 내가 기분 나쁜 이유가 저 사람 때문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내 업식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나의 반응이었을 뿐이구나, 이걸 아는 것이 왜 힘이 들어요? 이 공부는 전혀 힘들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기분 나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업식 때문에 그렇구나’

이렇게 알게 되면 오히려 속이 시원해집니다. 다음부터는 기분 나쁜 감정이 일어나도 ‘어, 기분이 나쁘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이지 ‘너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이렇게 미워하는 감정은 안 일어납니다. 오히려 ‘이 공부를 한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이래야지요. ‘지난한 공부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해결이 안 되니까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러면 계속 짜증내고 성질내면서 살면 됩니다.

이 공부는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동안 몰랐는데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 기분 나쁠 일은 아니에요. 기분 좋은 것까지 아니더라도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쁜 줄 알았는데 내 업식이 반응한 결과로 기분이 나쁜 것이구나’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되면 속이 시원해지거나 기분이 좋아지면 좋아졌지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아요.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공짜로 먹으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공짜로 결과를 얻으려는 거예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결과만 좋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입니다. 원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괜히 이걸 공부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힘이 들 이유가 뭐 있으며, 기분이 나쁠 이유가 뭐 있어요?”

“스님 말씀처럼 제 욕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빨리 개선이 됐으면 좋겠는데,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니까 답답합니다.”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고 해서 개선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한다고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돈을 버는 행동을 해야 돈을 벌지요. ‘빨리 갔으면 좋겠다’ 한다고 빨리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빨리 갈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거예요.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개선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개선이 됩니다.”

“네, 행동하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네. 그리고 업식은 쉽게 개선이 안 됩니다. 이미 업식이 됐다는 것은 오랜 시간 습관으로 굳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의 자동으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식을 바꾸려고 하면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재미를 붙여서 가볍게 지속적으로

노력의 핵심은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조금 하다 말고 해서는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지속적으로 하려면 ‘재미있네’ 이러면서 재미를 자꾸 붙여야 해요. ‘이번에는 되네’, ‘이번에는 안 되네’, ‘이야, 나도 되네’ 이러면서 계속하면 재미있잖아요.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울 때를 생각해 보세요. 계속 넘어지는 가운데도 ‘이번에는 몇 발 갔다’, ‘이번에는 넘어졌네’ 하면서 계속 연습하듯이 자꾸 재미를 붙여야 돼요.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자전거가 저절로 타지기를 바라니까 힘이 드는 겁니다. 남이 자전거 타는 모습이 좋아 보이니까 ‘나도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탈 수 있겠지’ 하고 욕심을 냈던 거예요.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든, 운전을 배우든, 피아노 치는 것을 배우든, 뭐든지 꾸준히 해서 익혀야 하는 것이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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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즉문즉설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1-04-18 00:40:35

보각

스님 명상수련을 하고 나서 스님의 법문이 이전과는 달리 들립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잘 실천해보겠습니다

2020-10-07 13:54:17

보리수

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부지런히 해 나가야 한다. 그냥 알아차리기만 힌면 된다. 힘든 것이 아니다. 알게 되면 내가 편안해진다~고맙습니다

2020-10-06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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