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8.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공동체 안거 회향수련 2일째
“자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것”

안녕하세요.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안거 회향수련을 했습니다.

새벽 4시에 방송실에 도착한 스님은 혼자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행자들이 자리하고 4시 30분에 종송이 울려 퍼진 후 4시 45분에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4천여 명의 정토행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은 뒤로 돌아서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10차 천일결사 2차 백일기도 중 55일째 날입니다. 정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해오셨습니까? 지금까지 해오신 것에 이어서 아침 정진을 시작하겠습니다.”

곧바로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까지 50분 동안 기도가 진행되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스님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곳곳에서 폭우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북한에도 큰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밖에는 계속 비가 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어지네요. 장마는 대개 6월 말에 찾아오는데 올해는 7월 중순 즈음 시작하더니, 2주가 넘어서고 지금 3주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국이나 일본에 내린 비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곳에 폭우 피해가 발생해서 인명피해까지도 생기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황해도 등지에는 폭우 피해가 큰 것 같습니다. 북한은 1995년에 대홍수를 겪었는데, 당시 이미 식량부족 문제를 안고 있었던 상황이라 홍수로 인해 식량문제가 더욱 심각해졌고 수백 만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정토회도 그 일을 계기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그런 큰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

“오늘 우리가 읽는 경전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여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쿠시나가라에 도착했고, 사라나무 숲에서 ‘오늘 저녁 이곳에서 열반에 들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은 열반에 드시는 날 저녁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쿠시나가라는 시골입니다. 아난다 존자가 생각하기에 쿠시나가라는 시골인 데다 열반 장소가 숲 속인 반면 왕사성(라즈기르)이나 사위성(쉬라 바스티), 바라나시, 코삼비, 바이샬리 등지는 도시도 크고, 사람들도 많고,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많으니 그런 곳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고 부처님께 건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여,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 지금의 쿠시나가라는 비록 외진 곳에 있어서 시골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도 과거에는 큰 나라가 있었고 큰 도시가 있었다. 이곳은 열반에 들기에 부족한 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미래에 이곳은 성스러운 장소가 되리라.’

그러자 아난다 존자의 물음이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성 밖의 외진 숲 속이 아니라 말라족의 성 안에 들어가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쿠시나가라의 왕족이 말라족입니다. 즉, 왕족의 성 안에 들어가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이 초라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여,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 만약 내가 성 안에서 열반에 든다면, 나를 마지막으로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가 어렵다. 내가 이곳에서 열반에 들면 사람과 짐승, 하늘의 신들도 자신이 원하면 누구나 다 나를 볼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성 안에서 열반에 드시면 천민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까 부처님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왕족과 귀족들로 제한됩니다. 그러나 숲 속에서 열반에 드시면 왕족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다 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친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넓은 문’, ‘차별이 없는 문’,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하여 한자로 ‘보문(普門)’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의미로 열반의 장소를 누구나 다 찾아올 수 있는 숲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아난다가 마을에 가서 여래가 오늘 열반에 든다고 전하자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올 수 있었습니다. 이때 말라족 모두가 다 숲으로 와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임종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수가 찾아오니 한 사람씩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단위로 무리 지어서 인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인사를 드릴 때 아난다가 말라족의 누구인지 소개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친견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주 나이가 많은 ‘수바드라’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이 찾아옵니다. 수바드라가 부처님을 친견하겠다고 하니 아난다는 ‘인사하는 시간이 지났기에 더 이상 여래를 귀찮게 해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고 거절을 합니다. 그러나 수바드라가 오늘 꼭 부처님을 친견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서 아난다와 옥신각신하게 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부릅니다.

‘아난다여, 그를 막지 말라. 그는 나를 귀찮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의문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를 들여보내라.’

이렇게 부처님은 마지막 날의 마지막 저녁을 마치 평상시의 하루처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부처님의 이런 모습을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죽기 직전보다 더 바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죽기 직전의 순간에도 마치 일상처럼,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의 요구에 응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신통력을 보여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모습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시고, 우리 삶의 모범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내용을 접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런 모습을 새기면 부처님의 말씀과 삶에 자연스레 믿음이 생기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 집니다.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 곧 귀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절반을 경과한 시점입니다. 이번에 처음 입재해서 기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은 중간 고비인 50일을 못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초심자들을 위해 기도를 왜 하는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

“기도하는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함입니다. 간절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수행적인 기도와 종교적인 기도,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수행적인 기도는 ‘내려놓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얻기’가 아니라 ‘내려놓기’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거나 ‘내가 옳다’ 하는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렇게 내려놓음으로 해서 괴로움, 스트레스, 근심, 걱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둘째, 종교적인 기도는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건 내 힘만으로는 안 되니까 큰 힘을 가진 존재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든 큰 힘을 가진 존재의 도움을 얻어야 하고, 그런 존재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나의 기도를 듣고 그 신이 감동을 해서 나를 도와줄 정도의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기도의 경우에도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꼭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 마음속에서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성취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아주 간절하게 기원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동학에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있는데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뜻입니다.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곧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신이 감동을 하는 것은 곧 사람이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20년 전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는 모습을 보고 ‘저들은 굶어 죽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다니면서 눈물을 흘리며 ‘북한동포를 도와야 한다’라고 호소하게 되었죠. 그렇게 간절하게 호소하니까 평소에 북한에 대해서는 반대하던 사람도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굶어 죽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괜찮겠다’ 이렇게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행에 융자를 받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전세금을 빼고, 노동자들은 월급을 모아서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런 도움이 하나씩 모여서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이걸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불보살의 가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기도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정성이 있다는 말이 곧 간절하다는 의미입니다.

얻고자 하는 종교적인 기도라 하더라도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수행적인 기도는 얻는 기도보다 더 간절해야 합니다. 수행적인 기도는 자기 변화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가 살아온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옛날부터 ‘천성’이라고 했겠어요. ‘아이고, 그건 그 사람의 천성이다’라는 말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성품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변화는 힘을 키우거나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 슬픔, 괴로움, 허전함, 스트레스, 화, 짜증, 미움, 원망 등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고 가벼운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능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부처다’,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누구나 다 가능하지만 쉽진 않습니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

이렇게 쉽지 않은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누구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스스로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하는 간절한 발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꾸준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꾸준함을 설명할 때 늘 농구선수를 예로 듭니다. 농구선수가 농구를 잘하기 위해 혼자서 연습을 할 때 공을 튀기다가 링으로 던져서 넣는 연습을 합니다. 그때 공이 들어갔다고 해서 연습을 그만하는 게 아닙니다. 또 공이 안 들어갔다고 해서 기분 나쁘다며 연습을 그만하는 것도 아닙니다. 연습을 할 때는 공이 들어갈 때도 다시 공을 받아서 던지고, 공이 안 들어갈 때도 다시 공을 받아서 던집니다. 이 사람에게는 공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이 들어가도 다시 공을 받아서 던지고, 공이 안 들어가도 다시 공을 받아서 던집니다. 이게 바로 연습입니다.

이렇게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열 번을 던져서 열 번 전부 안 들어가던 사람이 연습을 하면 열 번 던져서 한 번 들어가게 됩니다. 더 연습을 하면 이제 열 번 던져서 두 번 들어가게 되고, 더 연습을 하면 열 번 던져서 세 번 들어가게 됩니다.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면 열 번 던져서 여덟 번 들어가게 되고, 아주 잘하는 사람은 열 번 던져서 아홉 번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해도 매번 던질 때마다 다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공이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던질 때마다 들어가는 게 목표이지만, 시작은 한 번도 안 들어가는 상황에서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중간에 있습니다. 잘하는 사람은 조금 앞서 있고, 못하는 사람은 조금 뒤에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10년 동안이나 연습을 했는데 아직도 공이 안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하면서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예전에는 열 번에 한 번도 안 들어갔는데 이제는 여덟 번이나 들어가는구나’ 하고 자기 긍정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나는 이제 열 번 중 여덟 번이나 들어가니까 연습을 그만해도 되겠다’ 하고 자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안 들어가는 경우가 있으니 목표점을 향해 꾸준히 연습해야겠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선방에 계신 큰 스님들은 화두를 참구 할 때 화두를 타파해도 화두를 들어야 하고, 화두를 타파하지 못해도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타파하지 못했을 때 화두를 드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타파했는데도 왜 화두를 드는가?’ 하고 의심이 드는 이유는 여러분은 무언가 한 번 하고 나면 그게 끝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명상을 할 때 호흡을 알아차려도 다시 호흡에 집중하고, 호흡을 놓쳐도 다시 호흡에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흡이 알아차려졌다’, ‘호흡을 놓쳤다’ 여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알아차려지면 알아차려지는 대로 가고, 놓치면 다시 알아차립니다.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꾸준히 해나갈 뿐입니다.

그것처럼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기 싫어도 기도를 해나갑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도 기도를 하고, 조금 늦게 일어나도 기도를 합니다.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게 좋지만, 늦었다고 안 하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게 좋습니다. 늦게 하는 건 제시간에 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늦게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은 늦었으니 안 해야지’, ‘벌써 몇 번 빼먹었는데 이번 백일은 건너뛰고 다음 백일부터 해야지’ 하면서 늘 안 할 핑계를 찾습니다. 이게 곧 하기 싫은 마음을 합리화하는 겁니다. 몇 번 빼먹었든 늦었든 그건 지나간 일이고, 지금부터 꾸준히 정진을 하면 자기 삶에 변화가 옵니다. 그게 곧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종교적인 기도도 주변 사람이 감동을 해서 세상이 움직일 수 있도록 간절해야 하고, 해탈과 열반을 향한 수행적인 기도도 자발적으로 간절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간절해야 꾸준히 하게 되지, 간절하지 않으면 꾸준함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간절함이 없이 대충 한다는 생각을 하면 꾸준하게 되지 않습니다.

간절하게 꾸준히 하는 것과 욕심을 내서 단박에 해버리겠다는 것은 다릅니다. 욕심은 내려놓되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정진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정진의 핵심 내용은 꾸준함입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도 바로 이 꾸준함에 대한 것입니다.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마음을 내서 ‘나도 한 번 해보겠다’ 하고 발심을 한 것은 참으로 칭찬할 일입니다. 이제 첫 백일을 출발했으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긴장도 하지 말고,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면 됩니다. 오늘은 하고 싶으니까 하고, 오늘은 하기 싫으니까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날도 하고, 하기 싫은 날도 하고, 아프면 아픈 대로 하고, 한쪽 다리를 다쳤으면 다른 쪽 다리로 하고, 양쪽 다리를 다 다쳤으면 앉아서라도 합니다. 몸이 그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또 해나가는 거예요. 공간이 없으면 화장실에서라도 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나는 간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기도를 할 때 번뇌가 안 생깁니다. ‘이러니까 할까 말까’, ‘저러니까 할까 말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 기도를 하다가도 ‘그만둘까’, ‘누울까’, ‘해야 되긴 하는데’ 이런 번뇌가 생깁니다. 하기로 했으니 형편 되는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내면, 기도를 할 때 아무런 고민이나 번뇌가 안 생깁니다.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 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꾸준히 기도를 한다

물론 잘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관점을 다시 잡고 계속 연습하면 점점 쉬워집니다. 그러다가 중심이 탁 잡혀버리면 아주 쉬워집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꾸준히 기도를 한다’

이것 하나를 붙들고 있으면 내가 살면서 의지하는 기둥이 하나 생기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에 흔들리긴 해도 다시 돌아오고 또다시 돌아옵니다.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면 삶의 기둥이 생겨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기도만 놓치지 않아도 사실 살아가는데 큰 걱정이 없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저절로 중심이 잡힙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엄마 옆에서 자란 아이들은 심리가 안정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의 마음이 안정되는 거예요. 그러니 본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야 하지만, 기도를 하면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면 아이들의 심리도 불안해집니다. 그러니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는 좋은 법문을 듣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댓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농사일을 하러 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호우주의보가 내렸으니 실내에서 하는 작업을 우선으로 해요.”

스님도 행자들도 대부분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했습니다. 호박의 곁순을 따주고 붓으로 수꽃의 꽃가루를 찍어다가 암꽃에 수정시켜주었습니다.


요즘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은 1동 고추입니다. 고추에 줄을 묶어주고, 나방을 잡아주고, 잘 익은 고추와 병든 고추를 땄습니다.

대부분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가운데 비옷을 입고 삽질을 맡은 행자들도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 물길을 파주었습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 가장자리를 돌며 풀을 뽑았습니다.


풀을 다 뽑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오전 11시부터는 공동체 대중과 함께 하는 안거 회향수련 2일째 일정을 이어나갔습니다.

어제는 개인 수행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은 정토회 각 부서에서 진행되는 사업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자기 부서가 아니더라도 정토회 사업에 대해 의견이 있거나 제안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야기해 보세요.”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사업 제안과 질의응답이 계속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스님의 활동 중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비공개로 이뤄진 많은 활동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도 있었습니다.

많은 실무자들이 지금이라도 모두 기록에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이 비공개로 한 활동들을 지금이라도 기록해두면 어떨까요?

“법륜 스님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신 많은 내용들이 전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인데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스님께서 그 내용들을 들려주시고, 저희 실무자들이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어차피 공개하지 않고 한 일인데 굳이 알릴 필요가 있는지 반문하며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비공개로 이뤄진 활동들이라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한 내용들이 있고요. 둘째, 국내 정치의 화합을 위해 활동한 일들이 있습니다. 셋째, 1980년대에 사회운동을 했던 일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활동들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지 굳이 기록에 남길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성과가 있든 없든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 싶거든요. 만약 이런 활동들을 세상에 알리면 저도 용성조사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을 두고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저런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역사 기록에 남길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벗들이 중국에서 북한 난민들을 도운 이야기도 마치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을 못 밝히듯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인도 구호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이라크 전쟁이 끝나자마자 답사를 갔던 일, 아프가니스탄 구호를 시작했을 때, 필리핀 구호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미국에 가서 고위 관료들을 만난 일들, 이런 일들도 초기에는 기록에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제안을 한 실무자는 비공개로 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하나만 사례로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한 가지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05년 9.19 공동 성명을 발표할 때의 일이에요. 미국 국무부 대북 특사인 디트러니 대사를 만나서 설득했던 일입니다. 미국이 1994년에 제네바 협상을 통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는데, 경수로가 완공되기 직전에 미국이 경수로 사업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로 갔다가 다시 포괄적 합의를 해나가고 있는 시기가 그해였습니다.

북한의 주장은 ‘우리도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수로를 짓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국제 합의를 어겼기 때문에 경수로조차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핵만 갖고 논의하다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서 한반도 평화 문제, 경제 개발, 군축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게 된 게 바로 9.19 합의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 북미 간의 합의 중에는 가장 진척이 많이 된 종합적인 합의였습니다. 또 주변 6개국이 다 참여한 상태에서 합의가 이뤄졌고요.

9.19 합의가 이뤄졌을 때 저는 정말 기뻤어요. 2005년 추석날 9.19 합의가 발표되었는데, 그 발표를 듣고 저는 ‘이제 남북문제가 좀 풀리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9.19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때 제가 디트러니 특사를 만나서 이렇게 제안을 했어요.

‘미국은 북한의 핵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주권 차원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권이 있다는 입장이어서 서로 대립을 하고 있는데, 이건 모순이 아니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은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라고 북한의 주권적 요구를 받아들이되, 그동안 북한의 행동이 국제 합의에 저촉되므로 ‘다만 그 권리를 유보한다’라고 합의를 하면 어떻겠느냐.’

이렇게 합의하면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가 유보되니까 미국의 주장도 수용이 되고, 북한이 주장하는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도 수용이 되는 겁니다.

‘북한은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다만 그 권리를 유보한다’

저는 이렇게 제안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합의문에 들어가 있었어요. 즉, 경수로의 ‘경’ 자도 안 된다던 미국이 부속합의에 경수로를 적시하게 된 겁니다. 북경에서 합의를 이룬 뒤에 디트러니 특사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그 자리에서 저한테 이메일을 보냈어요.

‘스님이 제안하신 아이디어로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추석 날 아침에 이런 내용으로 이메일이 와서 저도 참 기뻐했었습니다. 이게 바로 화쟁론입니다. 상호 대립된 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연결될 수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제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디트러니 특사는 건물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정중히 맞이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제가 사무실에 들어가야 의자에서 일어나거든요. 그만큼 서로 신뢰를 갖는 관계가 되었죠.

사실은 이런 비공식적인 활동에 대해 저는 ‘어차피 세상에 밝히지 않고 하기로 한 일이기 때문에 굳이 밝힐 필요가 있는가.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이런 입장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말하듯이 ‘사실은 사실대로 알려야 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지 증명하기는 어려워요.

용성 조사님이 독립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운동은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면 안 되었습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거예요. 이런 일들이 꼭 용성 조사님뿐이겠어요.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수많은 민중들의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얼마나 많겠어요. 밝히지 못한 억울한 일들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도 용성 조사님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인정받았잖아요. 아예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힌 사람들도 정말 많거든요.

우리가 하는 좋은 일들이 전부 다 세상에 알려질 수가 없습니다. 나쁜 일만 숨기고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일도 숨기고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중국에서 북한 난민들을 도울 때 함께 한 조선족 동포들의 이야기는 저의 가슴에 지금까지도 크게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님! 우리가 하는 일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밥을 주고, 옷을 주고, 약을 주는, 엄청나게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을 도둑놈처럼 숨어서 공안의 눈치를 보며 몰래 해야 되니 이걸 어떡하면 좋습니까?’

실제로 북한 난민 돕기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숨어서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요즘 사회 운동은 독립운동처럼 숨어서 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저는 아직도 숨어서 해야 하는 일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요.” (웃음)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대중의 질문과 제안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 코로나 사태가 지속된다면, 해외 JTS 사업과 인도 성지순례, 동북아 역사기행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요?
  • 9월부터 가을 불교대학 학생들이 문경과 두북 수련원에 봉사를 오게 되는데, 수련원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 정토 대전을 영어로 번역도 해야 할 텐데 외국 사람이 갖고 있는 사회적 이슈도 내용 속에 담기면 좋겠습니다.
  • 본부가 개원하면 세계 전법을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템플 스테이 방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 지금 가장 브랜드화된 콘텐츠는 ‘스님의 하루’인데, 스님의 하루 제작팀을 더 보강하면 좋겠어요. 글뿐만 아니라 영상, 번역까지 스님의 하루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작해보면 어떨까요?
    ...

저녁 8시가 되어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저녁 예불을 함께 한 후 분과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안거를 마치는 날입니다. 지난 21일을 돌아보며 소감을 나눈 후 안거 회향식을 할 예정입니다. 안거를 마치고 나서 오후에는 새터민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저녁에는 일요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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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여래심

나와의 약속임에 다만 할 뿐입니다 꾸준함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기도와 명상으로 중심잡습니다

2020-08-24 22:50:56

관음성

자발적 간절함으로 자기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조급한 맘을 내지 않고 수행 기도를 하는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2020-08-14 21:43:56

신선애

스님을 본받아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고 보시 하겠습니다

2020-08-13 2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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