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6. 농사일, 산책, 결사행자회의
“스님은 피곤할 때 어떻게 마음을 관리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공동체 수행 대중과 소풍을 다녀온 후 저녁에는 결사행자회의를 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은 빗줄기로 변해 점점 거세졌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스님이 말했습니다.

“놀지 말고 일하고 공부하라고 비가 오나보다.”

안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오늘은 다 함께 소풍을 다녀오기로 한 날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소풍을 갈 수 있을지 확정하지 못 한 채 일단 아침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서 행자들도, 스님도 비닐하우스에서 울력을 했습니다. 먼저 열무를 솎았습니다.



열무 한 소쿠리를 솎아 놓고 스님은 비닐하우스 곳곳에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쑥갓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풀과 비닐하우스 가장자리와 구석구석에 난 풀을 뽑았습니다.


스님이 지나간 뒤로 풀이 일렬로 줄지어 섰습니다.

풀을 모아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습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 바깥에서도 풀을 뽑았습니다.


풀을 모아 3동 비닐하우스로 갔습니다. 3동 앞에서는 퇴비를 만들기 위해 풀을 모으고 있습니다.


풀을 뿌리고 스님은 괭이를 가져와 풀더미를 고르게 펴주었습니다. 풀더미를 계속 쌓아두기만 해서 풀이 발효가 되지 않고 썩고 있었습니다. 풀더미를 뒤집자 시커멓게 엉겨 붙은 풀에서 썩은 내가 났습니다.

빗물에 사용한 도구를 씻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한 후 발우공양까지 마치고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10시부터 12시까지는 비가 안 내린다는 예보를 보고 서둘러 소풍을 떠났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탑곡 농장에서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전망이 좋은 곳에 서서 탑곡 농장을 가리켰습니다.

"여기가 탑곡 농장입니다. 서울로 보내는 쌈채소가 대부분 여기서 생산되는 거예요."

이어서 가뫼들 계곡을 걸었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에 빗물이 묻어 있어 바지를 계속 적셨습니다. 스님은 넝쿨 한 줄기를 손에 잡아 보여주면서 행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새삼이에요. 새삼 몰라요? 기생식물이에요. 제가 어릴 때는 정월대보름 날에 쥐불놀이하면서 '새삼 밭에 불이여' 하면서 놀았어요.” (웃음)

젊은 행자님들은 신기한 듯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 작은 동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옛날부터 할머니들이 와서 기도하는 곳이에요.”


비가 와서 바위가 미끄러웠습니다.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계곡을 여러 번 건넜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몇 사람은 물놀이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오후에는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빨래를 하는 사람,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 등 활기가 넘쳤던 두북 수련원이 오후 내내 고요한 명상에 잠겼습니다.

저녁 8시에 예불을 한 후 8시 20분부터는 결사행자회의가 열렸습니다. 안거를 하고 있는 스님과 공동체 법사단은 두북 수련원에서 화상으로 접속하고, 나머지 결사행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화상으로 접속했습니다.

60여 명의 결사행자가 모두 화상회의에 접속하자 삼귀의 수행문을 읽은 후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결사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며칠 만에 또 얼굴을 보네요. (웃음) 지난 회의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안건이 있고, 논의를 하다가 결정을 보류시킨 안건도 있는데, 오늘 한 번 더 논의해서 의결을 마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논의할 안건이 많아서 곧바로 발표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 회의 때 시간이 부족해 논의하지 못한 ‘공동체’와 ‘세계 전법’에 대한 발표를 듣고 토론한 후 개원 기념법회 추진단 구성, 불사, 정회원 교육, 온라인 경전반에 대해 추가로 더 논의했습니다.

토론 중에는 예산 수립과 보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스님은 예산 보고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정토회의 예산은 대중이 낸 보시금이기 때문에 예산에 대해서는 함부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반드시 대중의 승인을 받고, 대중의 양해를 하고, 대중의 동의를 받아서 사용해야 합니다. 전국대의원회의에 보고하는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산 집행입니다.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차질이 생겼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예산 초과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면 왜 그런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해요.”

찬반을 묻고 의결을 해야 하는 내용들이 많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1시간이 늦은 밤 11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어제 운문사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중 한 편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스님은 피곤할 때 어떻게 마음을 관리하시나요

“스님께서는 많은 활동을 하시느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많이 피곤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강원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부딪혀서 아침에 일어나 움직일 힘조차도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어떻게 몸과 마음을 관리해야 할까요?”

“제 얘기가 여러분에게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여러분은 지금 학인이니까 억지로라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고, 저는 제가 선택해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자발성이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정토회 활동가들 중에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 안거 기간 중인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농사일을 해야 하니까 계속 배고프다고 하고 지쳐해요. (모두 웃음)

제 경험으로는 일과 휴식을 자기가 조절할 수 있을 때 훨씬 수월합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몸이 좀 피곤할 때는 쉬고, 몸이 괜찮을 때 일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단체 생활은 그러기가 어렵잖아요. 밥 먹을 시간에 자기 혼자 피곤하다고 해서 자고 올 수는 없어요. 업무를 나누어서 공양 당번을 할 차례가 되었는데 피곤하다고 누워 있을 수도 없고요. 아예 환자로 인정받으면 모르지만요. 공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조절이 여의치 않습니다. 몸이 피곤할 때는 쉬고 나서 일을 하면 효과적입니다. 개인일 때는 이런 선택이 가능하지만, 단체 생활을 할 때는 이런 선택이 안 됩니다.

그래서 단체 생활을 할 때는 인연 따라 그냥 내가 상황에 맞춰야 해요. 피곤해도 일을 해야 할 때면 일을 하고, 배가 고파도 먹을 때가 안 되면 안 먹고, 배불러도 먹을 때가 되었으면 먹어 놓고요. (모두 웃음)

이렇게 인연 따라 맞추겠다는 수행적 관점을 가지면 대중 생활을 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약간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자유롭다고 해서 밖에 나가 논다는 뜻이 아니에요. 자기 조절이 조금 가능할 정도의 자유를 뜻합니다.

제 경험담이 여러분에게는 도움이 안 되겠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놓인 처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밤새 일하든 낮에 잠깐 눈을 붙이든 제가 결정해서 합니다. 그래서 조금 효율적으로 몸을 사용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는 보통 새벽 1시 정도에 자는데, 요즘은 시골에 내려와 있으니까 밤 9시가 되면 모든 일과가 끝나요. 늦어도 10시에는 잠을 잘 수 있어요. 저는 10시에 자면 보통 새벽 2시면 눈이 떠집니다. 대신에 오늘처럼 낮에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어요. 저는 자기 조절을 이렇게 하는 편이라서 여러분에게 크게 도움은 안 될 거예요. (모두 웃음)

피곤함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그렇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적극성이에요. 마음을 자꾸 적극적으로 내야 해요.

‘아, 힘든데...’

자꾸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몸도 마음도 엄청나게 피곤해요. 산에 갈 때도 ‘안 가면 안 되나?’, ‘꼭 올라가야 하나?’ 이러면서 올라가면 힘들잖아요. 어차피 올라가기로 했으니까 다리가 아프든지 말든지 그냥 올라가는 거예요.

‘산에 올라가다 보면 다리가 아픈 건 당연하지. 숨이 차면 좀 쉬었다 가면 돼.’

이렇게 적극적인 마음을 내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억지로라도 자꾸 이렇게 즐거운 마음을 내어 보세요. 지금은 강원 생활이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나중에 졸업하고 다른 절로 떠나서 살다 보면 이때가 그리울까요, 안 그리울까요?”

“그리울 거예요.”

“맞아요. 지금은 ‘두 번 다시 오기 싫다’ 이러지만 여기를 떠나면 또 여기가 그리워져요.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기합 받을 때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제대하고 나서는 술만 먹으면 군대 얘기를 하잖아요. 누가 더 세게 기합 받았는지 경쟁하듯 얘기하거든요. 지금 이 순간이 힘든 건 맞지만, 지나 놓고 보면 대부분 추억이 됩니다.

그런데 이 경험이 상처가 되는 사람도 가끔 있어요. 상처가 되는 사람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좀 받아야 해요. 특정한 운동을 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사람에 따라 그 운동이 거꾸로 건강을 해치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력이 조금 약한 사람은 이런 어려움이 트라우마가 되면 나중에 운문사만 떠올려도 추억은커녕 ‘에이, 쳐다보기도 싫다’ 이렇게 돼요. 이런 상태일 때는 운문사만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이 경험이 나한테 정신적으로 상처가 됐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치료를 받아야 해요. 스님들도 마음의 상처가 심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호르몬 분비 같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정신력이 약해지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면 정신과에 가서 간단한 치료만 받으면 금방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굳이 수행으로 이기겠다고 하다가는 속된 말로 ‘머리가 도는’ 거예요.

이를 악물고 외부의 눈치를 보면서 꾹 참고 있으면 얼굴이 상기(上氣)가 많이 됩니다. 머리에 열이 자꾸 오르고 인상이 굳기 쉽죠. 그래서 항상 마음을 가볍게 내고 기꺼이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래, 이거 하다가 죽진 않겠지.’

‘아이고, 4학년이면 이제는 뭐 거꾸로 매달아놔도 버틸 수 있겠다. 남은 시간이 6개월밖에 없잖아. 나중에는 이게 다 추억거리야.’

이렇게 자꾸 마음을 내보세요. ‘힘들지? 내가 좀 도와줄게’ 이렇게 주변 사람들도 도와주고요. 자꾸 마음을 적극적으로 낼수록 생기가 돌아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재앙을 겪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닌데, 이것도 업식 같아요. 저의 이런 면을 큰스님께 지적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성찰을 해보려고 어떤 선방에 가서 부목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비지땀을 흘리면서 장작을 패는데, 큰스님이 옆에 와서 물끄러미 보고 계셨나 봐요. 한참을 일하다가 돌아보니 옆에 조실 스님이 계셨어요. ‘스님 나오셨습니까?’ 이렇게 인사드렸더니 스님이 빙긋이 웃으면서 그러셨어요.

‘자네 없을 때도 이 절은 잘 있었네.’ (모두 웃음)

저는 마치 제가 없으면 이 절이 안 될 것 마냥 죽기 살기로 했던 거예요. 이런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서 진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한가하게 와서 지내겠다고 하고서는, 장작 패는 것으로 대상만 바꿔 똑같이 집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남이 좋게 평가하느냐 나쁘게 평가하느냐는 핵심이 아니구나. 까르마를 극복한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이 아니구나.’

나쁘다고 평가받는 까르마는 극복하기가 쉬워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잘한다며 칭찬하는 까르마는 극복하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꿈도 나쁜 꿈을 꾸면 눈을 딱 떴을 때 미련이 없는데, 좋은 꿈을 꾸면 깬 뒤에도 다시 드러누워서 더 꾸려고 하잖아요. (모두 웃음)

수행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서 고달팠던 사람은 수행을 통해서 해탈을 하면 더 이상 미련이 없는데,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은 절에 들어와서 미련이 더 많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요. 한번 세상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미련이 끊어진 경우도 있고,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못 살아봤기 때문에 여기 들어와서도 미련이 남는 경우도 있겠죠.

이때 세상에 살면서 고통을 겪다가 불법을 공부하면서 집착이 탁 끊어져버린 사람은 악몽을 꾸다가 깬 사람과 같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편하게 살다가 절에 들어온 사람들은 좋은 꿈에서 깬 것을 아쉬워하듯 세상을 자꾸 그리워하기가 쉬워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재앙을 겪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일부러 나쁜 데 들어가서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살면서 여러 가지 재앙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 수행적 관점에서는 꼭 나쁜 환경이 아니에요. 돌아보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강원 생활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자청해서 만든 어려움이잖아요. 설마 모르고 들어왔어요? 밖에서 잘 살다가 제 발로 찾아왔잖아요. 자업자득이에요. 그러니 자기 선택에 대해서 뭘 져야 한다고요?”

“책임!”

“네, 책임을 져야 해요. 여기서 도망간다는 것은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진다는 뜻이에요. 그만두더라도 4년 과정이 끝나고 난 뒤에 그만둬야지, 중간에 그만두면 중간 탈락이에요. 알았죠?”

“네!”

“중간에 그만두면 ‘아이고, 내가 그것도 못 견뎌서 그랬구나’ 이렇게 평생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돼요. 후회하면서 살면 안 돼요. 4년 과정을 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그만둬도 괜찮아요. 그러나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몸은 바빠도 마음은 한가하게

저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몸은 조금 고단해요. 그러나 누가 저더러 그렇게 살라고 한 건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형성된 습이죠. 좋게 말하면 부지런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한가하지 못한 면이 있어요.

그렇다고 마음이 그렇게 바쁜 건 아니에요. ‘뭘 이루어야 하겠다, 뭘 언제까지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한테 ‘스님은 욕심이 많아서 온갖 것을 다 한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 마음은 별로 그렇지 않아요. 내일 죽어도 크게 미련이 남을 것도 없고요. 그래도 어쨌든 안 죽고 살아 있으니까 열심히 사는 거예요. (모두 웃음)

저는 단명한다는 얘기를 어릴 때 점쟁이에게서도 듣고, 은사 스님께도 들었어요. 그래서 ‘언제 죽나’, ‘이제 죽으려나’ 하면서 살았는데 안 죽더라고요. 단명한다는 얘기를 워낙 들었기에 저는 40살에 죽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제가 열심히 사는 게 집에도 소문이 나서 어머니도 제가 못 찾아뵈어도 ‘걔는 바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렇게 살아도 안 죽었으니까 지금은 사는 데까지는 살아야 하잖아요. 일부러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은 비교적 한가한 편이고, 몸은 업식 때문에 조금 바쁜 편이에요.” (모두 웃음)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수행 대중과 안거 회향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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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

감사합니다

2020-09-12 11:53:16

정지나

마음만 바쁘고 몸은 그저 가만히 걱정,염려만 합니다 적절한 균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지금 여기 나 다시 넘어졌지만 툴툴털고
일어나 한발한발 걸어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8-14 21:48:05

청정화

감사합니다.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겠습니다.

2020-08-13 12: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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