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3 온라인 경전반 점검회의, 공동체 공청회
“제가 벌에 쏘여서 다행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온라인 경전반 점검 회의를 하고 공동체 수행대중과 안거 공청회를 했습니다.

논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늘었습니다. 행자들이 밭에 도착하니 스님은 이미 배추 한 소쿠리를 솎아 놓고 논둑과 수로에 자란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행자들은 오늘 논 울타리에 풀을 제거하는 울력을 했습니다.



스님도 풀베기를 마치자 낫을 들고 울타리로 갔습니다.


스님은 울타리 뒤쪽으로 덩굴을 베고 머위를 땄습니다. 머윗대가 통통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한참 풀을 베는데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얏!”

풀숲 사이에 벌집이 있었나 봅니다. 풀을 베다 벌집을 건드렸는지 화가 난 왕벌이 스님의 어깨를 쏘고 갔습니다.

“벌이 엄청 크네요. 내가 쏘여서 다행이에요.”

수련원에 연락해서 약을 가져오도록 하고 스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계속 풀을 벴습니다.

약을 바르려고 보니 스님의 어깨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약을 바르고 나서도 계속 풀을 벴습니다.

울력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야 풀베기를 멈추었습니다.


땀을 씻어내고 다시 약을 바른 후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이번 가을부터 새로 시작하는 온라인 경전반 프로그램에 대해 주관 부서인 온라인 특별위원회와 화상 회의를 했습니다. 지난 31일에는 온라인 불교대학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는데, 오늘은 그다음 과정인 경전반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점검했습니다.

온라인 특별위원회 담당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한 후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경전반 교과과정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관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은 그 시대 브라만교가 갖고 있던 관념적이고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면을 비판하면서 ‘눈 있는 자 와서 보라’라고 진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제가 불교대학에서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있는 관점입니다. 부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 습관, 경전, 계율에 의거해서 진리를 검증할 수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대승 불교도 부처님이 가졌던 관점과 똑같은 관점을 다시 가졌습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 비판했던 대상은 기존의 불교였습니다. 다시 말해 진짜 불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기존의 불교를 비판해야 했던 겁니다. 기존의 불교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논리화 되어 있고, 관념화 되어 있고, 권위주의화 되어 있고, 형식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마저도 ‘공’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고정 불변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는 관점을 갖고 혁명을 시도한 겁니다.

이런 역사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단순히 경전만 공부하면 오늘날 우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헷갈릴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관념화된 브라흐마니즘과 우파니샤드 철학을 타파하기 위해서 불교가 일어났는데, 그 불교가 관념화되어버리니까 그것을 또 비판해야 하기 때문에 앞에서 배운 불교를 다시 부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적 상황을 무시하고 대승과 소승을 병렬적으로 나열해놓고 경전을 공부하면 이 불교가 옳은 것인지 저 불교가 옳은 것인지 혼란스럽게 됩니다.

선(禪)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승불교가 관념화 되고 형식화 되고 권위주의화 되고 지식화 되니까 이것을 타파하고자 일어난 것이 선(禪)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면서 문자에 의지하지 말고 내 마음을 바로 직시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불교는 이런 역사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근본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를 병렬적으로 놓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우면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해도 헷갈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경전반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금강경이 던지는 문제의식과 육조단경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금강경을 배울 때는 바로 경전을 시작할 게 아니라, 대승불교가 일어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1강에서 집중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단순히 물리적인 순서로 강의를 배치하지는 않도록 살펴봐주시면 좋겠어요.”

이어서 전체 21강에 대해 각각의 세부 강의안을 검토했습니다. 특히 스님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주제 질문과 수행 연습 과제를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1시간 가량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준 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오늘 조언을 해준 것이니까 반영할 수 있으면 반영을 하시고, 스님이 어떻게 말했든 지금 실무적으로 반영하기는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되면 원래 계획대로 해도 된다는 얘기예요.”

“감사합니다. 스님.”

주제 질문은 강의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스님의 조언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필요하면 다시 회의를 열자며 담당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급하게 조언을 얻고 싶은 게 있으면 밤 12시라도 시간을 낼 테니까 요청하세요. 지금 안거 기간이어서 안거가 끝나고 회의를 하자고 했는데, 행정처장님이 ‘우리 모두 죽을 지경이에요’ 이렇게 하소연을 해서 오늘 회의가 열린 겁니다. 자료를 읽어볼 시간이 안 나서 새벽 1시에 일어나서 내용 검토를 했어요.” (웃음)

“스님, 이제 살 것 같아요.”

사홍서원을 한 후 화상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언양에 있는 자재 요양병원으로 갔습니다. 농사지은 가지를 가득 싣고 가서 전달하고 왔습니다.

공동체 수행 대중은 분과별로 ‘공동체’를 주제로 연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분과별로 열띤 토론을 펼친 후 오후 5시에 강당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스님이 자리하자 곧바로 전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분과별 토론 결과를 공유했습니다.


스님은 토론 결과를 듣고 공동체 대중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각 사례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정토회 안에 스님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정토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스님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정토회에는 스님이 두 분 계십니다. 정토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법맥을 이어가려면 추가로 스님이 더 필요한가요? 공동체 성원 중에 출가를 시켜서 스님을 한 명 더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정토회는 더 이상 스님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법사로 대우해야지 스님으로 대우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으로 대우한다면 여러분 자신부터 수행적 관점에 충실하지 않고 종교적인 관점에 충실하다는 반증입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이므로 종교지도자인 스님으로 대우하는 관습은 없애야 합니다. 그냥 법사로서의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 자질로 존중을 받아야지 승려라는 이름으로 존중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래된 종교적인 관습 때문에 종교지도자로 예우를 받게 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것은 마치 부처님 당시에 출가한 승단 안에서 그 사람이 브라만이라는 이유로 예우를 받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스님’이라는 말의 뜻은 부처님 당시에 브라만과 같은 사제 계급의 의미로 변질된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님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스님이기 때문에 예우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수행하는 정토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에는 승려가 전혀 필요 없어요.

그런데 누군가 승려가 이미 된 분이 정토행자가 되겠다고 하면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브라만이 출가를 하겠다고 하면 승단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브라만이니까 출가할 수 없다’ 이런 사례는 부처님 당시에도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승려가 된 분이 정토회에 들어오겠다고 할 때는 받아야 됩니다. 반대로 여러분 중에서 출가한 승려가 되겠다고 하면, 승려로서 특별한 대우를 안 받겠다는 전제하에 승려로서 정토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이 되어야 합니다. 안 되면 그건 역차별에 해당합니다.

승려는 정토회에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이므로 승려라는 종교지도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 활동을 하다 보면 승려가 이 활동에 동참할 수는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승려가 필요한 활동들이 좀 있습니다. 천룡사도 복원해야 하고, 죽림정사도 유지해야 하고, 아도모례원도 운영해야 하고, 봉림사지도 복원해야 하는 등 용성조사님의 유훈 실현에 관계된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은 정토회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제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일들이에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역할상 승려가 필요하다고는 말할 수 있어요.”

추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불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님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불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스님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2차 만일결사 때 세계인들에게 전법을 하려면 불교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 게 전법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법륜 스님이 안 계시게 되었을 때도 정토회의 얼굴 역할을 하는 사람은 스님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토회 안에 스님이 있는 게 전법에 효과적이라는 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여러분처럼 집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승복을 딱 입고 활동하면 그 효과가 10배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저는 효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이름을 붙이고 어떤 모양을 한다고 해서 수행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토행자는 이 원칙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역할상 승려가 필요하다면 몇몇이 승려가 되는 것을 수용할 수는 있다고 보셔야 해요. 원칙도 지키면서 확산도 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원칙과 확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정체성을 승려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과거 종교로서의 불교에 생각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부처님은 출가라는 자기 결단을 한 사람이라면 남녀도 관계없고 계급도 관계없이 승단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출가 혁명입니다. 그러나 출가 승려가 점점 기득권화되어 가니까 그 후에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출가와 재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고, 발심을 했느냐의 여부를 갖고 보살로 승단을 구성하겠다.’

불교도 이렇게 발전을 해온 것인데, 오늘날 인권이 신장되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왜 승려가 필요합니까? 정토회에도 승려라는 권위와 형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마치 부처님 당시에 ‘그래도 브라만이 있어야 대중이 따를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아요. (모두 웃음)

전통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통은 아닙니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해서 바른 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승복을 입고 있으니까 종교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저보고 염불을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요구는 세상의 문화이고 관습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들의 요구를 다 거부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나의 본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정토회 안에서는 승려라는 이유로 대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법륜 ‘스님’이기 때문에 저를 스승으로 삼아서 따른다면, 그 사람은 정토행자가 될 자격이 없어요. 저는 법사로서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런 법문을 하는 것이고, 법문을 하는 사람이 다만 승려일 뿐입니다.

정토회의 중심이 튼튼한 이유는 처음 정토회를 시작할 때 제가 승복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승려가 된 것이 나중에 정토회의 확산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초기에 정토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제가 승려이기 때문에 귀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머리를 기르고 있을 때 귀의하고 정토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한 어려움에도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제가 내일 당장 양복을 입고 무대에 선다고 해서 즉문즉설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모두 웃음)

오늘도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공동체 수행 대중은 매일 이어지는 스님과의 공청회를 통해 수행공동체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체득해가고 있습니다.

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공청회를 마쳤습니다. 저녁 8시에는 예불을 한 후 분과별로 흩어져서 오늘 하루를 보낸 소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내일도 농사일과 공동체를 주제로 한 공청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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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여래심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짚고 갑니다

2020-08-24 21:02:26

해피모닝

스님 ^^
오늘 스님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스님 얼굴을 TV에서 처음 뵜을때가 엇그제 같은데요.
얼굴에 주름이 너무 많아지셨네요~~

스님말씀을 읽을때 마다 올바른 생각과 마음 가짐으로 변해가는 제가 행복함을 느끼고 살아감니다.
고맙습니다.
스님깨서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스님깨선 이세상 모든 이들에게
"해피바이러스"입니다



2020-08-08 23:24:59

대덕

고맙습니다 ♡

2020-08-08 06: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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