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0. 인도성지순례 8일째 (쿠시나가르)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은...”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바이샬리에서 릿챠비족과 마지막 인사를 한 부처님은 쿠시나가르로 향하셨습니다. 파바 마을에 이르러 춘다의 공양을 받으시고 큰 병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카쿳타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시고 쿠시나가르 사라나무 숲에 이르러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을 따라 바이샬리 사람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은 케사리아탑, 춘다의 공양터, 부처님께서 마지막 목욕을 하셨다는 카쿳타 강,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을 참배하는 일정입니다.

4시 50분에 차가 출발하자 수신기 너머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라면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숙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담요와 베개가 놓여 있던 위치를 기억했다가, 나올 때 원래대로 해놓습니다. 제가 방마다 문을 몇 개 열어보니까 담요와 베개가 정리가 안 되어 있었어요. 여기서 일하는 인도 사람들이 저희들을 다 보고 있잖아요. 사실은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놓고 가야 해요. 방 안에 쓰레기도 하나 없고, 방 안에 정리도 잘 되어 있어서 손댈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여야 합니다.

수행자가 숙소를 사용할 때

그리고 차 안에서도 쓰레기를 모아두었다가 내릴 때 처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릴 때 처리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쓰레기 모은 것을 문 열고 그냥 바깥에 버려 버립니다. 주차장에 쓰레기 흩어져 있는 모습 보셨죠? 어제 우리가 차 안에 모아 놓은 쓰레기를 그냥 창밖으로 다 버려서 그래요.

여기 사람들더러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도 이 사람들은 습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여러분이 쓰레기 정리를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방에서 나올 때는 원래 들어갈 때처럼 되었는지 점검하고 나옵니다. 아시겠지요?”

“네.”

“행여 바쁜 사람이 있어서 흩뜨려 놓은 채 나가더라도 뒷사람이 대신 정리를 좀 해주세요. 원래 순례자 숙소는 앞사람이 떠날 때 뒷사람이 쓸 수 있도록 정리해놓고 가는 거예요. 그게 순례자의 자세입니다.

예전의 토굴 수행도 마찬가지였어요. 깊은 산속에서 움막치고 안거에 들어갈 때는 양식을 준비해서 들어갑니다. 나갈 때도 그 다음 사람이 와서 쓸 수 있도록 똑같이 준비를 해두고 나가요. 뒤에 어떤 사람이 올지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준비를 다 해놓고 갑니다.

‘뒤에 사용할 사람을 생각하며 모든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둡니다.’

이걸 꼭 명심해 주세요. 뒤에 걸레를 쓸 사람을 생각해서 걸레를 빨아서 두고, 뒤에 빗자루 쓸 사람을 생각해서 빗자루를 제자리에 두고, 항상 모든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나오세요.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마음대로 흩트려 두고 가도 된다는 건 세속적인 개념입니다. 누가 돈을 냈는지 안 냈는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순례자는 아껴 쓰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야 해요. 뒤에 청소하는 사람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해놓고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뒤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교화가 됩니다.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갔을 때 항상 이렇게 정돈된 모습을 보면 ‘불자는 다르구나’, ‘정토회는 다르구나’, ‘한국 사람들은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이어져서 십 년이 쌓이면 이것이 다 교화의 기초가 돼요. 말로 불교 믿으라고 해서 교화되는 것이 아니에요. 행동과 삶을 보고 신뢰해서 따라가는 게 교화입니다.

그러니 순례자 숙소뿐 아니라 호텔에 가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호텔 직원이 들어와 보면 마치 사람이 머무르지 않았던 느낌이 들 정도로 정리를 해놓습니다.

오늘도 제가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방 몇 개를 정리해 주다가 팔이 아파서 다 못했어요. 그래서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알았죠?”

“네!”

“자본주의 속에 살다보니 생활을 늘 남이 챙겨주고 자기는 돈만 지불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뭐든지 쓰고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습니다. 정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옛날에 왕궁에서 하인을 부리던 것과 똑같은 태도예요. 지금은 이름이 ‘하인’에서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니 수행자는 자기 것은 자기가 딱 정리하고 나와야 합니다. 또 힘들거나 아플 때는 수행자끼리 서로 도와줘야 합니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수행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어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한 시간을 지나 멈춰 선 곳은 오늘의 첫 순례지 ‘케사리아 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탑, 케사리야탑

세상에서 가장 큰 탑인 케사리아 탑은 어둠 속에서 산처럼 우뚝 서있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도착한 차량의 순례자들과 함께 한 줄로 서서 정근을 하며 조용히 탑으로 나아갔습니다.

450여 명의 순례자가 한 줄, 한 팔 간격쯤으로 돌고 돌아도 그 둘레를 다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둘레가 424미터, 현재 높이는 32미터, 원래 돔의 높이를 51미터 정도라고 추정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 했습니다.

탑돌이를 하는 사이, 서서히 날이 밝았습니다. 모든 순례자들이 탑 앞에 서자 삼귀의 반야심경을 외웠습니다. 스님은 케사리아 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발굴하기 전에는 그저 산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80년대에 들어와서야 산이 아니고 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 케사리아에 큰 탑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올 수 없었어요. 이제 도로가 잘 닦여서 쉽게 참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탑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께서 열반하기 전 바이샬리 사람들과 이별할 때 띄워준 발우를 기념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둘째, 출가하신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카필라성에서 야반도주를 해서 몇 개의 나라를 건너 이 곳 바이샬리까지 오셨다는 거예요. 탑을 쌓은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케사리아 탑은 항상 안개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운 좋게 케사리아 탑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탑 사이 사이 불상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순례자들이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잠깐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례지인 쿠시나가르 ‘춘다의 공양터’로 향했습니다. 케사리아 탑을 지난 지 20여분 쯤 뒤, 바이샬리 사람들이 부처님을 배웅했다는 칸타키 강을 지났습니다.

‘춘다의 공양터’는 부처님께서 열반 전 마지막으로 공양을 드신 곳입니다. 버스를 길가에 세우고 파바 마을을 걸어 들어가 춘다의 공양터에 도착했습니다.

춘다의 공양터에는 탑이었던 벽돌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대중은 힌두교 제단을 피하여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은 춘다의 공양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독성이 있는 음식을 공양 받은 부처님

“부처님은 카쿠타(Kakuta)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몹시 지치셨기에 그 강변에 누우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다(Ananda, 阿難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춘다(Chunda, 純陀)는 어떠냐?’
‘지금 춘다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춘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지만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중이 말합니다.’
‘춘다를 이리 오라고 해라.’

부처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춘다는 괴로워하면서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춘다가 오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자타(Sujata)의 공양입니다.’

수자타의 공양은 부처님 당시에도 가장 유명한 공양이었어요. 여래가 정각(正覺)을 이루기 바로 직전에 드신 공양이 수자타의 공양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와 같은 공덕이 있는 공양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여래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 먹은 공양이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엔 춘다의 공양을 받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춘다에게 공덕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춘다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가롯 유다(Judas Iscariot)와 같은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될 뻔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공덕이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중에도 가장 공덕이 큰 공양이 있다면, 정각을 얻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공양과 열반에 들기 직전에 먹은 마지막 공양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중의 비난을 받던 춘다의 공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춘다여, 걱정하지 마라. 네가 올린 공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이니라.’

부처님은 이렇게 춘다의 걱정을 덜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경전의 이 기록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고, 독성이 있는 음식인 줄 미리 알고 안 먹었다는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고,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고 바로 토해버려서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람 역시 수없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고 죽으면서 ‘이 음식이 내가 이생에 마지막 먹은 공양이니라. 나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린 사람은 큰 공덕이 있느니라’라고 말해주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만 하실 수 있어요.

수자타가 올린 공양의 공덕은 수자타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춘다의 공양은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육신이 부처가 아니라 그런 자비심을 내는 것이 바로 붓다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를 못 박은 사람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라면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사람은 꼭 지옥에 떨어지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 당시의 믿음으로도 그런 사람은 마땅히 하느님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낸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에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이유가 바로 그때 그런 마음을 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런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경전에 춘다를 가롯 유다 같은 비난의 대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공양을 올린 사람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 탑을 쌓고 춘다의 공양을 기념했어요.

사실 춘다는 가난했기에 특별히 부처님과 대중을 위해서 공양을 올릴 만한 것이 없었어요. 흉년이니까 더 궁핍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흉년이었기 때문에 천민들은 오히려 야생 작물을 채취해 섭취함으로써 그 기근을 극복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춘다는 먹을 수 있는 야생 작물을 밤새 가족과 함께 채취해서 공양을 준비했을 겁니다. 야생 작물이다 보니 그것을 평소에 먹어왔던 천민들은 괜찮지만 평소에 먹어보지 않던 사람이 먹으면 독성이 작용할 수 있었겠죠. 옛날에 기근이 심할 때는 야생 식물을 채취해서 먹었는데 식물 독이 올라서 얼굴이 붓고 식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걸 ‘부황이 든다’고 했어요. 심하면 죽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춘다는 없는 형편 속에서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올렸으나 때가 맞지 않았어요. 그 음식을 대중이 먹었으면 대중이 모두 식중독에 걸렸을 텐데, 부처님께서 먼저 보시고 대중에게는 주지 말라고 막으셨습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부처님도 안 드시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부처님께서도 그 음식이 뭔지 몰랐어요. 받아 놓고서야 ‘스카라맛다바’라는 걸 알았습니다. ‘스카라’는 돼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양 학자들도 돼지고기라고도 하고, 돼지버섯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야생 토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경우든 독성을 조심해야 하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대중에게 받은 음식을 거절하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걸식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대중에게 음식을 달라고 해도 안 되지만, 주는 것을 안 먹겠다고 거절해도 안 돼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실 것을 알면서도 그 공양을 드셨어요.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병을 얻으시고 그날 밤에 쿠시나가르(Kushinagar, 拘尸那揭羅)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춘다의 공양이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막 공양이 됐습니다.

이곳 파바 마을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걸어서 하루가 걸리는 거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공양을 드시고, 그날 밤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길을 가다가 카쿠타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쿠시나가르 사라수 숲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히라이냐바티(Hirainyavati) 강변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오늘의 여정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르셨던 마지막 길을 따라 가보겠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그 당시를 떠올리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진 뒤 춘다의 공양과 관련한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춘다도 신심을 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춘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 정성을 기울여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춘다의 공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춘다 공양의 정성과 공덕을 생각하며 예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불 끝에 스님은 우리도 춘다처럼, 부처님처럼 살기를 발원했습니다.

“춘다의 공양터를 참배하며 그 당시에 춘다가 부처님께 공양올린 정성과 그 결과로 병을 얻으셨지만 춘다를 위로한 부처님의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새겨봅니다. 저희 또한 춘다와 같이 배고픈 자를 위하여 병든 자를 위하여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보시공양을 올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을 지을 것을 이곳 춘다의 공양터에서 발원하옵니다.”

예불을 마치고 순례객들은 버스가 있는 곳까지 한 줄로 차분히 걸어 나갔습니다.

카쿳타 강 Kakuta River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신 카쿳타 강이었습니다.

“목욕할 사람은 수건 가지고 내리세요.”(모두 웃음)

부처님께서는 카쿳타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시고, 물을 마신 뒤 쿠시나가르에 가서 열반하셨습니다.

카쿳타 강에 손을 담가보니 물이 그리 차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세수를 하고 물을 한 모금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드셨던 물이에요. 아주 물이 맑습니다. 제가 시범을 보여줄게요. 맛있어요. 마시는 건 자유인데 오늘 저녁에 열반하는 건 제가 책임 못 져요. 화장시킬 장작 값도 없어요.” (모두 웃음)

스님은 지친 순례객들을 웃음으로 어루만져 주고 강행군의 피로를 덜어주었습니다.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 했습니다.

쿠시나가르에는 한국에서 운영하는 대한사가 있습니다. 탑에 참배를 드리고 대한사 주지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여기 온지 1월 29일자로 30년입니다. 배낭여행 왔다가 한국 절이 없어서 눌러 앉은 게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네요. 법륜스님께서 좋은 말씀은 다 해주시니까 제가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장하실 텐데 식사하시죠. 반갑습니다.” (모두 박수)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대한사 잔디밭에서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장소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대한사에서 미역국과 직접 키운 열무로 담근 김치도 내어주었습니다.

책상과 의자도 준비해주셔서 오랜만에 의자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순례객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열반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한사 앞에서 가사를 수하고 석가모니불을 외며 한 줄로 열반당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열반당에 도착하자 예불을 드리고 명상을 했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스님은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의 모습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모습

“대중은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부처님께서 직접 ‘여래가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겠다’라고 말씀하시자 아난다는 마음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그때 사라수가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경전에는 ‘사라수가 학처럼 휘어졌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꽃이 피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노랫소리와 풍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기이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임해서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것은 제1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것이다.’

어떤 신비한 것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도 그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제1의 공양이 아니라는 거예요. 부처님께 올리는 제1의 공양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뿌자(puja)’라는 제사를 지낼 때 온갖 좋은 향불을 피웁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불을 할 때는 계를 청정히 지키는 향불을 피우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정을 닦는 향불을 피우고, 지혜의 향을 피웁니다. 예불문에 나오는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쿠시나가르 성으로 들어가서 여래가 오늘 열반에 들 것이니 부처님을 친견할 사람은 친견하라고 전해라.’

그런데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숲에서 열반에 든다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쿠시나가르입니까? 바라나시(Varanasi)나 왕사성(王舍城, Rajgir)이나 쉬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처럼 제자도 많고 신도들이 많은 곳에서 열반에 들지 않으시고 왜 이곳 외진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아난다여,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먼 미래에 이곳이 성스러운 곳이 되리라.’

‘그러면 왜 숲속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쿠시나가르 말라족의 궁에 들어가서 열반에 드십시오.’

말라족(Mallas, 末羅族)은 왕족입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왕궁에서 열반에 들면 왕족이나 귀족들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지, 천민들은 친견할 수가 없습니다. 숲속에서 열반에 들기 때문에 아무런 계급적 차별 없이 누구든 본인이 원하면 와서 친견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짐승들도 올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개방되어 있으셨어요.

그래서 아난다는 마을에 가서 얘기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혼자 나무에 기대어 울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부르셨습니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있으리라.’

아난다가 또 물었습니다.

‘저희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서 큰 공덕을 쌓았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큰 공덕을 쌓을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리는 공덕과 똑같은 공양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 병든 이에게 약을 주어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이를 위로하는 것이다.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그래서 JTS의 모토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 배워야 합니다’ 입니다. 이 모토는 부처님의 유훈에서 나온 거예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찾아온 쿠시나가르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원래는 한 명씩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했는데,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가족 별로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도 밤이 늦도록 친견이 이어졌어요.

이런 모습을 우리의 삶에 접목시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여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인사를 가야 할까요?”

“살아있을 때 인사를 가야죠.”

"문상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 가는 게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해서 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괜히 울고불고 하지 말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찬 물이라도 한 그릇 더 떠 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어쨌든 인사할 사람은 다 인사하라고 알려서 부처님께 인사를 시켰어요. 부처님은 참 멋있죠. 사람들이 다 인사를 마치고 떠난 뒤 밤이 깊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려 할 때 사람이 너무 많으면 번다하니, 아난다가 ‘부처님께서 편안하게 돌아가시도록 조용히 하자’ 이렇게 얘기해서 제자들이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영감이 지팡이를 짚고 헐레벌떡 찾아왔어요.

‘고타마를 만나야겠다!’

이 사람은 이교도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타마(Gautama)’라고 속세의 이름을 부른 거예요. 수바드라(Subhadra, 須跋陀羅)라는 사람인데 경전에는 나이가 120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안 됩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편안히 열반에 드셔야 합니다. 인사 시간이 끝났으니 돌아가세요.’

아난다가 이렇게 말렸지만 꼭 만나야 한다며 안 돌아가고 버텼어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별로 생각하지 않다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다니까 갑자기 물어볼 것이 생각난 거예요. 그렇게 수바드라는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하고 아난다는 말리느라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리를 부처님이 들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어떤 사람이 막무가내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제가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아난다여, 그는 나를 귀찮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내게 물을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니 들여보내라.’

수바드라는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타마시여. 누구는 이렇게 주장하는데 누구는 그것이 틀렸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는데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이 틀렸다고 합니다. 어느 주장이 맞고 어느 주장이 틀립니까? 아니면 모든 주장이 다 틀립니까? 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수바드라여, 네가 말한 모든 사람은 내가 다 알고 있다. 내가 그 모두를 만나보았고 대화도 해보았다. 그런데 수바드라여, 마음이 욕망에 젖어 있으면 무슨 말을 해도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마음이 청정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셨는데, 그 법문을 듣고 수바드라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습니다.

‘아난다여, 수바드라를 출가시켜라.’

그렇게 해서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뒤 부처님께서는 대중을 모두 오라고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다들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그걸 물어볼 걸‘ 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편안하게 물어라.’

대중이 또 대답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을 거듭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난존자가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희는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다 법을 설하셨고 우리는 다 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것이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마지막 열반의 모습을 잘 새겼습니까? 이제 열반당을 참배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400명의 대중은 열반당 안에 빼곡히 들어가 예불을 올렸습니다.

“지심귀명례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석가모니불...”

열반당의 높은 돔 천장 안은 목탁소리와 정근소리로 가득 울려퍼져 마치 부처님의 열반하신 날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처님, 이제 편히 쉬소서. 남은 일들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법륜 스님이 쓰신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발원문은 45년간을 쉼 없이 고통 받는 중생과 함께 해오신 부처님의 행적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제 부처님께서는 평온히 쉬시고 우리가 부처님 뜻을 이어받아 남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늙고 병든 몸을 이끄시고
먼 길을 걸으셔서 이 곳에 이르셨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부처님꼐서 열반하신 이 열반당에서 이렇게 발원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이곳에 안온하게 머무소서.
이제 세상에 남은 일들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는 부처님께 이 일을 해달라 저 일을 해달라 하지 않고
세상에 모든 일들을 저희가 앞장 서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들을
하나하나 따라 걸으며
부처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일들을
저희들이 이룰 것을 발원합니다.”

다른 사람도 참배할 수 있도록 예불과 발원을 마치자마자 열반당을 나왔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순례 장소는 부처님의 다비식을 거행한 라마바르총입니다. 이곳은 쿠시나가르 왕족의 대관식을 하던 장소로 바쿠다 반다나 영지인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세상 풍속대로 장례를 치르라는 말씀대로 왕족인 부처님의 신분에 맞게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라마바르총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가사를 수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한 줄로 탑돌이를 했습니다.

“이 곳은 부처님의 육신을 화장한 곳입니다. 여기서 저녁 예불을 드리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탑을 바라보고 예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열반하신 뒤 어떻게 장례를 치를까요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열반하신 뒤에 어떻게 장례를 치를까요?’라고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은 수행에나 신경 쓰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아라. 그것은 재가 신자들이 그들의 풍속대로 알아서 할 것이다.’

보통은 스님의 장례식을 신도가 치러야 할 텐데, 요즘은 신도의 장례식을 스님이 치르고 있어요. (모두 웃음) 그래서 승려가 사제가 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내주거나 장례를 치러주잖아요. 이것은 사제 계급이 하는 일입니다. 수행자는 사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경전을 직접 읽어봐야 수행자의 정체성이 어떠하며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출가해버리면 천민도 없어지고, 양반도 없어지고, 브라만도 없어지고, 왕족도 없어지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어요. 일체중생이 평등합니다. 심지어 태어나고 죽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수행에서 장례 따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그래서 수행자는 장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을 독송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다시 구체적으로 만나본 후 명상을 했습니다.

“숙소가 달라서 따로 저녁법회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열반의 의미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들을 깊이 새길 수 있게 오늘 저녁에는 조별로 충분히 나누기를 하기 바랍니다. 이것으로써 법회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순례단은 이틀 동안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전 마지막 1년의 여정을 따라왔습니다. 왕사성 영축산에서 시작한 열반경은 이 곳 쿠시나가르 라마바르총에서 화장을 하고 8개의 탑이 쌓아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내일부터 이틀간은 이런 위대한 붓다의 태어남과 성장을 둘러보러 갑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공간도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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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주

불교공부를 하면서 열반하시면서 마지막 유언을 하실때 눈물이 많이 나서 열반당가면 눈물이 많이 쏳아질줄알았는대 열반당입구에 들어설때 눈물이 왈칵 올라오는대 부처님 뵐려고 하다보니 눈물이 쑥 들어갔습니다
다음에는 여유있게 다시한번 와보고 싶습니다
한번와서는 이일정을 다 소화하기가벅찼습니다
다시원을세워 3년있다 다시와보고싶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0-02-03 15:12:45

임다희

의외로 열반당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고 열반당까지 정근을 하며 걸어갈 때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낙숫물을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큰 고통보다 중생의 손톱 밑 가시를 걱정해주신 부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한사에서 공양을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2020-02-01 16:49:41

정지나

위나 아래 높은과 낮음도 없이 그저 우리는
수행자 감사합니다 꾸벅^^

2020-01-31 22: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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