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20 청춘 역사 톡톡
“오래된 미래, 역사 속에서 얻는 교훈”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손님을 만난 후 저녁 7시 30분부터 서울 정토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해 역사 강의를 했습니다. ‘스님, 역사가 밥 먹여주나요?’라는 홍보물을 보고 130여 명의 청년이 모였습니다.

원래 강의 장소가 평화재단이었는데, 예상보다 신청자가 많아서 더 큰 장소인 서울 정토회관 대법당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가자 중 3분의 1은 정토회를 처음 찾은 청년들이었습니다. 불상이 있는 법당을 낯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어색해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살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신청자가 많아서 장소를 법당으로 옮기게 됐어요. 법당에 처음 오신 분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네요. 죄송합니다.” (모두 웃음)

스님이 웃으며 사과하자 낯선 환경에 굳어진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습니다. 스님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면 이해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려워요.”

“최근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다시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에 따라 한반도에는 새로운 냉전 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냉전 구조가 해체가 되고 나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냉전 구조가 해체되어 가는 중에 새로운 냉전 구조가 형성되는 형국입니다. 눈도 녹기 전에 겨울이 다시 닥친 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보편적인 세계 질서는 냉전 구조가 해체되는 해빙기를 거쳐서 새로운 경쟁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한반도는 구질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의 재편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지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을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갈등 구조가 다른 나라에 먼저 있고 나서 우리가 뒤따라갈 때는 그걸 보고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가 닥친 상황은 아직 다른 나라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입니다. 앞으로 30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금을 돌아보면 ‘이야, 우리가 그때 그랬으면 좋았는데’ 이런 말이 나올 겁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과거의 여러 경험을 찾아보는 겁니다. 과거를 보면 현재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공부는 과거에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지식을 아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또는 미래에 우리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그 방향을 찾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화석화시켜 둘 게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냐에 따라서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똑같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시대에서 그 사건을 해석할 것이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요.

역사 공부를 할 때는 두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 실제의 사실이 어떠했느냐 하는 겁니다. 둘째, 지금의 관점에서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우리에게 교훈이 되도록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느냐, 어느 계층에서 바라보느냐, 무엇을 위해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아는 데 그쳤어요. 그래서 ‘옛날에 일어난 사실을 알아서 뭐하나?’ 이런 의문이 자꾸 들고, 재미도 없고, 인생을 사는 데에 별로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지금의 문제를 푸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역사를 제대로 학습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굉장한 차이가 나게 돼요.

그래서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과거의 사실도 알아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도 정확하게 알아야 해요. 그래야 지금의 상황이 과거에 어떤 역사적 사건과 비슷한지 찾을 수 있어요. 비슷한 조건에서 교훈을 얻어야지, 전혀 다른 상황에서는 교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했던 과거 역사의 순간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조선 말기 1870년대부터 일제강점기 시기, 고려 말기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친명 정책을 펼쳐 조선왕조를 세운 시기, 청나라의 부상을 읽지 못했다가 화를 입은 조선 중기 ‘삼전도의 굴욕’을 차례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시험을 치기 위해 외웠던 역사적 사건들이 스님의 설명 속에 하나로 꿰어졌습니다.

“만약 주변 관계의 힘에 의해서만 한반도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하면 이것은 운명론에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너무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도 국제관계를 무시하는 태도예요. 주체 역량이 어떠냐 하는 것과 주변 정세가 어떠냐 하는 것을 항상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곡식을 심을 때 어떤 씨앗을 심느냐, 밭의 조건이 어떠냐를 모두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씨앗만 심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밭만 잘 가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반복되어 온 역사 속 교훈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100년 전에는 우리의 주체 역량도 부족했고,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 불리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원인을 잘 분석하고 공부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 패권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유할지, 중국이 우위를 점유할지, 아니면 팽팽한 경쟁이 계속 지속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각각에 대해 대안을 준비해 놓아야 해요. 1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신하고, 2안이 닥치면 어떻게 처신하고, 3안이 될 것에 대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다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미국의 봉쇄 전략을 뚫고 일어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의 관행대로 미국한테만 안주해 있으면 100년 전처럼 청나라만 믿고 있다가 청나라가 일본에게 지니까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는 꼴이 다시 되풀이되겠죠. 지금 중국이 우리한테 이와 비슷하게 압박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미국 편에 서서 우리를 적대하면 이제 너희가 타깃 1번이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미국의 대중국 전선에서 미리 몸을 빼겠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중간에 서겠다’ 이렇게 했다가도 미국한테 뒤통수를 맞게 됩니다. 갑신정변 때는 너무 빨리 빠져나오려다가 청나라에게 맞았고, 그 뒤로는 너무 늦게 빠져나와서 결국은 일본의 속국이 됐어요.

이렇게 과거 역사를 공부하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공부가 필요한 거예요.

고려 시대에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워서 한 번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금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지역에는 ‘야인’이라 불리는 여진족의 세가 강성했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도 그의 의형제들이 여진족이었어요. 세종대왕 때가 되어서야 이들을 압록강, 두만강 밖으로 밀어낸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평안북도 북쪽에 4군을 개척하고, 함경북도 끝머리에 6진을 개척해서 현재의 압록강, 두만강 국경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여진족이 백두산 아래 옛 고구려 땅에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들을 깔보고 야인 취급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세력을 키우더니 도리어 우리한테 ‘내가 형 할게. 네가 동생 해라’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형더러 ‘네가 동생 해라. 이제 내가 더 크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형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래서 후금을 무시해버리고, 부모 나라라고 생각했던 명나라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와 후금이 전쟁을 해서 명나라가 졌습니다. 후금은 북경을 점유하기 전에 우리한테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우리와 협력하자. 우리는 형제 아니냐’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후금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제안을 거부했어요. 그 결과 나중에 청 태종이 된 홍타이지가 우리를 침략해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됩니다. 청나라가 부상하리라는 사실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몰락해가는 명나라에 충성을 다하다가 청나라한테 당한 게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결국은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이런 상황이 200년이 지난 뒤에 또다시 반복됐어요. 청나라한테 충성하다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일본 식민지 하에서는 일본이 또 세계 패권을 가질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일본에 저항하고 싸웠지만 1937년 중일 전쟁을 시작으로 일본이 중국을 점령해 들어가니까 독립운동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친일세력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사실 일본은 곧 망할 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도 그걸 몰랐던 거예요.

한반도가 분단이 된 이유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우리가 미국 편이 돼서 일본에게 끝까지 싸웠다면 당연히 전쟁이 끝날 때 독립을 쟁취했겠죠. 그런데 주변국들이 우리가 일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우리가 일본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세계 지도자 중에 장제스(장개석)밖에 없었어요.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을 때 ‘4억 중국인보다 조선의 한 청년이 더 위대하다’라고 얘기했고, 그 이후 상해 임시정부를 보호해 주기도 했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전쟁이 끝나면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장제스입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장제스가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장제스와 마오쩌둥(모택동)이 서로 싸우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탈린이 ‘왜 장제스가 중국을 대표하느냐? 장제스는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카이로 회담에 불참해버렸습니다. 스탈린이 없는 상태에서 장제스, 루스벨트, 처칠, 이렇게 셋이 만났는데, 처칠과 루스벨트는 조선의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장제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줄 알아서 카이로 회담에서는 조선의 독립 얘기가 거론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장제스의 참석을 반대하니까 다음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는 결국 장제스가 빠지게 됩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루스벨트와 스탈린, 처칠, 이렇게 셋이 만났기 때문에 조선의 독립 얘기가 일체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만주는 소련이 관할하고, 일본과 대만은 미국이 관할을 했어요. 한반도는 누가 관할할 거냐를 두고 소련과 미국이 서로 자기가 하겠다며 맞섰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38선을 그어서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고, 북쪽은 소련이 관할하는 것으로 된 겁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미국과 일본이 합의해서 미국은 필리핀을 장악하고, 일본은 조선 반도를 갖기로 한 게 카스라-테프트 밀약을 맺은 1905년입니다. 그리고 딱 40년 지난 1945년에는 38선을 딱 그어서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관할하기로 합의한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

이런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 어떤 것을 예측할 수 있을까요? 지금 미국은 북한이 가진 핵을 없애려고 하는데, 중국의 도움 없이는 핵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할 수 있을까요? 중국이 북한 핵 문제만 확실하게 책임져주면 북한을 중국이 관할해도 좋다고 서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신냉전 체제에서 또다시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 가서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는 과거에도 한반도를 두 번이나 나눠먹더니 이번에 세 번째로 또 나눠먹으려고 하는 것이냐. 주변 강대국과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나눠먹네. 한 번은 일본하고 나눠먹고, 한 번은 러시아 하고 나눠먹고, 이번에는 중국 하고 또 나눠먹으려 하는 것 아니냐. 너희가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이제 너희는 우리하고 원수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발뺌을 하면서 ‘절대 안 그럴 거다’라고 대답은 합니다. 그러면 제가 또 말합니다.

‘안 그렇기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잖아.’ (모두 웃음)

지금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데, 만약 남한과 북한이 남한의 주도 하에 통일을 한다면 미군이 주둔한 통일한국과 1200km나 국경을 맞대어야 하잖아요. 중국은 이걸 하늘이 두 쪽 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남한까지 관할해서 대한해협에서 미국과의 전선을 구축하려고 할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새로운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역사를 공부해보면 항상 어리바리하다가 식민지배를 당했고, 어리바리하다가 분할이 돼서 강대국에 놀아났듯이, 지금 또 어리바리하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요. 중국 입장에서는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관할 하에 두는 게 제일 좋을 겁니다. 그게 안 되면 북한이라도 중국의 관할 하에 두려고 할 거예요. 그것도 안 되면 중국의 마지노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부터 200km는 절대 양보하지 못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강대국이 짜 놓은 판에 우리가 끌려 들어가게 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진짜 경쟁을 하겠다면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국과의 경쟁에서 훨씬 유리해요. 북한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면 중국이 곧장 나진항이나 청진항에 동해 함대를 둘 수 있어요.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의 극동 함대와 연합전선을 펴면 미국은 일본 방위도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딱 막고 있으니까 중국이 동해로 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미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북한을 핵 문제라는 관점에서만 보지 마라. 너희가 정말로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면 대중국 전선에서 북한을 활용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정말 중국을 견제하겠다면 북한을 오히려 너희 편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이 아직 안보를 불안해하니까 핵 폐기를 전제로 하되 우선은 핵동결부터 시작해서 북한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주고 미국 편으로 끌어와서 결과적으로 통일된 코리아가 미국에 협력하도록 하면 미국에 훨씬 낫지 않겠냐? 우리는 평화와 통일의 기회가 오고, 너희는 대중국 전선에서 유리해진다.’

지금 미국이 하는 정책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n first)’가 아니라 ‘차이나 퍼스트(China first)’라는 겁니다. 북한은 미국 말도 안 듣고 중국 말도 안 들어요. 그런데 미국이 이런 식으로 북한을 계속 압박하면 북한은 자기들도 살기 위해서 중국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는 아무리 자주를 주장하고 버티다가도 막판에 죽는 순간이 되면 살길을 찾게 마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같은 제재 국면에서도 압록강, 두만강 뒤로 중국으로 통하는 구멍은 다 뚫려 있는 겁니다. 중국도 국제사회의 제제에 협력해야 하지만, 그래도 북한과 원수가 되면 안 되니까요. 북한이 넘어지지 않도록, 또 만약에 넘어진다면 중국 쪽으로 넘어지도록 하고 있는 거예요.

중국도 그런 전략을 쓰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궁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북한과 서로 협력해 나가지만, 만약 북한이 자기 스스로 못 견뎌서 넘어진다고 하면 우리 쪽으로 넘어지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북한 안에 친중 정부가 아닌 친남 정부가 들어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 안에 친남 정부가 들어설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그러려면 이런 제제 국면 속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하거나 서로 협력할 방도를 찾아야 해요. UN 제재에 해당이 안 되는 인도적인 지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금강산 관광 같은 건 지금 당장 추진해도 괜찮아요. 요즘 중국에서는 북한에 들어가는 관광객이 1년에 30만 명이나 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남한은 멍청한 거예요. 미국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이나 인도적 지원은 UN 제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중국에서는 관광객도 보내고 인도적 지원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안 하고 있어요. JTS가 북한에 식량을 보내려고 해도 한국에서는 못 보내고 중국에 가서 보내야 해요.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처럼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미사일을 쏘는 게 반복되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점점 높아집니다. 전쟁이 안 일어나더라도 지금처럼 계속 압박하면 장기적으로 북한은 중국 쪽으로 넘어질 거예요. 설령 안 넘어진다 해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 원수가 될 겁니다. 그러면 중국, 러시아, 북한이 동맹 관계로 갈 거예요.

지금 미국은 우리한테 한미일 삼각동맹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겁니다.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는 그런 미국의 전략에서 나온 겁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자기들도 살아야 하니까 중국과 동맹을 맺을 테고, 그러면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패권 구도 아래에서 또다시 남한과 북한이 그 하부 구조에 편재되어 경쟁의 최전선에서 만나 부딪히게 됩니다. 통일은 아예 생각도 못할뿐더러 평화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이런 조건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협력해서 자주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한이 힘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면 중국은 당연히 조중 동맹에 의해서 군대를 파견하겠죠. 반대로 북한이 남한을 밀고 내려오면 미국이 군대를 파견할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힘으로는 통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6.25 전쟁 때 경험해 봤잖아요. 북한이 힘으로 남쪽을 밀어붙이니까 미국이 참여해서 막았고, 반대로 미국이 북쪽으로 밀어붙이니까 중국이 참전했어요. 그래서 전선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지금의 휴전선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자꾸 ‘북한을 폭격해버리면 해결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국이 없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중국은 아마 미국이 북한의 핵만 제한적으로 폭격해주길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현재의 북한 지도부가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겠죠. 그러면 중국이 북한에 친중 정부를 세울 수 있겠죠.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셈입니다. 중국도 북한이 말을 안 들으니까 골치 아프잖아요. 말 안 듣는 북한을 미국이 알아서 제거시켜주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이처럼 북한이 버텨도 전쟁의 위험이 있고, 질질 끌면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넘어지면 치중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요. 우리가 대처하기엔 이미 시기가 좀 늦었어요. 10년 전에 남북 관계를 풀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자발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으면 중국이 간섭할 명분이 없어요.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취직이 어떻고 결혼이 어떻고 연애가 어떻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 문제가 훨씬 중요해요. 전쟁이라는 건 우리들의 존립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안 일어나도 강대국이 짜 놓은 판에 이렇게 묶여 버리면 우리의 국가 진로가 막혀 버리게 됩니다.

물론 남한과 북한이 이 어려운 국면을 딛고 자주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길은 아직 있습니다. 완전한 하나의 통일국가는 아니더라도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미중의 경쟁 속에서 캐스팅보드를 거머쥘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반도에만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도 최소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평화가 올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는 곧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협력하면 우리 민족의 진로에 굉장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에게 최대의 위협이고, 미국이 우리에게 최대의 동맹이라는 이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현실을 무시하지 않되 현실에 안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고, 현실을 무시하고 나가면 평화도 지키기가 어려워요. 두 발은 현실에 딛고 이 상황을 수용하되 미래의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만에 찾아온 기회

그러려면 우선 미국과의 관계에서 종속적 한미 동맹 관계를 조금 조정해야 해요. 아무리 동맹 관계라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우리의 이익만큼은 미국이 양해를 좀 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미국에 맞서거나 반대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한반도는 우리 민족의 희망과 진로가 담겨 있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두 가지 원칙만큼은 고수해야 합니다. 첫째,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남북이 통일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늘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책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미국이 중국과 경쟁을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만큼은 우리의 이익을 우선시해서 보장해다오. 그러면 나머지 문제는 너희가 하자는 것을 협조하겠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해야 하는 게 동맹이 아니에요. 그러면 속국이지요. 주한미군 주둔비를 좀 더 내는 대신에 이건 꼭 보장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자기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안 주는 게 최고가 아니라, 조금 주더라도 그보다 더 큰 이익을 확실하게 보장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지금 우리 정부는 역량이 좀 딸리는 것 같아요. 역량이 딸리는 가장 핵심 이유는 역사의식 부족이에요. 판을 못 읽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확고부동한 관점을 딱 갖고 있어야 협상을 할 때 강할 땐 강하게 하고, 유할 땐 유하게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우리가 발해 멸망 이후 천 년 만에 약소국가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주국가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륙을 잃고 나서 지난 천 년 동안 지금만큼 역량이 커진 적이 없어요. 이 기회를 못 살리고 또다시 찌그러진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그래서 역사 공부를 좀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주입식, 암기식 공부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가 가슴을 두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명 교체기, 청-명 교체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반도 정세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투표를 잘하는 것 말고 국민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통일은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최고의 통일운동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 겁니다. 그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국민에게 있어요.

그것 빼고도 할 일이 있습니다. 방금 말한 내용을 잘못 들으면 국가주의적 통일이 될 수 있어요. 그 속에 사는 국민들의 삶을 무시할 수 있어요. 북한도 통일을 주장하기는 하는데, 그건 국가주의적 통일입니다. 말은 좋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이 외면되어 있는 통일을 말하고 있어요. 그게 국가주의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일본의 발전을 외치면서 한반도를 점령했는데, 우리만 고통받은 게 아니라 일본 국민들도 엄청나게 고통을 받았어요. 이렇게 지배세력은 항상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애국을 주장하기 마련이에요.

첫째,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제일 손해를 입기 때문에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둘째, 전쟁이 안 일어나긴 하지만 이런 긴장이 계속되면 제일 고통받는 사람이 바로 북한 주민들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보살펴야 해요. 남한은 자기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북한의 지배세력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해요.

우리가 정말 통일을 생각한다면 북한 주민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반대해도, 미국이 반대해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유엔이 정한 원칙에 인도적 지원은 항상 열려 있어요. 인도적 지원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안 하고 있잖아요. 지금 남북 간에는 모든 것이 단절되어 있어요.

북한 주민들은 앞으로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이잖아요. 정치체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몰라요. 그래서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을 때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면 교류 협력도 해나가야 해요. 왜냐하면 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니까요. 마음속에 적대 감정을 자꾸 부추기는 행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을 하는 것과 적대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다릅니다. 증오를 불러일으키거나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올바르지 않아요.

북한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럼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중국에 밀어 버릴까요? 왜 자그마한 독도는 가지려고 그 난리를 피우면서 그것보다 수만 배 큰 북한은 아무 생각 없이 중국에 밀어 버리려고 그래요? 북한이 많은 문제가 있지만 잘 다듬어서 쓸 수 있게 기회를 기다려야죠. 전 세계가 조그마한 돌섬 하나라도 갖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시대에 왜 북한과 통일할 생각을 안 해요? (모두 웃음)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 안 됩니다. 적대 감정이 남아 있더라도, 그걸 넘어서서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국익을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적대감을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은 봉쇄전략을 펼치고, 한반도를 기점으로 빈번하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홍콩 문제 등 중국 내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체제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러면 미중관계에 우리나라 현실이 어떻게 될까요?
  • 역사에 밝지 못하면 어떠한 불이익이 있고, 어떠한 이익이 있는지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총정리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 지금 가장 위급한 일은 무엇이고, 그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일까요?
  • 정치 사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기주장만 하고 편을 가르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보여요.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 정치 사회문제를 사실대로 바르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은 강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정된 강의 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30분이 더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아무리 세상이 살기 힘들어도 한국은 살 만하다는 긍정적인 평가 위에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해나가자”라고 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청년들은 큰 박수로 감사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의를 듣고 난 소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청년 정토회에서는 청년들이 모여 함께 역사를 탐구하는 ‘청년 역사학교’를 홍보했습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은 이런 작은 모임에서 시작됐을지 모릅니다.

내일은 tvN에서 하루 종일 녹화 촬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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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주

어떤식으로 나아갈지 알기위해 역사를 잘 알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6-06 05:55:56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2-22 20:19:28

청산별곡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020-01-06 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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