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18 송년법회
“올 한 해가 대성공인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송년법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의 각 정토법당에서도 생중계로 법회에 함께 했습니다.

마음을 맑히는 명상이 끝나고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약 1시간 동안 수행자는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지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9차 천일결사를 회향하고 나서 첫 번째 법회가 되겠습니다. 회향했다고 해서 아침 기도는 안 해도 됩니까, 계속해야 합니까?”

“계속해야죠.”

“정토회는 사업의 시작과 마무리를 3년 단위로, 즉 1000일을 기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개인의 수행이라기보다는 주로 대사회적인 봉사활동에 해당합니다. 3년간의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다음, 다음 3년을 시작하기 전에 100일 동안 잠시 쉬면서 지난 3년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잘한 것은 다음 3년에도 계승을 하고, 잘못한 것은 개선을 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충을 하고, 이렇게 새롭게 계획을 수립해서 내년 봄에 다시 1000일 동안 사업을 추진해 나갑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

처음 수행을 시작한 분들은 입재식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꾸준하게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수행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도 회향하는 날이나 입재하는 날이나 그날이 그날이에요. 수행자는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면, 오늘은 이런 일이 생기고, 내일은 저런 일이 생기고, 오늘은 입재를 하고, 내일은 회향을 하고, 오늘은 졸업을 하고, 내일은 입학을 하고, 이런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런 일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흐르는 물처럼 주욱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날이 오면 이렇게 대응하고, 저런 날이 오면 저렇게 대응할 뿐이지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입학한다고, 졸업한다고, 결혼한다고 난리를 부려요. 부처님은 죽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결혼하는 게 무슨 큰일이고, 이혼하는 게 무슨 큰일입니까. 인연이 되면 같이 만나서 살고, 인연이 흩어지면 혼자서 살면 되죠. 죽음이 와도 그저 저녁에 잠자듯이 편안하게 가면 돼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많이 오면 좋아하고, 적게 오면 힘들어하는데, 장사를 하다 보면 손님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는 거예요. 한 달 평균을 내보거나, 일 년 평균을 내보고, 이익이 남으면 계속 장사를 하고, 손실이 많으면 아무리 오래 해왔던 장사도 정리를 해야 되는 거예요. 처음 장사를 시작한 사람은 손해가 났다고 해서 금방 문을 닫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래 해오던 일이 적자가 나서 몇 가지 대책을 세워봤는데도 계속 적자가 난다면 그건 수명이 다 된 겁니다.

어떤 일을 해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한결같아야 한다는 말은 마음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조금 좋다고 들뜨거나, 조금 나쁘다고 가라앉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좋은 일이 나중에 나쁜 일이 될 인연이 되기도 하고, 지금 나빴던 상황이 도리어 나중에 복이 될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나빴던 상황이 도리어 복이 되는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하죠.

이런 자세를 갖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남들이 ‘잘 됐다!’ 하면서 막 난리를 피워도 그냥 빙긋이 웃고 말고, 남들이 ‘죽겠다!’ 하고 야단을 피워도 그냥 빙긋이 쳐다보고 말고,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되죠?”

“네.”

“그러니 자꾸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말이 왔다고 들뜨고, 새해가 왔다고 들뜨고, 그렇게 살면 일 년 내내 들뜨다가 시간을 다 보내게 되는 거예요. 지금 연말이 다가오니까 세상이 들뜨고 있잖아요. 밖에 나가보면 교통이 막히고, 백화점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거기에 휩쓸리면 늘 경계에 휘둘려서 살게 돼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제 힘으로 다니는 게 아니라 바람에 의해서 날려 다니다가 바람이 멈추면 어느 개울 창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연말이라고 해서 송년회 한다고 난리를 피울 게 아니라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점검도 하고, 각 법당마다 수고하신 분들에게 격려도 좀 해드리자는 취지에서 오늘 송년법회를 하는 겁니다.

총무 역할한다고 수고하셨고, 대표 역할한다고 수고하셨고, 대의원 역할한다고 수고하셨고, 팀장 역할한다고 수고하셨고, 담당자 역할한다고 수고하셨고, 그런 직위가 없는 분들도 방석 깐다고 수고하셨고, 여러분 모두 다 수고를 하셨어요. (모두 박수)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중에는 특별히 수고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는 박수로 더 격려를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송년법회라는 행사를 할 뿐이에요. 남에게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남의 박수를 받아보기도 하고, 이러면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이지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들뜨거나 가라앉는 감정 기복이 좀 적어지는 쪽으로 향해 나아가는 겁니다.

감정 기복이 적을수록 살기가 좋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결이 거세게 치는 바다 위보다는 잔잔한 호수 위에 배를 타고 다니는 게 쉬운 것과 같아요. 물론 위험을 좋아해서 파도가 심하게 치는 곳에 가서 윈드서핑을 하겠다는 것도 괜찮아요. 기분이 좋으면 깔깔깔 웃다가, 기분이 나쁘면 방구석에 쳐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요.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 그렇게 된다면, 연습을 좀 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어느 개울창에 쳐박혀도 괜찮다’ 하면서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에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버리면, 내가 처한 여러 가지 사회 환경이나 건강 상태, 심리 상태는 그와 다르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요.

모조품을 만들 때도 똑같이 만드는 건 어렵지만, 비슷하게 만드는 건 쉬워요. 똑같이 만들려면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게 좋아 보이면 비슷하게 하되, 내 역량에 맞게 해야 힘이 좀 덜 들어요. 너무 많이 다듬으려고 하면 수고가 많이 들어갑니다. 모난 것만 크게 다듬고 적절하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힘이 좀 덜 들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평가해 보세요.

‘개인 정진에 있어서는 어떤 게 부족했나?’

기도를 했다가 안 했다가 한 사람들은 나는 끈기가 부족했다고 평가를 할 수도 있겠죠. 이런 분들은 꾸준히 기도하는 것을 하나의 과제로 잡아보는 겁니다.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을 너무 구분해서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많았다면, 일은 고사하고 인간관계라도 좀 원만하게 지내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특별히 한 게 없는 것 같은 분들은 새해에는 한 가지 소임이라도 맡아서 보람 있게 살아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욕심을 많이 내면 안 돼요. 올해 평가를 해보니 ‘나는 다 문제다’ 이렇게 결론이 나면 죽고 싶어 집니다. (모두 웃음)

올 한 해가 대성공인 이유

이 혼란한 시기에 안 죽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올 한 해는 성공적이에요. 교통사고가 나서 좀 다쳤다 하더라도 안 죽고 살은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몸뚱이만 산 게 아니라 마음도 괴롭지 않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자리에 왔다면, 그것도 성공적입니다.

이렇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등산을 할 때도 다리에 쥐가 나서 남의 등에 업혀 오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더라도 일단 정상에 올라왔다면 성공적입니다. 이렇게 성공적이라는 평가 위에서 다음에 등산할 것을 대비해서 뭐가 부족한지 살펴봐야 해요.

‘신발을 좀 제대로 준비해와야겠다.’
‘힘들 때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좀 챙겨 와야겠다.’
‘개울을 건널 때는 미끄러지지 않게 더 조심해야겠다.’

이렇게 평가를 하면 다음에 산행할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지난 한 해를 평가할 때도 긍정적인 평가 위에 부족한 몇 가지를 살펴야 ‘아, 내년에는 좀 더 개선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겨요. 전부 다 부정적으로 평가해버리면 의욕이 안 생깁니다. ‘해봐야 안 되는 걸 또 하면 뭐하나’ 하고 그만두게 돼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평가를 기반으로 해서 내년에는 몇 가지를 개선해서 다시 도전해봐야 해요.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 연말연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새로운 측면에서 한해를 평가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스님이 늘 웃음을 머금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올 한 해를 돌아보니 대성공입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수행자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나는 수행자다!

“정토회 활동이 힘든 이유는 수행자라는 관점을 자꾸 놓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의 처지는 수월한 편에 속해요. 그런데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빡빡한 게 사실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스님들만 수행을 할 수 있었어요. 수행자가 되려면 결혼도 안 해야 하고, 고기도 안 먹어야 하고, 술도 안 먹어야 했어요. 등허리가 따뜻하면 수행이 안 된다고 해서 냉방에서 자고, 나무 아래에 자고, 다 떨어진 옷을 입었어요. 부처님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셨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여러분은 결혼도 했고, 집에서 살고, 옷도 잘 입고, 먹는 것도 삼시세끼 다 잘 먹잖아요. 그러면서도 수행자로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쉬운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기준을 수행에 둬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님이 우리한테 너무 어려운 요구를 한다’라고 하지만 그건 제가 여러분을 수행자라고 보기 때문에 그래요.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수행공동체 정토회’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머리를 기르고 있다는 이유로 자기가 일반인이라고 자꾸 착각해요. 풀어주니까 한도 끝도 없는 거예요. 일반 사람과 차이가 없으면 굳이 수행자라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매주 한 번 열리는 이 법회마저도 이제는 수행자들이 모여서 듣는 법회로 성격을 바꾼 거예요. 수행자가 들어야 할 얘기를 자꾸 일반 신도들에게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정토회가 뭘 자꾸 하라고 해서 너무 힘들다. 수행하라 그러지, 보시하라 그러지, 뭐 하라 그러지... 끝이 없네.’

복을 비는 사람들은 자기가 빌고 싶은 날에 쌀 한 말머리에 이고 초 몇 자루 가지고 와 바위 밑에 놓아두고 빌고 오면 되거든요.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 절에 가던 생활을 하다가 정토회에 오면 할 게 많다고 느껴지는 게 당연해요.

‘매일 아침마다 수행해라, 매주 한 번 수행 법회에 참여해라, 일주일에 하루는 불교대학 담당을 하든 뭘 하든 봉사를 해라’

이런 의무사항이 주어지니까 힘들다고 하는데, 이건 여러분이 수행자여서 그래요. 수행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스님이 이런 요구를 안 해요. 자기가 봉사하고 싶으면 봉사하고, 수행하고 싶으면 수행하고, 보시하고 싶으면 보시하면 됩니다. 안 해도 ‘너, 왜 안 했니?’ 이런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은 자기가 수행자가 되겠다고 신청을 한 사람들이잖아요. ‘왜 회비 안 냈냐?’, ‘왜 수요 법회 참석 일수가 부족하냐?’, ‘왜 매일 기도를 안 하냐?’ 이렇게 물어보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당신은 수행자 자격 정지입니다’ 이렇게 알려주도록 되어 있어요. 자격 정지된 게 기분 나빠요? 수행자로서 해야 할 것을 안 하는데 어떻게 수행자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수행자가 되려면 첫째,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매주 수행 법회에 나와야 합니다. 셋째, 1년에 한 번은 수행도량에 와서 5일 정도 정진을 해야 합니다. 넷째, 아무리 적어도 주 2시간 또는 월 하루 이상은 봉사를 해야 합니다. 다섯째, 보시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을 빌지 않으니까 돈을 내줄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회비에 해당하는 삼보 수호비를 내서 수행공동체를 유지해 나가야 해요. 이게 미니멈이에요. 그것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해야 됩니다.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일반 신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토회 회원이 되면 좀 빡빡해지는 건 맞아요. 그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결혼을 해도 괜찮다고 하고,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하니 사실은 그리 빡빡한 건 아닙니다.

첫째, 네 마음대로 살더라도 남을 해치지는 마라.
둘째,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남에게 손해는 끼치지 마라.
셋째,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남을 괴롭히지는 마라.
넷째,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는 마라.
다섯째, 술을 안 먹으면 가장 좋지만, 먹더라도 취하도록은 먹지 마라.

이렇게 다섯 가지 기본 계율만 지키면 생활에서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덜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열 번, 스무 번, 백 번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첫째, 우리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자기 마음에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법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이 좋은 법을 이웃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 정도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한반도에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이 땅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아직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셋째,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앞장서는 평화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조금 더 앞서가려면 통일을 해야 해요. 그래서 넷째, 우리는 통일을 일구어나가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정토행자입니다. 수행자로서 여러분이 이런 관점을 딱 갖고 있으면 정토회 활동이 참 쉽습니다. 이런 관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겁니다. 세속에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세속에 서 머리도 기르고, 결혼생활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 보니까 자기가 수행자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겁니다. 수행자라는 관점을 놓쳐버리면 좀 빡빡한 건 맞아요. 스님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수행자라는 관점을 딱 가지고 있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너무 수월해서 탈이죠. (모두 웃음)

그래서 매주 수행 법회에 나와서 ‘나는 수행자이다’ 하는 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해요. 수행자라는 관점을 놓쳐버리면 남편과 얘기할 때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고 따지게 되는데, 수행자라는 관점을 딱 가지고 있으면 남편이 저런 말을 할 때 ‘내가 흥분하느냐, 안 하느냐’가 점검 기준이 됩니다.

‘아, 이번에는 내가 남편의 반응에 끌려 들어갔구나.’
‘아, 이번에는 그래도 안 끌려 들어갔네’

이렇게 자기를 점검할 수 있으니까 결혼 생활이 재미있어요.

‘남편이 술을 먹고 오니까 내가 반응을 하네.’
‘남편이 늦게 들어오니까 내가 반응을 하네.’
‘12시까지는 남편이 안 들어와도 내가 반응을 안 하더니, 1시 넘으니까 반응을 하네.’

이렇게 딱 체크하면,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재미있고, 체크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 이럴 때는 반응하고, 이럴 때는 반응을 안 하네.’
‘남편은 되는데 애는 안 되네. 내가 애한테 집착이 더 강한가 보구나.’

이렇게 자기를 딱 체크하니까 부족한 가운데서도 늘 연습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이나 아내가 하루에 잔소리를 세 번 해주면 수행할 기회가 세 번 생기는 셈이에요. 잔소리를 열 번 해주면 더 고맙죠. 열 번이나 점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잖아요. (모두 웃음)

상대가 성질이 어떠한지,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수행자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럴 때 내가 어떠냐’ 이걸 보면서 자기 점검을 해나가니까요. 그런데 수행 관점을 놓쳐버리면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 ‘자식 때문에 못 살겠다’, ‘직장 상사 때문에 못 살겠다’ 하며 온갖 아우성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연말에 이런 관점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나는 법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나는 평화를 지키는 수행자입니다.
나는 통일을 만들어나가는 수행자입니다.

이런 관점을 딱 갖고 일상생활을 하면, 모양과 형식, 거주 장소에 관계없이 모두 수행자입니다. 연말에 혼란에 휩쓸리지 마시고 수행자의 본분을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술을 한 잔 하더라도 절대로 취할 때까지 마시면 안 되고, 언쟁을 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가만히 들어주세요. 그런 수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지난 3년 동안 법당 곳곳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해 준 대중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은 선물이 전달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한 해 동안 차 안에서 쪽잠을 자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중한 가르침을 설해 준 법륜 스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고 이 세상에 희망이 되는 올바른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함성과 함께 큰 박수로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발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마주 보고 합장을 하자 마경숙 님이 발원문 낭독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마흔 살 되던 1992년 여름, 인사 발령을 받고 부임한 책상 서랍에 전임자가 가지런히 두고 간 몇 권의 월간 정토 책이 저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후 혼자 기도를 하던 중 법륜 스님을 뵙고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독심을 품어서 그렇다. 매일 200배씩 100일간 참회기도 해라. 49일 지나 중간점검받으러 오너라.’

저는 스님의 말씀이 마취도 안 하고 맨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남편에게만은 잘하는 줄 알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스님이 손수 적어준 기도문을 새기며 200배 기도를 했습니다. 너무나 다리가 아픈데, 다리 아픈 것보다 억울함이 더 컸습니다.

‘나보다 못된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보고 독심을 품었다 하십니까?’

매일 악을 쓰며 기도를 했습니다. 21일쯤 지나니 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되신 시아버님에, 아이 둘에, 엄중한 직장 생활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 되면 허덕거리면서 ‘왜 나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지 않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고받고 싸우며 악다구니 쓰는 것만 잘못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원망이 더 큰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수행 점검을 받으러 간 저에게 스님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편안합니다’라고 대답하니 다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편해졌다고 기도 게을리하다가 죽네 사네 하는 사람들 많으니 꾸준히 해라.’

100일이 가까워지니 뛸 듯이 기쁘고 가벼웠습니다. 화가 잘 안 나고 편안한 것이 신기했습니다. 천일이 지나고 삼천 일이 지나니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바뀐다는 것, 아니 내가 바꿔나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버럭버럭 화내고 원망하고 미워하던 그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게 더 무서워서, 27년이 지난 오늘까지 쉬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몸이 천근만근 죽을 듯이 일어나기 싫을 때도 많았습니다. 몸이 쉬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몸이 하자는 것과 반대로 300배, 500배, 1000배, 3000배를 하면서 고비를 넘겼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습니다.

‘맹신 아니냐?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머리 깎고 산으로 가라.’

이 말을 듣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남편이 지금은 정토회 법사가 되어 있습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매일 기도하면서도 내 생각 앞세우기 바빴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바빴습니다. 때때로 초발심을 잊고 갈팡질팡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함께 행복한 길을 가겠다는 처음 약속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발원문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어서 스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간절한 발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저희 정토행자들은 서초 법당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두 손 모아 합장하면서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저희들은 늘 마음에 원망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해서,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자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나는 착하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고 하늘도 나를 몰라줄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사주팔자가 어떻길래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생에 하늘에 사주팔자까지 원망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 법 만나 이 모든 것이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어서 잘못 알고 한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치를 깨우치고 그 업장을 조금씩 녹이면 원망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부처님 법 만나 희망의 끈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살아온 습관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끄달리고 소리에 끄달리고 냄새와 맛에 끄달리고 접촉에 끄달리고 생각에 끄달리며 지금도 방황하고 널뛰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처럼 끄달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러나 이제 그 길을 알고 그 길을 한발 한발 가고 있기에 수행마저도 너무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꾸준히 정진해가겠습니다. 또 괴로운 사람들의 아우성을 외면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그들 또한 나처럼 이법 만나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하겠습니다.

새해에도 이 길을 따라 부지런히 잘 가겠습니다. 혹시 저희가 이 수행자의 자세를 놓치게 되면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옵소서.”

스님의 간곡한 발원에 더욱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의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한해를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송년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평화재단을 찾아온 스님과 연달아 회의를 한 후 오후 4시부터는 사회활동위원회 회의가 평화재단에서 열렸습니다. 평화재단, 좋은 벗들, JTS, 에코붓다, 콘텐츠사업국 등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부서가 모두 모여 2020년을 준비하는 논의를 했습니다.

특히 평화재단의 구조를 내년부터 개편할 예정인데 그 초안을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스님은 실무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고, 각각의 의견을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

내일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발우공양에 참석한 후 하루 종일 미팅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8

0/200

최연주

수행자의 관점 잊지않겠습니다

2020-06-06 05:45:03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2-22 17:57:11

AllesGute

꾸준히 꾸준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1-11 20: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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