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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온 정토불교대학 학생 1500여 명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하고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구름이 많은 서늘한 날씨입니다. 어제 경주 남산을 올랐던 손님들과 함께 오늘 오전에도 경주 남산을 둘러보았습니다. 어제는 새갓골로 올라가서 이영재를 지나 국사골로 내려왔는데, 오늘은 남산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인 삼릉골과 탑골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먼저 남산의 서쪽 기슭으로 향했습니다. 소나무 숲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삼릉을 지나 머리와 팔다리가 소실된 불상으로 유명한 석조여래좌상과 바위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 선각육존불을 둘러보았습니다.
경주 남산을 순례하는 방법 중에는 골짜기 하나를 타고 올라가서 고개를 넘어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산 밑에 있는 유적지만 골라서 골짜기마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구경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은 후자의 방법으로 순례하기로 했습니다.
삼릉골을 내려온 후 이번에는 탑골로 올라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가니 높이 10m 둘레 30m의 큰 바위 면에 여러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 ‘마애불상군’이 나타났습니다.
바위 위에는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구층탑, 칠층탑, 석가여래, 천녀, 사자, 비천상, 승려상, 금강역사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그림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스님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설명을 하던 중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승려상을 새로 보기도 했습니다.
“바위 밑에서는 보기 어려웠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선명하게 보이네요.”
손님들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당시 신라인들이 이곳에 조각을 했던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얼굴이 반듯하고 잘 생긴 부처님으로 유명한 보리사 불상을 마지막으로 본 후 남산을 내려왔습니다.
“스님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이곳에 와보겠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손님들을 떠나보내고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맞이하러 통일암 너른 숲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이 도착하기 전 도시락을 꺼내 먼저 점심을 먹었습니다.
각 코스별로 순례를 마친 학생들이 법사님들과 함께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영상 속에서만 만나던 스님을 생전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스님과 악수를 한 학생들은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막간을 이용해 노래자랑이 펼쳐졌습니다. 아침에는 날이 흐려 쌀쌀했는데 오후부터 해가 나와 학생들의 얼굴을 밝게 비춰주었습니다.
“밥은 다 드신 분 중에 대중을 위해 노래를 한번 불러보겠다는 분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엄마와 함께 온 16살 중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각양각색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에 맞춰 대중은 박수를 치고 웃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야외에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도 영상 안에서 여러분 본다고 답답해서 혼났어요. 여러분도 경주에 오셔서 좋지만, 저도 영상 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까 좋네요.(모두 웃음)
스님의 재미난 인사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영상강의로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충들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은, 제가 세계 여러 곳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장소와 사람은 다르지만 제가 힘들어하는 건 같은 이유라는 점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힘들 때,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 제가 끌리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제가 힘든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서 저로 하여금 더 성숙해지고 배우라는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다 아니에요. 질문자 성격이 더러워서 그래요.(모두 웃음) 하늘에서 무슨 이유가 있어서 질문자를 특별히 공부시키기 위해 이 일을 만들고 저 일을 만들까요? 그렇게 할까요, 안 할까요?”
(대중) “안 해요.”
“그런 선한 마음을 갖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은 우리가 죽든 살든, 괴롭든 슬프든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만약 나를 위해서 이 일을 만들고, 나 공부하라고 저 일을 벌여주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과대망상증이에요. 세상은 질문자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스님께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만약 누군가를 만나서 힘들다면 제가 어느 선까지 그 사람에게 맞추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 하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선을 넘어서면 ‘이건 아니구나’하고 판단을 해야 하는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되면 욕을 먹는 거고, 누가 나를 칭찬해도 그 칭찬이 도리어 나에게 손해가 되면 그때는 칭찬도 거절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어떤 기준이 없어요.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거예요. 상대방은 상대방 성질대로 그냥 말하고 행동하는 거예요.
비가 올 때 ‘나한테 농사지으라고 비가 오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 ‘오늘은 소풍을 가라고 날씨가 좋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비가 나를 고려해서 오고 안 오고 할까요? 아니면 비가 오게 될 때 오고, 안 오게 될 때 안 오는 걸까요?
비는 그냥 오게 될 때 오는 겁니다.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을 자꾸 연결을 지어서 ‘이러라고 비가 오는구나’, ‘이러라고 비가 안 오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착각이에요. 비한테 물어봐요, 비는 그렇게 생각해서 오는 게 아니에요. 비가 올 때는 우리가 소풍을 가는지 안 가는지 고려 안 하고 그냥 와요. 비가 ‘오늘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소풍을 간다고 하니 오늘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모두 웃음)
그런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얘기예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렇게 생각을 했고, 또 대중을 혹세무민 하기 위해서 ‘오늘은 내가 가니까 비도 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래야 대중들이 혹 하니까요. 그런데 비가 오는 거랑 우리가 남산 순례하는 거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비가 와도 남산 순례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면 설령 계획을 했더라도 안 하면 돼요. ‘비를 맞아가면서 모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비 맞으면서 노는 게 뭐가 어렵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 또 이렇게 모여서 노는 거예요. 이건 하느님이나 부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결국 그런 조건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세 사람을 만났는데 세 사람 모두 나랑 잘 안 맞다면, 그건 전생에 죄가 많아서일까요?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소리예요. 내가 성질이 더러우니까 세 명 다 나를 안 좋아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물론 그중 한 명이 나를 안 좋아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어요. 거기에는 내가 잘못할 확률이 반, 상대방이 잘못할 확률이 반이니까요. 그런데 세 사람이 모두 나를 안 좋아하면 첫 번째 사람과도 책임이 반반, 두 번째 사람과도 반반, 세 번째 사람과도 반반이니까, 1/2 x 1/2 x 1/2 하면 1/8이 나오잖아요. 그러니 세 사람이 모두 잘못할 확률은 1/8이고, 나에게 책임이 있을 확률이 7/8이에요.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금방 답이 나옵니다.(모두 웃음)
이런 이유 때문에 제가 수학의 확률과 통계 공부를 평소에 해 둘 필요가 있다고 하는 거예요. 복권을 샀는데 당첨이 안 되거나, 오락실에 갔는데 돈을 잃었다고 슬퍼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수학에서 기댓값이라는 거 알아요? 복권이나 오락실 기계들은 모두 100원을 넣으면 평균 기댓값이 49원만 나오게 설계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런 걸로 돈을 벌겠다는 건 이치와 맞지 않습니다. 대신 재미로 하는 건 괜찮아요. 100원을 내고 49원을 받아도 재미를 봤다면 51원을 잃을 가치가 있어요. 51원을 잃는 대신 재미라는 가치를 얻었잖아요. 그런데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오락하면서 사람들이 돈을 잃어줘야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주식을 하는 회사 직원들도 사람들이 돈을 잃어줘야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런 걸 알고 해야지,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이 주식을 밀어주고 저 주식을 밀어주겠어요.
축구 시합에서 이겼다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믿는 신은 축구 시합하는데 와서 이 골 넣어주고 저 골 넣어주고 하는 거잖아요.(모두 웃음) 마찬가지로 부처님께 기도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자식의 명문대 합격이 결정된다면, 그건 그냥 심보가 더러운 거지 우리가 존경하는 부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부처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 사람이 그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질문자가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다면, 그건 하늘에서 간섭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그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영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적응력이 부족한 거예요.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은 농촌에 가도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답답해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산에 가자고 하면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해요.”(모두 웃음)
“그런데 저는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에게 맞춰주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맞춰주어야 하는 건 없어요. 맞추는 게 나에게 이익이면 맞추고, 안 맞추는 게 이익이면 안 맞추는 거예요. 성질을 내서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성질을 내고, 이익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성질이 나도 꾹 참고 이익을 먼저 챙기는 거예요. 남편이 돈은 잘 벌지만 성질이 더럽다면, 이혼하고 다른 데 가서 돈을 버는 게 나아요, 비위 맞춰주고 돈을 빼먹는 게 나아요?”
“비위를 맞추는 게 낫죠.”
“그게 회사 다니면서 돈 버는 것보다 쉽잖아요?”
“네.”
“그래요,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거기서 남편 성질이 더럽다는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소풍 가는 날 비가 온다고 해서 고민할 게 없어요. 비를 맞고서도 가든지, 비 맞는 게 싫으면 안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자기가 선택하면 되는 거예요.(모두 박수)
세상 사람들은 내 인생에 별 관심이 없어요. 내가 과대망상을 갖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부처님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내가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날 일은 없겠죠.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면 얼른 교통사고가 나지 않게 손을 쓰시겠죠. 교통사고는 고사하고 성당이 불에 타는 것도 가만히 두시는데 무슨 다른 일에 관여를 하시겠어요?(모두 웃음)
그러니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중생을 현혹하면 안 됩니다. 우리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대부분 적어도 오백 년, 천 년 이전에 나온 이야기들에요. 그때는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혹 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이야기에 혹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90년대를 걸치면서 절도 많이 생기고 대형 교회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국가경제와 가계경제도 성장했고, 직장도 늘고, 월급도 늘어날 때였기 때문에 ‘우리 가게 잘 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성취될 확률이 높았어요. 그러다 보니 교회나 절에 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게들도 잘 안 되고, 직장도 줄어드니까, 기도해도 성취가 안 될 확률이 높아졌어요. 예전에는 10명이 기도하면 8명은 성취가 되었는데, 요즘은 10명 중 1, 2명밖에 성취가 안 되니까 8명은 ‘빌어봐야 소용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나 절의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아직 경제가 성장하고 있으니까 기복신앙을 갖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건 모두 사회현상이에요.
우리가 정토불교대학에 모여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예요. 질문자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으면 이제 허무맹랑한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세 사람을 만났는데 세 사람 모두 나를 싫어하면,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그때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 사람도 나를 싫어하고,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할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까?’, ‘하느님은 왜 나한테만 이러실까?’, ‘왜 미국에 가니 미국에 따라오고, 영국에 가니 영국까지 따라와서 나를 못살게 굴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하느님이든 누구든 질문자한테 그런 관심이 없어요.”
“네,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스님께 호통도 들었지만, 깨달은 바도 큽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웃으셔서 기쁩니다.”
“뭘 깨달았는지 말해봐요.”
“우선 제게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어진 상황에서 용기를 내서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에 용기가 왜 필요해요? 선택이 망설여지는 것은 어느 선택이 좋은지 몰라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른 과보를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릴까요, 말까요?’라고 물으면 정답은 없어요. 돈을 빌리고 싶으면 빌리고, 안 빌리고 싶으면 안 빌리면 됩니다. 다만 빌리면 갚아야 하고, 갚는 게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인생에는 그 두 가지 길 밖에 없어요.
그런데 자꾸 요행을 바라면 누군가에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님한테 물으면 결국 스님의 노예가 됩니다. 요즘은 1,500여 개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모두 봤다는 사람도 많이 만나는데, 그건 좋은 증상이 아니라 마치 마약에 중독되듯이 유튜브에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몇 개만 보고 ‘아, 스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으면 자기 문제에 적용하면서 계속 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습은 하지 않고 스님이 말하는 것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건 중독증이에요.
직접 스스로 연습하지는 않고 스님만 계속 찾아와서 ‘제가 스님 유튜브를 다 봤어요’라고 하면 제가 훌륭하다고 말할까요? ‘아이고, 이 또라이야’ 이렇게 말합니다.”(모두 웃음)
인생의 시작이 불공평한 젊은이들을 보며 답답하다는 질문자와의 대화에서도 짧지만, 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합니다. 그런 젊은이들은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하면서 삽니다. 불공평하게도 어떤 젊은이들은 너무나 가진 거 없이 인생을 시작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조절이 필요한데,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욕구를 많이 가져도 충족이 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그보다 적은 욕구를 가져도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아이는 부모가 마약을 해서 어릴 때부터 마약을 하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부모가 마약을 하지 않아서 마약을 접하지 못했다면, 이 부분도 평등하게 맞추어야 할까요?
여기에서 차이점은 돈과 마약이라는 것밖에 없어요. 돈이 뭐가 좋다고 돈이 많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나요? 여기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돈이 좋습니까? 부잣집 아이들이 더 많은 욕망을 가지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게 꼭 좋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제 개인적으로 그런 걸 바라지는 않지만, 젊은이들 중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듭니다.”
“인도 아이들이 굶어 죽는 걸 보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아니면 한국에서 다른 아이들은 유학을 가는데 자기는 유학을 못 가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아니면 어떤 젊은이는 아이돌 가수로 유명해졌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젊은이를 보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세요.”
“기본적인 욕구는 보장되어야 하잖아요. 요즘 아이들에게 최소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의 공부는 초등학교까지예요.”(모두 웃음)
“그게 최소한의 공부 기준이라면 제가 다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는 문맹퇴치입니다. 그래서 기준이 초등학교까지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도 전 세계에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몇 천만 명이 있습니다. 한국만 고려하면 최소한의 공부가 중학교 정도라고 볼 수 있고, 부잣집 아이들만 기준으로 하면 대학교라고 볼 수 있고, 더 부잣집 아이들을 기준으로 하면 외국 유학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이건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구 상에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즉, 한국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게 핵심과제가 아니라 인도나 아프리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게 우리의 주관심사가 되어야 해요. 저는 우선 초등학교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전 세계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에는 갈 정도가 된다면, 중학교로 관심사를 옮기려고 합니다. 인도 JTS에서도 초등학교에 못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면 주변에 지원을 요청하든지 어떻게 해서든 다닐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해요. 그런데 인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중학교에 가는 것은 형편이 되는대로 도와줍니다. 초등학교만큼 우선순위를 두지는 않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평등하게 교육받아야 하는 기준이 중학교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누구나 중학교는 다니도록 돕는다면 저도 지지합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인도나 아프리카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급하니까 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식량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 누군가 좋은 쌀이 아니라 정부미를 받아먹기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그 문제보다 설령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더라도 북한에서 사람이 굶어죽는 문제가 더 우선순위예요. 북한에서 옥수수도 못 먹어서 굶어죽어간다고 하니, 이전 정부에서 북한 지원을 하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해도 중국에서 어떻게든 옥수수를 구해서 보내줬습니다. 한국에서도 누군가 굶어 죽고 있다면 저는 그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해결하려고 할 거예요.
한국 사회에 불평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을 어느 기준에서 볼 것인가도 따져봐야 해요. 저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지하지만, 전 인류적 기준에서 기본권에 해당하는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많기 때문에 그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지만 조선시대, 일제시대보다 나아졌고, 과거 정부 때보다는 나아지고 있어요. 물론 다 해결된 건 아니에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들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관점 위에 개선해야 할 점을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이와 같은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스님은 진정한 해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즉문즉설을 마무리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나에게 닥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는 게 해탈이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꿋꿋이 사는 게 해탈입니다. 소풍 가는 날 비가 안 오도록 하는 게 해탈일까요, 비가 와도 비옷 입고 소풍 가는 게 해탈일까요? 비가 오면 비가 와도 비옷을 입고 가든지 아니면 비까지 맞고 갈 이유가 없으면 안 가도 돼요. 부지런히 정진하셔서 해탈하시기 바랍니다.”
2시간 넘게 유쾌하게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두 법회를 듣기 전보다 홀가분해진 마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산길을 내려온 대중들은 염불사 앞에 모여 경주 남산 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대중들을 위해 축원해주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다섯 개의 코스로 흩어져서 경주 남산 순례를 정성껏 안내해 준 법사님들, 통일암 주위를 법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깨끗이 정비하고, 순례가 잘 진행되도록 도와준 대구경북, 부산울산, 경남지부 스텝과 의료지원팀, 불교대학 담당자들을 소개했습니다. 학생이 1100여 명, 스텝이 400여 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불교대학생을 위하는 선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중은 큰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남산 순례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경주로 나들이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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