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1.18. 김장 2일째
“수고 많았어요.”

스님은 불교대학 특강이 끝나자마자 행자들이 한참 김장을 하고 있을 두북으로 바로 달려왔습니다.

한편 행자들은 새벽기도를 마치자마자 밤새 소금물에 절여진 배추를 3단계로 나눠서 찬물에 행구는 일을 했습니다. 무청도 소금물에 절이고, 무도 씻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양념을 만들기 위해 채소를 썰고 고춧가루와 버무리는 일을 했습니다. 늙은 호박도 푹 삶아 찹쌀로 풀을 쑤었습니다.

배추가 모두 헹구어지고 양념이 다 만들어지자 드디어 양념을 배추에 치대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념을 꼼꼼히 바르고 무, 미나리, 갓을 송송 썰어 만든 속도 사이사이 넣어줍니다. 공기 접촉을 줄이고 양념이 배추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배추를 마지막 겉잎으로 잘 싸주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허리가 아픈 사람은 허리 펴는 시간도 틈틈이 가지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습니다.

양념 넣기를 3분의 1 정도 했을 무렵에 스님이 도착했습니다. 잘 버무려진 첫 번째 김장 김치가 점심 밥상 위에 올라왔습니다. 한 행자는 “김치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 까지 전 과정을 체험해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라며 아주 뿌듯해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최말순 보살님은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느라 더 고생이 많았다” 며 숨은 노고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제 소금을 많이 뿌려서 짜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짜지 않아 모두들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양념을 넣은 김치는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꾹꾹 눌러 김치통에 담았습니다. 김치 중간 중간에 잘 버무려진 무도 함께 넣었습니다.

그동안 평화재단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분들에게 선물용으로 드릴 김치는 작은 통에 담아 정성껏 포장을 했고, 공동체 식구들이 먹을 김치는 큰 통에 가볍게 담았습니다. 양념이 모자라 버무리지 못한 김치는 백김치를 담그기 위해 따로 모았습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속을 넣고, 겉잎을 감싸주는 단계마다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감을 몸소 느끼고 나니 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김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편 스님은 김장에 사용하고 남은 무를 일부는 씻어서 서울로 보내도록 포장을 하고, 남은 무는 뒤뜰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얼지않도록 장독 뚜겅 위에는 부직포를 살포시 덮어두었습니다.

또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직 뽑지 않은 배추들의 겉잎을 가지런히 모아 끈으로 묶는 일을 했습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배추가 어는 것을 막고, 속 알맹이가 잘 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직 뽑지 않은 무의 청을 솎아 주었습니다. 청이 무성했는데 스님의 손길을 거치고 나니 이발을 한 것처럼 가지런해졌습니다.

김장을 하면서 나온 무청과 스님이 솎아낸 무청은 모두 바구니에 모아 두었는데요. 스님은 어릴 때 새끼줄 꼬던 실력을 발휘하여 무청을 하나의 줄로 가지런히 엮기 시작했습니다. 한 땀 한 땀 엮다보니 금새 긴 줄이 되었습니다. 손바닥으로 끈을 굴리는 솜씨가 몸에 베어있는 듯 익숙해 보였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 하다 보면 달인이 될 수 있겠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문리가 트이는 거야. 그렇다고 아무나 달인이 되지는 않는데, 똑같은 일을 해도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이 있어.”

끈으로 잘 묶은 무청은 비를 맞지 않게 처마 밑에 말렸습니다. 가지런하게 무청이 널린 모습을 보며 스님이 웃으며 말합니다.

“내일까지 해야 되나 걱정했는데, 오늘 다 끝낼 수 있었네. 다들 밥값 했다.”

통에 담겨진 김치들은 오늘 서울로 가져가기 위해 차에 실었습니다. 깨끗하게 씻은 무는 튼튼한 포대에 담았습니다. 김장을 담그느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고무장갑, 앞치마, 칼, 도마, 고무 대야를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가지런히 정리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스님의 한 마디에 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 고단함이 다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행자들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스님은 사람들이 잠시라도 몸을 녹이고 갈 수 있게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김장을 마친 스님과 행자들은 김치와 무를 차에 가득 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 정성이 한반도의 평화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잘 쓰여지길 기원해 봅니다.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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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이 음식이 내게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감사합니다 꾸벅^^

2018-12-09 06:27:13

나무

스님의 하루는 장르가 무엇인가요???
정말 다이나믹합니다...
행복해집니다..
스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18-11-23 18:15:55

박용삼

모르는 게 없고 못하시는 게 없는 스님^^
하지만 읽는 내내 몸살 나실까 걱정드네요
계셔 주기만 해도 의지가 되오니
몸 덜 무리 가게 행보해 주시고 건강히 오래 사바세계 머물러 주십시요

2018-11-22 14: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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