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18 용성진종조사 오도일 기념식 / 세종 행복한 대화 강연
“이혼한 남편과의 동거, 다시 잘 살고 싶어요”

오늘은 한국 근세불교의 중흥조이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이신 용성진종조사가 깨달음을 얻으신지 131주기를 기념하는 법회를 조사의 생가 터 장수 죽림정사에서 봉행하였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위해 전라북도 장수군까지 이동해야 해서 대중들보다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기도를 마치고 바로 장수로 출발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전국의 300여명의 가을경전반 학생들과 정토회원들, 내외빈 들이 모였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광주 전라지역 봉사자들의 환한 미소가 새벽길을 달려온 정토회원들의 피곤함을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금빛 들판과 알록달록 물들려하는 가을산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9시 30분 유수스님의 진행으로 다례제가 열렸습니다. 다례제는 부처님이 법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달하기까지 7여래불과 69조사, 7대사 등에 대해 차 공양을 올리는 예식인데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불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경전반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10시 30분부터 제 131주기 오도일 기념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후 정광 사무국장님이 용성진종조사의 행장 낭독, 장수군 부군수 한명희님의 추모사, 유수스님의 환영사가 이어졌습니다. 다같이 용성조사가 가사를 쓰고 법륜스님의 스승 불심도문스님이 정리 하신 ‘온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니 웅장함까지 더해졌습니다. 가사 속에 조사의 나라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이 법문을 통해 용성진종조사에 대해 설명해주니 죽림정사와 용성조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솟아났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는 5명의 질문 신청자중 4명의 질문에 답해 주셨는데 답답하여 질문하는 질문자, 같이 듣는 학생들, 답을 해주시는 스님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 버리고 내내 모두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죽림정사에서 행사를 마친 스님은 세종시청에서 오후 강연을 하기 위해 대전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침부터 구름 낀 하늘은 강연 시작 전 살짝 빗방울이 떨어지니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니 세종시청 주변 조명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늘 강연은 대전, 세종, 청주, 천안에서 열리는 행복학교 선생님 및 학생들이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강연장 로비에는 학생 중 캘리그래피에 소질 있는 분이 재능기부로 스님의 말씀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종시청 관계자분들이 적극적인 홍보와 협조로 강연장 안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을 위해 모니터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볼 수 있도록 1층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앞으로 세종시민을 위한 행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에서는 총 여덟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불효한 것 같아서 참회하고 싶다는 분, 자녀가 만화책만 보고 너무 자유분방해서 키우기 힘들다는 분, 교사로서 참스승이 되고 싶다는 분, 직장동료의 요구를 안 받아줘서 그 동료가 자기 때문에 자살한 것 같아서 힘들다는 분, 대기업과 갑을 관계에 오랫동안 있어 보니 과로와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같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분, ‘사람들은 왜 가을을 탈까요?’ 하며 궁금해 하는 분, 남편과 이혼 후 다시 같이 사는데 서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분, ‘그냥 살기’가 안 된다는 분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혼 후 13년을 딸과 함께 살면서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나이가 들고 딸도 부모와 함께 사는 걸 너무도 원해서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서로 가까워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사이가 좋아질지 고민인 분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13년 동안 떨어져 지냈습니다. 그 기간에는 딸아이와 둘이서만 생활했습니다. 아이가 바라는 게 부모가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혼할 당시를 떠올려보면 결혼한 지 20년 만에 큰 결심을 하고 헤어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도 아이가 있으니 옛날 엄마들처럼 어떻게든 이혼을 안 하고 같이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제가 없는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이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지난 13년 동안 아이와 생활을 하고, 직장도 그간 통틀어서 한 달 밖에 안 쉬었을 만큼 열심히 다녔어요. 그런데 차츰 나이가 들고 갱년기도 찾아오고 몸도 약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특별히 관심 가는 것도 없어서 조금 쉬기로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딸은 어떻게든 엄마와 아빠 사이를 좋게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엄마,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자. 거기는 대전이니까 휴식을 취하기에도 서울보다 환경이 좋은 곳이야’라고 해서 좀 쉬자는 생각으로 무조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대전으로 와서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지난날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가 잘못한 것이니 서로가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잘 지내보자하고 같이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서로 친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같이 지내고 있지만 가만 보면 서로가 서로의 생활을 하며 따로 지내는 듯 느껴져요. 둘 다 서로에게 못 다가서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에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극복을 해야 하는지 이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인생을 보는 관점이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싶어요. 질문자가 이혼을 하기로 결정을 한 것도 나를 위해서 결정을 한 것이고 지금처럼 다시 같이 지내기로 한 것도 내가 혼자 살기가 힘들어서 같이 살기로 한 것이지, 딸이 원해서 이렇게 했고 딸이 원해서 저렇게 했다고 자꾸 딸 핑계를 대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딸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이끌린 것 같아요.”

“딸한테 이끌린 게 아니라 질문자의 심리나 마음이 허하기 때문에 외부의 말에 따라가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중심이 분명하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결정도 자기가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면 ‘아,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내 무의식중에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하고 자각한 다음 내가 원하는 쪽으로 선택해야지 ‘딸이 원해서 결정을 내린거야’라고 잘못 생각을 하면 평생 끌려 다니기만 하고, 문제 해결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혼을 했다면서 왜 자꾸 남편이라고 해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

“이혼을 했으면 남이죠.”

“대전에 내려온 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말끝 흐림)”

“같이 지내는 건 동거를 하는 거죠. 재혼을 한 건 아니잖아요? (질문자: 네.) 이혼한 다음 아직 재혼을 안 했으면 동거인데, 동거면 그 정도로 지내면 됐죠. 동거라는 게 원래 각자 생활하면서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거예요. (청중 웃음)”

“이 사람의 제안은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가정에 대해서 진심으로 마음이 우러나면 마음을 따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화목한 가정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며 선택을 권했어요. 그런 다음 저도 나름 친해지려고 노력도 하고 가까워지려고도 해보는데, 이 사람이 자기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지 변 반응이 없어요.”

“동거하는 데 뭐가 그리 요구가 많아요? (청중 웃음) 둘이 따로 사는 거 보다는 한 집에 사는 게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고, 딸아이도 좋아하고 하니까 그 정도면 됐죠. 그 정도면 동거로서 아주 좋은 관계예요. 그렇게 동거를 하다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재혼을 하고, 그런 마음이 안 생기면 지금처럼 계속 동거를 하면 돼요. 동거가 불편해지면 별거하는 생활을 하면 되죠. 따로 사는 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거면 됐지 뭘 더 원해요?”

“제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해서 전달이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저는 나름 노력을 해서 좋은 길을 가고 싶어요. 그런데 남편은 집에 돌아와도 몇 개월 째 아무 말이 없어요.”

“이혼할 때를 떠올려보세요. 내가 바라는 남편 상을 요구했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이혼했잖아요. 그런데 이혼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퇴근한 다음에는 나한테 조금 다가와 주어야 해’라며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내가 요구하는 바만 붙들고 살면 결혼생활은 할 수가 없어요.

상대에 대한 아무런 요구가 없어야 해요.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같이 살 수 있지, 지금 질문자는 ‘같이 지내는 것도 딸아이가 원해서다, 남편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니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건 모두 남 탓하고 있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청중 박수)

“말은 알겠다고 하는데 표정이 확실히 안 것 같지가 않아요. (청중 웃음) 마이크를 다시 잡고, 뭘 어떻게 알았다는 건지 이야기 해봐요. (청중 웃음)”

“스님 말씀대로 같이 지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나아질 것 같습니다.”

“자꾸 ‘나아져야 된다, 그런데 안 나아진다’고 하다가 이제는 나아질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나아져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나아지면 나아지는 것이고, 안 나아지더라도 원래 이혼하고 따로 살았으니 그때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인데, 왜 반드시 나아져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 그렇게 나아져야 된다고 하는 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예요.

일단 혼자 사는 데 지쳐서 옛 남편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잖아요? 엄밀히 전 남편이지 현재 남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남자친구 집에 와서 산다고 생각을 하고,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건넛방이라도 남자가 있는 게 낫다 싶으면 그저 고맙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게 옆방에 살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다가 정이 들면 연애를 하는 거고, 정이 안 들면 계속 동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냥 동거하는 남자친구를 자꾸 남편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미 이혼을 했잖아요? 그러니 그 사람은 이제 완전히 남이에요. 남인데 같이 지내다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연애를 하는 거예요. 또 연애를 하다가 같이 살만하다 싶으면 그때 결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은 아이의 아빠이긴 하지만 현재 내 남편은 아니에요. 이혼을 해놓고 왜 자꾸 남편이라고 그래요? (청중 웃음) 그게 잘못된 생각이에요. 아이의 아빠지 내 남편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의 아빠와 연애를 할 것인지 아닌지는 같이 지내보면서 결정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상대방한테, 그것도 남한테 자꾸 다가오라고 요구해요? 그걸 보면 질문자의 무의식 속에서는 이혼을 해놓고도 자꾸 ‘내 남편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선택을 질문자 자신이 하는 거예요. 자기가 친해지고 싶고 다가가고 싶으면, 다가가면 돼요. 그렇지 않고 자꾸 상대가 다가와주길 바라면, 그냥 그 집에서 나오는 게 낫습니다.

그 사람은 집에 살게 해주었으니 속으로는 ‘이제 당신이 좀 반성하고 뉘우쳐라’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름 많이 배려해줬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다가오기까지 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어요.

질문자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질문자 방에 안 찾아온다는 거죠? (청중 웃음) 궁금하면 질문자가 찾아가면 되잖아요. 똑똑 두드리고 ‘뭐하노?’하고 물어보면 돼요. (청중 웃음과 박수) 나이 들어서 무슨 자존심을 그리 챙기고 그래요. (청중 웃음) 그냥 탁 내려놓고 다가가면 돼요.”

“일 때문에 그런지 몸과 마음이 힘들어 있는 것 같아요.”

“힘들어 있든지 말든지 뭘 그리 걱정을 해요? 힘들면 ‘나 오늘 힘들어’하고 상대방이 말을 하겠죠. (청중 웃음) 말 안하면 괜찮은 거예요. 뭘 그리 눈치 보고 살아요?

이미 같이 살아본 사람인데 뭘 그리 망설여요. 그냥 똑똑 두드려보고 ‘어떻게 오늘 저녁에 같이 잘까?’ 해보고 (청중 폭소) ‘응, 오늘 피곤해’하면 ‘알았어’하고 며칠 있다가 또 똑똑 해보고 그래요. (청중 웃음)”

“네, 스님 말씀처럼 같이 살게 해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똑똑 두드려 보겠습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결혼해서 딸도 낳고 같이 살았던 사람과 다시 살면서 아직 문도 못 두드리면 어떡해요? 그러니 질문자가 필요하면 두드리고 필요 없으면 그냥 지금처럼 살면 돼요. 어쨌든 자존심 싸움을 할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 하는 말이에요.

내가 필요하지 않아서 두드리지 않는 것은 괜찮아요. 또 필요하면 두드리면 돼요. 그리고 상대방도 거절할 자유가 있습니다. 거절했다고 상처 받을 이유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피곤한지 안 피곤한지 지나치게 고려할 이유가 없어요. 나는 그냥 두드려보고 문 열어주면 자고 오면 되고, 피곤하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면 돼요. 설령 그 사람이 다음 날 피곤해서 코피가 나건말건 그건 그 사람 사정이지 내가 너무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요. (청중 웃음)

그러니 너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사정이 있을 때 사정이 있다고 말을 할 거예요. 상대방도 몸이 너무 피곤하면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말에 상처받으면 안 돼요. 그런 말에 ‘어떻게 내가 다가갔는데 네가 그럴 수 있느냐’고 상처를 받으면 결국 문을 못 두드리게 됩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하게 돼요.

상대방에게도 엄연히 거절할 자유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해요. 또한 나에게도 물을 자유가 있으니 며칠 있다가 다시 물어보면 돼요. 나는 그냥 물어보고 상대방이 거절하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다가가는 거예요. 낯선 사람과 연애하듯이 하는데 뭘 그리 신경을 많이 써요. 게다가 다른 집에 살면서 집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집에 살면서 방문 두드리는 거잖아요. (청중 웃음)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은 내 자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는 상대방의 자유입니다. 상대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밑뿌리에는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해야 해’라는 강제성이 있습니다. 그도 그의 마음을 표현할 자유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내가 상처 입을 이유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뭐라고 해도 언제나 ‘오케이’ 하며 쾌활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상대방이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잖아요. 그리고 안 좋더라도 일시적으로 안 좋은 것인지 계속 안 좋은 것인지는 또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니 며칠 기다렸다가 또 두드려보고 며칠 기다렸다가 또 두드려보면 상대방의 상태도 잘 알 수가 있어요. 혹시 안 좋은 날이 지속되면 한 달 정도 기다렸다가 또 두드려보는 거예요. 매일 두드려보다가 2-3일에 한 번씩 두드려보다가, 이렇게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조절해보는 거예요.

내 감정이 변하듯이 상대방의 감정도 변하는 것입니다. 비록 오늘 좋은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어느 날은 좋은 감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만 보고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구나’하고 단정할 필요가 없어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영원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라는 건 늘 변합니다.

부부가 같이 잘 때도 좋아서 같이 잘 때도 있고 싫어도 같이 잘 때도 있잖아요. 여러분들도 어떤 행동을 할 때 늘 같은 감정으로 하지 않잖아요? 때로는 좋아서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싫지만 해야 하니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늘 좋아서 저렇게 한다, 혹은 싫어서 저렇게 한다고 마음속으로 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모두 경직된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마음이 조금 유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질문자의 고민은 그냥 가서 문을 두드려보면 해결됩니다. 상대방이 거절해도 본전이잖아요? 내가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상대방이 거절한다고 해도 손해나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왜 망설이고 문을 못 두드리나요?

아내가 있는 남자의 방의 문을 두드리면 나중에 그 사람의 아내로부터의 후환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작용이 없잖아요. 남편을 생각해도 부작용이 없고, 나를 생각해도 부작용이 없고, 아이를 생각해도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나마 부작용이 있다면 거절당했을 때 내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인데, 이미 20년 같이 산 사람인데다 13년 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같이 살기도 한 사람인데, 그것도 혼자 살기 힘들어서 같이 살기로 해놓고선 뭘 그리 자존심을 챙겨요? (청중 웃음)

그러니 질문자가 외로우면 두드리고, 혼자서도 괜찮으면 지금처럼 계속 살면 되고, 상대방이 와서 두드리면 받아주면 되지, 매일 이불 밑에 누워서 ‘오늘은 안 오나, 문 안 두드리나?’하고 기다리는 건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청중 웃음)

남녀가 평등한 세상인데, 왜 이런 건 또 남자가 다 하라고 해요? (청중 웃음)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내가 필요하면 가서 두드리고, 상대방이 두드려도 내가 필요 없으면 ‘오늘은 안 돼’하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 성격이면 내가 그에 맞춰서 배려를 조금 해주면 됩니다. 때로는 덩치만 크지 마음은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어른들끼리는 그냥 가볍게 ‘된다, 안 된다’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마음이 아이 같은 사람들은 바로 거절하기보다 ‘그래, 그래’하면서 등 두들겨주고 위로해주면 됩니다. 조금 어른스럽게 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스님의 답변을 들은 질문자의 얼굴이 밝고 가벼워보였습니다. 스님이 질문자에게 진짜 알겠느냐고 다시 물어봤을 때 스님의 배려가 느껴지고 청중도 재미있게 궁금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대중에게 이어서 따뜻하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나요, 무거워졌나요?”

“(청중) 가벼워졌어요.”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은 붙들고 있던 것을 조금 내려놓았다는 의미입니다. 꽉 붙들고 있다가 조금 내려놓을 때 행복도는 올라갈까요, 내려갈까요?”

“(청중) 올라가요.”

“행복도를 올리는 것은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야지’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행복해 질 거야’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대화하면서 조금이라고 행복해졌다면, 여러분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 집착을 놓은 것이에요. ‘집착을 놓아야지’하고 결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집착입니다. 집착을 실제로 내려놓아야 행복해지지, 그저 ‘집착을 놓아야지’하고 결심한다고 집착이 놓아지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지요?”

“(청중) 네”

“아침에도 일어날 때 실제로 벌떡 일어나는 게 필요합니까, ‘일어나야지’하고 누워서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청중) 일어나는 거요.”

“네,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하는 결심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어나야지’하고 있다는 건 아직 못 일어났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결심이나 각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일어나버리면 각오하거나 결심할 일도 없어요.

오늘도 대화 도중에 행복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갔다면 여러분들의 긴장이 조금은 놓아진 겁니다. 대화하다보니 ‘자식이나 회사 일에 꼭 그렇게 집착할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편해진 거예요.

행복은 우리들의 선택으로 더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행복해야지’하고 결심한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구경에 부처님이 하신 말씀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이렇듯 우리들의 삶의 자세에 따라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청중들은 질문자와 스님의 문답에서, 또 마무리 말씀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밝은 얼굴로 박수를 쳤습니다. 강연장은 한껏 행복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강연 후 책 사인회를 가지고 스님과 봉사자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 희망리포터 신명옥입니다. 이번에 리포터 소임을 하면서 그냥 편안하게 듣기만 했다면 금세 잊었을 이야기가 집중하고 쓰면서 하니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강연 후 청중들에게 소감을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고 보니 재미도 있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신명옥(글) 고재영(사진) 조태준(녹취) 박효정(편집)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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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령

인제 만나고 싶어요
대전사람입니다

2017-10-27 17:58:34

정지나

"어떠한 결정도 자기가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거절할 자요"
나도 모르게 남탓하는 습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그저 나만 살핍니다.

2017-10-25 09:01:45

큰바다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하는 결심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어나야지’하고 있다는 건 아직 못 일어났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결심이나 각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일어나버리면 각오하거나 결심할 일도 없어요." 가볍지만 큰 가르침 감사합니다.

2017-10-23 22: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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