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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시30분,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소리 없는 비가 어둠에 싸여있는 도시를 적시고 있습니다. 숙소에서 각자 예불과 기도를 할 경우 대부분 새벽 3시 30분부터 하루를 엽니다. 5시 30분 김현정님의 정성스런 아침 공양준비로 새벽부터 따뜻한 국으로 몸을 데웠습니다. 식사 후 산책을 겸해 뮌헨시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스님은 숙소제공 및 공양준비를 해준 김현정님께 감사인사와 함께 스님의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6시 30분 차에 모든 짐을 싣고 도시를 한바퀴 둘러본 후 뮌헨중앙역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스님도 함께 짐을 실었는데 짐이 아주 깔끔하게 쌓였습니다.
뮌헨은 수도인 베를린, 북쪽에 위치한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김현정님은 건축을 공부해서 그런지 숙소 인근에 있는 특이한 모습이나 특색을 갖춘 집들부터 보여주었습니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면서 뮌헨중앙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역에 도착하여 다시 짐을 내려 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용짐과 개인짐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싣고 내리고 이동하는 것이 마치 인도성지순례 같습니다.
평소에 움직이는 대로 이른 시간에 나섰더니 뮌헨중앙역에 도착해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간단한 독일의 아침을 맛보았습니다.
뮌헨 부총무 신봉철님이 출근길에 스님 배웅을 위해 역으로 인사하러 왔습니다. 정토회에서는 흔치 않은 남성 부총무님이 새롭게 전법에 힘쓰는 모습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플랫폼으로 이동하려는데 독일을 여행중인 한국인 여성 두 명이 다가와서 스님과 꼭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 스님은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주었습니다.
숙소제공과 역까지 배웅해준 김현정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기차에 올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린다우에서 뮌헨까지 올 때 완행열차를 이용했다면 오늘 프랑크푸르트행 열차는 KTX급 되는 ICE 열차였습니다. 3시간 여 동안 스님은 원고도 보시고 업무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독일의 농촌풍경 모습이 참 목가적으로 보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하니 프랑크푸르트법회 부총무인 신재숙님, 뒤셀도르프법회 부총무인 최순진님, 유럽지구 불대팀장인 추희숙님, 그리고 매번 스님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해주시는 배형옥님이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모두 반갑게 인사하고 오늘 강연 전까지 잠시 휴식할 Hotel Robert Mayer로 배형옥님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거의 2시경에 호텔에 도착하니 스님과 수행팀 점심식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식사준비를 해주신 오영주님께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강연전 휴식 할 Hotel Robert Mayer>
휴식 후 호박죽으로 간단히 저녁 요기를 마친 스님은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한인천주교회로 이동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비가옴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안내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를 만났습니다. 실내에서도 모두들 열심히 사전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하고 있어 봉사자들은 강연참석자들이 적으면 어떨까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를 빌려주신 신부님, 사목회장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마침 도착하신 원불교 교무님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큰 박수소리와 함께 연단으로 나갔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반배로 인사하고 청중에게 인사하였습니다.
“외국의 경우 제가 강연을 하게 되면 성당에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구청 등 공공건물을 많이 빌려서 하는데 외국에서는 공공건물을 구하기가 어렵고 또 무료로 제공하는 장소를 찾다보니 성당을 많이 이용하게 됩니다. 성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 신부님과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어릴 때 엄마가 강하게 키웠지만 결혼하고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사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분,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 오래된 친구를 잃을 것 같아 고민이라는 분,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삶이 어렵고 힘들었을 때 스님의 말씀을 듣고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독일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항상 불평불만이 많은 한국인 부인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독일인 남편분, 어른이 된다는 게 언제쯤인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유학생 등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답변으로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 저희 어머니가 독일에 계셔서 독일에서 살았고, 그러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습니다. 다시 독일에 인연이 닿아 지금은 독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평생 이사를 많이 하며 살다보니 같이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요. 이제는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친구를 새로 만나는 것도 굉장히 힘듭니다. 제가 눈이 까다로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던 17년 가까이 알던 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있습니다. 저하고 생각하는 방식, 가치관, 정치관, 철학관이 많이 다르지만 저는 그 친구와 계속 놀고 싶어요. 다만 이 친구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데, 제가 이 친구를 계속 만나야 할지 복잡한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결혼하셨어요?”
“안 했어요.”
“결혼하면 되겠네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여자친구 만나서 결혼하면 되지, 굳이 그렇게 남자친구를 찾을 게 뭐 있어요? 한국 남자들은 친구가 많아서 결혼생활에 문제가 많아요. 아내는 집에 놔두고 밖으로 돌면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그러느라 부부갈등이 많은데, 질문자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앞으로 아내 될 사람이 좋아할 거예요.(모두 웃음)
옛날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에서 교육받고,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본에서 태어나면 일본에서 공부하고, 중국에서 태어나면 중국에서 공부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자본과 노동이 이동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미국에서 자랄 수도 있고, 미국에서 교육받았지만 거주지는 영국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앞으로 이런 삶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추세예요. 물론 아직도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사는 사람이 더 많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이동하며 살게 될 겁니다. 질문자처럼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른 사람은 전세계 70억 인구 중에 아직 소수입니다. 그러나 10년, 100년 정도 미래를 내다보면 질문자처럼 사는 사람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선사업 분야만 하더라도 옛날에는 고아원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앞으로는 고아원이 있을 수는 있어도 점점 줄어들 거예요. 그럼 양로원은 어떨까요? 갈수록 늘어날 거예요.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구호활동은 갈수록 줄 거예요. 사회보장제도가 더 확대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환경운동 관련 NGO의 비중은 늘어날 거예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처럼 사는 사람이 지금은 소수이지만 미래에는 점점 다수가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는 미래지향적인 인물이에요. 질문자의 태생 자체가 그렇다 이 말이에요. 또 불교라는 종교를 예로 들어보면, 현재 한국 불교신자의 절대 다수가 ‘부처님, 우리 아들 시험에 걸리게 해 주세요’, ‘부처님, 우리 남편 사업 잘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복을 비는 기복적 신앙입니다. 지금 기복적인 불교신앙이 주류인 건 맞지만 앞으로 10년, 20년, 50년, 100년이 지났을 때도 여전히 기복적 신앙의 형태가 주류일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많은 분들께서 이렇게 법문을 들으러 와주셨는데, 30년 전에는 스님처럼 이렇게 심리를 치유하는 법문을 하면 들으러 오는 분이 한두 분이었습니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법문을 듣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늘어나게 돼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을 가르치는 법문은 현재는 소수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기복적인 신앙은 현재는 다수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예요. 앞으로 50년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수행이 기복보다는 소수일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수가 확대되고, 기복은 그때도 다수일 수 있지만 지금에 비해서는 많이 축소될 겁니다. 법륜 스님이 교통사고 나서 죽거나 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갈수록 이런 강의를 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까요, 줄어들까요?”
“늘어나요.”
“예. 스님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흐름이 그렇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먹지를 못해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입지를 못해서 ‘옷이라도 제대로 입었으면’, 교육을 못 받아서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걱정이 없겠다’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옛날 사람이 보기에는 생활수준이 걱정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풍부하고, 사는 집도 괜찮고, 교육도 다 받고요. 그러니 현대인들은 옛날에 비하면 고뇌가 없어야 돼요. 그런데 실제 그래요?
의식주 걱정 없는 경지에 이르러 봐도 인간의 고뇌가 해결이 안 된단 말이에요. ‘아, 우리가 바라던 복이 실제 주어져도 이 고뇌가 없어지는 게 아니구나’ 알게 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고뇌가 없어질까?’ 하는 관심이 먹고 살만 할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해에 대한 법문 수요가 점점 많아질까요, 적어질까요?”
“많아져요.”
“목탁을 치면서 복을 빌어주는 건 지금은 장사가 잘 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수요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을 안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수요가 빨리 늘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흐름에 따라서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와 같이 여기서 태어나서 저기서 교육받고, 살긴 또 다른 데 가서 사는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질문자 같은 사람이 소수라서 다수랑 비교해서 ‘한 군데에서 자란 아이들은 친구가 많다. 나는 한 군데에 못 살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없다’ 하는 식으로 남이 가진 장점을 보고 내 부족한 걸 보는데, 질문자에게는 남이 갖지 않은 장점이 많아요. 대부분 한국에서만 살아봤는데 질문자는 독일에서도 살아보고, 한국에서도 살아보고, 미국에서도 살아봤잖아요. 대부분 한국말만 할 줄 아는데, 나는 한국말, 독일말, 미국말 다 하고 얼마나 좋아요? 죽마고우가 뭐 그리 중요하고, 술 마시는 친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거기에 자꾸 미련을 갖고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거예요?
친구란 새로운 관심을 갖고 사귀면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만약 명상에 관심이 있다면 여기 유럽에는 명상 동호회가 굉장히 많잖습니까. 여러분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종교나 국적을 초월해서 함께 명상을 하는 그룹이 많습니다. 여기 프랑크푸르트의 경우에도 작은 명상센터를 공동으로 마련해서 회비로 운영하는 곳가 몇 개 있어요. 꼭 술을 마시고, 노래를 같이 불러야 친구예요? 같이 앉아서 조용히 명상하면 그게 친구죠. 예를 들어서 질문자가 만약 등산 동호회에 참가한다면 거기서 만나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것이고, 또 정토회 같은 수행모임에 오면 그곳에서 또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 생기는 거지요. 만약 질문자가 영국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영국에도 명상 동호회가 있고, 정토회가 있어요. 그럼 거기서 또 함께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요. 만약 질문자가 가톨릭 신자인데 혼자라서 외롭다면, 이 가톨릭 성당에 나오면 되지요.
질문자는 어릴 때 발가벗고 목욕 같이 하던 친구, 술 같이 마실 친구들을 자꾸 그리워하고 찾는 것 같은데, 그런 게 앞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될 거예요. 어릴 때 초등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외국으로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과 헤어져야 되니까 그것이 어린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는 데도 계속 그 생각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문제예요. 그것은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Trauma)’입니다. 어릴 때 입은 상처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안 없어지고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은 거예요. 어릴 때 그리워하던 그것을 지금도 꿈꾸니까요.
어릴 때 형성된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게 무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다 형성된 것일 뿐임을 알고, 그런 마음이 있어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도 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독일에서 직장 다녀요?”
“아니요, 여기에서 공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또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해 보세요. 이왕 돌아다니는 거 더 돌아다니세요. 두 군데, 세 군데만 돌아다니니까 약간 부족한 것 같은데, 더 많이 돌아다니면 그런 병은 없어져요. 지금 저는 45개 도시를 매일 한 군데씩 방문하면서 강연 중이거든요. 제가 질문자보다 많이 돌아다니지요? (모두 웃음)
저는 8월 말경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도쿄 가서 강연하고 다음 날 오사카, 다음 날 상하이, 다음 날 마닐라, 세부, 그리고 방콕, 하노이, 호치민, 싱가폴, 자카르타, 퍼스, 멜번, 시드니 그리고 베를린으로 와서 취리히와 뮌헨을 갔다가 오늘 프랑크푸르트에 왔단 말이에요. 내일은 뒤셀도르프로 갈 건데요, (모두 웃음) 그 다음에는 또 파리, 런던, 토론토, 몬트리올, 그리고 보스톤부터 시작해서 미국 전역을 돌 예정입니다. 매일매일 돌아다니면 좋지요, 뭐. 여러분들 생전엔 이렇게 다닐 일이 없을 거예요, 저는 어제 1시간 만에 4개국을 돌기도 했거든요. 스위스에서 출발해서 리히텐슈타인과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독일로 왔으니까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해 ‘나는 왜 이렇게 자꾸 돌아다니면서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처지를 자꾸 부정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자기 처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세요.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살게 되니 불쌍하다. 나는 그래도 독일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도 살다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다시 독일에 와서 공부해 봤다. 나는 앞으로도 전 세계로 나가 살겠다.’
앞으로 공부를 마치면 취직해서 한 3년은 프랑스에서도 직장을 다니다가 해외파견근무를 신청해서 호주에서도 다니다가 그렇게 해 보세요. 한 군데에 붙어서 오래 있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예.”
"‘낙관적’이라는 말은 막연히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하는데, ‘긍정적 사고’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길 가다가 넘어졌다고 울지 말고, 넘어진 김에 동전을 주워라. 배가 뒤집어졌다고 울지 말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캐라’ 라고 하는 거예요. 물에 빠졌다는 건 타율적인 자세인데, 진주조개를 캔다는 건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이잖아요. 성경에도 비슷한 예가 있는데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줘라.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주라’ 하는 표현이 있잖아요. 상황이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겁니다. 이걸 불교용어로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합니다. ‘처하는 곳마다 내가 주인이 된다’라는 뜻이에요.
독일에 간호사로 오신 분들도 ‘아이고, 내가 한국에서 못 살고 20살에 독일까지 와서 돈 번다고 고생했다. 어쩌다 독일남자를 만났는데, 좀 살더니 남자가 떠나버렸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분 인생이 얼마나 초라해지고 불쌍해집니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한국에서 독일까지 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
“어려운 일이지요.”
“진짜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나는 독일까지 와서 살아보고, 내 친구들은 한국 남자밖에 못 만나봤는데 나는 독일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보고 키워봤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계속 같이 살 것 없이 혼자 한 번 살아보자.’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행복해지고, 신의 축복이 충만해 집니다. 축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원리에 맞게 살면 항상 축복은 주어져 있는 겁니다. 기도할 때도 ‘주여, 복을 주소서’ 하지 말고 ‘주여, 이렇게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먼저 하라는 겁니다. 달라는 기도를 하면 안 줬을 때 미워하게 되지만, 감사기도를 하면 신앙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질문자는 한국말 뿐만 아니라 독일말도 하겠네요?”
“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했으면 미국말도 잘 할 거고요?”
“예.”
“3개 국어를 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프랑스에 가서 불어까지 해 보고,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어까지 5개 국어를 해 보면 어때요? 자신의 조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보세요. 친구 사귀어서 뭐 하려고요? ‘마음 맞는 친구 하나는 있어야 된다’ 하는 건 옛날 얘기예요. 친구 없으면 저하고 친구해요.” (모두 웃음)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내용을 철학적 원리로 설명하면 ‘이 세상에 본래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겁니다. ‘무(無)’ 또는 ‘공(空)’ 또는 ‘무유정법(無有定法)’ 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그것이 시간과 공간, 상황에 놓이면 정해지는 거예요. 본래 ‘사람이 옷을 입어야 된다’, ‘벗어야 된다.’ 이렇게 정해진 건 없지만 목욕탕 안에 들어가면 벗어야 되고, 밖에 나오면 입어야 되고, 이렇게 자연스럽단 말이에요. 날씨가 추우면 외투를 입어야 되고, 더우면 외투를 벗어야 되고,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 ‘도(道)’라고 합니다. 여기에 오면 여기에 맞게 살고, 겨울 되면 스키 타서 좋고, 봄이 되면 꽃이 펴서 좋고, 여름이 되면 수영해서 좋고, 가을이 되면 단풍 드니 좋고, 이렇게 항상 그 상황, 즉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맞게 살면 돼요. 온도가 떨어지면 얼음이라는 고체가 됐다가 또 온도가 오르면 물이 됐다가 온도가 더 오르면 수증기가 됐다가 식으면 다시 물이 되는 거고요, 물이 흐르다가 막히면 호수가 되는 거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는 거지요.
이런 삶을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겨울에는 추워서 못 살겠다 그러고, 여름에는 더워서 못 살겠다 그러고, 봄에는 꽃가루 때문에 못 살겠다 그러고, 가을에는 슬퍼서 못 살겠다 그래요. (모두 웃음) 낙엽이 지는 것과 슬픈 게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낙엽은 그냥 나무의 성질로 인해서 떨어지는 건데, ‘낙엽을 밟으면서 고독을 씹는다’ 라고 말하잖아요. 왜 그래요? (모두 웃음) 그렇게 자기 인생을 자꾸 초라하게 만드니까 우울증에 걸리는 거예요.
사고를 긍정적으로 하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세요.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과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다릅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는 건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데 그걸 자꾸 부정적으로 보면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까 물이 이미 엎질러졌다면 ‘그래도 반은 남았다. 다 쏟을 뻔 했는데 절반은 건졌다’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미 물이 엎질러져 버렸는데 계속 ‘안 엎질러졌더라면...’ 하고 얘기하면 뭐해요?
‘아이고, 물을 반이나 쏟았다’ 이게 부정적 사고입니다. 물이 더 필요하다면 앉아서 울 시간에 얼른 일어나 물을 뜨러 가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긍정적 사고를 해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살 수 있는 거예요. 인상 쓰고 살아봐야 주름살밖에 더 생겨요? 그렇게 살면서 겉에 화장만 덕지덕지 칠해봐야 썩은 나무에 페인트칠하는 것밖에 안돼요. 그러면 이듬해에 또 칠해야 되듯이, 매일 지우고 또 칠하고, 지우고 또 칠하는 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도 좋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겨도 좋은 거예요. 그게 다 연륜이니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은 다 자신에게 좋은 겁니다. 그러니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트라우마가 치유됩니다.
‘어렸을 때는 몰라서 그것을 상처로 안았는데, 커서 생각해 보니 내가 자란 환경이 참 좋은 조건이었구나. 내가 남보다 훨씬 더 유리한 환경에서 자랐구나’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상처나 열등의식이 없어집니다. 이걸 ‘자각’이라고 합니다.”
6명이 질문하고 나니 두시간 반이 지나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다음의 말로 마무리를 해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 단기적으로 볼 때는 손실과 이익과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손실이라 할 것은 없습니다. 그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체적인 관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위험하다고해도 굉장히 두려워해야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에선 한반도 문제를 ‘전략적 인내정책’이라고 해서 테이블 아래에 두었으므로 해결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트럼프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기 때문에 해결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대신에 해결의 방식이 협상이냐 전쟁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전쟁의 위험도 높아졌고 타결의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은 유불리가 아니예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것은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쪽으로 해야겠지요.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하는 관점을 우리 한국인들은 확실하게 가져 전쟁의 위험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면 협상의 가능성은 높아지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위기는 기회다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위기는 어떻게 줄이고 기회는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해외에 나와서 여러분들이 생활하면서 어려움에 처해있지요. 독일어가 안되어 어려움에 처해있기 때문에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저는 독일어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내일 다른 나라로 가버리니까요. (청중웃음) 배울기회가 없어진 거예요. 영어를 정말 배울려면 아예 한국인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곳에 가서 한 3년 살면 영어를 잘하게 되지요. 엄청난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고생은 많이 하지만 생존본능이 결국은 살기 위해 집중을 하기 때문에 언어를 빨리 배우게 됩니다. 만약 미국 여자와 결혼을 하여 한 3년 살면 영어를 안 배울 수 없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어려움에 처해야 능력이 향상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어려움에 좌절하게 되면 엄청난 고통이 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능력이 향상될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도전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박수)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할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안 죽고 살아가는 것만해도 엄청난 복입니다. 독일에 와서 살아가는 것도 한국사람들로서는 소수에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지금도 행복하고 10년 뒤에도 행복할 거에요. ”
스님의 마무리 말씀으로 거의 3시간에 걸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다들 반가워서 그런지 스님을 빙 둘러싸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고 한분이 스님께 작은 초콜릿상자를 선물로 전달해주었습니다.
오늘 소개된 질문자에게 소감이 어떤지 문의하니 시원해지고 명확해졌다고 하며 스님 말씀대로 한 번 해보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독일어 통역을 하는 분과 함께 와서 한국인 아내 때문에 힘들어하던 독일분에게 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는지 영어로 물어보았습니다. 다행이 영어를 하는 분이라 얘기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었고, 받아들여 한 번 적용해 보아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분은 남편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를 원하고, 전지전능한 남편이 되기를 바라는 아내 때문에 힘들어 했지만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적용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지역, 나라, 남녀, 노소, 인종을 떠나 힘들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본인들의 고뇌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의 가르침, 정토회가 대한민국의 희망을 넘어서서 이세상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라는 명심문이 떠오릅니다.
책사인회가 시작하자 많은 분들이 스님주위로 몰려들어 사진도 찍고 즐거운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프랑크푸르트 강연 참가자는 약 130명, 자원봉사자는 13 명이었습니다. 책사인회가 끝난 후 스님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날짜가 늦게 나와 어려운 가운데 강연준비한다고 수고한 강연총괄자인 부총무 신재숙님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격려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 전 숙소를 제공하고 음식준비를 해주신 배형옥님과 오영주님께도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비가 오는 가운데 최순진 님의 차를 타고 뒤셀도르프로 향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천주교회에서 뒤셀도르프법당까지는 약3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비가 많이 내리고 차선이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 곤란하였습니다.
유럽 첫 일정인 베를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취리히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출발하여 리히텐쉬타인공국에 잠깐 들러 도시를 둘러본 후 보덴호에 있는 독일 린다우섬으로 갔습니다. 린다우역에서 뮌헨중앙역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뮌헨에서 강연하고 하룻밤 묵은 후 다시 뮌헨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뉘른베르크시를 지나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강연 후 다시 자동차로 본, 퀼른을 지나쳐 뒤셀도르프까지 왔습니다. 내일 오전에 뒤셀도르프법당에서 유럽지구 불교대학/경전반 졸업식과 수계식이 있어 프랑크푸르트 강연 후 바로 뒤셀도르프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1시경에 뒤셀도르프법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프랑크푸르트 강연은 마이크 시설이 좋지 않아 스님이 질문자의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번 순회강연 중 오늘이 가장 힘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새벽 2시경이 되니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마치고 묘덕법사님이 뒤셀도르프법당에 도착하였습니다.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수행팀은 법당에서 침낭을 깔고 자기로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깜깜한 밤 프랑크푸르트 일정을 마치고 뒤셀도르프에서 유럽에서의 4일째 밤이 저물고 있습니다. 내일은 뒤셀도르프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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