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11 행복한 대화 - 순천 문화건강센터 편
결혼 1년, 남편과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제 밤부터 흩뿌리던 비가 새벽 예불 시간이 되자, 거세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마쳐도 그칠 생각 없이 더 세게 내렸습니다.

“오늘 할 일이 많은데 비가 이렇게 많이 오네.”

스님은 온실 옆에서 비를 한참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 꽃이며 모종 화분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이야기하였습니다. 기도 후 공양을 마치자마자 늘 일을 시작하던 스님이 오늘은 비 눈치를 봅니다. 조금 뒤, 스님이 “자, 가자!” 하여 행자님들은 영문 모르고 따라나섰습니다.

비를 머금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진달래의 물기를 털어주는 스님
▲ 비를 머금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진달래의 물기를 털어주는 스님

스님은

“오늘이 마지막 진달래가 될 거야. 고도가 높은 소호령에도 지금쯤은 진달래가 다 폈을 테니까 보고 오자. 두 시간 코스니까 다녀오면 비가 그치겠지.”

영남알프스의 한 자락인 고헌산과 백운산을 연결하는 소호령에는 재작년, 스님의 안내로 실무자들이 함께 진달래를 보러 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산이 높아서 그나마 진달래가 늦게 피고 오래 남아 있었던 덕분에 늦은 봄나들이에도 실무자들이 꽃을 보고 즐거워했던 곳입니다. 오늘이 진달래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진달래 붉은 산
▲ 진달래 붉은 산

구불구불한 산길을 흔들거리며 한참 가다보니 드디어 붉은 산을 만났습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붉은 진달래 산입니다. 실무자들이 함께 보았을 때보다 더 붉고 더 많은 진달래 군락인 것 같습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진달래 산을 보고 내려오니 어느새 빗방울이 잦아들어 습기만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2시간을 생각했는데 조금 더 지체되었다며 벌써 다음 일정을 계산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점심 공양을 라면으로 간단히 먹고 온실 옆, 뒤에 있던 꽃 화분과 꽃모종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더덕, 알타리 무, 근대, 아욱이 자라고 있는 밭의 벽돌 경계선을 따라 하양, 보라, 노랑, 주황의 키 작은 꽃을 열을 맞추어 심었습니다. 온실 뒤에는 주황빛 꽃을 벽돌 구멍에 안성맞춤으로 심었습니다. 흰목련과 자목련은 벽 쪽으로 그늘에 묻히지 않게 심었습니다. 고추, 가지, 토마토는 감자와 상추 밭의 고랑에 넓게 간격을 두고 심었습니다. 감나무 밑에는 꽃 잔디를 심었습니다.

밭의 가에 꽃을 심어 예쁜 꽃밭 + 채소밭을 가꾸는 중
▲ 밭의 가에 꽃을 심어 예쁜 꽃밭 + 채소밭을 가꾸는 중

한 명은 땅을 파고, 스님은 심고, 또 한 명은 곳곳에 화분을 놓아두고, 또 한 명은 봐가면서 뒷마무리를 하느라 바삐 움직였습니다. 2시 30분에 겨우 일을 마치고 3시에는 순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저녁 7시에 ‘행복한 대화’가 순천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듯 시간이 뜸들이지 않고 흘러갔습니다.

순천문화건강센터 강당 1, 2층 객석을 가득 메우고 시작된 ‘행복한 대화’는 모두 여덟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부모님의 선택에 자신을 맞추느라 지금까지 스스로 선택을 잘 못했다는 23세 청년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취업 뒷바라지를 했는데 글을 쓰겠다고 하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어머니, 남편과 만족할만한 대화를 하며 생활하고 싶다는 새댁, 대통령선거가 코앞인데 국정을 바로잡을 생각은 안 하고 서로 헐뜯기에 혈안이 된 후보들의 양상이 실망스럽다는 어머니, 학부모의 과도한 강요 교육과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에 회의를 느끼는 초등교사, 매일 술 마시고 사고치는 신랑에게 화도 나고 걱정이 된다는 주부의 질문 등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 순천에서 행정 모니터, 시정 감시활동을 하고 있는 남성분은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에도 불법하적으로 행동하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시민단체도 고령화 되는 실정이고 시민들의 호응도 없는데 순천 시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그건 제게 물을 일이 아니라, 여기 계신 순천 시민들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네요. 그럼 바로 물어보도록 합시다. 왜 시민 감시단 활동도 적고 회원 가입도 안 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생각을 한 번 이야기 해 보세요.”

마이크가 청중들에게 돌려졌습니다.

-관심이 없어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 있는 줄 몰라서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가보다 싶어서
-이런 활동을 하는지 모르기도 했지만 감시한다고 해도 정치와 결탁하여 잇속을 챙기고 있는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치, 교육, 사회 제도 자체에 믿음이 안 가고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마이크를 전달하여 각자 자기의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동안 질문한 남성분은 주의 깊게 청중들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즉석 시민발언대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질문자
▲ 즉석 시민발언대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질문자

스님은

“이렇게 시민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어떤 부분을 시정해야 할지, 어떤 원인이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중앙정부는 전국적 규모로 감시하는 단체가 있고 언론에도 자주 보도되어서 감시가 어느 정도 되고 있지만 지방정부는 거의 감시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요. 또 중앙정부가 예산의 80퍼센트를 가지고 있고 지방정부는 20퍼센트의 예산만 가지고 있다 보니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타 와야 하는 실정입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시정 감시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듣고 있는 순천시민
▲ 고개를 끄덕끄덕. 시정 감시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듣고 있는 순천시민

그러다보니 지방정부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요. 이번에 ’헌법 개정’을 통해서 지방분권을 꼭 이루어야 합니다. 이럴 때 유권자들이 지방정부를 잘 감시해야 해요. 그래야 지방 행정이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건전하게 감시하고 감독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다들 자기 살기 바빠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하니 시민단체는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홍보도 하고 활동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많이 알려야겠습니다.

선진국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어요.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참여가 없는 시민단체가 많아요. 질문하신 분도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정책을 펴시고 이 자리에 계신 시민들도 이런 상황을 각성하여 많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질문한 남성분은 즉석에서 이루어진 시민발언대와 스님의 답변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메모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활동에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한 분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또 한 분은 아들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바라보며 질문한 두 분이 계셨고, 결혼한 지 1년 된 새댁이 남편과 대화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신 분이 두 분 계셨습니다. 여기에 남편과 대화하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하신 분의 사례를 실어봅니다.

“저는 작년에 결혼하여 아직 아이가 없는 새댁입니다. 남편과 다투면 남편의 말이 세게 느껴져 상처가 됩니다. 얼마 전에도 다투었는데, 제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굽히고 먼저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자꾸 다툼이 되어 고민이 되고, 지금 제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에서는 웃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부분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속으로는 풀리지 않았는데도 겉으로 웃고 있으면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저도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하면 다시 다툼이 될까봐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제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런 다툼이 반복되면서 제가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힘들 때는 스님이 쓰신 책 등 좋은 가르침을 주는 책들을 보면서 도움을 얻는데 아직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일로 다투게 되나요?”

“아무것도 아닌 걸로 다투게 되는 것 같아요.”

“질문자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면 되지 왜 그걸 문제 삼나요?”

“신혼 때는 많이 다툰다고들 하잖아요. 저희 남편도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각자 살다가 얼마 전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건데, 어떻게 우리라고 안 싸우고 살 수 있겠어’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래도 저는 제가 늘 양보를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부분도 저 나름대로 참고 기다린다고 생각을 하는데,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그런 걸 남편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질문자가 주로 어떤 부분을 참아요?”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도, 침을 한 번 삼키고 넘어간다든지...”

“소리는 왜 지르고 싶어요?”

“속에서 천불이 날 때가 있어서요. 그럴 때는...” (질문자와 청중 웃음)

“남편이 어떻게 할 때 천불이 나요?” (스님 웃음)

“답답할 때요.”

“그러니까 언제, 왜 답답해요?”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조곤조곤 대화를 하고 싶은데, 남편은 ‘그만해’라고 말을 해요.”

“그건 남편이 듣기 싫다는 말이잖아요.”

“그런가요? 저는 그럴 때…”

“아니, 상대가 ‘그만해’라고 할 때에는 듣고 싶다는 말이에요, 듣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럴 때 저는 ‘왜?’라고 다시 물어봐요.”

“듣기 싫다는데 ‘왜’가 어디 있어요? 상대가 ‘듣기 싫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면 돼죠.” (청중 웃음)

“그게 안 돼요.” (질문자 웃음)

“그건 질문자가 안 되는 거잖아요. 남편은 듣기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남편이 어느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거죠.”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그게 안 되는 것인데, 왜 그게 남편 문제예요?”

“심한 말을 남편이 더 많이 해요.”

“남편은 듣기 싫다고 하는 거잖아요. 상대가 듣기 싫다고 하면 ‘알았어요’하고 그만하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하니까 남편도 속에서 천불이 나서 고함을 치거나 하는 거예요.”

“저는 안 싸우고 싶어요.”

“안 싸우고 싶으면 남편이 ‘그만해’ 할 때마다 질문자가 ‘알았어요’ 하고 멈추면 돼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만해’ 하면 어떻게 하라고요?”

“’알았어요’하고 멈춰요.”

“네, 그렇게 하면 돼요.

이 세상에 부처님이 오셔도 구제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가 ‘알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옆에서 뭐라고 하면 처음에 ‘알았어’라고 해요. 그러다가 또 이야기하면 ‘알았다니까’라고 말하고, 거기다가 또 이야기하면 ‘알았다니까!’라고 화를 내면서 큰소리로 말하지요. 그런데 잘 들어보면 이건 정말 알았다는 말이 아니라 듣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럴 때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알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듣기 싫다는 말이구나 하고 알아야 해요.

두 번째 부류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뭐라고 하면 처음에 ‘몰라요’하고, 그 다음에는 ‘모른다니까요’하다가 나중에는 ‘모른다는데 왜 자꾸 그래요!’하고 반응을 보여요. 이 말도 잘 들어보면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듣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알았다’는 말과 ‘모른다’는 말은 정반대 같지만 그 밑 마음은 ‘듣기 싫다’는 말로 같습니다. ‘정승도 저 싫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듣기 싫어할 때는 부처님이 오셔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다르게 비유를 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면 모두 자기 그릇만큼의 물을 얻어가요. 당연히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물이 많이 고일 것이고,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물이 적게 고이겠죠. 오늘 이 자리에서 똑같은 법문을 듣고도 각자 자기 그릇만큼의 교훈을 얻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하루 종일 서있어도 물을 한 방울도 못 얻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그릇을 거꾸로 들고 서있는 사람이에요. (청중 웃음) 그릇을 거꾸로 들고 서있으면 그릇이 아무리 커도, 비가 아무리 와도 물을 하나도 못 얻어갑니다.

이렇게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듣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듣기 싫다는 표현을 ‘알았다니까’나 ‘모른다니까’ 이렇게 두 가지로 하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이 ‘그만해’라고 하는 건 듣기 싫다는 말이에요. 물론 남편이 듣기 싫을 때는 그냥 솔직하게 ‘듣기 싫다’라고 말을 해주면 좋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다, 싫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렇게 말 못하지요. 이 부분은 가만히 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고 싫음을 표현하지 않았어요.

경상도 사투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서울 남자가 경상도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그러니까 여자가 ‘은제예~’라고 대답을 했어요. 이건 ‘언제요?’처럼 들리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아니요’하는 거절의 의미예요. 그런데 서울 남자가 ‘언제요?’라고 묻는 줄 알고, 날짜를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여자가 이번에는 ‘어데예~’라고 말했어요. (모두 웃음)

‘어데예~’도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거절하는 말로 쓰는 건데, 남자는 또 장소를 묻는 줄 알고 ‘어느 다방에서 만납시다’라고 했대요. (모두 웃음)

질문자 남편도 ‘싫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속내를 보면 듣기가 싫으니까 그만하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남편이 앞으로 ‘그만해’라고 하면, 싫다는 말이구나 하고 알아들으면 돼요. 그리고 남편 입장에서는 듣기가 싫은데도 아내가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또 자기 나름대로는 참았다가 터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하라니까’라고 말이 조금 험하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 상태인데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욕설까지도 나오게 되겠지요. 남편이 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하라고 할 때 ‘싫다는 말이구나, 그리고 참았다가 저 말이 나오는구나’하고 알고 거기서 멈추면 돼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또 다른 질문이 하나 있는데, 남편과 다투는 일이 많아지면서 남편과 같이 종교 활동을 조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친정 어머니는 불교를 믿으시고 절에 다니시는데, 저는 절도 좋고 교회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 벌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청중 웃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좋은데, ‘천국과 극락은 거리가 진짜 멀다, 그러니 빨리 택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니까 정말 천국과 극락의 거리가 뭔가 싶고, 만약 그 말이 맞다면 나중에 엄마랑은 영영 못 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몇 살이에요?” (청중 웃음)

“서른다섯이요.”

“대학도 나왔어요?”

“네.. (청중 웃음) 그런데 저는 정말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천국과 극락은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지…”

“그건 나중에 가봐야 알 수 있을텐데, 우선 천국과 극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또 죽어서 그 곳에 가는지 안 가는지도 몰라요. 아직 있는지 없는지, 가는지 안 가는지도 모르는데도 가서 연락할 걱정부터 하네요. 굉장합니다. (청중 웃음)

제가 한 가지 물어볼게요. 집 앞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데 질문자가 20년 동안 늘 그 곳에서 물건을 샀다고 해봐요. 그런데 최근에 그 옆에 규모가 크고 잘 갖추어진 대형마트가 하나 생겼어요. 그래서 거길 가봤더니 물건도 많고 가격도 조금 싸요. 이럴 때 질문자는 늘 가던 단골집에 가야 될까요, 아니면 단골집을 배신하고 (청중 웃음) 새로 생긴 대형마트에 가야 될까요?”

”주로 대형마트에 가고, 대형마트가 쉴 때에는 단골집에 갈 것 같아요.” (청중 웃음)

“그래요. 그건 소비자의 자유지요? 그런 것처럼 지난 20년 동안 절에 다녔더라도 교회에 갔더니 좋으면 앞으로 교회에 가면 돼요. 그리고 교회 안 가는 평일에는 절에 가면 됩니다. (청중 웃음)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하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저기 둘 다 가면 단골집 입장에서도 서운한 이야기가 나올 거고, 또 대형마트 입장에서도 ‘우리 하루 쉬었다고 또 그 날 다른 곳에 가나’하는 말이 나올 수 있어요. 어느 곳을 가든 소비자의 자유지만,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또 그 나름대로의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교회에 있는 목사님이나 절에 있는 스님은 정신적인 위로를 파는 가게 주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이 양다리 걸치면 싫어해요. (청중 웃음)”

“네…”

“그런데 여러분들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잖아요? 손님에게는 또 손님의 권리가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선택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지요? 둘 다 다녀도 되고, 둘 다 안 다녀도 되고, 둘 중 하나를 주로 다니고 가끔가다가 다른 곳에 들러도 돼요. 어떻게 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청중 웃음)

단, 여러분들이 주로 대형마트에 가다가 구멍가게에 가서 ‘저 아래 마트에 갔더니 물건 값도 싸던데..’하는 이야기를 하면 구멍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듣기 싫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구멍가게에 가든지, 대형마트에 가든지는 내 자유지만 그렇다고 구멍가게 주인에게 가서 대형마트와 비교를 하면서 불평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교회에 가든지, 절에 가든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자유예요. 단, 교회에 다니다가 절에 가서 ‘교회에 다녀도 구원이 없더라’ 등의 이야기를 하거나, 절에 다니다가 교회에 가서 ‘절에 다녔더니 구원이 없더라’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에요. (청중 웃음)

그리고 구멍가게에 가서 다른 손님들 앞에서 ‘대형마트 갔더니 이게 좋더라, 저게 좋더라’하면서 손님을 대형마트로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요? (청중 웃음) 그런 것처럼 교회에 가서 절 이야기를 해서 절로 사람들을 보내거나, 절에 가서 교회 이야기를 해서 교회로 사람을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에요.

그러니 이건 종교 문제를 떠나서 사람이 살면서 지키는 예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되도록 이 가게 저 가게 가는 것보다는 자기 가게에 꾸준히 나오는 것을 좋아하겠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되도록 여기에 다니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또 그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다만 그건 그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내가 어디에 갈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내가 판단해서 결정하면 되는 부분이에요. 대답이 되었나요?”

“네, 되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생각할 게 뭐가 있어요? (청중 웃음) 그냥 다니고 싶은 곳에 다니면 돼요. 다만 교회에 가더라도 ‘가끔 나는 절에도 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고, 절에 가서도 ‘나는 주로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

“그냥 절에 가고 싶을 때는 절에 가고, 교회에 나가고 싶을 때는 교회에 나가면 돼요.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느 목사님의 ‘왜 하느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요. 예를 든 것이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말썽꾸러기이고, 이웃집 아들은 착하고 말도 잘 듣는 훌륭한 학생이라면, 이럴 때 내 유산을 누구한테 물려주겠느냐, 말썽꾸러기지만 내 아들에게 주겠느냐 아니면 이웃집 아들에게 주겠느냐 하는 비유였어요. 아주 비유를 잘 들었죠? 그렇게 설명을 하니까 듣고 있던 청중들에게서 박수가 쏟아졌어요.

그런데 저는 그 방송을 보면서 ‘아무렴 하나님이 당신 같을까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중 웃음) 그러니까 하느님을 생각할 때도 꼭 자기 수준에 맞춰서 생각하는 거예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 욕심, 이기심을 버리고 하느님께 귀의를 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도리어 하느님을 자기 수준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이런 믿음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절에 다니고 있지만, 진정으로 신앙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사랑의 하느님’이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믿는다면, 어릴 때 어떤 종교를 믿었든지, 혹은 교회나 절에 나간 것으로 판단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서 벌써부터 ‘엄마는 극락에 가고 나는 천국에 간다’, 또 ‘전화 통화가 안 될 만큼 거리가 멀다는데..’하고 생각을 해요? (청중 웃음) 지금 질문이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어요. (청중 웃음)

이야기를 쭉 해보니 앞으로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네,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함께 웃으며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초등학생 한 명이 어머니와 책에 사인을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강연을 어떻게 들었을까 궁금하여 재밌었느냐고 물어보자,

“재밌었는데요, 스님이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스님한테 와서 살자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안 할 것 같았어요.”

또박또박 천천히 이야기를 하는 초등학생이 참 신기하고 기특했습니다. 남녀노소가 함께 즐긴 ‘행복한 대화’가 기분 좋게 끝나고 스님은 바로 서울로 차를 달려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내일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는 일정에 맞추어 오늘 밤을 달려갑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9

0/200

부자누나

남편이 듣기 싫어서 대화를 원치 않는다면 필요한 경우도 싸움을 피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여야 하는 것인지요?

2017-08-09 13:47:43

^^^^

햐~진달래물기 털어주시는 스님^^꽃밭도 차~암 예쁘시구요^^[ 선진국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어요.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참여가 없는 시민단체가 많아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그게 안 되는 것인데, 왜 그게 남편 문제예요?"] [“남편은 듣기 싫다고 하는 거잖아요. 상대가 듣기 싫다고 하면 ‘알았어요’하고 그만하면 되잖아요] 스님표정도 귀여우시고,어데예~ 은제예도 참 잼있네요 ㅋ

2017-04-15 03:12:43

이기사

감사합니다_()_

2017-04-13 19:47:34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