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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졸업한 동문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힐링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동문들은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산책도 하고, 즉문즉설 시간도 가지면서 에너지를 듬뿍 받았습니다.
오전 11시, 남한산성 어귀의 숲속 너른 공터에 100여 명의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이 모였습니다. ‘힐링 야유회’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대부분의 동문들이 가족들까지 함께 데려와서 행사장은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시작부터 아주 화기애애한 모습이었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남한 사회 전체를 포용하고 남북통일을 이뤄낼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 그룹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자 지난 2009년 12월에 제1기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현재는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가 진행 중이며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통일 비전을 실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문회에도 1기 졸업생부터 14기 졸업생까지 다양한 기수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동문들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황사가 심하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날씨와 환경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날씨 좋죠? 정부에서 여러분들 좀 놀러다니라고 4일간 휴일도 만들어줬는데 왜 놀러 안 가고 여기 오셨어요? 돈이 없어요?”
“딱히 갈 곳이 없어요.”(모두 웃음)
“갈 곳이 없어서 여기로 오셨군요. 잘 오셨어요. 오늘 남부지방은 황사가 아주 심하다는데 서울은 좀 괜찮은 것 같네요. 광주는 황사 경보까지 발령되었던데요.
지난달에 제가 요하문명을 답사한다고 황사의 진원지인 내몽고에 가봤더니 바람이 부니까 먼지가 엄청나게 일어나더라고요. 곡식을 심으려고 땅을 갈아놓아서 그런지 먼지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답사를 다니는데 입안에 모래가 가득했어요. 모래에 차바퀴가 빠져서 가지도 못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무를 많이 심기는 심었어요. 농부들한테 땅의 10%는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도록 하고 있었고, 주로 미루나무처럼 건조한 땅에도 잘 사는 나무들을 많이 심었더라고요.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되다보니까 이제 중국에서 공해를 일으키면 한국에서 그 공기를 맡아야 하고, 중국에서 바람이 불면 한국에서 그 먼지를 맡아야 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이제는 우리가 환경을 보존하는 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개발만 중심에 뒀는데, 맑은 공기, 맑은 물, 깨끗한 음식,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해지겠습니까?
오늘 같이 좋은 날, 건물 안 보다는 밖에 나와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까 참 좋네요. 자, 시작하시죠.”
스님의 인사말을 듣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잎들은 초록색 불빛을 발하며 싱그러운 녹음을 자랑하고 있었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에 집중했습니다.
손을 드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총 5명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최근 미국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을 내비쳤는데, 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최근 미국 대선이 보여주는 모습은 미국 국민들의 어떤 심리를 말해주는 것인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나왔는데요. 미국 대선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미국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각하다는 거예요. 제가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왜 ‘트럼프 현상’이나 ‘샌더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학자들과 토론해보니까 트럼프가 뜰 거라는 예측들을 많이 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미국에서 직장 다니는 보통 사람의 소득이 30년 전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명목상 소득이 아닌 구매력 기준의 실질소득을 말합니다. 자기가 받은 월급으로 집을 사거나 물건을 사거나 자동차를 샀을 때의 값어치가 5년 전이나 10년 전이 아니라 30년 전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일반 서민들은 지난 30년 동안 실질소득이 하나도 안 올랐다는 거예요. 반면에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부(富)는 몇 배로 늘었습니다. 즉, 지난 30년 동안 국가 전체의 부는 몇 배로 늘었지만 서민들의 부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부의 대부분이 소수에게로 집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를 두고 ‘10대 90’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재작년부터 ‘월가를 폭파하라’ 이런 구호를 외치며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1대 99’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인구 99퍼센트의 부와 맞먹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벌어지는데도 기존의 워싱턴 정가, 즉 소위 기득권 세력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어요. 정권이 이리저리 아무리 바뀌어도 아무런 변화가 안 일어나니까 워싱턴 정가 혹은 기득권 전체에 대해서 국민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겁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사회적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 그에 대한 저항이 시위나 폭동으로 일어나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 저항이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서 지금 선거에 분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 진영에서 뜻밖의 돌풍을 일으켜서 주목받은 후보가 샌더스와 트럼프였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화이트칼라, 주로 사무직 노동자들입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니까 이걸 좀 완화시켜라’, 우리 사회의 이슈로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를 좀 이루어라’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샌더스가 빈부격차는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사회제도를 개선하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고 계속 용기를 불어넣으니까 많은 시민들이 샌더스를 지지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트럼프 지지 세력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트럼프는 기득권층의 일부죠. 그런데 미국 사회의 성격을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한편으로 저소득층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 공짜로 돈을 주는 게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돈을 지원하고, 웰페어(생활보조금)도 주고, 인디언이라고 지원해주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인권이 신장되면서 ‘인종차별 하지 말라’, ‘낙태도 허용하자’, ‘동성애도 허용하자’라고 하니까 거기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차마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불만이 계속 쌓였어요. 예컨대 미국 백인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는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이렇게 죽어라고 일해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서 내가 국가에 낸 세금으로 산다’ 이런 불만이 있는 거예요. 사회 전체를 못 보고 눈앞의 것만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트럼프가 막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여성비하 발언 이런 것도 많지만 개중에는 ‘여자들은 별로 하는 것도 없이 대우만 받는다’라는 얘기에 지지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이런 건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 복지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죽어라고 일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저놈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냥 먹고 산다는 거죠. 히스패닉이나 유색 인종, 여성들, 장애인들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는 까놓고 막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상식이 없는 사람 같지만 그게 미국 사람들의 일부에게는 자기 속마음을 바깥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에 더 열광하는 거예요.
이건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요즘 유럽에도 무슬림들이 들어오고 난민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싫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 인류애니 도덕이니 하면서 인종차별이라거나 성차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말을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막 까놓고 ‘싫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유럽의 극우세력입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선거가 있었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만든 르펜(Le Pen)은 완전히 돈키호테 같은 인물로 취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15군데나 국민전선이 1위를 했어요. 이것도 기성에 대한 저항이죠. 그런데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제가 있어요. 그래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힘을 합쳐서 결선투표에서는 15군데 모두에서 극우정당을 이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독일에서도 난민 문제 때문에 극우세력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일본도 지금 장기적 침체가 되다 보니 아베 총리 같은 인물을 보면 일본의 전체 민심이 극우세력으로 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어요. 일본 사람 중에는 ‘우리가 한국을 식민지배 했었던 것은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 옛날에 학교 만들어주고 철도 놔주고 도로 닦아주고 공장 지어준 덕에 한국 사람들이 지금 잘 사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맨날 사죄하라 하는데 한번 했으면 됐지 왜 자꾸 걸고 넘어지냐?’ 이런 불만이 있어도 그 동안에는 이걸 말로는 못하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하는 분위기로 넘어간단 말이에요. 도쿄 같은 경우에는 아예 사죄 안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다 나가’라고 하는 혐한파들이 길거리에서 데모를 하잖아요. 옛날에는 이런 행동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베에서 보여주는 막말들은 예전에는 몰래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대학에서 동아리까지 만들려고 한다잖아요. 이렇게 뻔뻔스러워졌어요. 전에는 극우 활동이나 친일 행위 같은 것은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나서서 공개적으로 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회가 오랫동안 정체되면 불만이 쌓이게 되는데 이 때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서 불만을 해소하기보다는 화풀이 하는 쪽으로 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면 아이들도 만만해 보이는 아이 한 명을 왕따 시키듯이, 사회적 약자를 겨냥해서 막 공격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일베 같은 경우도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 중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너무 혜택을 많이 받는다’ 라고 하면서 여성을 미워합니다.
즉 ‘약자 보호라는 미명으로 공짜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라고 하는 이런 저항이 주로 극우세력으로 모이게 되는데, 트럼프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공화당이 자기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사실 공화당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대통령 경선 후보를 공화당에 등록을 했을 뿐이에요. 샌더스도 원래 무소속이였는데 민주당 후보로 참여했을 뿐이고요. 이런 현상들은 모두 그동안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정치 기득권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주의’를 우선할 겁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가 못사는 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공짜로 먹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하잖아요. 국외적으로는 중국처럼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겠죠. ‘저들이 미국에다가 물건 팔아먹어서 우리 일자리와 우리 공장을 다 빼앗아갔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중국에서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해주는 덕분에 빈부격차가 극심해도 미국이란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만 인식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블루칼라, 즉 공장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일자리를 빼앗긴 것이라고 확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방위비 관련 문제를 들고 나올 겁니다. ‘왜 우리가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시켜가면서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같은 남의 나라를 지켜줘야 하느냐? 우리가 군대를 파견하려면 돈을 받고 파견해야지, 왜 우리 돈 내가면서 저 사람들을 지켜주느냐? 당장 TV를 사려고 해도 전부 삼성, LG와 같은 한국 대기업 제품인데 한국은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안보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둔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파견 비용을 도로 받아야 한다. 용역비를 받아야 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다수가 지금 굉장히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샌더스가 주장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불평등 구조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진 것인데, 이것을 ‘방위비 지출 때문에 그렇다’라고 인식해버리는 거예요. 또 ‘무역 역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지금 FTA고 뭐고 다 폐지해야 된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자들 때문에 그렇다’, ‘웰페어 같은 걸 주는 복지제도 때문에 그렇다’ 라고 하죠. 이런 주장들이 블루칼라, 즉 약간 저학력인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굉장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집니다.
반대로 기득권층에 저항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지지층과 같지만 대학을 나오고 합리적이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조를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샌더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이런 현상도 소위 ‘변방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민주당의 정책은 그동안 히스패닉이나 이민자,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를 비교적 확대해 왔어요. 이민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샌더스의 주장이 실제로 훨씬 더 이익이 되지만, 이건 최근에 갑자기 나온 주장이니까 백인 남성들이나 백인 노동자들이 많이 지지하고, 유색 인종이나 히스패닉 같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이다 보니 이 사람들이 지금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기반이 되는 거예요. 백인들만 보면 샌더스에 대한 지지가 조금 더 높지만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은 다 클린턴을 지지하다 보니까 클린턴이 앞서게 된 겁니다.
그리고 민주당에는 슈퍼 대의원이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선거로 뽑힌 대의원이 2,000명이라면 과거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을 지내서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대의원이 되는데 그 수가 4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이 몰표로 클린턴을 지지하니까 샌더스가 이길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만약 클린턴과 트럼프가 본선 경쟁에 가게 되면 공화당의 기득권층 중에서 일부가 민주당 쪽으로 이동해서 클린턴을 지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중 일부가 트럼프 쪽으로 갈 수 있어요. 샌더스와 트럼프는 정반대 같지만 둘 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샌더스 지지층이 트럼프로 옮겨가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거예요. 그래서 얼핏 보면 트럼프가 불리한 것 같지만 막상 본선에 가면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그냥 기권을 할지, 클린턴을 지지할지, 아니면 거꾸로 트럼프 지지로 옮겨가게 될지에 따라 돌풍이 불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샌더스에게 ‘가능성이 낮으니 그만두라’ 라고 압력을 넣지 못하는 거예요. 지지층이 실망해서 저쪽으로 옮겨가버리면 안 되니까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만 있는 게 아니라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선출이 다 함께 있잖아요. 이 지지층이 옮겨가버리면 대통령 선거도 위험할 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호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이미지는 있지만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든요. 트럼프는 사람이 좀 망나니 같아도 솔직하고 화통한 면이 있다고 해서 서민들이 좋아하는데(모두 웃음), 클린턴은 아주 냉정하고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미국 대선은 혼재가 거듭되는 양상입니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그걸로 협박을 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며 바짓가랑이를 잡으면 주둔비 전액을 물어내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 9천 몇 백억원 정도 되는데 아마 2조나 3조를 내라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겠죠. 이런 가능성은 그동안 무조건 미국에만 의지하고 살았던 한국사람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버리면 미국에만 의지하고 있던 우리는 굉장히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반대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매우 우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불리하지요.
그러나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 공격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북한과 평화협정이나 핵 협상을 누구보다도 잘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막 협박하면서 전쟁 할 듯이 굴다가 그냥 뒤로 악수해서 풀어버릴 소지도 있는데, 그게 북한의 기질과 매우 비슷하거든요.(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볼 때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됐을 때 한반도 상황이나 남북관계가 반드시 나빠진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트럼프는 극우파여서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을 중요시하지 한국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으니까 ‘아, 그건 뭐 평화협정 맺고 해결해버리지’ 라고 할 수도 있어요. 미국에 이익만 된다면 이런저런 걸 따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실리적으로 접근을 하니까요. 옛날에 어쨌다거나 체면을 따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잖아요. 어쩌면 쇼를 할 수도 있어요. 갑자기 북한에 가서 악수하고 전격적으로 해치워버리고는 ‘봐라, 천하가 해결 못하던 걸 내가 해결하지 않았냐’ 이럴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전 세계가 다 푸틴을 싫어하는데 트럼프는 푸틴을 좋아하잖아요.(모두 웃음)
이렇게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편에서는 우려도 되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반드시 우려할 일만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전통적으로 해오던 대로 한·미 방위 공약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릴 가능성은 더 낮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정책들이 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지낼 때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이런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 선거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방위 질서가 지켜진다면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를 생각해야겠지요. 또 트럼프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돈을 내는 쪽으로 갈 건지, 우리가 나가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가겠다고 하니까 차라리 ‘아, 그러면 그렇게 해라. 앞으로 우리의 방위는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라고 할 건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돈을 주고 용병을 둘 게 아니라 ‘미국은 전 세계의 다른 일도 많이 해야 하니까, 이제 우리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다만 비상시에는 서로 긴밀히 협력하자’ 라고 해서 한미동맹을 재정립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겠죠.
이것은 '변화된 정세에 맞게 어떻게 대응할 거냐' 하는 우리의 문제이지, 굳이 우리가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누구는 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꼭 나쁜 점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를 봐서 우리가 거기에 맞게 대응하면 돼요.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그런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가야겠지요.
다만 한국의 정치권이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매달리는 쪽으로 일관한다면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죠. 돈도 많이 들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겁니다. 약점을 잡히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각성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다음 대통령 선거에 어떤 바람으로 불어와서 영향을 줄 건지, 다시 말해 더 자주성을 갖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 더 엎드리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는 국민이 어느 정도 각성이 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의 쉽고 명쾌한 설명에 동문들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에 국민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스님이 매일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든 분은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다양한 인생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해 즉석에서 해답을 말하는 모습에 매일 감탄하고 있다면서 스님이 건강을 잘 유지하셔서 좋은 말씀을 더 많이 들려주실 것을 당부했고, 두 번째 분은 얼마 전에 정토회에서 하는 명상수련을 다녀왔는데 명상과 간화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했고, 세 번째 분은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보살은 보살이 아니고 보살이 아님도 아니다’라는 구절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질문했고, 네 번째 분은 통일의병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 점점 소홀해지게 되는데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질문했고, 다섯 번째 분은 언니의 딸이 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사실을 언니와 어떻게 상의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자상한 답변을 들려주어 참석자들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야말로 최고의 힐링이 되었겠지요. 활짝 웃는 모습에서 행복의 기운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후 1시에 즉문즉설 강연을 모두 마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스님이 재미있게 점심시간임을 알려주자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
강의 후 스님은 남한산성의 성곽 위에 잠시 올라 주위의 조망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여장과 울창한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한산성의 대부분을 승려들이 축성했고, 이후 보수와 방어까지 도맡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시대라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았을 텐데, 나라가 위급할 때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은 힘없는 백성들로 이루어진 의병들과 천대받았던 승병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친 동문들은 모두 4개조로 나뉘어서 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남한산성 둘레길을 산책했습니다.
스님은 내일 문경에서 정토회 저녁부 활동가들과 함께 7km를 걷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둘레길은 가지 않고 행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황금연휴라서 그런지 관람료도 무료였고 안쪽 너른 마당에서는 무예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유사시에 피신해 있는 산성의 행궁인데도 꽤 반듯한 건물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자 조선이 왕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 백성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텐데 이런 행궁을 짓는데도 백성들이 동원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도 행궁의 규모를 보고선 고생했을 백성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는지 “임시 거처인데 천막치고 살면 되지, 뭐 이리 크게 지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잘 꾸며진 건물과 무예 공연이 펼쳐진 마당을 지나 담으로 막힌 곳 너머까지 꼼꼼하게 둘러보고는 만해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한평생을 만해 한용운 연구에 몰두한 전보삼 교수가 원력을 세워 꾸민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기념관에는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의 초간본과 친필유묵, 만해의 옥중 투쟁을 보여주는 각종 신문자료와 관련 학술 논문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만해 스님은 용성 스님과 함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세간에는 용성 스님보다 만해 스님의 독립운동이 더 알려져 있는 이유를 스님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만해 스님의 제자들은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고 용성 스님의 제자들은 산중의 스님들이 많아서 용성 스님의 행적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스승의 유지를 따르고 이어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지만 당시에는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역사를 살필 때는 이런 부분도 깊이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만해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전승문(북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하늘은 청명하고 주위 나무들의 빛도 정말 고왔습니다.
북문으로 오르는 길 양편으로 음식점과 까페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스님은 “30여 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며 세월의 변화를 놀라워 했습니다. 전승문까지의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서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바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8시에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해외에 있는 각 정토법당에 영상으로 보내줄 부처님오신날 기념법문 촬영이 있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약 50분 동안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법문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상주 대중 모두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상주 대중을 대표하여 두 분의 행자님이 다음주에 있을 스승의날을 기념하여 미리 스님께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꽃다발을 받은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 20분부터 9시까지 대수련장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9시 30분부터는 용추계곡으로 정토회 저녁부 불교대학 담당자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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