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전에 있었던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수성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수성대학교 교정은 벌써부터 벚꽃이 활짝 피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개나리꽃이 봄소식을 전해주더니 대구에서는 벚꽃이 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강연을 하러 전국을 다니다보면 자연의 변화를 가장 빨리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 대구 수성대 교정에 핀 벚꽃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강연장을 찾은 800여 명의 대구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성대학교 대강당은 발디딜 틈 없이 붐볐습니다.
▲ 수성대 성요셉관 대강당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식으로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사라지도록 하는 대화를 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후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자 청중석에서는 번쩍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총 5명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중년의 여성 분은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이혼이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고, 젊은 여성 분은 결혼 4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안 생겨서 시어머니는 시험관 아이라도 가지라고 해서 억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물었고, 젊은 청년은 회사에 불이 나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계속 불안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직장인 여성 분은 회사에서 자기 이익만 챙겨먹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희생 당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데 이것이 피해의식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개인들의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때론 아주 재미있게 때론 아주 날카롭게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최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공천 갈등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투표를 해야할지조차 고민이 된다는 한 시민의 걱정스런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대구 시민들의 민심이 어떠한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며 모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현실을 진단해 주었습니다.
“보름 후면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투표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천과정을 보니까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 ‘투표를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일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어요.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무슨 신하를 뽑듯이 공천심사를 하는 걸 보니까 제가 정치에 대해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아닌데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투표권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스님께서 시기적절하게 대구에 오셨으니 답답한 마음을 꺼냅니다.
제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정치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또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우리 정치권이 ‘해도해도 너무 한다’ 라고 했는데,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아요? 아무리 이렇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살래? 북한으로 갈래?’ 그러면 질문자는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모두 웃음)
“대한민국에서 삽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대한민국이 나아요. 서로 욕하면서 닮아가는지 모르겠지만(모두 웃음) 아직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세요.
대한민국에는 진보적인 사람도 살고, 보수적인 사람도 살고, 경상도 사람도 살고, 전라도 사람도 삽니다. 또 기독교인도 살고, 불교인도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도 살고, 친일파 후손도 살고, 민족주의자도 살고, 친미주의자도 삽니다. 이렇게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는 덜 복잡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한 나라 안에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이 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나라는 더 복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종과 민족은 같잖아요.
물론 앞으로 30년 혹은 4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현재 결혼이나 노동을 이유로 우리 나라에 이주해 온 외국인 중에서 귀화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는 100만 명이 넘는데, 30년 안에 그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 그러니까 5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최소치가 그렇습니다.
그저께 제가 외국인노동자들과 법주사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한국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3만 명이래요. 태국 사람은 6만 명, 베트남 사람은 10만 명이 산답니다. 어느 나라 외국인이 제일 많이 사느냐고 물어봤더니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30만 명 정도 산다고 해요. 지금 한국에는 19개국의 노동자가 사는데, 스리랑카는 그 중 작은 그룹에 속한다고 해요.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시민권 받듯이 외국인 노동자도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요.
그러면 이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여러 가지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바로 헌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 앞에서 평등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부정하면 우리 사회는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제와 공화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왕이 주인인 나라가 있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있는데, 왕이 주인인 나라가 군주제,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바로 공화제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태국은 국가의 주권자가 왕입니다. 우리 조선시대가 그랬지요. 이런 나라를 제국이라고 합니다. ‘대한제국’, ‘일본제국’ 이라고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왕이 주인일 때 백성은 신민(臣民), 즉 왕의 신하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국민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는 ‘전제국가’라고 하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대리인을 자유롭게 선발하는 국가는 ‘민주국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이건 우리가 다 동의한 바예요. 그런데 지난 5000년 동안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던 오랜 역사가 있다보니까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법적으로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데, 관습적으로는 우리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라고 뽑아놓은 일꾼인 대통령을 우리는 자꾸 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모순입니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주주예요. 모든 주주가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 주주총회를 열고 우리는 그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경영실적 같은 걸 보고 CEO나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겁니다. 그게 선거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도 뽑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도 뽑아서 구성하는 겁니다. 지방 정부를 구성하는 지방선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에요.
그런데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잡음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더 시끄러웠던 것 같아요. 이러한 공천 파동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게 북한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북한에서도 선거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 하듯 북한도 선거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딱 한 명만 당에서 추천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성구 갑 아무개’, ‘수성구 을 아무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그 한 명에 대한 찬반투표만 하는 식인데 보통 찬성이 99퍼센트 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말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실상 모든 권력은 당에 있습니다. 당에서 지명을 하면 형식적으로 투표의 절차만 거치는 것일 뿐 이미 당에서 지명된 사람이 당선되리라는 건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대구의 경우도 보세요. 모든 권력이 대구시민, 즉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당에 있잖아요. 대구시민 여러분은 최근 20년 동안 당에서 정한 후보를 바꿔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구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이 아닌 사람이 당선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볼 땐 북한하고 비슷하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99% 찬성이냐, 80% 혹은 70% 찬성이냐 하는 차이는 좀 있겠지만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당선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당에서 지명된 사람들은 당선이 떼놓은 당상이니까 국민들을 보면서 ‘선출해 주십시오’ 하지 않고, 당을 보면서 ‘지명해 주십시오’ 하겠지요. 후보들은 형식적으로만 국민에게 굽실거리지 국민들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운동다운 선거운동을 해 본 적도 없어요. 그냥 요란하게 다닐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지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당에서 그런 무리한 지명을 할까요? 그러니 공천 파동은 당에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반성할 일이지, 자꾸 대통령이나 당만 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이 빚어진 겁니다.
그런데 경상도만 그런 건 아니고, 전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라도도 민주당 깃발만 꽂아놓으면 당선됐잖습니까. 거기도 형식적 투표를 했어요.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후보로 나가면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던 것처럼 경상도에서도 민주당이나 노동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인물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었어요. 그런데 재작년 보궐선거 당시 전라도에서 먼저 ‘이건 아니다’ 해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주었잖아요. 벌써 몇 년 전부터 전라도 사람들은 변화했습니다. 민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바로 새누리당으로는 바꾸지 못 하겠으니 무소속을 많이 뽑아줬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는 자치단체장의 3분의 1이 무소속이에요.
지금 경상도는 전라도보다 대략 4년 정도 늦었지만 이번에 여러분도 투표권을 조금 회복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잘하면 이번에는 여러분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즉 당의 지명을 못 받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당이 지명한 사람이 괜찮으면 그 사람을 찍으세요.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지요. 그런데 지명한다고 무조건 찍어주는 것도 안 됩니다. 그건 참정권을 포기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결국 여러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전라도는 몇 년 전부터 무소속에게도 표를 줬는데, 이번엔 아예 새로운 정당 하나가 생겼어요. 신당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은 없지만 전라도 안에서는 기존 정당과 비교해보면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총 28석 중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걸 부정적으로 말하면 분열이라고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드디어 결정권이 국민한테 돌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대구 상황을 나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는 사람이니까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참 잘 됐다 싶습니다. 결정권이 우리 손, 국민의 손에 들어왔으니까 드디어 우리가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래서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예전보다 훨씬 절을 잘 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니 이번 공천파동은 어쩌면 좋은 현상입니다. 만약 이번에 당에서 지명한 사람 중에 몇 사람이라도 당선이 안 된다면 다음부터는 공천에 더 신중을 기하겠지요. 그러니 공천파동이 기분 나쁘다고 투표를 안 하면 거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기분 나빠서 투표 안 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만 말뚝 보고 찍으러 투표장에 가면 결국 누군가의 의도대로 되겠지요.
지역주의가 활개를 칠 땐 우리가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 참정권을 잃어버렸지만, 이제 몇 십 년 만에 우리가 직접 대표를 선출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아서 표를 줘야겠지요.
투표 할 때는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최선입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조금 낫더라’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차선이지요. ‘둘 다 꼴 보기 싫다. 뽑아줄 사람이 없다’ 싶으면 주로 기권을 하겠지요. 그런데 ‘둘 다 문제지만 어느 게 더 문제냐’ 하는 걸 찾아야 해요.(모두 웃음)
그래서 가장 문제인 사람이 최악, 그래도 좀 덜 문제인 사람이 차악입니다. 즉 후보자들 중에서는 최선, 차선, 차악, 최악, 이렇게 네 종류가 있을 수 있는데, 질문자가 봤을 때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겠지요.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찍지 말라고 해도 본인은 가서 찍을 거예요. 그리고 차선만 있어도 어지간하면 찍으러 갑니다. 그런데 차악과 최악밖에 없을 때는 주로 기권을 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때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이 조건에서는 최선입니다.
이걸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손절매(損切賣)’ 라고 합니다.(모두 웃음) 내가 10,000원 주고 주식을 샀는데, 20,000원 됐다면 배를 버니까 이때 팔면 최선입니다. 그런데 겨우 2,000원 밖에 안 올랐다면 섭섭하지만 손해 본 건 아니니까 이때 팔면 차선이에요. 그런데 10,000원 주고 샀는데 8,000원으로 떨어지면 손해지요. 그런데 조금 더 놔두면 5,000원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8,000원에라도 파는 게 이익입니다. 이걸 손절매라고 합니다. 이렇게 손해를 보고도 팔 줄 알아야 주식투자를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 포기하면 안 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차악을 선택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 형편이 안 되는 중에라도 좀 덜 안 됩니다. 많이 안 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조금 덜 손해 본다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는 무조건 깃발만 보고 찍었는데, ‘깃발은 안 보겠다’ 하는데 동의가 되면 이제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경상도 사람은 의리를 좋아하잖아요. 저도 의리 좋아합니다. 그런데 같은 ‘의리’라 하더라도 정의로운 의리가 있고, 깡패 의리가 있습니다. 깡패 의리는 세상을 더 어지럽게 합니다. 의리라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정치적인 의리를 지킨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위한 의리인가? 국민을 위한 의리인가? 당을 위한 의리인가? 당파, 계파를 위한 의리인가? 개인을 위한 의리인가?’ 이런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바람은 (저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우리 경상도도 이제는 ’몰빵‘하지 말고, 좀 다양한 사람들이 당선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어요.”
“차악을 한번 잘 찾아보겠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물론 가슴이 아프죠. 이번에 저는 국회의원의 목숨이 저렇게 파리목숨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라는 건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는 줄 알았더니 2선, 3선까지 해서 제법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아침에 공천에서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권력은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권력이야말로 무상한 거예요.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가 되면 그분들도 후회를 할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루도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데 2년이 남았다면 굉장히 길다고도 볼 수 있겠죠. 또 여러분들도 만약 권력을 잡으면 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미워한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공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투표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개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대구는 국민 투표권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된 것 같아요. 국민들이 좀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네.”
차악을 찾아보겠다는 우렁찬 대답에 스님도 활짝 웃고, 청중들도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님의 답변은 대구 시민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서 약속한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끝내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여성 분의 하소연이 계속 이어져서 강연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청중들은 모든 질문과 답변이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시 한번 대구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전투구에 급급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대구 시민 여러분, 오늘 즐거웠어요?”
“예.”
“오늘 질문자 중에는 부부갈등 때문에 괴로운 분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그게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꼭 괴로워할 일이냐’ 하는 생각도 들지요?”
“예.”
“우리는 그 괴로운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웃었지요? 남이 괴로운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었을까요. 인생을 뒤집어보면 그게 꼭 울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지난 두 달 동안 공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남북 갈등이 깊어지면서 전쟁 위기도 맞았는데, 보통 여야가 서로 정쟁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통합을 하잖습니까. 통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한테 법안 같은 걸 좀 양보해야 통합이 가능하잖아요. 또 여당이 공천할 때도 친박이 비박의 요구를 조금 받아주면 통합이 되겠지요. 정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통합을 해야죠. 말은 위기라고 하면서 양보도 안 하고 고집만 부리면서 왜 분열을 더 가중시키는 것일까요?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은 남북 간 갈등, 여야 간 갈등, 여당 안의 갈등, 야당 안의 갈등으로 사분오열됐습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후보시절 선거공약 중에 ‘국민 대통합’이라는 공약이 있었던 거 아세요? 그래서 당선되신 후에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들어서 위원장도 임명했잖아요.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국민통합이 아니라 국민 분열이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대통령께서 진실 되게 오직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셨지만, 국민통합을 위한 각계각층과의 소통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잘못만 했다는 거냐고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민들에게는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잖아요. 이게 전화위복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나쁨 속에 새로움이 있으니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기회, 국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에는 아무리 야당을 찍어봐야 당선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당선될 수도 있겠지요. 또 비박도 찍어볼 수 있겠지요. 또 사람이 괜찮으면 친박도 찍을 수 있고요. 이런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게 좋은 거예요.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좋은 점을 찾아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면 여러분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청중들은 환한 웃음과 박수로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을 알고, 정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도록 행동하는 시민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강연장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오랜 시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대구 시민들은 스님의 사인을 받고선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책 사인회
사인회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구정토회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희망 강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는 힘찬 기운과 활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대구 정토법당에 잠시 들렀다가 밤 11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리면 새벽 3시 쯤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스님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눈을 붙인 후 내일 아침 7시부터 하루종일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미팅을 연이어 갖고, 저녁 7시에는 홍익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
-------
전체댓글 6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