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3.12 러시아 크라스키노(Kraskino), 우수리스크(Ussuriisk) 답사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독립운동과 발해 유적지를 찾아 크라스키노(Kraskino) 지역과 우수리스크(Ussuriisk)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어제 신한촌역사회복재건 기공식에 참가했던 일행들이 모두 깊이 잠든 새벽 5시. 영하 12도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가운데 스님은 숙소를 나왔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답사를 다닐 계획입니다. 스님은 매년 8월이면 대중들을 이끌고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니는데, 올해는 특별히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추가했습니다. 연해주에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요한 유적과 발해성 유적이 곳곳에 발견되었지만 아직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한촌역사회복재건 사업을 하게 된 인연으로 동북아 역사기행 코스에 연해주 일정도 추가하게 되면서 오늘은 하루 종일 답사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털모자, 목도리, 손장갑을 두둑히 착용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블라디보스톡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독수리 전망대’ 입니다. 전망대에서는 화려한 금각교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각교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참가자들이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면 독수리 전망대에 올라 이곳이 부동항으로 유명하다는 점과 함께 지형 지세를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하면서 조선소를 비롯해 곳곳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를 타고 내륙으로 2시간을 달려 우수리스크에 도착했습니다. ‘우수리스크’라는 지명은 ‘늪’을 뜻하는 ‘우수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곳이 옛날부터 늪이 많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해 때는 솔빈부(率賓府)로 5경(京)·15부(府)·62주(州)의 15부 중에 하나였습니다. 

 

우수리스크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북쪽 외곽에 위치한 ‘4월 참변 추모비’입니다. '4월 참변'은 일본군이 1920년 4월 4~5일 연해주 지역 러시아혁명군 관공서는 물론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톡 등지의 한인 집단거주지를 대대적으로 공격, 방화, 학살 등을 자행한 사건으로, 당시 우수리스크에 거주하던 애국지사 최재형 선생을 비롯한 민족지도자들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 거주하던 한인 동포 300여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새벽녘이라 영하 12도의 한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도 스님은 한참 동안 묵념을 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했습니다. 

 


▲ 4월 참변 추모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우수리스크 외곽에서 발견된 발해성 유적입니다. 나지막한 산에 외성과 내성을 쌓고, 수이푼강을 일부 자연 해자로 한 산성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 수이푼 강을 자연 해자로 한 발해 산성 

 

먼저 외성의 윤곽을 살펴보기 위해 강이 보이는 비교적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돌멩이로 된 대포 알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고, 적의 공격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참호를 판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 외성을 끼고 참호를 팠던 흔적

 

다시 외성에서 내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이동해 보았습니다. 성벽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높은 둔덕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내성 밖에는 다시 개울을 파서 해자를 만든 흔적도 볼 수 있었습니다. 

 


▲ 내성과 내성을 둘러싼 해자로 추측되는 곳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동쪽에서 붉은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성 안에는 현재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성벽 전체를 다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일부 구간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략적으로는 굉장히 큰 규모의 성이었음을 짐작만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음에 다시 오면 성벽을 따라 전체를 한바퀴 둘러봐야겠다”고 하면서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 길을 내기 위해 성벽을 파헤친 곳에는 흙을 차곡차곡 쌓았던 자욱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이곳이 성벽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흙을 쌓았던 자욱이 줄무늬로 남아 있는 모습

 

우수리스크에는 이 산성 외에도 시내에는 평지성이 있었다고 하는 옛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평지성은 1km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성이 나란히 있어서 옛날부터 이곳을 ‘쌍성자’ 라고 많이 불렀다고 합니다. 시내에 발해 시대 때의 절터로 추측되는 곳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지나가는 길에 잠깐 엿볼 수 있긴 했지만 ‘쌍성자’의 연원이 되는 평지성 유적은 찾지 못하고 우수리스크를 나왔습니다. 

 

우수리스크를 나와서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할 때 출발역이었다고 하는 라즈돌리예역을 지나 ‘크라스키노’로 향했습니다. 라즈돌리예역을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면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북한의 나진 선봉까지 연결됩니다. 스님 일행은 크라스키노로 가기 위해 나진 선봉까지 연결된 도로를 약 3시간 동안 쉼없이 달렸습니다. 

 

크라스키노로 가는 중간에 ‘바라바시’라고 불리우는 마을의 한 휴게소에 정차했습니다. 바라바시는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13도의군이 최초로 결집한 곳으로 여기서 유인석 선생이 도총재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국경을 넘어 국내로 진공해 일제를 몰아내는 것이었는데 이범윤, 이남기 선생도 이 때 함께 했었다고 합니다. 

 


▲ 13도의군이 최초로 결집한 곳, 바라바시 

 

바라바시를 지나 다시 한참을 달리니 두 갈래의 길이 나왔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북한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중국 훈춘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스님 일행은 북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갔습니다.  

 


▲ 왼쪽이 북한으로 가는 길, 오른쪽이 중국을 가는 길. 

 

북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을 기념하는 비석이 나타났습니다. 단지동맹(斷指同盟)이란 안중근과 11명의 동지들이 1909년 3월초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이라 쓰며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 일을 말합니다. 2001년 연추 마을 강변에 세워졌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해 유니베라 농장 입구인 현재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스님이 유니베라 농장 입구에 도착하자 장민석 법인장님이 나와서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원래는 법인장님이 이곳 유적지를 안내해 주려고 했는데 급히 다른 용무가 생겨 장화를 빌려주고 크라스키노 발해성으로 가는 길만 안내해 준 후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 유니베라 농장 장민석 법인장님

 

다음으로 향한 곳은 크라스키노에서 발견된 발해의 염주성 유적입니다. 크라스키노는 중국 훈춘 및 한반도 북부를 연결시켜 주던 군항 ‘포시에트’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건국 이후부터 일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신이 오갔다고 합니다. 험한 바닷길을 통한 교류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발해의 사신단은 이곳 염주성에서 일본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 염주성은 발해 시대 때 동경용원부 관할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님은 작년 여름에 염주성의 동쪽에 자리한 겔만 교수님의 캠프를 방문했었습니다. 당시 염주성과 캠프 사이에 위치한 강이 범람해 성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교수님의 설명만 들었는데, 오늘은 서문 쪽으로 연결된 길을 선택해 걸어가 보았습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았지만 개울은 녹기 시작해 발이 진흙에 쑥쑥 빠지기도 했습니다. 갈대로 뒤덮인 흙길보다는 눈으로 덮인 개울 길이 더 찾기가 쉬워 눈 덮인 얼음길을 한참 동안 걸었습니다. 

 


 

초행길이라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며 동북아 역사기행 때 어떤 길로 안내해야 대중들이 쉽게 올 수 있는지를 여러차례 검토했습니다. 

 


 

장화를 신고 한참을 걸으니 기찻길이 나왔습니다. 이 기차길은 러시아의 하산역을 지나 북한의 두만강 철교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북한으로 이어지는 기차길이라고 하니 뭔가 의미가 남달라 보여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 북한으로 이어지는 기차길

 

40분 남짓 걸었을까요. 장화를 신어서 그런지 다리가 저리고 아플 무렵 염주성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성벽이 마치 하트 모양처럼 약간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곳곳에 발굴이 진행된 흔적이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라 땅이 파인 곳은 모두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동문 쪽으로 가서 동문의 발굴 현장을 살펴본 후 남문, 서문을 거쳐 성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동문 자리는 이미 많은 발굴이 진척되어 있었습니다. 

 


▲ 발해 염주성의 동문 자리 

 

그런데 성문의 모양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성문 밖으로 옹성이 두 손을 보듬은 모양으로 둘러쌓여 있었는데 스님도 “참 독특하다” 라고 하면서 “자료를 더 찾아봐야겠다” 고 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겔만 교수님을 만났을 때는 교수님이 이 성의 지형도를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었습니다. 

 

  

▲ 겔만 교수님이 그려준 성문 모양

 

다시 성벽을 따라 계속 걸으니 남문 자리가 나타났고, 이어서 서문 자리도 보였습니다. 

 


▲ 성벽을 따라 걷고 있는 모습

 

특히 서문 자리에는 가장 많은 발굴이 진척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유물이 이곳에서 출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서문 자리 주위에 발굴 터 

 

발굴이 한참 진행 중이어서 그런지 곳곳에서 발해 기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발해 기와의 특징은 뒷면에 그물망이 촘촘이 엮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기와도 이와 비슷하지요. 그리고 기둥을 받쳤던 용도로 사용된 주춧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발해 기와 

 


▲ 기둥을 얹었을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

 

이렇게 발해 염주성 곳곳을 자세히 둘러본 후 다시 성을 나왔습니다. 갈대숲 사이로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펼쳐져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염주성을 나와서는 하산전투기념비가 있는 언덕에 올랐습니다. 언덕에 오르니 저 멀리 바다 건너 포시에트 항구는 물론 염주성 성터와 연추 마을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었습니다. 칼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절경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 하산전투기념비가 있는 언덕

 

스님은 이곳에서 다시 염주성의 위치와 크기를 다시 한 번 가늠해 보았습니다. 또 옆으로 눈을 돌리니 산 아래 연추 마을이 보였습니다. 연추 마을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다 간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신허 마을과 함께 186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인 마을인데, 남북으로 4~5km에 걸쳐 하·중·상연추 3개 마을이 연이어 있었다고 합니다. 1900년도에 들어오면서 최재형과 이범윤, 안중근 등이 동의회를 조직하는 등 연해주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 저 멀리 바닷가에 보이는 것이 염주성

 

조국 독립의 꿈을 안고 원산, 청진에서 배를 타고 포스에트항에 내린 뒤 말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달려가던 독립운동가들의 동선을 거센 바람을 따라 그려보니 가슴이 애틋해졌습니다. 

 


▲ 산 아래 마을이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연추 마을

 

하산전투기념비가 있는 언덕을 내려오자 오후 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3시에 이곳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훈춘으로 가는 버스 막차가 출발한다고 해서 버스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답사를 함께한 좋은벗들 동북아 역사기행 준비 스텝인 이승용님과 김경희님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중국 훈춘으로 향했습니다. 8월에 동북아 역사기행팀을 이끌고 중국 훈춘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국경을 넘어와야 하는데, 실제로 국경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실무 점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은 스텝들이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 꼼꼼히 점검한 후 두 사람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 중국 훈춘으로 가는 버스 

 

이렇게 답사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스님은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식사를 하지 못해 허기가 지고, 또 영하의 날씨에 장화를 신고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는데, 그럼에도 스님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염주성에 관한 연구 자료를 열심히 읽으며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저녁 6시가 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보고서들을 체크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8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11시 25분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 한국 시간으로 12시 35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

※ 신한촌 역사 회복과 재건을 위한 대중 여러분들의 후원금을 받습니다. 소정의 기금 출연으로 신한촌 역사 회복에 동행하는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 계좌번호 : 국민은행 578601-01-272869

- 예금주 : (사)좋은벗들 

전체댓글 23

0/200

오유진

감사합니다~~♡♡

2016-03-31 00:22:43

정록

스님의 하루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애쓰시는 모습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에 옷도 얇게 입으시고 다니는 모습에 저러다 병나시면 안되는데~~ 존경스러움과 걱정이 교차됩니다 산 부처이신 법륜스님 가슴깊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꼭 꼭 건강 챙기십시오~~♡♡♡

2016-03-18 07:45:39

봄선

고맙습니다...공경의 합장 올립니다..._()_

2016-03-17 12:48:4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