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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72번째 강연이 캐나다 밴쿠버(Vancouver)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캐나다 밴쿠버(Vancouver)는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서 캐나다에서는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잇는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밴쿠버시와 주변 10여개 조그만 도시들을 모아 메트로 밴쿠버(The Metro Vancouver)라 부릅니다. 메트로 밴쿠버항은 캐나다에서 가장 바쁜 항구이며, 매년마다 100만 톤의 화물을 다루고 있으며, 캐나다와 아시아 사이의 무역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약 300만명으로, 주민은 영국계가 가장 많고, 독일계, 이탈리아계, 프랑스계의 주민들도 살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로, 밴쿠버의 차이나타운은 북아메리카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2번째로 큰 중국인 거리입니다. 그리고 밴쿠버에는 약 60,000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시애틀 → 벤쿠버, 157마일(252km)
[지도 보기] https://goo.gl/maps/gc5tV
오전 7시 30분에 시애틀 정토법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밴쿠버로 출발했습니다. 밴쿠버 정토법당의 박은선 총무님과 오늘부터 스님 일행의 운전을 봉사해 줄 최영환님이 오늘 스님을모시고 캐나다까지 운전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두 분은 그저께 타코마 강연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도 참가했습니다. 시애틀에서 캐나다로 처음 출발할 때는 계속 비가 내렸는데 캐나다 국경으로 넘어오니 어느덧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였습니다.
▲ 캐나다로 가는 길
그리고 고속도로 양옆으로 빨갛게 물든 이파리가 펼쳐졌는데 블루베리 농장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주에서는 보지 못하던 풍경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의 목화밭이나 옥수수밭처럼 이곳 밴쿠버쪽에서는 블루베리 농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데 가을을 맞이한 잎들이 빨간색으로 곱게 물든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 붉게 물든 블루베리 농장의 아름다운 풍경
12시에 광역 밴쿠버 권역의 Mid-town에 위치한 워나비의 밴쿠버 정토법당에 도착하였습니다. 밴쿠버 정토법당 소속의 많은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법당을 방문하심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모두들 처음으로 이곳 법당을 방문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밴쿠버 정토법당은 올해 7월에 묘당법사님을 모시고 개원식을 한 신생법당인데 모든 것을 회원들이 단합하여 일구어낸 아담한 공간입니다. 스님께서는 “개원식에도 못 왔는데 미안해요. 다들 수고 많았어요” 고 하시며 불사를 원만히 마친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방문을 기념하여 다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을 찬찬히 둘러보셨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합심해서 손수 벽도 철거하고 페인트칠도 하고 바닥도 깔았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고생이 많았네요. 예쁘게 잘 꾸몄어요” 하시며 칭찬해주셨습니다. 이어 밴쿠버 정토회 회원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늘 머물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마약 중독자들이 함께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 다운타운 동쪽의 마약 거리, 이스트사이드를 지나갔습니다. 이스트사이드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안전하게 마약을 주사해 주는 공중 시설 '인사이트(InSite)'가 운영되는 곳입니다. 인사이트는 지난 2003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리의 중독자들이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설에서 마약을 주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색 시설로 시작돼 거센 논란과 정부의 폐쇄 노력에도 11년째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북미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공중 마약 주사시설로 12개의 주사실이 설치된 이곳에는 전문 간호사가 상주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중독자들에게 적정량의 약물과 깨끗한 주사바늘을 제공, '안전한 주사'를 도와줍니다. 또 필요한 사람에게는 전문 상담이나 치료를 중개하거나 주선해 주기도 하고요.
▲ 밴쿠버의 마약거리 이스트사이드에서 마약 주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오늘날 마약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물질의 중독에 의해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황폐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려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과 정토회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룻밤 묵을 숙소는 최태환, 박경미 부부의 집인데 박경미님은 현재 정토불교대학생입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아들과 함께 스님께서 방문해 주심에 감사해하면서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감사하다고 하시며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숙소에서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 오늘 숙소를 제공해주신 박경미님 가족
오후 5시에는 밴쿠버 이기천 총영사님이 마련해 주신 저녁 만찬이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총영사님과 비서관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총영사님과 밴쿠버 한인 사회의 전반적인 것과 스님의 세계 115회 강연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한의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 여러 얘기들을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식사에 초대해 준 총영사님께 인생수업과 새로운백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밴쿠버 이기천 총영사님과 저녁식사
강연장에 도착하니 행사준비를 하고 있던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스님께서는 사전에 책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북사인회를 하면서 인사도 나누고 사진촬영에도 응해주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Croatian Cultural Centre
오늘 강연장은 Croatian Cultural Centre 인데, 강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52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세계 100회 강연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날입니다. 평일 화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날씨와 더불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 520명이 참석한 벤쿠버 강연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 날씨가 화창해지니 봉사자들과 참석자들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6시 55분 스님 소개영상에 이어 520명의 청중이 품어내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서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저녁식사는 다들 하고 오셨는지 안부를 물으며 가볍게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녁식사는 하셨어요? 못 먹고 오셨죠? 못 먹고 온 사람 손 들어보세요. 집에 돌아가셔서 드세요. (청중들 웃음) 보통 저도 저녁을 못 먹고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밴쿠버 총영사님이 차라도 같이 한잔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탈리안 식당에서 식사하며 얘기도 나누고 왔습니다. 오늘은 동그란거 그걸 뭐라고 하죠? 피자? (청중들 웃음) 그거 먹었습니다. 못 먹은 분들 배고프시죠? 저만 먹어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몸을 위해서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겨줍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들의 마음과 행복을 위해서 정신적인 식사를 듬뿍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어떤 질문이든, 어떤 고뇌이든, 어떤 하고 싶은 얘기든 마음껏 하십시오.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짧게 인사를 하신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12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강연에 비해 참석자가 많은 만큼 질문자도 많아서 핵심만 짚어주시면서 빠른 속도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1) 삶의 목표가 확실치 않아서 학교를 왜 다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인생이 재미가 없고 행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23살 대학생, 2)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는 방법과 현재에 만족하며 지금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3) 어학연수 온지 6개월이 지났는데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 회의가 들고 꿈이 스튜어디스인데 과연 나에게 맞을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4) 사람들에게 상처를 쉽게 받고 외로움을 병적으로 타고 있는데 어떻게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강아지를 키우면서 강아지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는데 강아지도 영혼이 있는 것이지 묻는 분, 5) 비록 힘없는 시민이지만 사회 부조리를 만나게 되거나 목격했을 때 어떤 자세로 대처를 해야 하는지 묻는 분, 6)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고 무시하는 것 같을 때가 많은데 새로운 것에 적응할 때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것이 엄청 많은데 정작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몰라서 어떤 것부터 배워야 하는지 묻는 분, 7) 고민이 생겼을 때 스님께 상담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스님께 연락을 할 수 있는지, 스님은 어떻게 그런 지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묻는 분, 8) 6개월 전에 캐나다 남자와 연애를 하다 결혼 직전에 제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 때문에 헤어졌는데 어떻게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지 묻는 분, 9) 술담배를 끊지 못하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하는 남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 분, 10) 유산을 한번 하고 나서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는데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 묻는 분, 11) 동거하는 사람이 오픈되어 있는 사람이여서 히피들을 데리고 와서 집을 어지럽히고 음식을 다 먹어버리고 가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묻는 분, 12) 이곳에서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답변 마다 웃음이 빵빵 터지며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노력하는 삶과 만족하는 삶 사이에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면 좋을지 묻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경험담을 들려주시면서 질문자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첫째, 개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화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듣기에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첫 번째 것은 치열해져야 하고, 두 번째 것은 여유롭고 욕심도 적은 삶이라고 보여지거든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면 스님께서는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약 지구상에 100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면 몇 명 정도가 첫 번째에 속하고 몇 명 정도가 두 번째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질문하신 청년은 남에 대해서 관심이 많네요, 그렇죠? (청중들 웃음) ‘스님은 어떻게 하나’, ‘남은 어떻게 하나’ 이렇게 관심이 많은데 저는 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 같으면 첫 번째 길을 선택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요. 편안한 것을 추구하면 제가 한국에서 살던지, 한국보다 낫다고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와서 살텐데,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주로 필리핀 민다나오나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 같은 데서 합니다. 저는 환경이 더 열악한 곳에 가서 “저 좀 도와주세요”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훨씬 보람 있어요.
이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여러분들은 대부분 천국에 가고 싶죠? 천국에 갈 자격도 안 되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더니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살기 좋은 곳이면 남에게 부탁할 일이 없을 것이고 내가 가면 할 일이 없잖아요. 심심한 천국이죠. 그런데 지옥은 살기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겠죠. 그러면 제가 가면 할 일이 많겠지요. 내 작은 능력도 그곳에 가면 도움이 될 테니까 도와주면 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겠죠? 재밌잖아요. 그래서 가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전도하시는 분들이 저한테 “너 지옥간다” 하시면 저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합니다. (청중들 웃음)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선택해서 사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저는 1번을 선택할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느 것을 선택할까요? 제가 볼 때에는 80~90%는 후자를 선택하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살아야 되니까요.”
“그러면 스님께서는 결정을 하실 때 ‘내가 어디에서 가장 많이 쓰일 수 있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역할을 많이 할 수 있나?’ 그런 것을 보고 결정을 하신다는 건가요?”
“그렇죠. 내가 가진 재능이 어느 곳에 쓰여야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합니다. 효과적이면 보람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한국에서는 돈을 많이 절약하고, 인도에서는 돈을 많이 씁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의 천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적은데, 인도에서 천원이면 아이들 다섯 명의 점심을 먹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벌기는 쉽고 써도 별 표시도 안 나요. 그래서 한국에서 조금 절약해서 인도에서 쓰면, 같은 1달러인데 저기에서는 100달러의 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여기서 100달러를 벌고 100달러를 쓰는 것이나, 여기서 1달러를 벌고 저기에서 100달러를 쓰는 것이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재능이 어떤 데에 더 필요한가? 효율적일까? 그러면 효율적인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일 때 사람의 심리에 보람이라는 기쁨이 일어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나죠. ‘나는 필요없는 사람이네, 죽을까’ 이런 자살충동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해서 더 도와줘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에게 물으니까 저는 그렇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번 세계 100강을 다닐 때도 리스본 같은 경우는 교민이 100명에 지나지 않지만 리스본에서도 강연을 했습니다. 리스본에서 강연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큰 도시에 가면 환영을 더 받을까요? 작은 도시에 가면 더 환영을 더 받을까요? 작은 도시에 가면 숫자는 더 적지만 교민 전체 수에 비해 강연에 참여하는 비율은 더 높고 환호도 더 높습니다. 누구도 잘 오지 않는 데다가 초청하려면 돈도 많이 드는데 아무런 조건없이 그냥 와 주니까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으니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할 수 있고, 아니면 ‘강의료’를 기준으로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지역에서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그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원주민 마을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아이들이 몇십명씩 있는데 학교도 없습니다. 옥수수나 고구마를 심어서 먹으므로 굶어 죽지는 않지만 병이 들었을 때나 학교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곳을 가면 교실 한 칸을 짓는 데에 5,000달러면 짓습니다. 그래서 15,000달러면 교실 두 개와 선생님이 계실 교무실을 지을 수 있어요. 식수 공급하고 개발하는 것까지 해도 20,000달러면 다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가 50명쯤 되면 25명씩 나눠서 두 반을 만들어요. 그리고 학교를 지어 줄테니 선생님을 파견해달라고 교육청에 요청합니다. 물론 교사 월급 줄 돈이 없다고 교사 파견을 잘 해주지 않지만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여기 한국에서 아이들 공부시키는 데에 엄청난 돈이 드는 것과 대비됩니다. 같은 10,000달러가 든다고 해도 거기서는 혜택이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보람이 훨씬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나면 주로 오지에서 활동을 하는 편이예요.”
“사람들은 양이냐, 질이냐, 돈이냐, 보람이냐, 이렇게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각자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개인적인 관점보다는 세상에서 어떻게 쓰임을 받느냐 하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그런 관점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제가 인도에 가서 불가촉 천민을 돕게 된 것은 제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 여행을 처음 갔을 때였습니다. 제가 밤에 물을 사러나갔는데, 어떤 여자가 구걸을 하면서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따라갔더니 조그만 구멍가게에 가서 아이 분유통을 가리켰습니다. ‘아 저걸 사달라고 하는 거구나’ 싶어서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주인이 60루피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여행을 오기 전 교육받을 때 ‘절대 구걸하는 애들에게 1루피 이상 주면 안된다, 여기에서는 1루피도 큰 돈이다’라고 교육받았던 것이 생각나면서 60루피라고 하니까 굉장히 큰 돈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순간 깜짝 놀라서 사주지 않고 그냥 와버렸어요. 그리고 나서 물을 두 병 사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서 안내해주던 교수님에게 60루피면 우리 돈으로 얼마나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2,400원이라고 했어요. 그 순간 저는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2,400원짜리 분유를 사달라고 하는데 그 순간에 나는 마치 내 전재산을 다 달라고 하는 것처럼 놀라며 와버렸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면서 사회운동을 했거던요. 절에서도 맨날 중생 구제를 얘기해 놓고 직접 내 눈 앞에서 딱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돌아서 버린 겁니다. 그걸 보면서 제 자신에 대해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부터는 짐정리를 해서 옷도 남는 걸 다 나누어 주고 돈도 나누어 주고 그랬더니 아이들이 더 많이 몰려서 따라다니게 되고 그러니 같이 여행 온 사람들도 불평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시골 마을에 갔는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어서 사탕을 꺼내서 주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히히’ 웃으면서 다 도망을 가버리는 겁니다. 그 때 제가 또 한번 충격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이 요구했지만 내가 못 준 것이 문제였는데, 다시 살펴보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구걸하는 게 아니라 여행객이 뭐를 자꾸 줘서 구걸하게 된 겁니다. 이 시골에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구걸이라는 게 없는 겁니다. 준다고 하는 데도 부끄러워서 도망을 가니까요. 그래서 ‘주는 게 좋은 게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앞으로 절대로 안주는 쪽으로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마을에 갔는데 다리가 없어서 두 손을 짚고 움직이는 아이가 구걸을 하는데 제가 계속 안줬어요. 그런데 1km 이상을 계속 따라오는 겁니다. 그 때 제가 다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아이는 볼펜 하나든 껌 한통이든 사탕 하나든 얻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안 주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이냐. 그건 또 전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이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어요. 그래서 제가 ‘안주는 나는 반성을 하되 거지가 되지 않게 주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가 불가촉 천민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우물을 파주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잘못한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처음부터 베풀었으면 이런 생각도 못했겠죠. 꼭 잘못한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한 줄 알게 될 때는 그것이 더 자기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북한동포돕기를 하게 된 것도 중국에 역사기행을 다니다가 저를 안내했던 조선족 친구가 북한에 아이들이 굶어죽는다고 얘기했을 때 제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위해 압록강을 배를 타고 갔는데 거기 진짜 초라하게 앉아 있는 아이가 인도 아이들처럼 꽝 말라 있었어요. 큰 충격을 받고 그 아이를 불렀는데 고개를 안 드는 거예요. 인도 아이들은 박시시 하면서 난리인데 북한아이들은 조그만 아이도 벌써 교육을 받아서 외부 사람에게 구걸을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아이에게 가지고 있는 음식을 주려고 했지만, 여기는 국경이기 때문에 주면 안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제가 ‘국경이 도대체 뭐냐? 나는 새도 먹을 게 없으면 강 건너 저쪽에 가서 먹는데, 어떻게 사람이 저쪽에서 굶어죽는데 이쪽에는 음식이 많이 있고 나는 줄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왜 못 주느냐. 국가라는 것은 다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만든 건데 왜 굶어죽는 사람을 못 돕게 하는데 국가가 작용하고 있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인도까지 가서 아이들을 돕고 있었는데 내 눈 10m 앞에 있는 북한아이에게는 도울수가 없는 거였어요. 그때 제가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것이 제 마음 속의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북한돕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이것도 제가 잘못한 것이 계기가 되었죠. 실제로 굶어죽으면 굶어죽는다고 아는 것이 진실인데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고집하게 되면 진실을 볼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깨달음이니 해탈이니 불교의 용어는 많이 알아도 민중을 위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자기가 경험하지 않는 이상은 하나의 공염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가 종교나 사회적인 일에 대해서 가능하면 실천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갖고 얘기를 하게 된 계기입니다.”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했는데 고민이 많이 해소된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도 박수로 화답합니다.
스님께서는 12명의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그 내용을 상기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재미있었어요? 공짜라서 더 재미있었어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얻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기분은 좋지만 이러한 것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아여야 합니다. 남편, 아내, 자식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 만족이 높아지고 지속적인 행복이 옵니다. 욕망에 의해서 오는 것은 쾌락처럼 잠시 뿐입니다. 또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지속적이 됩니다.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행복은 지속적이지 못하고 또 종속적이예요. 안으로부터 이미 행복한 줄 아는 사람은 행복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즐거움을 위해 나중의 행복을 희생해도 안되지만,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지금을 희생해도 안 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셔도 안 되고, 너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시켜도 안됩니다. 진리의 세계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습니다. 그래서 늘 지금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니깐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지니면 몸과 마음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45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도 다시한번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게 오늘 강연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스님을 직접 뵐 수 있어서 좋았다” 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청년들의 질문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한 청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더니 “정말 좋았고 한 편의 코미디를 보고 나오는 것 같은 시원한 강연이었다” 고 합니다.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사인을 해주고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그 노고에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오늘 강연의 총괄을 맡아서 행사를 준비한 밴쿠버 정토법당의 박은선 총무님께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금강경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 오늘 강연을 총괄해주신 밴쿠버 정토법당 박은선 총무님
그리고 시애틀에서부터 스님 일행의 운전 봉사를 하고 계신 최영환님께도 감사의 선물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드렸습니다.
▲ 운전 봉사를 해주시고 계신 최영환님
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약 40여명이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에 재학 중인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 법문을 듣고 참 행복해져서 이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오늘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고 하고, 어떤 분은 “영상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만나뵙게 되니 생생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고 합니다.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는 곳이여서 참석자들도 다양하고 청년들부터 연세 드신 분까지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몇 대학생들은 한국에서 강연을 할 때도 강연 준비 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밴쿠버에 살면 한국 사람을 거의 만난 일이 없는데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국 말을 하고 한국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는 밴쿠버정토회 회원들에게 “아직 건강 회복이 덜 되어 먼저 숙소로 돌아가겠다” 고 인사하신 후 숙소로 먼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촬영감독님과 함께 씨애틀로 먼저 떠나는 김학로님, 김순미님, 박현수님께는 “목요일에 시애틀에서 보자” 고 인사를 하고 안전 운행을 당부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10시 40분이 되어 내일 일정에 대해서만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오늘 일과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2번째 캐나다 밴쿠버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3번째 강연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또 소식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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