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7.4 동북아 역사 누비길 넷째날

오늘은 백두산의 날입니다. 북문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고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을 구경하기 위해 오늘도 일찌감치 출발했는데 하늘에 구름이 끼어있어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

  

장백의 숙소에서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은 압록강을 따라 상류 지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국경지역이라 민간인 집보다는 군인들의 초소 및 군인가족의 집들이 가까이 보이는데 어제 압록강변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왠지 마을도 집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번엔 지붕에 비닐을 덮은 온실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비록 텃밭 수준이지만 온실 덕에 수확량이 늘어 배고프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버스로 달리면서 북한 측에 새로운 초소나 사람이 보이거나 하면 스님께서는 ! 저 봐라. 초소를 새로 지었네! 저기 할머니도 보인다. 비닐을 우리가 주지 않았는데 누가 줬노, 이제 우리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겠네!” 하고 마치 아이처럼 신기해하십니다. 이번으로 33번째 역사기행을 안내하시면서도 아직 새롭게 느껴지고 감동이 있으신지 질문을 받으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길도 작년의 그 길이 아니고, 나뭇잎도 매번 다른 나뭇잎이에요.”

우문현답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니 언젠가 말씀하신 스님의 발원문인 난 길가에 핀 한포기 풀과 같은 존재이다오늘 처음 시작한다가 생각났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같은 걸 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루해하는데 스님께서는 이 발원문과 같이 매번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 두 번, 세 번 와놓고는 전에 봤던 거라고 잘 보지 않거나 대충 듣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원래 남문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려 했는데 폐쇄되어 있어 천지 뿐 아니라 비룡폭포나 지하삼림이 있어 더 구경할 곳이 많은 북문 쪽으로 올라가기로 해서 남문에서는 내려서 사진만 찍고 다시 서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도로는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와 백두산 원시림 이곳저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만강 검문소에서 적발되어 도로 북한으로 송환되었던 수많은 북한 난민들의 피 맺힌 사연이 있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100년 전 지독한 가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 수 밖에 없었던 피눈물 역사는 1990년대 후반에 또 한번 북한 난민의 피눈물의 역사로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문 입구에서 아침을 먹고 거의 직선에 가까운 원시림속의 길을 따라 1시간 30분 가까이 달려 드디어 북문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 정상에 올라가는 승차권을 구입해서 9인승 차에 나눠 타고 천문봉으로 올라가는데 길 양편에 야생화가 군데군데 봉오리 맺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야생화의 절정 시기라는 7.10~20일 사이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이 마치 바다처럼 저 아래 펼쳐진 모습이 정말 스님의 말씀처럼 산이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러니 하루종일 백두산을 휘젓고 다녔는데도 마지막에 근데 백두산은 어디 있냐?’는 우스개 말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차에서 내려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구름이 있을듯하여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천지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아주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구름으로 가린 부분이 거의 없이 신비로운 모습을 우리 의병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천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2014년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에서 활짝 열린 천지를 봤으니 백두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앞으로 통일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아쉽지만 천지 구경을 마치고는 정상을 내려와서 다른 버스를 타고 비룡폭포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천지의 맑은 물이 북쪽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로 떨어지면서 폭포 중간에 큰 바위가 있어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것이 바로 비룡폭포인데 그 모습이 절경일 뿐 아니라 백두산의 강한 기상을 느끼게 합니다. 그다음에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의 순으로 구경을 했는데 소천지는 전과 달리 둘레를 돌 수 있는 길을 막아놓아 멋진 산책을 할 수 없었고 지하삼림도 일부 코스를 막아놓아 백두산이 개발이 되어갈수록 구경은 제한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녹연담은 세 개의 폭포와 맑은 녹색 빛의 물이 신비로움을 주는 곳이고, 지하삼림은 지반이 함몰한 곳에 숲이 형성되어 있어 지하삼림이라고 불리는데 까마득한 아래로 숲을 내려다보는 기분도 특이하고 용암이 굳을 때 갈라진 좁은 틈 사이를 흐르는 천지물의 웅장한 소리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로써 하루종일 행복했던 백두산 기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다 생각하니 어제, 그제 우리 선조들의 유적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보다 오늘 백두산 천지가 우리에게 준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백두산 정기를 받아 모두들 피곤하지만 환한 표정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독립운동사에 대한 스님 강연을 들었습니다.

     

모두에 오늘 둘러본 백두산에 대해 다시 정리해 주신 후 19세기 중반 이후 형성된 이민의 역사와 독립운동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항일독립유적지를 기행하면서 무엇을 염두에 둘 것인지와 통일운동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통일을 낙담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 통일이 언제 되는지 물어보는데 통일은 언제 오는 것이 아니라 2020년에 되도록, 또는 가능하다면 더 빨리 되도록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 통일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오기도 하고 인연이 돼야 한다고도 말할 수는 있는데 무엇보다 조건이 무르익어야 하고 그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운동은 독립운동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통일운동 한다고 아직 칭찬은 어렵고, 나쁘면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중차대함은 독립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백년의 상처 치유를 넘어 천년의 한을 풀고 미래 동아시아 문명에 초석을 다지는 일입니다.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정규군이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희생 없이 어떻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겠어요? 당장의 성공과 실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그 정신입니다. 이게 정말 바른 길이라면 승패를 넘어서서 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고 가능하면 현실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좋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제 동북아누비길 4일째의 밤이 깊었습니다. 매일 강행군이 계속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몸이 적응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도움과 백두산의 정기가 정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은 독립을 완성시킬 통일을 이루어야 할 의병이 꼭 가봐야 할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갑니다.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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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님들과 백두산의 정기가 정말 있었던게 아닐까요?^^*<br />백두산앞에서의 스님 안색이..혈색이 검으세요 ㅠ

2014-07-29 01:27:40

김용자

함께동행하고십습니다

2014-07-08 17:52:43

깨달이

부럽부럽 ()잘댕겨오셔유 모든분들()

2014-07-07 13: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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