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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의 첫날이 시작되었지만 새벽 안개로 주변을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법신 주지스님 이하 여러 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올리는데 감동이 몰려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에서 그것도 한국의 사찰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예불을 드린 후 법신스님께 삼배의 예를 드리고 환영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안개가 여전히 자욱하였지만 순례단은 손전등을 밝히며 30여 분 걸어서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에 도착했습니다. 아쇼카 석주 앞에서 예불공양과 스님의 법문, 그리고 경전 독송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 4대 성지의 초기 모습과 성도 및 열반의 길을 따라 가는 순례를 통해 부처님의 정법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547가지를 모아 놓은 본생경 중 첫 번째 선혜동자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주셨습니다. 선혜동자가 연등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진흙탕에 자기의 몸을 던져 부처님께서 밟고 지나가게 하는 지극한 마음과,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모태에 들어간 태교 이야기, 산달이 가까운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카필라성 동문으로 나와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간 지점인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부처님을 탄생하신 과정을 들으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구리로 아기를 낳았다는 것은 인도의 전설에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하므로 부처님은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인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도육회를 벗어나 해탈할 것을 상징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하늘과 인간계의 가장 고귀한 존재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의미라는 말씀을 새기며 잘 정비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대성석가사로 돌아와 아침공양을 맛있게 먹고 다음 순례지로 출발하였습니다.
9시 30분경에 부처님이신 고오타마 싯다르타께서 29년 간 생활하셨던 카필라바스투(카필라성)로 출발하여 1시간 뒤에 도착하였습니다. 허물어진 벽돌더미만이 우리 순례단을 맞이하였지만 스님께서는 전륜성왕이라는 세속적인 출가 전에 생활하셨던 그 모습을 떠올려보자고 하셨습니다.
큰 나무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의식 후 출가에 대하 경전을 독송하고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성지마다 열리는 야단법석이지만 부처님의 고향에서 올리는 법회는 여느 때와는 다른 내 고향에 온 듯 따사롭고 평안합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경전을 독송하는 내내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부처님을 지극하게 경배하는 스님의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법문으로 온몸에 깊이 새겨집니다. 부처님과, 스님, 그리고 순례탄에 대한 찬탄과 환희로움 속에 카필라바스투를 돌아봅니다.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나가 살려면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 것인가? 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가를 고뇌하신 어린 부처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순례유관을 합니다.
동문으로 나와 늙은 사람을, 남문에서는 병자를,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고, 나도 저렇게 될 것이며 어떻게 이 괴로움을 멸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 이곳의 소중함을 떠올려야 한다고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 사문이 될 것을 결심하고 결국 29세에 동문을 통해 왕궁을 나와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 동문으로 순례단은 이동하였습니다. 동문 앞에서 모두 함께, 지금은 허물어진 벽돌만이 있지만 부처님을 생각하며 유수스님의 선창으로 출가의 노래를 배우며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 중 ‘왕궁의 부귀영화도 한순간 던져버리고 외로운 구도의 길을 구름 따라 헤매이셨네. 보리수나무 그늘아래서 명상 속에 깨달으셨네’ 라는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출가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에게 잘 새기면서 부르라고 하시어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동문을 출발하여 북문쪽으로 나와 부처님이 어릴 적 다니셨을 그 길을 걸어가며 고타마 싯다르타의 유년기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다음 순례지 쿠단으로 향하였습니다.
쿠단은 부처님께서 출가 12년 후, 성도 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정반왕이 마중나온 것을 곳을 기념하여 세운 탑이 있습니다. 탑위의 계단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진을 하며 탑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도 후 3년 뒤에 쉬라바스티(사위성)에 부처님께서 오셨다는ㅕ이야기를 들은 정반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향 방문을 청하였지만 보낸 사신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하여 함흥차사가 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쿠단에서 나오며 스님께서는 입구에 줄지어 앉아있는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다음 생에는 나와 같이 인도불교 부흥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약속하자”며 공양물을 나눠주십니다. 성지마다 모이는 아이들에게 성지에 올린 공양물을 일일이 나눠주시며 이렇게 발원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음 생에는 함께 일할 사람이 이렇게 많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랑그람을 참배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자 사리를 8등분하여 각 나라로 보내져 세워진 탑 중 마야 부인의 고향인 꼴리족이 세웠다는 랑그람을 친견하였습니다. 지금은 탑의 모양이야 긴 세월에 무너졌지만, 진신사리탑 중에 헐리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고 합니다. 아쇼카 왕이 다른 곳은 사리탑을 헐고 사리를 꺼내 부처님의 발자취마다 사리를 넣은 탑을 세웠지만 이 사리탑은 용왕이 사리탑을 잘 지키겠다고 하여 헐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곳 랑그람까지 한국 불자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우리가 이렇게 랑그람을 친견한 공덕을 우리 모두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 방문지는 로히니 강변이었습니다. 역시 인도가 실감나는 하루, 이동시간이 지체되어 로히니 강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하여 후레쉬 불로 조심조심 찾아갔습니다.
로히니 강은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와 마야부인의 고향인 꼴리족의 데바다하 사이를 흐르는 강물인데, 어느해 농사의 기반이 되는 강물 때문에 두 부족은 전쟁일보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출신 부족과 외가 부족이 물 문제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아시고 중재를 직접 하셨다고 합니다. 귀중한 피가 이 강물을 채우고 흐르게 되지 않았음을 우리 순례단이 교훈을 삼아야 한다고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늦은 밤에 이 강변에 온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토행자는 부처님의 로히니 강변의 가르침에 따라 남한과 북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통일 한국이 되도록 돌아오는 8차 천일기도 기간중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통일 의병 1만 명 양성에 다 같이 힘을 모읍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대성석가사의 마지막 공양 중 특히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대웅전에서 저녁 법문으로 오늘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집은 보금자리이면서 속박과 굴레이다. 출가는 굴레만이 아니라 보금자리마저 불태우는 것이다. 부처님은 왕궁과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위대한 유성출가를 하셨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과 힘든 여건에서도 전법과 법당을 운영해 가고 있는 해외와 전국의 법당 담당자 소개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다들 힘들지만 지금 절망하고 좌절하면 고통의 씨앗으로 남겠지만 좋은 경험으로 삼고 정진하면 20년 뒤에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시며 좋은 수행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캐나다와 독일과 그리고 필리핀, 호주 등 해외 정토회 소개를 먼저 해주셨고, 그리고는 전라도와 강원도를 시작으로 중앙사무처 활동가까지 모두 소개하시고 다시 한 번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면서 오늘 긴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네팔의 마지막 일정으로 새벽 3시에 탄센으로 출발하여 일출을 보고 다시 인도 국경을 통과하여 쉬라바스티로 출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