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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추워지겠구나 하며
며칠간 바깥에서 머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정토회관에서 오전 강연이 있는
금산으로 향했습니다.
금산 행사장 부근에 도착하니 5m도 훨씬 넘어보이는 인삼 모양의 조형물이
이 곳이 인삼의 고장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음식점 간판에도
인삼 추어탕, 인삼 칼국수, 인삼 막걸리...하며 인삼이 이 곳의 주요 특산물임을
잘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이 인삼 농사로 바쁜 계절이라고 합니다. 인삼 수확하고 상품으로 내놓고,
인삼씨를 파종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땅이 굳기 전에 인삼씨를 심어야
발아율이 높아서, 봄보다는 지금 이 시기가 적기라 강연장에 사람들이 많이 오기
힘들 것 같다며 자원봉사하시는 분이 걱정을 하십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금산 공무원 불자회 회장님과 총무님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인삼 상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왜 300강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즉문즉설하는
방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신 후,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가 걱정하던 것과 달리 320여명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서
진지하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분은 71세의 할머니였습니다.
매일 불교TV를 보면서 법륜스님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할머니는 1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고, 목에 달걀만한 뭔가가 붙어 있다가 지금은 대추만해졌는데
정말 고통스럽다며 병원에 가도 병명이 나오지 않고 홧병이라고 하는데
오늘 죽나 내일 죽나 하면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하겠냐며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할머니를 “일단, 내 이야기를 먼저 좀 들어봐요.”하며
달래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자기 말만 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스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 따라 해 봐요. 옛날에 비하면 살만큼 살았다.(옛날에 비하면 살만큼 살았다.)
요즘 사람들에 비하면 십년 더 살아도 된다.
(요즘 사람들에 비하면 십년 더 살아도 된다.)
목에 있는 계란이든 대추든 그냥 크게 무겁지 않으니 가지고 살자.”
“그건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그게 떨어져요, 안 떨어져요?”
“안 떨어집니다. 가지고 못 살겠습니다.”
“지난 십오년간 가지고 살았어요, 안 가지고 살았어요?”
“가지고 살았습니다.”
“십오년도 가지고 살았는데 십년 더 가지고 못살아요?”
“너무 고통스러워서요.”
“제가 올 해 300강 한다고 해서 오늘 266번째 강의를 했어요.
남은 강의가 34강이잖아요. 그런데 몸이 아파요. 여기서 그만둘까요, 아니면
여기까지 왔는데 34강 마저 하고 끝내는 게 나아요?”
“제 생각엔 그만 두는 게 낫겠습니다.”(대중들 손뼉치며 폭소)
“아, 그러니까 여기까지 오는데 고비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여기가지 왔는데
끝까지 하자. 나는 여기서 그만둬도 할 만큼 많이 했어요. 그러나 300강으로
잡혀 있으니까,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해온 김에 끝까지 해보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도 십오년 동안 잘해 왔는데 한 십년 더 가지고 살자.
왜? 떨어뜨릴래야 떨어지질 않으니까. 그냥 데리고 살자, 가지고 살자. 이거예요.
가지고 살면 뭐가 힘드는데요? 통증이 있습니까?”
“통증은 없는데요. 외적으로 대추만한게 있구요 입안이 깔깔한 게 생겨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말라가지고 씁쓸하고 힘들어요.”
“그 정도면 따뜻한 물 마시면 되는 건데 중풍 걸려서 똥오줌 못 가려도 사는데
입안이 깔깔한데 삽니까, 못 삽니까?”
“스님, 머리가 다 빠졌습니다.”
“그래도 지옥보다 나아요. 스스로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한 달만 더 살면 모를까.”
“하루만 더 살아요. 하루만. 하루만 더 살 수 있어요, 없어요?”
“살 수 있어요. 스님 만나는 게 제 소원이었는데, 그러면 하루만 더 살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놓으시면 돼요. 아이고, 살만큼 살았다. 근데 하루만 더 살자.
이렇게 매일 하루만 더 살자 하면서 사시면 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할머니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할머니 다음으로 질문한 분은 기도를 하는데 잡생각이 많이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다음 분은 인연법에 대해서, 왜 업식이 생기는 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보통 ‘한끗 차이’라는 말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질문들이 생활 속의 구체적인 삶의 고민들이 아니다 보니, 참가하신 분들은
재미가 좀 덜했을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을 하는데, 강연 참가자의 반은 책을 산 것 같습니다.
사인 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금산 강연을 마치고, 금산 강연장과 가까이 있는 칠백의총 참배를 했습니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묘였습니다. 저는 처음 들어 본 내용이었습니다.
칠백의총은 참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금산 군민들의 선조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700의사의 넋을 기리며 사당에 참배를 하셨습니다.
일제시대 때 고의적으로 훼손한 무덤을 해방이 된 후 두 차례 복원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이름없이 죽어간 의병들과 승병들의 모습에 숙연해졌습니다.
칠백의총을 참배한 후 여수로 향했습니다.
여수 돌산에 잠시 들렀다가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여수 강연장은 분위기가 뜨거웠습니다. 97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스님께서 입장하시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수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는데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 꿈이 많은데 현실을 직시하니 꿈이
제약을 받는다, 주변에 고민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스님께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4살, 2살 형제를 키우는 엄마는 직장 다니느라 큰 아이를 14개월부터
친정엄마가 키웠는데, 둘째를 키우느라 집에 있으니까 큰 아이가 10월부터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유치원에 안 가면 또래랑 못 어울려 사회성이
떨어질 것 같고, 사랑을 못 주고 키워서 본인이 데리고 충분히 사랑을 주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작년에 이혼하고 3살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29살 젊은 엄마는 아이가
내년이면 말을 잘 할 것 같은데 아빠에 대해서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스님께 답을 청했습니다.
오늘 질문 중 고흥에서 오신 40대 후반의 남자분 사연을 소개합니다.
“고흥에서 왔습니다. 27일날 고흥에서 스님 강연이 있는데 숙제를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방관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세상이 낯설고, 뜨거운 정열이 있는데,
수행도 하고 300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한 번 뒤돌아 보세요. 지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음)
“현실에서 딱 자기 문제가 뭐예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방관자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너무 막연한 소리예요. 꿈속을 헤매는 소리요. 생각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직장은 뭐예요?”
“공무원입니다.”
“직장생활은 문제 없어요?”
“예.”
“밥 먹고 왔어요? (예) 입을 옷 있어요? (예) 잘 집 있어요? (예)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자기가 머리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서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지금 삶이 불만이예요? 불만이 있어요?”
“없습니다.”
“고흥에 강의하러 갈 때까지 아침에 절하면서
"부처님. 저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대로 좋습니다.”
이렇게 되뇌이면서 절을 하세요. 자기 암시예요.
의식 속에서, 환상 속에서 생각이 맴돌거든요.
무의식 속에서 ‘이대로 좋다, 이대로 좋다’ 하고 자기가 자각을 해야 돼요.
그 때까지 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그 때 다시 질문을 하세요.”
오늘도 스님은 많은 사연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
마음 속의 질문을 가지고 강연장으로 옵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고,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습니다. 스님 만나서 인생이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다는
사람들도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여수 밤바다’ 노래만 흥얼거리다, 정작 여수 밤바다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늘 숙소인 대전정토회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대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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