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복지
작은 진료실, 큰 수행
JTS 안산다문화센터 의료인정토회 무료 진료

화려한 진료 장비도, 번듯한 간판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들 사이, 코팅된 안내문 한 장이 전부인 작은 공간. 그러나 매주 일요일이면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막막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몸의 통증을 넘어 마음까지 데우는 진료가 시작됩니다.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며 수행의 길로 삼은 이들. 냉골 같은 진료실을 따뜻한 수행 도량으로 바꾸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의 무료 진료 현장을 소개합니다.

냉골 진료실에서 시작된 하루

매주 일요일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JTS 안산다문화센터로 모여듭니다.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지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접수 창구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제가 무료 진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1월 18일(일)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들은 12시가 되기 전부터 도착해 진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 켜 둔 보일러 탓에 진료실 바닥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맨발로 오가며 준비하기에는 너무 추워 저는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시려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서야 잠시 안도했습니다.

그때 맨발로 움직이고 있는 한 봉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신발장에 실내화 있어요. 가져다 드릴까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내화가 부족해서 제가 신으면 환자분들이 못 신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내화를 먼저 신었다고 안도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

진료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할 봉사자들과 마주 서서 명심문을 외우고 삼배를 올립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잘 쓰이겠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차리겠습니다” 명심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이날은 총 11명의 의료인정토회 회원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이 왕복 네 시간가량 걸리는 먼 지역에서 찾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지만, 정작 봉사자들 가운에 안산 주민은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다

환자들이 내원하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료가 진행됩니다. 먼저 양방 의사의 문진과 진료를 받고, 이어 옆자리로 옮겨 한방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고혈압과 당뇨, 무릎과 어깨 통증 등입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몸의 아픔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주사 치료 중인 의사 김종건 님(오른쪽)과 부인 간호조무사 박인숙 님(왼쪽)>
▲ <주사 치료 중인 의사 김종건 님(오른쪽)과 부인 간호조무사 박인숙 님(왼쪽)>

양방에서는 정성스럽게 약물 주사를 놓고, 한방에서는 침 치료를 이어갑니다. 작은 바늘이 피부에 닿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지만, 환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침을 뽑고 나면 올라가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양·한방 협진이 이루어지니 이보다 더 든든한 진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몸의 증상뿐 아니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진료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어느새 ‘의료 맛집’이라 불릴 만큼 신뢰가 쌓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봉사가 준 자유, 윤정환 팀장의 이야기

"여기는 어때요?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어요? 또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살피는 한의사는 3년째 안산다문화센터 진료 팀장 소임을 맡아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님입니다.

<침 치료 중(왼쪽이 윤정환 님)>
▲ <침 치료 중(왼쪽이 윤정환 님)>

윤정환 님은 2025년 6월 과감히 한의원 문을 닫고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났고, 이어 8월에는 필리핀으로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자녀에 대한 바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문제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호기롭게 한의원을 휴업했던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었습니다. 연말에 이를 감당하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봉사를 떠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자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2026년 여름 필리핀 의료봉사도 신청해 두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

윤정환 님뿐 아니라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듬고, 살핍니다.
환자들은 번역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전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는 세계의 공통어라 할 수있는‘바디랭귀지’로 마음을 전하려 애씁니다.

<대기 하며 서로 소통하는 환자들과 봉사자 이은미 님>
▲ <대기 하며 서로 소통하는 환자들과 봉사자 이은미 님>

정성을 다해 진료하다 보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거나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인 파벨 님은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의료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일한 탓인지 예상치못한 구안와사가 발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감기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흐르며,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 한쪽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이전부터 센터를 이용하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구안와사 치료 전 혈압 재는 파벨 님(오른쪽) 과 간호사 서성옥 님(가운데)>
▲ <구안와사 치료 전 혈압 재는 파벨 님(오른쪽) 과 간호사 서성옥 님(가운데)>

이후 매주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내원하고 있고,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벨님은 구안와사이니 당연히 얼굴에만 침을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리와 배, 팔 등에도 침 치료를 받으며 한국 한방치료의 원리와 신비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컸지만, 이제는 거의 완쾌에 가까워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파벨 님의 미소가 누구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봉사 현장의 또 다른 수행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센터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단골 환자 가운데에는 매주 치료를 받는 일이 익숙해져 의료진을 지나치게 편안하게 대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성껏 조제해 드린 약 봉투를 뜯어 종류별로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센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행동을 얼마나 시비했을까,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일으켰을까 돌아본다고 합니다.
정토회원으로 배우고 수행해 온 시간이 있기에, 원망하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장의 모든 상황이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인터뷰 중인 의사 김종건 님(왼쪽) 약사 이영수 님(오른쪽)>
▲ <인터뷰 중인 의사 김종건 님(왼쪽) 약사 이영수 님(오른쪽)>

결국 나를 위한 봉사

의료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고, 주·야간이 바뀌는 근무 형태로 생활리듬이 일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쯤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질문에 봉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환자들을 도우러 왔다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도반들과 친밀하면서도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인터뷰 중인 간호사 원유나 님(왼쪽) 간호조무사 겸 치위생사 최순조 님(가운데)>
▲ <인터뷰 중인 간호사 원유나 님(왼쪽) 간호조무사 겸 치위생사 최순조 님(가운데)>

모두 귀한 직업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직업을 가졌구나!’ 새삼 놀라게 되었다는 나누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 단체 사진>
▲ <의료인정토회 봉사자 단체 사진>

도우러 온 봉사자들이 오히려 치유 받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서 ‘잘 쓰이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의 취재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육혜련(대전충천지부 대전지회)

편집_허인영(강원경기동부지부 화성지회)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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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변상용

우리 모둠에도 안산의료봉사 다니시는 분이 계셔서 혹시 하고 봤는데 이번 인터뷰에선 안 보이셔서 아쉬워하던 차에 아래 댓글에서 뵙게 되네요 ㅎㅎ
봉사하러 왔다가 치유가 되어 돌아간다는 말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도 잘 쓰이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다들 멋지십니다~

2026-03-20 15:49:20

도원심

도움을 주로왔다가 도움을 받고가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네요. 잘 쓰이는 삶,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 내가 세상에 희망입니다

2026-03-20 13:16:39

수미향

의료인정토회를 응원합니다.
도반님들 고맙습니다.
환한미소가 아름답네요~👍
내가 세상의 희망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마음! 멋집니다.🌈

2026-03-20 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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