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미지회
평생을 함께하는 도반, 떼려야 뗄 수 없는 곳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을 만나러 상주에 갑니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커튼을 치고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니, 빠르게 지나가던 기차가 느려지고 초록빛 풍경이 넓게 펼쳐집니다. 우뚝 솟은 건물보다 푸른 들판이 더 눈에 들어오는 상주에 내리니 환하게 웃으며 맞는 도반이 있습니다. 불교대학 대구 경북지부 담당 이정미 님입니다. 구수한 팥빵, 커피와 함께 이정미 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6.13 대법회 퍼포먼스 리허설 후 아도모례원 보리수나무 아래서
▲ 6.13 대법회 퍼포먼스 리허설 후 아도모례원 보리수나무 아래서

세상이 왜 나한테는 친절하지 않지?

아버지가 사업하다 잘못되어 집이 어려워졌습니다. 엄마는 돈을 빌리러 다니다, 끝내 부모님은 서울로 도피했습니다. 고등학생 오빠, 중학생 저, 초등학생 여동생 둘은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제가 본 아버지는 게으르고, 진실성이 부족해 보였으며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스물두 살 때입니다. 간호사로 밤 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고 싸했습니다. 엄마는 집 근처 포교당에 새벽 기도를 다녔는데, 겨울이라 법당이 너무 추워서 심장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그날 새벽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은 저한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한테 생활비로 제 월급을 몽땅 주었는데 그 돈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우리 몰래 전세금을 빼서 딴 데 썼습니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 앉는 신세가 되어 월세로 돌려서 살았습니다. 월급을 모두 아버지한테 주면, 집안이 좀 더 빨리 일어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제가 결혼하는 날, 동생들은 제가 멀리 간다고 엄청나게 울었지만, 저는 집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2024년 부처님 오신 날 아도모례원에서(오른쪽에서 네 번째)
▲ 2024년 부처님 오신 날 아도모례원에서(오른쪽에서 네 번째)

꿈이 이루어져도 괴로움은 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 보니 도시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귀농하고 싶었지만, 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 혼자 촌에서 살기는 어려웠습니다. 농사짓는 남자를 만나면 제일 빠를 것 같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아는 동생이 상주에 사는 농민회 회원과 소개팅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되면 나한테 새끼 쳐.”라고 했는데, 마침 농민회에 한 명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을 소개받아 6개월 사귀고 결혼했는데, 그때 서른아홉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 못 할 줄 알았는데 장가를 가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몸이 약하고 일도 잘 못 하니까 별로 이뻐하지는 않았습니다. 임신해서는 같은 상주 지역이지만 교통이 좋지 않아 시집에 일하러 가기 힘들었습니다. “애는 못 키워주니까 네가 키워라.”라는 시어머니 말에 농사는 거의 안 하고, 살림하며 아이만 키웠습니다. 제 삶 중 가장 편안한 때였습니다.
일이 없으면 집에만 있는 저와 달리, 남편은 농사지으며 농민회 활동이나 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제가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고, 제가 뭔가를 해서 즐거워하면 남편도 좋아했습니다.

지인 소개로 상주 가정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가정집에서 잘 모르는 스님이 영상으로 법문하는데 공간도, 스님도 낯설어서 한 번 참석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에 상주 법당이 개원한다는 전단을 보았습니다. 그쯤, 첫째 동생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았습니다. 막냇동생 아이는 사고로 목뼈를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 두 동생을 엄마 같은 마음으로 살폈는데,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었습니다.

2024년 대구경북지부 지원팀 바깥 모임( 아래쪽 왼쪽에서 두 번째)
▲ 2024년 대구경북지부 지원팀 바깥 모임( 아래쪽 왼쪽에서 두 번째)

뭘 잘못 살았나?

우연히 상주 법당을 지나다가 ‘저기 들어가 볼까?’ 생각했습니다. 2013년 상주 법당 정초 순회 법회 때였습니다. 법당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내가 말끔하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준비된 질문을 다 받고 계속해서 질문할 사람이 더 없냐고 물었습니다. 한두 번만 말했으면 질문을 안 했을 텐데 마치 제 질문을 기다리는 듯이 세 번 네 번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상주는 좁아서 질문한 내용으로 누군지 알고,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질문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한테 여동생이 둘 있는데 한 동생은 장애인을 낳고, 다른 동생은 아이가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이 불행의 원인이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빠 잘못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스님에게 무지 혼났습니다.

스님은 호통치면서 여기 회원이냐고 물어봤고 아니라고 했더니 불교대학부터 입학하라고 했습니다. 스님 답을 듣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스님이 너무 혼내서 제가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스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이 불행한 원인이 아버지한테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은 제가 잘못 살았다고 하니까 ‘뭘 잘못 살았나?’ 알고 싶었습니다. 네 살짜리 둘째를 데리고 수행 법회를 다녔습니다. 다음 해 상주 법당에 불교대학이 개설되었습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저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오늘도 제때 일어났네

첫째가 딸인데, 어릴 때부터 올바른 아이, 인사 잘하는 아이 등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며 키웠습니다. 네 살인 둘째가 법당에서 칭얼대거나 울면 밖으로 나가서 울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더 크게 울었습니다. 저는 법당이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도덕심을 강조하는 작고 네모난 틀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서 공부하니 고정되었던 작은 틀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봅니다. 원망했던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건 아닐까? 장애가 있는 조카들도 그대로 예쁘고, 동생들이 불행하다는 건 제 생각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된 것은 돌이키고, 참회하고, 살피는 기도 덕분입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빼먹기도 하고, 삼배만 하기도 하고, 밤늦게 대충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책임이 큰 봉사를 맡으면서 5시에 일어납니다. ‘기도 시간을 놓쳤네’라고 괴롭게 시작하지 않고 ‘오늘도 제때 일어났네.’라며 산뜻하게 아침을 시작합니다.

2023년 가을 불교대학 으뜸절 실천 활동(첫 번째 줄 오른쪽 첫 번째)
▲ 2023년 가을 불교대학 으뜸절 실천 활동(첫 번째 줄 오른쪽 첫 번째)

원칙을 지키려는 마음 10%

불교대학 대구경북지부 담당을 맡으면서 반 담당자들과 공유하는 소통방이 있습니다. 소통방에서 담당자들의 역할을 살피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 갸우뚱하게 하는 사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잘하면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배웁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면 ‘그래 맞아, 저렇게 해야 해.’하며 흡족해합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만큼 못하면 ‘왜 저렇게 할까? 전화해서 서둘러 하라고 할까 아니면 소통방에서 물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 행동에 대해선 물어보지도 않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라며 결론 내려서 제쳐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기다리고 그래도 안 되면 물어봅니다. 옳다, 그르다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보려고 합니다. 불교대학 지부 담당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기다림과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소통방에는 학사 진행자의 질문이나 제안이 많이 올라옵니다. ‘이런 질문까지 올라오네. 이 정도는 내가 답을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교육국에 문의해서 답변하는 게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전국에 똑같은 기준이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렇게 하세요.”라고 안내하고 싶은 마음이 90%지만 원칙대로 해야 하는 10%의 마음으로 교육국에 문의합니다. 처음에는 제 업식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하라고 하니까 그냥 합니다. 개인 ‘이정미’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22년 구미지회 경전 대학 반별 활동(첫 째줄 오른쪽 첫 번째)
▲ 2022년 구미지회 경전 대학 반별 활동(첫 째줄 오른쪽 첫 번째)

지역사회에 이로운 사람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토요일마다 3시간씩 3개월 넘게 서원 행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이로운 역할을 하기 위해, 사는 지역을 공부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서원 행자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지역 사회단체에서 어떤 제의가 들어오면 예전에는 ‘저게 잘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하겠다.’ 마음먹습니다.

서원 행자 교육 나누기에서 “오늘은 잘 못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마음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그렇지 않다. 정말 잘하고, 굉장히 잘 듣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저를 예쁘게 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데, 이상적인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거기에 다다르려고 애쓰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저를 내려놓습니다.

‘나에게 정토회란?’ 질문을 받고 생각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평생을 정토회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니 ‘평생을 함께하는 도반,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가볍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가볍다는 것을 알기에 저에게 정토회는 평생 필요합니다.

포도 순 치기 하는 이정미 님
▲ 포도 순 치기 하는 이정미 님

‘내가 많이 변했구나, 잘 사는 것이구나.’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이정미 님 나누기를 들으니 뿌듯합니다. 봉사하면서 도반을 기다리고, 묻고, 듣고, 안내하는 이정미 님이 든든합니다. 인생 법문 잘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곶감을 먹을 때는 상주에 사는 이정미 님이 떠오를 듯합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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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인생

누구나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인상깊습니다. 가벼워지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2024-06-23 20:07:24

사공엽

사실을 알면 감사할 일 뿐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 파이팅!

2024-06-20 17:20:58

엄태숙

감사합니다 🙏

2024-06-20 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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