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용인지회
나는 길가에 핀 들풀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주인공은 강원경기동부 용인지회 정토사회문화회관 실행위원장 한은희 님입니다. 한은희 님은 “저는 생활에서 뭔가를 극복한 사례나 타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갱년기 나이에 불법 만나 신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은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22년  인도 성지순례 보리수 도반들과(가운데 한은희 님)
▲ 2022년 인도 성지순례 보리수 도반들과(가운데 한은희 님)

2013년 가을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불교대학 돕는이를 시작으로 용인 법당 저녁 책임 팀장과 총무를 했습니다. 이후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의 운영팀장을 거쳐 2021년 9월부터 실행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실행위원회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잘 실행하기 위해 연구하고 집행하는 곳으로 으뜸 절에서 하는 실천 활동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곳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운영팀과 관리팀이 있고 500여 명의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소임은 그 모든 활동의 실행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2020년 명예퇴직 후 인생 후반기를 정토회에서 마음껏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소임이 주어져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갱년기 탈출구, 정토불교대학

2012년 겨울, 구독하던 신문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내용이 실렸습니다. 수능을 치른 재수생이 '시험을 망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스님은 “잘 망쳤다. 입시 공부는 1년 더할 가치가 없다. 점수에 맞는 대학에 가고 적당한 곳이 없으면 안 가도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 답변이 시원했지만, 반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입벌이다.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마무리 말씀에서 ‘입벌이(=밥벌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밥을 하다가, 출퇴근하면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생각나서 법륜스님을 검색하였고 팟캐스트를 통해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2019. 9.1. 서원행자 수계식
▲ 2019. 9.1. 서원행자 수계식

2013년 봄 용인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깔끔하고 검박한 법당 모습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그해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갱년기 탈출구를 찾고 있던 저에게 불교대학은 활기를 주었고,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몸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가슴속 별이 된 평화통일 정진, 평화운동

2015년에 시작한 평화통일 정진기도 릴레이(2015년 8월 27일 입재, 2018년 초파일 회향)에 2017년부터 참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했는데 묘수법사님이 만든 발원문을 읽으며 많이 울컥했습니다. 이어서 2017년 12월 23일 광화문 평화운동( 2017 한반도 평화대회-만인의 바람, 평화를 합창하다)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 활동들은 제 가슴 속에 별이 되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정토회에 몸담겠다는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

저는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 활동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교 때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친구 중, 교직에서 퇴출당하기도 했고 우리 집으로 피신 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뒤에서 지원 활동은 했지만, 앞장서는 것은 못 했습니다.

2019년 여름 용인 법당 도반들과 JTS 거리모금(왼쪽 세번째 한은희 님)
▲ 2019년 여름 용인 법당 도반들과 JTS 거리모금(왼쪽 세번째 한은희 님)

그런데, 평화운동에 참여할 때는 달랐습니다. '그동안 내가 세상을 위해 이로운 일을 한 게 별로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무원으로 나라의 세금을 월급 받고 살면서 세상을 위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구나’라며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퇴근 후 24시간 '평화통일 정진기도 릴레이'의 목탁 소리가 끊이지 않는 법당에 가 1시간, 또는 2시간을 기도했습니다. 주말이면 도반들과 새벽에 정진했던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저희 법당에 배당된 시간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평화통일 정진과 더불어 평화운동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NO WAR -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만들어 미 대사관 앞에서 캠페인을 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도하여 사람들을 모아 미 대사관 앞에서 캠페인하고 서명받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했습니다. 그 활동들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지 못한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였습니다. 2017년 12월 23일 광화문 광장 평화운동에는 가족과 함께 참석하여 추위도 잊고 신나게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꽉 찬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해 연말 1년을 돌아보니 다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고 평화운동 활동만 생각났습니다.

2018. 8월  깨달음의장 돕는이들과(가운데 한은희 님)
▲ 2018. 8월 깨달음의장 돕는이들과(가운데 한은희 님)

어떤 일을 할 때 계기가 없다면 일부러 찾아가 적극적으로 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캠페인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힘을 얹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고, 그냥저냥 살던 제 삶이 재탄생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불법의 늦바람으로 갱년기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이후 승진 욕심을 내려놓고 저학년을 맡아 직장과 정토회 활동을 병행하였습니다. 이때의 활동이 퇴직 후 정토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갱년기의 또 다른 돌파구로 연극을 했습니다. 연극도 저의 업식을 깨우치고 갱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많은 시간이 들어 서서히 정리하였습니다.

경험으로 얻어진 검소한 삶

함께 교직에 있던 남편이 먼저 명예퇴직을 하고 저는 2020년에 했습니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니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사 의뢰가 오면, '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소비를 덜 하자.'라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시댁이 있는 경북 성주로 귀농하고자 살던 집을 정리할 때 정토사회문화회관 실행위원장을 제안받았습니다. 고민하던 저는 남편의 해보라는 말에 용기를 냈습니다.

저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숙식하고 남편만 시골로 내려가 주말부부가 아닌 분기별 부부가 되었습니다. 출가하듯 시작했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3일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숙식을 접고 엄마와 여동생이 있는 이천으로 갔습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다 개관식을 앞둔 2022년 5월, 정토사회문화회관 근처에 원룸을 얻어 개관식 때까지 생활했습니다. 남편이 "왕복 3시간을 다니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라."라고 먼저 제안하였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작은딸 결혼식을 치른 후, 남편과 함께 원룸을 계약했습니다.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매일 걸어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출근할 수 있고, 기본 가전과 작은 옷장이 갖춰진 원룸에서 자연스레 검소하게 생활했습니다.
고저는 어릴 때 '옷 못 입어 죽은 귀신이 붙었다.'라고 할 정도로 예쁜 옷 입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소풍이나 명절 때 예쁜 옷을 사주지 않으면 퍼질러 앉아 울었고, 옷을 입으면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올해 친척 결혼식에 정토사회문화회관 7층에 있는 되살림센터에서 옷을 빌려 입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큰 변화입니다.

2023.7.15. 빌린 원피스 입고 결혼식 가는 중(왼쪽 한은희 님)
▲ 2023.7.15. 빌린 원피스 입고 결혼식 가는 중(왼쪽 한은희 님)

정토사회문화회관의 되살림센터는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되쓰임 되도록 유통하고 순환하는 곳입니다. 옷은 빌려 입은 후 잘 세탁해서 돌려주고, 그릇이나 일상 생활용품 또한 필요할 때 쓰고 사용 후 돌려주면 되니 정말 편리합니다. 2020년부터 운동화 한 개와 속옷을 제외하고 다른 의류는 사지 않았습니다. 2년 남짓 남편과 떨어져 지내니 남편의 살림 실력이 늘었습니다. 저도 좁은 방에서 최소한의 도구로 살지만, 더 검소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딪쳐야 볼 수 있는 업식

수행, 봉사하며 가장 좋은 것은 소임을 통해 저의 업식을 볼 수 있고, 정진을 통해 저를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반복하며 점차 '수행자로 물들어 간다.'라는 믿음이 커집니다. 활동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제 업식이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면 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행이든 봉사든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다 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활동할 수도 있었지만, 일을 통해 부딪힐수록 저 자신과 업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업식을 알아차리면 수행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업식을 볼 수 있는 소임을 맡아 감사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활동하며 법사님들을 자주 뵙습니다. 소임 덕분에 수행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나는 길가에 핀 들풀입니다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명심문이 ‘나는 길가에 핀 들풀입니다.’였습니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고 싶고 잘나고 싶은 업식은 그런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열등감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 모습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2022. 5. 7 소장학교 입학식(아래 오른쪽 한은희 님)
▲ 2022. 5. 7 소장학교 입학식(아래 오른쪽 한은희 님)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을 앞두고 유수스님, 향취법사님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총력을 다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초기에는 보리수 정진을 통해 건물의 관리체계를 잡는 것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아직 개선해야 할 것도 많지만, 현재는 많이 안정화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자원봉사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전문적인 자원봉사자를 배출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올해 오프라인 즉문즉설을 시작으로 많은 분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세계 전법과 세계 문화교류의 장으로 더 많이 사용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상상을 합니다. 으뜸 절인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전법과 실천 활동공간으로 구석구석 잘 쓰이고, 많은 사람이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 바람은 소임을 통해 수행자로 더욱 진하게 물들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한은희 님은 인생 후반기에 정토회가 제2의 직장이 된 것 같습니다. 검소하게 생활하고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이 ‘정토행자’ 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본받고 싶은 수행자'입니다. 저도 수행자로 잘 물들도록 꾸준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글_배해정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부 화성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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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정

회관에 큰행사가 있을때마다 사무실에서 뵙고 말걸어주면 좋고해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었는데...이렇게 선배도반을 알아가니 좋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2024-02-02 12:20:03

세숫대야

뜻이있는곳에 길이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고맙습니다()

2024-01-31 12:17:18

경란

은희님
멋진 봉사 축하드려요~~~~
새로운 원룸, 검박한 생활**

2024-01-03 08: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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