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수행자입니다
경전대학 졸업 소감문

2022년 8월 20일, 정토경전대학 29기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경전대학 졸업생 945명을 대표해 두 명의 졸업생이 수행담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장수린 님의 수행담입니다. 장수린 님의 수행담을 들으면 말이 필요 없고, 그냥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나옵니다. 그 고마운 이야기, 들어봅니다.

엄마의 기대

저는 딸만 둘 있는 집, 둘째 딸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친정엄마의 콤플렉스였는지... 엄마는 제게 늘 강요했습니다. 큰집 오빠보다, 작은 집 남동생보다, 내 딸들이 더 잘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었습니다. 성적이 좋지 못해 엄마가 원하는 4년제 대학에 낙방하고 전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금을 내러 가던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게 뼈 빠지게 지원해줬는데 고작 이딴 대학을 갔냐며 쌍욕과 함께 사람 많은 학교 정문에서 제 따귀를 때렸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했고, 수치스러웠습니다. 그 뒤로 졸업하기 전까지 대역죄인으로 살았습니다. 졸업 후 회사도, 결혼도,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따라갔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봐줄 때도 저는 의견이란 걸 내지 않았습니다. 퇴근하고 들어서는 제게 현관 앞에서 아이를 던지듯 건네주며 “네 새끼 네가 봐라.” 하는 부모님의 불평불만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회사 일을 열심히 했지만, 번번이 진급에서 밀려났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남편은 해외 파견근무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육아도, 직장 생활도, 모두 제 몫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 온갖 정신 질환은 자연스레 저를 찾아왔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저를 딱 한 번 찾아온 엄마는 “유방암, 자궁암도 있는데 정신병이 뭐냐. 너 때문에 난, 이제 실패한 인생이다”라며 창피하다고 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장수린 님
▲ 왼쪽에서 두 번째 장수린 님

은둔생활 3년, 집 밖을 나오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엄마 인생을 망쳐서...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병도 엄마 마음에 안 드는 병에 걸린 제가 싫었습니다. 집에서 은둔생활 3년쯤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사람 만날 엄두도 나지 않고, 집 앞 슈퍼도, 버스도, 영화관도 못 가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저의 병을 검색하던 중,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저는 매일 매일 즉문즉설을 들은 지 석 달 만에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나와봤습니다. 인적이 드문 집 근처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의지가 생겼습니다. ‘내 마음도 좀 평온했으면 좋겠다.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불교대학을 다녔고, 경전대학까지 입학하였습니다.

갸륵하다 갸륵하다, 수린아

경전대학 수업에서 금강경 첫 장을 읽던 날,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걸식하고 처소로 돌아와 발을 씻고, 자리에 앉는 그 모습.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제자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갸륵하다 갸륵하다, 수보리야" 하시던 것이 그려졌습니다. ‘나는 수보리처럼 무얼 알려고는 했었나?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누구에게든 물어볼 용기를 냈었나?’라는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갸륵하다 하시는 부처님의 그 한 말씀이 어리석게 긴 시간을 돌아 이 자리에 온 저에게 하신 말씀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며 천일결사에도 입재했습니다. 108배를 하는데 불쑥불쑥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올라와 너무 괴로웠습니다. ‘기도할 때 화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왜 이러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기도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여기서 멈추면 또 그 지옥 같은 과거의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108배를 마치고 분주히 운전하던 출근길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느닷없이 눈물이 나는 거지’ 당황스러웠습니다. 특별히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차 안에서 실컷 울어버렸습니다. 다 울고 나니 왜 울음이 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울음 끝자락에 ‘엄마도 힘들었겠구나, 엄마도 나처럼 어리석었던 거야’라는 마음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엄마가 밉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나도, 불쌍한 중생이구나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서초정토회관 청소 봉사활동
▲ 서초정토회관 청소 봉사활동

내가 만들었구나

천일결사에 두 번 입재하고 회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못되고 옹졸한 저를 봤습니다. 아직도 과거 대학교 정문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던 그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크지 못하고 세월만 먹었을 뿐, 저는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채로 엄마의 말과 행동에 꽁했습니다. ‘그 마음을 안고 억지로 억지로 누르며 진흙탕 같은 세월을 보낸 거구나. 내가 그렇게 만든 거구나.’

처음에는 ‘기도정진을 열심히 하면 엄마를 용서하는 날이 올 거야’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애초에 없었던 걸 알았습니다. 허무하고, 헛웃음이 났습니다.

작은 촛불을 켜고

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니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걸, 이제 압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며 삶을 배우고, 깨닫고, 또 그 마음을 나누는 이 공부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어갈 수 있을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라고 망상하는 수행자입니다. 깨달아 놓고도, 단박에 깨부수지 못하는 서툰 수행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새벽, 작은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수행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기도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오늘도 어리석은 '나'를 구제해 보려는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편집하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고, '기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부처님께 기도해서 돈 많이 버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자식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바로 이것이 '기적'임을 느낍니다. 저도 모르게 '갸륵하고, 갸륵하다. 수린 님이 이곳에 함께 있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수린 님은 우리의 소중한 도반입니다.

글_장수린(2022년 경전반 졸업생)

전체댓글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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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연

부처님의 가피가 내내 함께 하소소
수린님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9-28 16:01:27

현은영

'작은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수행자'
저도 수린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 가는 도반이 되겠습니다.
수린님 감사합니다.~

2022-09-27 06:43:54

김학연

저도 이유를 알수 없는 먹먹함, 가슴으로 전해지는 공감이 있습니다. 딸 낳아 놓고 맘껏 쉬지도 못하던 우리엄마가 생각납니다. 중학교부터 딸 공주시켜 뭐하냐는 말을 들으며 눈치로 학교 다니던 일....
스님때문에 이제야 눈뜨고 세상을 행복해하며 삽니다 화이팅입니다

2022-09-26 12: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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