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복지
이방인이 이방인을 치료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안산 JTS 다문화센터 의료봉사를 올해 1월 16일부터 개시했습니다. 1년 넘게 준비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계속 연기했다가 드디어 올해 시작했습니다. 입재식을 했던 2월 6일에도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정토행자의 하루 희망리포터이자 의료봉사자 중 한 명인 윤정환 님이 그날을 스케치했습니다. 함께 그날로 가보겠습니다.

준비하다

2022년 2월 6일 일요일 새벽 4시 50분. 좀 더 늦잠 자려고 알람까지 껐는데 아침 기도 습관이 밴 저의 몸이 태클을 걸었습니다. 자동으로 부스스 일어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아침 기도를 마쳤습니다. 8시 20분경 소외계층 진료팀장 한현숙 님을 만나 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부드럽고 노련하게 운전 솜씨를 발휘해서 9시가 되기 전,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충주지회 봉사자들이 도착해서 입재식 준비까지 마쳐놓아서 깜짝 놀라고 고마웠습니다.

입재식
▲ 입재식

입재하다

입재식이 끝나면 바로 진료를 시작하기 때문에, 먼저 진료 준비를 하고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예전 법당에서 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도반들과 함께 모여 새로운 곳에서 입재식을 하니 옛날 기억이 떠올라 좋았습니다. 입재식 중간 휴식 시간에, 소풍 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는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서 다른 도반들의 식사를 얻어먹었습니다. 얻어 먹는 밥이었지만, 도반들 덕분에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약제실 담당, 김연희 님(왼쪽)과 이영수 님(오른쪽)
▲ 약제실 담당, 김연희 님(왼쪽)과 이영수 님(오른쪽)

진료하다

입재식을 마친 후에, 진료 준비를 마무리하고 환자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20분 넘게 지나도 환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개점 휴업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도반들과 함께 입재하고, 도시락 먹고, 봉사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고 감사해서 ‘환자가 없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몇 명의 환자가 와서 기뻤습니다. 환자가 많지 않아 여유가 있어서 방문한 모든 환자가 양방과 한방, 두 과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접수와 예진하는 한현숙 님(왼쪽)
▲ 접수와 예진하는 한현숙 님(왼쪽)

60대 재중동포(중국 국적의 조선족) 여성 환자는 간 혈종 수술 경력이 있는데 입안에 염증이 잘 생기고 감기를 달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한의사인 저도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양방진료 시 말하는 환자 병력에 제가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저에게 와서 허리와 엉치가 아프고 눈도 깔깔하다면서 여기저기 아픔을 호소하는 것을 듣고 침을 놓았습니다. 또한, 사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 명의 아들이 모두 중국에 있고,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몸이 성한 데가 없고 수술을 받느라 돈을 많이 썼다는 넋두리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다음 환자는 약간 비만 상태의 60대 초반 태국 여성이었습니다. 뒤 목과 어깨가 많이 뭉치고 통증을 호소했는데, 여유가 있어서 앞으로 누운 상태뿐만 아니라 뒤로 누운 상태에서도 침을 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목 뒷부위에 피를 빼는 부항을 뜰 때, “괜찮아요?”라고 물었더니 “괜찮아요. 나 기름 많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살이 찌고 지방이 많다는 표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곧바로 제가 “기름 좀 많이 빼셔야겠어요”라고 응대하니 환자가 웃었습니다.

침을 놓는 윤정환 님
▲ 침을 놓는 윤정환 님

깨닫다

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40대 초반 같았는데 알고 보니 50대 초반인 또 다른 태국 여성 환자가 왔습니다. 경추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도, 상시로 목과 팔까지 통증이 있음을 호소했습니다. “아, 네... 답답하시겠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열심히 침을 놓고, 매주 계속 진료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침을 맞고 있는 상태에서 계속 핸드폰을 만지고 들여다보길래, "침 맞을 때 움직이면 안 돼요"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 환자는 저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자신의 식당에 손님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식당에 손님이 없는 사이에 침 맞으러 와서 핸드폰으로 식당 내부를 비추는 CCTV를 확인한 것입니다. 한 테이블에 손님이 서너 명이 있고 주방장 혼자서 요리하고 있는 화면을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외국인이라서 영세적으로 영업할 것 같았는데, 첨단기계를 그렇게 잘 활용하는 모습에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부항 치료를 받는 60대 태국 여성과 친분이 있어서 둘이서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신나게 대화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궁금한 마음에 제가 “어느 나라 말이에요? 베트남어에요?”라고 물었더니, “태국 말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오히려 제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두 개의 언어를 잘해서 어느 말을 해도 의사소통할 수 있는데, 그들이 태국어로 말할 때 저는 언어장애인이 된 듯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제가 잘났고 저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을 돕고 제가 베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에 우월감이 깔려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제가 이방인이 될 수 있고, 태국 여성의 식당에 가면 제가 봉사를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고, 각자의 성실한 삶 자체가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한방진료(좌측)와 양방진료(우측)
▲ 한방진료(좌측)와 양방진료(우측)

나누다

진료를 마치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한 후, 나누기를 했습니다. 먼저 입재식에 대한 나누기를 하고, 이어서 의료봉사에 대한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영수(약사): 조촐하게 모여서 진료하니 가족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환자들이 생각보다 조금 온 것이 아쉬웠는데, 조금 일찍 와서 홍보하고 진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연희(약사): 얼떨결에 왔어요. 이영수 약사님이 연락하지 않았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토요일까지 정토회 일정이 있어서 '일요일은 쉬어야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이 많으니 (저는) 빠지려고 했는데, 막상 오고 나니 정기적으로 하면 저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마음은 너무 좋습니다.

권순녀(간호조무사): 정토회 일은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해버리면 ’맞아, 하면 좋지‘하는 그런 게 있어요. 이런 좋은 기운이 쌓이고 전달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입재식도 하느라 바빴지만, 봉사 시작 전에 조금 더 일찍 와서 홍보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다만 한다, 이런 마음으로 했어요.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렇게 조촐하게 하니 또 나름대로 따뜻함이 있네요. 자주 뵙고 싶습니다. (옆자리 김연희 님을 향해 합장하면서) 자주 뵙고 싶습니다.

한현숙(간호사): 너무 노골적인데요. (모두 웃음)

김종건(의사): 코로나 환자가 삼, 사만 명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병원에서도 환자가 많이 줄었어요. 오늘 몇 분 안 왔지만, 진료 잘 봤습니다. 두 달에 한 번은 봉사 올 예정입니다.

박인숙(간호조무사): 정토회 의료인 봉사 모둠에 속해있었지만, 많이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한번 안산에 오고 싶었어요. 과연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직접 보니, 하려고 하면 할 게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네요. 웬만한 병원 못지않게 준비했는데, 불법체류자나 금전적인 문제로 일반 병원에 가지 못하는 분들이 몰라서 못 온다는 생각에 아쉬웠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홍보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윤정환(한의사): 환자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그만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느낀 점은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아들이 몇 명이고, 어디에 사는지 등을 대화 중에 물어보는 인간적인 접근 방식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양방과 한방을 모두 진료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가 여러 번 자기 병력을 얘기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병원의 협진 체계처럼 양방의사와 한의사가 동시에 한 환자를 보는 방식을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한현숙(간호사): 오늘, 봉사 첫날인 입재식임에도 불구하고 봉사 신청한 도반들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성과가 중요한 삶을 살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것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느꼈어요. 봉사 신청을 많이 하지 않아도 걱정이 안 되고, 환자들이 많이 오지 않아도 ’아, 환자들이 편안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매주 올 수 있게 배려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어제는 약간 불평했지만, 예전처럼 지갑이나 차 키를 뺏지는 않으니 정말 고마워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왔네요. ‘이렇게 한발 한발 넘어지면서도 또 일어나 나아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의료봉사하면서 생각했던 개선점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에 북한식 송편을 간식으로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도중 월광 법사님이 주변 식당이나 사원에서 남은 음식을 받아서 식사한다는 말을 듣고 ’말 그대로 정말 탁발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받았습니다. 끝으로 전체 청소를 하고, 귀한 하루를 보낸 감사함과 도반들의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의료봉사자 일동
▲ 의료봉사자 일동


글을 쓰라고 하기에 무슨 내용을 써야 하나 문의했더니, 그냥 일어나는 마음에 대해 써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1인칭 시점에서 안산 JTS 다문화센터 의료봉사 첫날을 스케치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저의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표현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봉사했던 날을 떠올리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마움으로 가득 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의료봉사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고 외국인들과 삶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의료봉사에는 어떤 새로운 외국인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기대로 마음이 부풉니다.

글_윤정환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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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저도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게하는 글입니다 멋지십니다

2022-05-11 06:48:52

큰바다

멋진 일을 하고 게시네요.
마음 내주신 의료인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2022-04-20 09:55:54

김선우


동참하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2022-04-15 17: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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