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광주법당
곱게 물든 단풍이 그래서 아름답다는 거구나

손톱만한 작은 촛불이 온 방 구석구석을 밝히듯이, 찰나의 스침으로도 강렬한 수행자의 향기로 주변이 안온해질 만큼 자애로운 빛과 편안함을 품은 한 사람!
언젠가 꼭 글로 담으리라 벼르던 제 마음속 정토행자 정상일 님의 수행담입니다.

2018년 가을불교대학 홍보 때 (오른쪽이 정상일 님)
▲ 2018년 가을불교대학 홍보 때 (오른쪽이 정상일 님)

그녀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허공에 흩어질까,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담아온 오늘 주인공의 수행담은 광주법당이 개원하던 해부터 지금껏 수행으로도 봉사로도 보시로도 그 발자취가 모두 광주법당의 생생한 역사가 되어줍니다.

지나온 세월동안 짓누르던 무게감이 불교대학에 들어와 도반들 속에서 마음을 나누기 전에는 그것이 괴로움이라는 것도 몰랐었다며, 오늘의 주인공인 정상일 님은 정토회를 처음 만난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세월을 담담하게 소개해주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또 반면 꼭 필요한 존귀한 ‘나’이기도 한 것을

수행정진해온 지 어느덧 14년 남짓, 언젠가부터 그 해를 세는 것이 중요치 않아지며 십수년이 훌쩍 지나고 있는 엎드림의 세월이라고만 말하는 정상일 님이었습니다. 엎드리지 못할 몸은 없다는 부드러운 음성 속에 깊은 울림이 이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오랜 지병과 함께하고 있음을 듣고 난 때문이었습니다. 난치성 만성질환으로 근섬유통증후군이 발병하여 부엌 찬장 문을 열면 진통제와 수면제 등 갖은 약봉지들이 한가득 채워져 있고, 그렇게 약가루에 푹 절여진 몸을 느끼며 그것의 노예가 된 듯한 시절을 보내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평생 고치지 못하고 아플 수밖에 없는 질환이라면, 약 먹다 생을 마치느니 절하며 생을 마치자.’라는 단단한 결심, ‘원’이 섰다 합니다. 그 때부터 이를 악물고 3, 4년 동안 아침저녁 두 차례 하루도 빠지는 일 없이 정진하였으나, 수행을 놓치지 않고 3년 이상을 했는데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변한 게 없어 보이던 고집스러움 앞에서 마음 알아차리기를 거부하던 수행의 정체기도 누구나처럼 겪었노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그만두어야 할까를 고민하며 찾아뵌 각해보살님은 ‘착한 척’ 하는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라며 명심문을 주었고, 그 이후 11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결같은 정진 속에 알아차리며 돌이키게 하는 감로수와 같은 몇 줄, 그 명심문 “있는 꼬라지 그대로 인정하고 숙이겠습니다. 저는 고집불통입니다. 고집부리는 것을 참회합니다. 제 고집을 보지 못했음을 참회합니다.”를 되뇐다고 합니다.

긴 세월 아무도 보지 않는 고요 속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엎드려오는 동안, 고집 센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은 정말 ‘나’로부터 ‘나’에게만 적용해야 할 잣대임을 깨우칠 수 있었다 합니다. 꾸준함으로 우직했던 그 세월 동안 정상일 님은 6차년도, 7차년도, 8차년도 연이어 빼먹지 않고 해내신 정진으로 귀감이 되셨으며, 허리케인 속에 있어도 감히 흔들 수 없을 만한 강직함으로 8차년도에는 광주정토회 대표 소임을 기꺼이 받아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대표소임을 회향하며 9차년도에는 주간반 천일결사 모둠장으로 즐겁게 모둠활동도 이끌어주면서, 도반들 수행정진에 따뜻한 조언도 보태주는 일대일 멘토로도 쓰이는 중입니다.

두 딸은 그 뒤를 당연한 듯 따라, 큰딸은 안양정토회에서 불교대학 졸업을 했고, 작은딸은 광주법당 청년불교대학 팀장소임을 맡아 자연스럽게 수행자의 삶을 닮아가고 있다 합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가깝게 있는 도반의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긴 세월 쌓아온 내공을 알기에 마음을 가지런히 무릎 곁에 모은 채로 소탈한 뒷모습을 따라가고픈 마음입니다.

딸과 함께
▲ 딸과 함께

나는 느림보 거북이! 느릿느릿 그 속도가 부진하여도 오래 꾸준히 하는 나를 지켜볼 수 있어 좋습니다

“나는 좀 느려요. 어느 순간까지는 ‘다만’, ‘그냥’ 하기만 하다가, 삐죽삐죽 무언가가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때까지도 나는 엎드리며 나를 들여다볼 뿐입니다.”

리포터도 ‘3년을 했는데 왜 변화가 없지? 이 업식이 왜 아직 그대로인 거지?’ 하며, 마음 내어놓기에 염증이 나던 때가 있었기에 정상일 님의 지나온 세월동안 켜켜이 새겨둔 경험들과 울림은, 그렇게 뒤를 잇는 도반들에게 ‘나만 그렇지 않구나. 더 오랜 수행을 했어도 끊임없이 붙잡히는 업식이기에 꾸준히 다만 하라는 거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정상일 님
▲ 환하게 웃는 정상일 님

소임은 정말 복 맞는다니까!

돌아보니 어느 소임이든 내게 주어지는 이유가 있었구나하고 뉘우쳤다 합니다. 고요히 정진만 이어가고 싶었는데, 내 깜냥에 잘 하지도 못하는 법회 팀장에, 대의원에, 급기야 대표소임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늘 뒷걸음치기에 바빴던 시절을 이제는 참회하고 있다는 정상일 님. 받는 소임이 크면 클수록 내 공부를 이끄는 힘은 컸었고, 작든 크든 주는 소임으로부터 도망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야 온전히 복을 누리고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해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나이가 들수록 내 자리는 내가 만들어야지, 누가 만들어주지 않습디다! 소임 받을 때가 그나마 내가 아직 쓰일 만 하구나하고 알게 되면서, 덥석덥석 감사하게 인사하며 그 소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고 싶지 않던 대의원 소임을 안 받으려 도망치니, 더 큰 소임들이 잘게 잘게 여러 뭉치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원금만 갚아야지, 이자까지 갚으려니 폭폭하다는 게 이런 거겠다 했어요.”

소임을 맡을 수 있음이 내가 세상에 한 손이라도 보탤 수 있는 감사한 때임을 알아야 한다며, 봉사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 서원하는 정상일 님이었습니다.

혼자 수행하고 혼자 봉사할 때는 안 보이던 것이, 도반들 속에서 봉사하며 자잘한 갈등 속에 내가 어떤 경계에 발끈하는지, 고집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다며 ‘함께하는 봉사, 책임지는 봉사’의 가치에 아낌없는 찬사를 줄줄이 내어놓았습니다.

남은 내 삶의 보장된 노후보험 ‘정토회’

이만한 보험이 어디 있을까 싶다며, 연신 노후보험 자랑을 하십니다.
일주일 중에 대부분을 정토회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에 함께 하며, 잘하든 못하든 내 만족도를 고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한다고 합니다. ‘잘했다, 못했다’ 핀잔을 주기는커녕,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마음 나누는 도반들과의 일상, 그 즐거움은 이제 근섬유통증증후군이 아닌 온몸과 마음을 쓰다듬는 보약이 되었다 자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300배, 500배, 1000배보다 중요한 1배

끝으로, 오늘 아침에도 300배 하셨냐고 여쭙는 리포터에게 ‘나이만 그런 게 아니라, 절 횟수도 숫자에 불과해요. 간절히 엎드리는 1배가 운동삼아 몸만 엎드린 1000배를 따라올까요.’

어찌 따라올까요! 못 따라오지요!

마음을 정갈히 두어, 정상일 님의 뒤에 서서 함께 엎드려봅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오직 ‘나’에게 돌이킬 수 있도록 오늘 다시 챙기게 해주심을 고마워하면서요. 상구보리하화중생, 그 가르침 다시 새기고 온 정상일 님과 만남에 리포터의 펜끝이 제법 가벼운 지금입니다.

글_문수미 희망리포터(광주정토회 광주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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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화

방금 스님의 불국사 돌탑 읽었는데 거기 기둥 같은 분이시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ㆍ

2018-10-29 10:39:53

고경희

긴세월인데 한순간처럼 느껴지네요~ 참보기좋습니다~♡

2018-10-26 19:12:50

최근영

정상일보살님 늘 귀감이 되고 계시죠
이렇게 뵐수 있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2018-10-26 14: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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