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한국호주지회
평강공주가 장군을 만나면 생기는 일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 아시죠? 그런데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이 아닌, 처음부터 장군을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 누구보다 국제지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성애 님의 수행담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겠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중학교 시험을 앞둔 저에게 어머니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게 절에 가서 부처님께 빌자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누군데 나를 학교에 보내 준다는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불교 학생 클럽에 갔습니다. 대각사와 관련 있는 룸비니라는 곳이었는데, 불교라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내 인생을 꾸려 나가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196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불교학생회 여름 수련(가운데  단발머리 소녀 서성애 님)
▲ 196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불교학생회 여름 수련(가운데 단발머리 소녀 서성애 님)

그전에는 제가 성격도 좋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져 말도 제대로 못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극복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50~60명 앞에서, 그것도 거의 남학생이고 여학생이라고는 3~4명밖에 없는 곳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발표하던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저는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고등학교 생활도, 대학 생활도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 공부도 잘하고 학생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학생 회장도 맡아,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생활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이 순간에만 충실하면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힘들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야 평강공주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결혼 안 하면 못 간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라는 남자와 중매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사진만으로 약혼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만난 지 열흘 만에 결혼했습니다.

2025년 청년페스타 국제지부 부스 봉사(왼쪽 첫 번째 서성애 님)
▲ 2025년 청년페스타 국제지부 부스 봉사(왼쪽 첫 번째 서성애 님)

생판 모르는 남자와의 결혼이었지만, ‘나는 평강 공주다, 바보 온달을 만나도 나는 장군을 만들 거다’ 하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장군이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처음 보고 한 말은 ‘나를 바꾸려 하지 말고, 네가 바뀌어라’였습니다. 남편은 자기 말만 옳다고 생각하고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달을 보고 해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야만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평강공주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 일주일 만에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둘이 결혼한다고 기뻐하던 양가 부모님 생각에, 또 이혼한다 하더라도 미국 아이오와에서 따로 갈 곳도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다행히 “여자는 결혼하면 애나 키우고 집안일이나 하라”는 남편을 설득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취직이 되어 뉴저지로 왔습니다. 당시 남편은 새벽 6시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며,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10년 동안 휴가를 하루도 내지 못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아빠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던 딸은 자기는 아빠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혼자 새로운 곳에서 직장을 다니며, 당시 세 살 된 딸을 키우고 집안일도 모두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비실비실 많이 아팠습니다. 혈압이 80/40mmHg까지 떨어지기도 하고 까무러치기도 했습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사 보스가 ‘너는 일은 잘 하는데, 아파서 자주 빠진다’고 하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 막 눈물이 났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몰랐는데,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집안 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사니,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몸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남편과의 공동 치료를 권했지만, 얼굴 보기도 힘든 남편과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25년 부산 불교 박람회(오른쪽에서 세 번째 서성애 님)
▲ 2025년 부산 불교 박람회(오른쪽에서 세 번째 서성애 님)

다시 수행을 시작하다

살기 위해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붙일 곳을 찾아 이 절 저 절 다녔습니다. 어느 날 정토 회원인 고모가 정토지와 법륜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주었습니다. 집안 어딘가에 던져 두고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테이프를 들어봤는데 제가 찾던 스님이 거기 있었습니다. LA 정토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009년에 직접 찾아 갔습니다.

정토회를 찾아간 지 1개월 만에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가던 불교 수련회 같은 곳인 줄 알고 놀러 갔습니다. 그저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수련을 하면서 눈물이 그렇게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 무렵은 남편이 1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가 벌어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애나 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동안 나를 억누르며 살아온 데 대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 마음에 있었지만 저도 모르고 있던 것들을 다 쏟아 내고 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 후론 남편이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그래도 먹고살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9년 깨달음 장을 마치고 유수 스님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서성애 님)
▲ 2009년 깨달음 장을 마치고 유수 스님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서성애 님)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예수를 믿으라 외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뒤에는 저 사람들이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외치고 다닐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나자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장>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이혼으로 괴로워할 때 바로 <깨달음의 장>을 권했습니다. 동생도 그곳에 가서 깨달음을 얻고, 이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정토법당을 만들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계속 알아가는 중입니다.

남편은 처음 10년 일한 이후에는 내내 자기가 하고 싶은 골프를 치며 살았습니다. 요즘은 폐렴으로 몸이 약해져 요양원에 있습니다. 저는 요양원에 있는 남편과 아침저녁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는 것을 사다 주며 지내고 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남편이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정토회 오프라인 활동을,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어른들이 본 남편의 사주팔자는 일부러 만든 사주라고 할 정도로 좋다고 했습니다. 남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저와 결혼해서 일을 하지 않고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으니 사주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 50년 동안 남편과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고 대들지 않으니 아예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 결혼하자마자 “자기를 바꾸려 하지 말고, 네가 바뀌어라”라고 말하던 남편이, 몇십 년이 지나고 나서는 “네가 되게 똑똑하다. 내가 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 남편은 아니라고 하며 폼을 잡고 있지만, 예전부터 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아니까 그냥 봐주면서 살 만합니다.

2026년 2월 영어불교대학 졸업식(윗줄 왼쪽에서 첫 번째 서성애 님)
▲ 2026년 2월 영어불교대학 졸업식(윗줄 왼쪽에서 첫 번째 서성애 님)

저는 누가 ‘남편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랑하기 위해 50년째 알아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남편과는 서로 모른 채 결혼해 그렇게 서로를 잘 모른 채 50년을 살아왔으며, 지금도 매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평강공주를 하긴 했습니다. 다만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남편이 제 말을 조금만 들었더라면 장군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나는 잘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은퇴 후 재취업이 되어 한국으로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법당과 집이 멀어서 하지 못했던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전법활동가가 되었습니다. 마침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법당으로 전환되는 시기였기에,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수월하게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법활동가가 된 후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불교대학 진행자, 정토담마스쿨(영어불교대학) 진행자, 모둠장 등의 소임을 맡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9번째 정토담마스쿨 진행자를 하고 있는데,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한 외국인들이 회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아침 5시와 6시, 하루에 두 번 아침 공동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나서 12시 반에 자도 4시 반만 되면 눈이 딱 떠집니다. 무릎을 아끼기 위해 쿠션을 서너 개 깔고 천천히 절을 해서 인지, 아직 천 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릎도 멀쩡합니다.

2026년 외국인들과 함께 한 반나절 템플스테이(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두 손자와 함께 한 서성애 님)
▲ 2026년 외국인들과 함께 한 반나절 템플스테이(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두 손자와 함께 한 서성애 님)

저는 요즘 정토회 덕분에 산다고 할 정도로 행복하게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행한 반의 학생들이 정토회 외국 회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 참 보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딸이 한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일이 손주들과 함께한 반나절 템플스테이라고 합니다. 2차에서는 반나절 템플스테이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외국인 회원을 더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제 인생 모토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인생은 즐겁고 게임이다’입니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Just Do It”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돌아보며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불교를 중심에 두고 저를 닦으며 살아왔고, <깨달음의 장>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된 덕분입니다.


처음에는 서성애 님이 왜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다가, 에너지 넘치고 반짝반짝한 서성애 님 같은 분을 정토회 도반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결국 그 인연 덕분임을 깨달으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장군을 만난 평강공주는 남편이라는 시련을 통해 진짜 인생의 주인공인 정토행자로 거듭나, 외국인들을 수행자로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_고명주 희망리포터(국제지부 동아시아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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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04-15 12:56:06

현광 변상용

읽으면서 우와~ 소리만 여러번 했네요. 도반님이 그냥 장군이세요 ㅎㅎ
70 중반에도 전법활동가로 활발히 활동하시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한참후에도 또 수행자의 하루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2026-04-15 12:46:32

이혜숙

진정한 정토 공주시네요~~함께하는 도반이라 생각하니 든든합니다. 고맙습니다^^

2026-04-15 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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