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이은옥 님의 바라지장 소감문은 마치 한 편의 단편 소설 같습니다. 문경에서의 첫 예불 시간, 차가운 공기와 아름다운 종소리 그리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 여인이 방석에 앉아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기도포를 꺼낸 순간 꼬깃꼬깃한 기도포를 보고 눈물을 왈콱 쏟으며 손으로 삭삭 문질러 반듯이 펴는 장면이 보입니다. 그녀의 사정을 미처 알지 못해도 당시의 기분은 어떤 것일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되는대로 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다시 살아보겠다고 문경까지 간 그녀는 과연 어떻게 바라지장의 시간을 보냈을까요?
일찌감치 바라지장을 신청했지만,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괜히 신청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박 5일이 너무 긴데 취소할까? 카톡방에 뭐라 말하고 못 간다고 하지?’ 등 온갖 분별이 일어났다. ‘그럼 그렇지! 순순히 나설 내가 아니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이번에는 꼭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바라지장 입재식에서 드디어 함께할 도반들을 만났다. 대부분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서 공양받은 감사함을 회향하기 위해 왔다는데, 나는 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왜 왔는지 잘 몰랐으니까.
문경에서의 첫 새벽 예불 시간. 차가운 공기와 아름다우면서 예리한 종소리를 들으며 대중이 속속 법당에 모였다. 그들이 뿜어내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도 다른 도반들처럼 방석에 앉아 기도포를 꺼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기도포가 나인 것 같았다. 주머니 안에 기도포를 넣어놓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내가 나를 안 보이게 가려놓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기도포를 종잇장처럼 구겨서 다시 주머니에 넣고 싶었지만, 손은 방석 위의 기도포를 삭삭 문질러 반듯하게 펴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저절로 숙여졌다. ‘되는대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구나. 다시 살아보겠다고 여기 온 거구나. 그래서 취소하지 못했구나!’

첫 소임으로 수련생들의 공양 짓는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즐겁게 잘할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팀장님의 지시 내용을 모두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채소를 썰고, 전을 부치고, 물을 흘려버리곤 했다. ‘습관이 참 무섭구나.’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깨어 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릇을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수련이자 수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라지장에서는 먹는 것도 수행이었다. 방을 꽉 채우며 울리는 소심경 독송 소리는 장엄했고, 그 소리에 맞춰 발우를 펼치고 공양물을 발우에 담았다. 네 번째 손가락을 튕기며 세상 배고픈 자들과 공양물을 나누고, 공양하고, 발우를 씻어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감동이었다. 거리낌 없이 욕망을 따라가던 먹는 행위가 부처님의 삶을 생각하고, 차별 없이 다른 이와 함께 나누는 마음을 담아 성불의 원을 세우는 행위로 완전히 바뀌는 시간이었다. 비록 여러 단계의 절차를 틀리지 않게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고, 나 때문에 흐름이 끊길까 긴장하기도 했지만, ‘부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공양하셨구나! 내가 지금 이렇게 많은 부처님과 함께 공양하고 있구나! 많은 분의 공덕을 생각하며 앞으로는 집착하지 말고, 무엇을 얼마만큼 먹든 늘 감사하며 먹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저녁 예불 후, 백화암에 둘러앉아 도반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딸아이 때문에 괴로웠다. 마르고 조그만 몸에 독한 담배 연기가 퍼지는 것이 눈에 보였고, 딸아이의 목숨이 하루하루 닳아가는 것 같아 애가 탔다. 이런 선택을 하는 딸이 한심하고 실망스러웠다. 한 생각을 돌이키면 괴로울 일이 아닐 텐데,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떤 관점으로 돌이켜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도반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도반도 언니의 흡연이 용납되지 않아 실망스러웠지만, 어느 날부터 ‘언니가 얼마나 괴로우면 담배를 피울까?’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또 어느 날부터는 ‘언니가 오늘은 이 일 때문에 괴롭구나’ 하고 그 이유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나는 딸아이가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진심으로 딸아이의 힘듦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든 시기가 지나면 돌아올 텐데, 그게 언제일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눈물이 터졌고, 바라지장 소감문을 쓰면서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이 눈물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내 지나온 삶에 대한 뼈저린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도반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명심문을 찾았다.
‘나는 자랑스러운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나는 저항하는 나를 능히 뛰어넘습니다.

4박 5일간 행복했던 바라지장 여정을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새벽 기도를 시작했고, 지난 25년의 괴로움을 단박에 해결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다시 부처님 법을 만나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함께한 도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정진하며 바라지장 카톡방과 밴드에서 서로 응원하고 있다.
바라지장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도반들과 두런두런 자신을 풀어내던 소소한 시간 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2013년 인천 법당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때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 나누고 눈물 쏟고 토닥이며 서로를 치유했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 바라지장에서 그때 감동을 다시 느꼈다.
오프라인 강의처럼, 깨장처럼 얼굴 보며 나누고 싶은 분들은 바라지장에 꼭 가보시길 추천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낭떠러지에서 자신을 구원할 길은 결국 정진밖에 없다는 체험을 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이야기해 준 도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_이은옥(인천경기서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10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위암 투병과 불교 수행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