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인도 성지순례는 인생 최우선 과제

<월간정토> 책자는 아쉽게도 흑백 인쇄에 사진도 작게 실리기 때문에, 단체 사진의 경우 주인공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반면, 온라인에 실리는 글은 사진을 컬러로 볼 수 있어, 주인공들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김태호 님의 글 역시 사진과 함께 보니 이전과 다른 감정이 느껴집니다.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남을 분별하는 업식에 심지어는 자신의 건방진 모습까지 마주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지만, 사진을 보면 참 해맑고 즐거운 표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만큼 인도 성지순례의 과정은 힘들지만 보람있고 감동적이라는 뜻이겠지요?

16일 휴가를 얻어 순례길에 오르다

저는 2022년부터 「스님의 하루」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 농사를 짓는 스님과 봉사자들의 삶이 좋아 보여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순례객 1,250명이 참가한 인도 성지순례 이야기를 읽으며 크게 감동한 나머지 저도 참가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인이 16일이라는 긴 휴가를 내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인도 성지순례를 인생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후 회사에 연가를 계속 요청했습니다.

김태호 님
▲ 김태호 님

마침내 성지순례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장 소임을 맡았고, 8월에는 1차, 2차 사전 모임을 가졌습니다. 네팔 비자 신청, 인도 비자 신청, 항공 일정 파악, 유심 환전 신청 등 총 49가지나 되는 각종 준비를 하면서 조원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소통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조원들의 자료와 상황을 전달 받는 과정은 인내심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근무 중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출발 59일을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불교 텔레비전(이하 ‘BTN’)의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20부작 영상을 매일 한 편씩 조 소통방에 공유했습니다. 매일 108배와 걷기를 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권장 도서인 『인간 붓다』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를 읽었습니다.

기쁨과 고마움의 순례길

성지순례 첫날, 바라나시 사르나트 숙소에 도착해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둘째 날은 수계식에서 호계 합장을 했는데, 모두 연습했음에도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다양한 자세로 수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셋째 날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이 꽃목걸이를 제 목에 걸어주고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린 학생이 코끼리 등에 타서 꽃을 뿌려주는 모습은 가히 놀라웠습니다. 학생들이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 한 달 동안이나 학교를 단장했다는 보광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는 크게 감동하고 학생들의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순례 전체 일정은 세세하고 치밀하여 좋았습니다.

2025년 인도 성지순례(맨 오른쪽이 김태호 님)
▲ 2025년 인도 성지순례(맨 오른쪽이 김태호 님)

분별하는 업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다

인도 성지순례를 하며 제 마음도 함께 순례했습니다.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어두컴컴한 새벽에 전정각산 아래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보드가야로 출발하였습니다. 저는 이 길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분별심을 느꼈습니다. 인솔 법사님이 묵언하며 걷자고 안내하여 고요히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뒤에서 여성 순례객 두 분이 쉬지 않고 계속 대화했습니다.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내내 마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제 업식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하였고, 군대와 회사 규칙에 모범적이던 업식이 올라왔습니다. 저와 눈높이가 다른 사람들을 제 기준에 맞추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는 부처님의 중도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여주신 중도, 푹신한 길상초에 앉으시고, 부드러운 연미죽을 드시고, 흐르는 물에 목욕한 것을 규칙 위반이라고 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별심은 다양하게 표출되었습니다. 차량에서 조원들이 내리는 순서에 강하게 시비하였고, 체력이 약해 보이는 조원에게 3시간 걷기에 참여하지 말고 차량을 이용하도록 강권했으며, 조별 사진 찍기에서는 재촉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고, 정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공지 사항에 대해서는 여유를 주지 않고 바로 질문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당황하는 것을 보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건방지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에서 BTN 영상을 세 번이나 보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녹음 법문을 듣다 보니, 실제 성지에서 스님이 법문을 하셔도 신선하지 않았고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맨 뒤에 앉았을 때는 집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사전 학습을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메모하며 듣는 도반들의 모습이 보였고, 스님이 30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같은 법문을 처음처럼 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내가 건방진가’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제야 스님의 법문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인도 성지순례(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태호 님)
▲ 2025년 인도 성지순례(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태호 님)

부처님의 자비심에 참회의 눈물이 흐르고

1월 22일 천축 선원에서 새벽 예불을 올릴 때 이런 저의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시는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의 못난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감싸안으시고 용서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닷타 장자탑 터로 ‘석가모니불’ 염불을 하며 명상 걷기를 하는 동안 제 마음도 함께 순례했습니다. 저의 끝없는 분별심과 날카롭고 불같은 성질을 보았고, 동시에 부처님의 자비를 느꼈습니다. 상카시아 탑 터를 돌며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는데, 마치 부처님이 허물 많은 저를 있는 그대로 감싸안아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번 순례는 제 마음을 살펴보고 부처님을 느끼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차 조장 회의에서 인솔 법사님이 제 업식에 대해 조언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피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 몸속 암을 정확히 진단해 주시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사님이 “매일 300배를 해보라”고 처방을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의 강점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듬고 싶은 속마음은 이런 것들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참견하려는 마음, 상대의 비난에 참지 못하고 즉각 반응하는 마음, 분별심을 내며 이른바 ‘내로남불’ 하는 마음, 시기 질투하는 마음, 내 생각을 관철하려는 마음, 조금 알면 남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는 건방진 마음. 수많은 업식이 제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수행 정진하면서 이러한 업식을 느낄 때 바로 멈추는 훈련을 해나가겠습니다. 인도 성지순례를 준비해주시고, 현지에서 깨알같이 챙겨주신 스님과 인솔 법사님 그리고 모든 스탭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5년 인도 성지순례(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태호 님)
▲ 2025년 인도 성지순례(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태호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4월 호에 수록된 인도 성지순례 소감문입니다.

글_김태호(경기강원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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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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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10-27 14:12:50

현광 변상용

마치 순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네요. 6년전 그때가 떠오르며 저 역시 비슷한 분별심과 깨달음 등등 복잡했던 심경이 생각이 납니다.
약발이 짧게는 2주 길게는 두어달 간다던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ㅎ
3~4년 후에 한번 더 가 볼 요량인데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하시지요. 재밌을 거 같아요 ㅎㅎ

2025-10-27 12:47:26

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저도 2026년에 성지순례 참가 신청자라서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업식을 보게 될지 궁금합니다. 저도 김태호 님처럼 나의 업식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는 그릇이길 바래봅니다.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10-27 12: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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