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희망을 말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

김경주 님은 우연처럼 대학생 시절 '동북아 역사대장정'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이어서 '방황해도 괜찮아' 강연에서 소임을 맡고 대학생 공동체살이를 하면서 수행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정토회 활동만 하는 자신에 대해 걱정하는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대학생 정토회 운영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였지만, 수행하며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꿔나갔습니다.
김경주 님은 지금 '산을 오르는 중'이라고 합니다.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문득 뒤돌아보면 한 뼘 성장한 자신이 보인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기암괴석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깊은 계곡이 있는 설악산 같은 수행담도 멋있지만, 오늘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끝없이 수려하게 펼쳐지는 지리산 같은 수행담도 참 매력적입니다.

작은 우물 안 개구리

인도 성지순례 중 전정각산에서
▲ 인도 성지순례 중 전정각산에서

학창 시절 이른바 학구열 높은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좁은 동네라 어른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쉬워 눈치를 많이 보았습니다.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모든 기준은 내가 아닌 바깥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집니다. 움츠러든 마음을 스스로 살펴 펼쳐보려 해도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작고 못마땅해 보였습니다.

크면서 점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땅따먹기 돌을 던지며 놀다가 아파트 유리창을 깬 적도 있고, 학교에서는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쫓아가 정강이를 걷어차서 다치게 하기도 했는데, 가정통신문에 ‘구두를 신겨 보내지 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키우기가 참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큰소리 없이 저를 품어주었습니다. 아버지도 늘 저에게 “잘한다, 최고다, 앞으로도 잘할 거다”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부모님은 사회의식을 가진 분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저에게 공부만 강조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부터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만 보다 드디어 숲을 보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우연히 홍보 메일 한 통을 열었습니다. ‘동북아 역사 대장정’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정토회, 법륜 스님도 모른 채 별생각 없이 지원했고, 2012년 동북아 역사 기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태프, 활동가 모두 자원봉사로 일을 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활동가들의 환한 얼굴과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순수한 마음과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 전국 300회 강연 중에 대학생 대상 ‘방황해도 괜찮아’ 강연에서 무대 기획팀장과 모둠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선배 도반들 도움받으며, 때로 실수도 하면서 부딪혔습니다. 미숙했지만 곁에는 늘 선배 도반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생 공동체살이를 하면서 ‘방황해도 괜찮아’ 전체 총괄 소임을 할 때 일입니다. 행사 전날까지 해당 기술팀과 소통이 되지 않아서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저녁 10시가 넘도록 사무실에 있었는데, 팀장이 이제 퇴근하고 회관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당장 내일이 강연인데, 이 일이 우선 아닌가?’ 의아했고, 마무리해야 한다 싶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회관으로 갔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됐고,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팀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삶에서는 개인의 고집을 세우기보다 작은 수칙 하나라도 잘 지켜야 하는데, 제가 수행은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 수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직장인 자세로 일한 것입니다. 그때 공동체에서는 작은 것 하나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무만 보다가 시선을 넓혀 숲 전체를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과(맨 뒤 오른쪽이 김경주 님)
▲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과(맨 뒤 오른쪽이 김경주 님)

참 잘 지나왔구나!

한창 수행하는 재미를 알아가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제가 열심히 취업 준비하는 줄 믿고 있던 아버지는 “요즘 뭘 하고 다니냐? 인생 똑바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어머니의 갖가지 걱정에는 또박또박 말대꾸하곤 했지만, 아버지에게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사람됨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한 말과 행동이 모두 거짓이라고 느껴지면서 아버지가 속물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백일출가 입재를 앞두고 경주 본가에 내려갔을 때입니다. 백일출가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얼른 집을 나오는데,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오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차마 입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서울 회관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수행 과제로 3,000배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나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집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부터 의지심을 없애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수행을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지만, 천일 결사 입재식을 시작으로 매일 꾸준히 정진하며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또래 친구들이 취업 준비와 스펙 쌓기에 한창일 때 절에 들어가 살고 있는 딸을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주변의 이해를 바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일사 수련에서 무변심 법사님께 수행 점검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대학생 정토회 운영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고 푸념했습니다. 법사님은 제 말을 차분히 다 들으시고는 “경주 씨는 참 부정적이네요”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창의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법사님 말씀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빵빵하게 부푼 풍선이 터진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직시한 듯 신선했습니다. 그때부터 눈앞의 사실을 보려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었습니다. 같은 일도 상황을 그대로 보려고 하니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1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대전 법당 공양간에서 여럿이 함께 일하던 중에 한 도반이 실수를 했는데, 그때 바로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도반이 “이야, 경주는 되게 긍정적이네”라고 하는데 법사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제가 불법을 통해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3년 넘게 꾸준히 기도하고 명상하는 모습을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지켜본 어머니가 어느 날 식사를 하며 법륜 스님 법문을 듣고 있는데 참 좋다고 하더니 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완강하던 부모님의 눈에도 수행하며 긍정적으로 변하는 제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마주했을 때는 마음 아팠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산을 오른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멈춰서 뒤돌아보면 한 뼘 성장한 내가 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경주 님)
▲ 부처님 오신 날에(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경주 님)

씨앗을 싹 틔워 열매를 맺도록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도반들에게 지도 법사님이 “영화 보고 감동하는 것과 똑같다. 영화 보는 동안 감동을 받아도 영화관 밖에 나가면 잊어버리는 것처럼, 여기서 좋다고 감동을 받아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기 쉽다. 성지순례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수행을 꾸준히 이어 나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느낀 감동과 환희를 한국에 가서도 이어 나가고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지금 회관 근처 공유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백일 법문 기간 기도에 참여하며 법문을 들었습니다. 백일 법문 후에도 매일 아침 기도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오전 8시 기도와 사시 예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1,080배를 했는데 늘 변함없이 맑은소리로 정근을 하시는 유수 스님과 불사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공덕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우습지만 숫자로 계산해 봤습니다. 1,080배를 평균 170명이 14주 동안 했으니까 257만 400배가 됩니다. 정근 공덕의 크기가 257만 400배만큼일까? 생각하는 순간, 1,080배 정진을 위해 청소와 준비를 하는 봉사자들의 공덕이 모든 장소에 가득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살고 있는 우주가 갠지스강 모래알처럼 많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경이로웠습니다. 처음에는 천배를 했다는 뿌듯함만 있었는데, 마지막 주에는 ‘모두의 힘으로 내가 할 수 있었구나, 혼자 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의심하고 따지는 습관이 있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한다면 방황하는 일은 없겠다 싶습니다. 엉뚱한 일에 애쓰지 않고 돌이켜볼 힘이 생깁니다. 대학 과정 중 중요한 졸업 조건인 3학년 현장 연구 시기에 휴학하고 대학생 정토회 활동을 할 때 지도교수가 “경주가 진짜 대학을 찾아갔구나”라고 한 말은 지금도 제 자부심입니다. 남들이 가고 싶은 대학이 전부이던 우물에서 나와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개구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선배 도반들에게 받은 씨앗을 싹 틔워 앞으로도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수행하며 부처님의 바른 법을 통해 행복이라는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2013년 공주부여 역사기행에서(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경주 님)
▲ 2013년 공주부여 역사기행에서(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경주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9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김경주(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전체댓글 10

0/200

김현주

경주님 멋지세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2026-04-27 14:28:45

황석현

경주님~잘들었습니다.고맙습니다:)

2026-04-27 14:20:32

현광 변상용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참 어려운 문제에요.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언젠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정말 지리산 같은 수행담이네요. 일반 등정이 아닌 종주. 지금도 걷고 있는.
도반님의 멋진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2026-04-27 12:39:26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용기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

목록보기